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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기발한 우연학 입문
빈스 에버트 지음, 장윤경 옮김 / 지식너머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작년에 읽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에서는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 말을 뒤집는다. 우연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 우연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네 개의 파트로 나누어 설명한다. 개인의 삶, 일과 성공, 학문, 미래 등이다. 미시적으로 본다면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맞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혹은 전 우주적으로 본다면 어떨까? 아마도 우연보다는 누군가에게 일어날 일이 결국 그 사람에게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개인에게는 분명 우연이 작용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원제목은 이렇게 길지 않다. <unberechenbar>라는 원제목의 독일어를 번역하니 ‘계산할 수 없는’ 혹은 ‘예측할 수 없는’ 이란 형용사로 설명되어 있다. 이 짧은 제목이 이렇게 변한 것은 최근에 많이 팔린 책의 제목을 따라한 탓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제목은 원래의 저자가 의도한 것과 조금은 다른 식으로 변했다. 우연을 계산할 수 없는 것으로 대체 가능한가 하는 의문도 생기면서 말이다. 아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대는 앞에서 말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란 책과 나의 생각이 맞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도 거대하고 복잡한 현상을 우리가 설명할 수 없기에 ‘우연’이란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연학이란 학문이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 책의 앞의 두 장은 원제목에 나온 계산할 수 없는 삶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 계획한대로 잘 되지 않는 우리의 삶을 개인과 일로 풀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삶과 일에서 수많은 계획을 세운다. 저자도 말했지만 수많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매년 새로운 예측을 쏟아낸다. 그런데 그 중에서 제대로 맞은 것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뒤에는 다시 언론이 그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는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책 속에서 종말론을 믿는 신도의 예와 닮아 있다. 한 번 생긴 권위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익숙하고 유명한 이름은 인용하는 사람에게 아주 편한 존재다. 그 결과를 다시 검토하는 일이 없는 언론에서는 특히.
일상에서 만남은 우연인 경우가 많다.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로 볼 수도 있지만 최소한 그 순간만은 우연일 것이다. 운명적 만남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소설 등도 바로 이 우연을 극대화시켜 표현한다. 건강은 어떨까? 아이는 또? 이 부분에서는 우연보다 저자의 원제목인 ‘예측할 수 없는’ 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우리는 수없이 생각하고 살면서 바꾼다. 계산한 대로 세상이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수학 공식대로 삶이 흘러간다면, 미래가 개인별로 정해져 있다면 얼마나 단순할까? 우연한 발견이나 발명이나 만남도 역시 정해진 것이라는 의미일 테니.
학문에서 우연은 준비한 자에게만 온다고 말한다. 기회가 늘 준비된 자에게 온다는 말과 똑같다. 사실이다. 과학사에서 실수나 착각 등의 우연으로 발견한 놀라운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측한대로, 계획한대로 되지 않아서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이 과학이고 발전이다. 고집스러운 사람들이 이 갑작스러운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뇌가 우연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앞에서 내가 주장한 것도 이것의 연장선일지 모르겠다. 최소한 아주 미시적인 부분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현생 인류가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로 지식의 전달과 변화에 대한 빠른 적응을 말하는데 동의한다.
우리는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전문가의 예측은 그냥 예측일 뿐이다. 빅 데이터의 분석도 마찬가지다. 살면서 늘 합리적으로 살지도 않는다. 늘 동일한 패턴으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변하기도 한다. 이때는 우연보다는 ‘계산할 수 없는’이란 표현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이 책 속에서 천재성에 대한 연령별 인용이 나오는데 우리의 억압적인 교육 방식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사고의 틀이 고정된 후에 우리가 가지는 선입견은 무서울 정도다. 재미처럼 나온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 읽은 소설 한 대목을 떠올려주었다.
공연을 많이 하는 저자가 쓴 책이고, 유머를 곳곳에 넣어 생각보다 쉽게 읽었다. 덕분에 곳곳에서 실소를 풋! 하고 몇 번이나 날렸다. 그 유머가 나와 맞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우연학이란 제목 때문에 원래의 가치가 조금 사라진 것 같다. 저자는 우연보다는 우리가 계산한대로 되지 않는 삶과 미래와 일들을 말하고 싶어한 것 같은데 말이다. 이 표현의 차이를 하나로 뭉뚱그린다면 그 의미가 많이 왜곡될 것이다. 오랜만에 재미있게 대중적인 자연과학 분야 글을 쓰는 작가 한 명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