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도시적인 삶 - 무지개떡 건축 탐사 프로젝트
황두진 글.사진 / 반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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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신잡>에서 무지개떡 건축이란 용어가 나온 모양이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나는 이 용어를 몰랐다. 그러다 이 책의 저자가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는 것과 목차에 나오는 몇 곳의 건물들에 눈길이 갔다. 솔직히 말해 이름을 아는 건물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사진을 본 후 그 건물의 기억이 살아난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무지개떡 건축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겼다. 단순히 아파트에 사는 문제만이 아니라 주변과 도시의 발전 등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 점도 같이 배웠다.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단독형, 단지 결합형, 시장 결합형, 해외 도시의 무지개떡 건축 등이다. 각 건물의 도입부에는 저자가 점수를 매긴 무지개떡 지수란 것이 나온다. 입지, 규모, 복합, 보행, 형태 등에 각각 20점씩 부여해 총점을 낸 것이다. 이 총점은 저자 자신의 평점이라 추후 대중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된다면 충분히 바뀔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몇몇 건물의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 재개발되어 사라질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무심코 보고 지나갔던 건물들이 과거에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알 수 있어 즐거웠다.

 

무지개떡 건축이란 “도시의 기본 밀도를 충족하면서 복합 기능을 통해 거리의 활력에 기여하고, 도시의 기존 맥락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으며, 나아가 상주인구와 유동인구의 적절한 균형을 확보할 수 있는 유형”을 말한다. 이름 때문에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요즘 말로 바꾸면 주상복합 혹은 상가아파트 등이다. 저자의 개념은 물론 이것을 포함하여 더 나아가지만 간단하게 말해 그렇다. 저자가 시원적 형태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상가아파트다. 이 책의 대부분의 건물들이 상가아파트를 다루는 것도 이것과 관계있다.

 

예전에는 도시를 떠난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냉정하게 나의 삶을 돌아본 후 전원생활이 주는 유불리를 따지니 도시를 떠날 수가 없었다. 평생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에 이 편리함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쉽게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는 어른들이 많다. 도시의 근접성과 편리함은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무지개떡 건축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저자처럼 거주지와 직장이 같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일반 직장인이 이럴 수는 없다. 하지만 도시의 개발과 개선을 감안한다면 한 번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주상복합의 대명사인 타워팰리스를 제외하면 세운상가와 낙원빌딩이 가장 낯익은 이름이다. 실제로는 이 둘이 나에게는 더 익숙하다. 세운상가에 대한 기억은 지나간 것밖에 없지만 낙원상가 건물은 비교적 최근까지 자주 간 곳이다. 대부분은 스쳐 지나가기만 한 곳이지만 영화를 보기 위해 자주 갔었다. 그때의 이미지만 떠올리며 책을 읽고 건물 이야기를 듣게 되니 사뭇 다른 모습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퇴락한 외부와 달리 아주 잘 정리된 내부의 모습과 편리한 생활환경이 눈길을 끌었다. 이렇게 이 책은 기존 이미지를 뒤집고 새로운 시각으로 건물들을 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직주근접이란 용어와 더불어 생각해볼 것은 그 건물이 주변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등이다. 저자가 중요하게 보는 것 중 하나는 옥상인데 이 부분도 각 건물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고 나온다. 이 기록은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저자가 발로 찾아가서 조사한 것이다. 예외 한 곳은 북한의 평양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생동감이 떨어지는 글이었다. 발로 조사한 기록은 과거의 기록과 많은 차이가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 변경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과거 건축가의 이름이 없는 곳이 태반이고, 유명한 건축가의 건물조차 원래 의도와 다르게 만들어졌다. 이런 역사와 기록은 한 도시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한국에서 서울을 빼면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인의 남향선호를 자주 꼬집었는데 나도 그렇다. 남향의 좋은 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최근 아파트들은 이런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용적율 등의 문제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너무 퇴락한 아파트는 열외로 치고, 개인적으로 살아보고 싶은 아파트도 꽤 많았다. 건축가의 말빨에 혹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읽다 보니 그냥 무심코 본 건물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조금 생겼고, 관심은 더 높아졌다. “일단 가서 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내가 살 집을 선택할 때도 같이 적용된다. 나에게도 건물이 말을 걸어오는 순간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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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했던 여름이 지나고
태재 지음 / 빌리버튼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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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재, 이름이 낯설다. 시인의 첫 산문집이란 말에 혹했다. 인터넷 서점을 검색하면 그의 책이 몇 권 나오지 않는다. 이 산문집에 가장 많이 나오는 그의 시집 <우리 집에서 자요>는 검색도 되지 않는다. 구글로 검색하니 독립출판이란 단어가 보인다. 예전에 방송에도 잠시 나왔던 모양이다. 캡쳐된 시도 몇 편 보이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시와 조금 달라 보인다. 이 모든 검색은 이 산문집을 읽기 전에는 별 관심도 없었다. 아니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렇게 산문집을 다 읽고 그를 찾아보니 글 속에서 나왔던 몇 가지 장면이나 상황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시인은 불행의 반대말을 다행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언어의 습성을 작가는 이렇게 깨트린다. 결코 두텁지 않은 분량이라 대부분 회사에서 틈틈이 읽었다.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언어의 온도>와 닮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책을 잘 읽지 않는데 가끔 한두 쪽씩 읽으면 나름대로 재미있다. 한두 쪽이라고 했지만 실제는 몇 십 쪽을 읽는다. 일상에서 시작한 기록과 감상 등은 나의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공감대의 폭이 다르다. 공감하는 부분보다 요즘 청춘은 이렇게도 사는구나, 하는 감탄과 인식이 더 많이 작용한다.

