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신화
닐 게이먼 지음, 박선령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재작년 말에 1909년에 출간된 <북유럽 신화, 재밌고도 멋진 이야기>를 읽었다. 이 책은 신들을 한 명씩 한 명씩 이야기로 풀어내었다. 신들의 인명사전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옛 에다를 바탕으로 한 새 에다와 산문으로 써 원전의 느낌을 살렸다. 덕분에 읽을 때는 낯선 이름과 그 운문으로 조금 고생했다. 이 고생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북유럽 신화는 기억 속에서 조금씩 사라졌다. 영화 <토르>나 <어벤저스>의 이미지만 강하게 남긴 채 말이다. 그런데 닐 게이먼은 이 북유럽 신화를 사건 중심의 각각 독립된 단편소설로 만들었다. 당연히 엄청난 가독성을 보여주었다.

 

이 북유럽 신화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의 죽음과 노쇠 등이 다루어지고, 각각의 신들이 하나의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신화를 비교하는 것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이 신화가 들려주는 놀랍고 재밌고 아주 인간적인 이야기를 즐기면 된다. 실제 에다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지 안다면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닐 게이먼처럼 재미있게는 쓰지 못할 것이다. 각각의 이야기 속에 신들의 성격을 아주 잘 드러내주었기 때문이다.

 

북유럽 신화를 다룬 에다를 읽지 않았기에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오딘, 토르, 로키 등의 분량이 실제 이렇게 많은지는 알 수 없다. 특히 이 소설에서 토르와 로키의 분량은 절대적이다. 이들이 경험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건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니면 사건 속에서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한다. 특히 로키는 대부분의 큰 문제에 직접 간접적으로 엮여 있다. 신들의 황혼이라 불리는 라그나로크의 경우에는 그의 자식들과 그가 일으키는 엄청난 사건이다. ‘로키의 자식들’이란 이야기에서 이들이 어떻게 태어났고, 앞으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보여준다. 그리고 왜 그들을 죽이지 않고 문제를 그대로 안고 갈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이것은 운명이란 이름으로 포장된다 해도 말이다.

 

북유럽 신화를 읽을 때면 토르의 무식함과 과격함과 엄청난 힘에 늘 놀란다. ‘토르의 거인 나라 여행’은 그가 지닌 힘이 얼마나 대단하지 알려준다. 그의 엄청난 식성도 같이. 이 식성은 ‘프레이야의 이상한 결혼식’에서 한 번 나왔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훨씬 대단하다. ‘하미르와 토르의 낚시 여행’에서 거인들보다도 많이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작은 몸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음식이 들어갈지 궁금하다. 물리학적으로 본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토르에게 일어난다. 폭이 5킬로미터나 되는 솥은 들고 올 수 있을 정도의 힘이란 것에 놀라고, 이 솥을 사용하는 거인들을 아주 쉽게 죽이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란다. 이 신화를 읽을 때면 이 비과학적인 수치들에 항상 의문을 품는다.

 

토르와 함께 늘 말해지는 뮬리뇨가 로키의 장난 때문에 만들어졌다. 신들이 사랑하는 무기와 도구들이 로키의 장난 때문에 탄생한 것이다. ‘신들의 보물’ 이야기가 그렇다. 이것만 놓고 보면 장난꾸러기이자 모사꾼인 로키가 신들에게 좋은 일도 알게 모르게 많이 했다. ‘최고의 성벽 건축가’에서도 로키의 지혜와 희생이 없었다면 아스가르드의 높은 성벽은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멸의 사과’에서 로키는 신들을 아주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간다. 불멸의 신들이 노쇠해지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물론 그가 기지를 발휘해 사건이 잘 해결되지만 그가 아스가르드에 아주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오딘은 이야기의 첫 부분에 등장해서 중심을 잡아준다. 까마귀들로부터 세상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알지만 이것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의 자리가 세상을 둘러볼 수 있는 위치인지도 모른다. 프레이가 그의 자리에서 게르드의 모습을 보고 한 눈에 반하지 않았든가. 로키의 자식들이 일으킬 문제를 알면서도 그대로 두는 것도 세계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서다. 실제 사건들에서 그가 직접 활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식인 발드르가 죽었을 때를 제외하면 이야기가 끝까지 별다른 활약이 없다. 하지만 최고신의 거대한 존재감은 언제나 이야기 속에서 조용히 흘러간다.

 

신화는 아주 비과학적이다. 동시에 아주 많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구전문학인 경우 원래의 이야기가 어떤 전승되는 과정에서 어떤 가감을 거쳤는지 알 수 없다. 기독교가 북유럽에 전파되면서 원래의 이야기는 더 많이 사라졌을 것이다. 기독교에 맞게 가공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은 학자들에게 맡기면 된다. 과학과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가 나처럼 거슬린다면 새로운 과학 이론 하나를 만들거나 상상하면 된다. 나처럼 거인과 싸우는 토르의 크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면 토르의 힘을 더 크다고 생각하거나 비율이 과장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럼 이런 신화에 대한 트집은 닐 게이먼의 놀라운 이야기 속에 파묻혀 사라질 것이다. 혹시 닐 게이먼이 <그리스 로마 신화>도 써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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