 

20대에 자신의 선택을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시인의 길로 나섰다. 대단하다. 매년 책을 낸 듯해 더 대단하다. 일상을 기록하는 습관은 개인적으로 부럽다. 이 기록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정제된 문장과 다양한 글쓰기가 실려 있다. 한 편의 글 분량은 언제나 일반적인 책의 두 쪽을 넘어가지 않는다. 가볍게 휙휙 넘기다가 마음에 드는 문구와 내용이 나오면 잠시 멈춘다. 숨을 고르고 내용을 읊조린다. 나처럼 중늙은이가 아닌 청춘들이라면 더 많이 공감할 내용들이다. 그들의 삶이 태재의 문장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 글들을 읽으면서 잊고 있던 감성과 기억들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시인의 글은 관찰과 비유로 가득하다. 하지만 어떤 때는 간결한 직설이 더 효율적이고 시적일 때가 있다. 검색으로 읽은 시들에게 발견한 것이다. 이 산문집에도 그런 모습이 종종 보인다. 가진 것 없는 청춘의 삶은 힘들다. 이 힘겨움을 그는 조용히 견뎌낸다. 옥탑방에서든, 공장지대 옆에서든. 서점에서 일할 때 에피소드는 그 뻔뻔함이 재밌다. 자신의 책을 추천하다니.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책을 가지고 있다는 손님의 반응이다. 내가 몰랐다고 다른 사람들까지 모르고 있다는 착각은 이래서 위험하다. 그의 사인을 받은 손님은 정말 행운이 많다.

 

스스로 천재라고 말하는 자뻑은 반전으로 더 재밌다. 글쓰기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의 답과 국어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글쓰기 시작했다는 대답은 한 시인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많은 글들 속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다짐과 일상이 담겨 있다. 청춘은 이렇게 성장한다. 그가 꿈꾸는 생업은 나의 가슴 한 곳에 와 닿는다. “‘천천히’가 아니라 ‘꾸준히’다.”란 문장이다. 살면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꾸준히 하는 것이다. 이것을 평생하려면 엄청난 의지와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그의 ‘꾸준히’를 응원한다. 그리고 그가 마주한 일상들 속에서 우리 주변 사람들의 삶을 발견한다. 내가 무심코 지나친 것들이 태반이다. 이 글들을 읽으면서 잠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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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 현대사 - 강철서신에서 뉴라이트까지
박찬수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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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을 말하면 PD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둘은 학생 운동과 대중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이다. 이 둘이 많은 논쟁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런 쪽에 별 관심이 없기에 그 차이를 잘 모른다. 학창시절 운동권이 아니었기에 특히 더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련한 옛 기억 몇 개가 떠오르기는 했지만 모두 과거의 일이다. 역외자였던 나에게는 후일담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역사를 알고 싶고, 몇 년 전 통진당 사태 등으로 다시 불거진 NL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로 회귀하여 그 시절을 떠올리는 추억 여행을 했고, 잘못 알고 있던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을 배웠다.

 

NLPDR(National Liberation People's Democracy Revolution)은 번역하면 민족 해방 민중 민주주의 혁명론이다. 이것은 둘로 나누어져 민족 해방(NL)파와 민중 민주(PD)파로 불린다. 이 책은 이중에서 NL의 탄생과 전성기와 갈등과 분열 등의 역사를 기록했다. NL의 최전성기는 전대협 시절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 시절 대학을 다녔다. 그때는 앞에서 말했듯이 NL의 의미조차 몰랐다. 관심이 없었고, 가끔 흘러나오는 주체사상에 생리적 거부감이 있었다. 주체사상이란 이름은 좋으나 그 실체가 주체적이지 않았고, 그때까지 받은 반공교육이 아직 강하게 똬리를 틀고 있던 시기였다.

 

부제에 강철서신과 뉴라이트가 같이 나와 놀랐다. 강철서신이 어떤 글인지는 모르지만 NL과 뉴라이트라니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NL에서 전향한 인물들이 어떻게 뉴라이트가 되었는지 알려주는 부분은 책 마지막에 나온다. 수많은 운동권 인물들이 전향하여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 속에 또 다른 의도가 있었다는 변명에 실소하게 된다. NL의 전향에 북한 방문이 자리하고 있는 부분은 북한 정보가 비교적 풍부해진 요즘에는 쉽게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가졌던 열정과 충성도를 생각하면 안기부 프락치설에 눈길이 간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시 연구해야 할 부분이다.

 

김영환이란 이름 낯설다. 그런데 그가 쓴 강철서신은 그 시절에 운동권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 당시 대학생들은 북한 방송을 청취하고 주체사상을 공부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때 간첩사건들이 완전히 조작은 아니였다는 의미다. 이런 사건들이 90년대와 2000년대에도 있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충격이다. 모든 것이 조작일 것이란 섣부른 추측을 한 탓이다. 또 이들이 간첩과 함께 북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은 어릴 때라면 영웅담으로 흥미진진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독자적인 운동세력으로만 알고 있던 내가 얼마나 순진했는지 알게 된다.

 

NL을 말하면 역시 전대협이다. 임종석으로 대표되는 전대협은 아주 강력한 단체였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도 바로 이런 NL의 성장과 함께 한다. NL은 지하써클에서 나와 학생회를 접수한 후 전국대학생들을 조직했다. 전대협의 구국의 강철대오란 이름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하지만 386세대의 주력이었던 이들이 현재 사회에 끼친 부작용 등을 생각하면 그 공과를 조금 더 냉정하고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때와 그 후로 나눠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면 반미운동과 통일운동이 같이 다루어졌다. 학교 대자보는 미국의 저강도 정책을 비판하는 것으로 가득했었다. 임수경의 방북도 이때다.

 

한총련 이후 대학 안에서 NL은 거의 사라진 것 같다. 시대의 변화를 학생 운동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이후 NL은 정당으로 변모했는데 NL과 PD가 손을 잡고 민노당을 만들었다. 당권 투쟁은 치열했고, 부정선거가 개입하면서 통합진보당은 다시 쪼개졌다. 개인적으로 많은 기대를 한 정당이었는데 이 사태가 많은 실망을 주었다. 이때 이석기란 인물이 나왔는데 솔직히 말해 대중적인 인지도가 전혀 없었다. 막후 실세였다는 것은 뉴스를 통해 알았다. 그리고 저자의 재미난 분석 중 하나는 이정희가 대권 레이스에서 그만 둔 것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 선거 당시의 백기완을 비교한 부분이다. 이때 이정희가 싫어서 박근혜를 찍었다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NL 현대사>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이 책은 NL이 쓴 책이 아니다. 책으로 묶으려는 의도로 시작한 것도 아니다. 한겨레에 연재된 것을 덧붙여 책으로 내었다. 많은 자료와 인터뷰를 인용하면서 NL과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운동권과 진보정치권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NL의 대중적 성공 중 하나로 품성론을 든 것과 강철대오의 일사분란함이 바뀐 시대에 어떤 문제점을 불러왔는지 보여줄 때 다시 과거의 달콤한 열매에 집착하는 기성세대를 만난다. 분명히 NL은 한국의 민주화에 많은 공을 세웠다. 하지만 과실도 적지 않다. NL의 장점이 시대와 맞을 때는 엄청난 성장을 하였지만 바뀐 시대를 따라가지 못할 때는 사그라들었다. 내가 살면서 지나온 시간들 속에 한 조직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 그 길이 나의 길과 어떻게 걸치고 엇갈렸는지 들여다보았다. 언젠가 민중운동사를 공부할 필요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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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
이우일 지음 / 비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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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처음에는 ‘플랜’인줄 알았다. 노안과 상식에 기댄 첫인상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포틀랜드를 작가가 줄여서 만든 조어다. 나에게 포틀랜드라고 하면 미국 스포츠 구단의 이름에 들어간 것 외에는 아무 지식도 없다. 당연히 위치가 어딘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오다가다 들은 정보가 있을지 모르지만 딱 그때뿐인 지식이다. 이런 포틀랜드가 이우일의 글과 그림을 통해 나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쳤다. 외국의 한 도시에 무려 2년을 살면서 기록한 책으로. 언제나 외국의 한 도시에서 한 달 이상 살고 싶어하는 나이기에 이 유혹은 아주 강했다.

 

포틀랜드는 미국 오리건주 북서부에 있는 도시다. 이렇게 적으니 내가 오리건주 위치를 아는 것 같다. 사실은 모른다. 지도를 찾아보고 더 쉽게 설명한다면 시애틀 바로 밑에 있는 도시 정도다. 태평양을 끼고 있는 도시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날씨가 시애틀과 아주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위치가 비슷한 탓일 것이다. 이곳을 작가는 아내와 딸 은서를 데리고 갔다. 우연히 선택한 도시인데 만족도가 아주 높다. 긴 시간을 머문 탓인지 글과 그림에 여유가 느껴진다. 보통 유명 만화가하면 빡빡한 일정에 쫓길 것 같은데 연재물이 없는 탓인지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퐅랜의 생활과 딱 맞아떨어진 모양이다.

 

이우일. 이름은 낯익지만 사실 먼 작품을 그렸는지 몰랐다. 그런데 그 유명한 로빈손 시리즈의 작가다. 가끔 이름을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가도 그 중 한 명이다. 다시 그럴지 모르지만 최소한 올해까지는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얼마 시간이 남지 않았으니까 특히!) 만화가의 에세이라고 하지만 그림보다 글이 훨씬 많다. 이 점은 조금 아쉽다. 보통 더 많은 정보를 얻길 원하는데 원근법을 적용한 그림 한 장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다음부터 더 많은 그림을 보고 싶었다. 단순하게 휙 그린 듯한 그림이 아주 세밀하고 정교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진을 대신한 그림들은 사물의 특징을 잘 표현해주었는데 사진과 비교해보고 싶은 느낌도 들었다.

 

외국에 살아본 적이 없다보니 그가 풀어내는 일상의 모습이 낯설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의 일상과 닮았지만 외적 요인들이 세부적인 차이를 만든다. 퐅랜의 다양한 행사와 축제들은 그런 축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이방인으로 잠시 머물다 간다고 해도 멋진 경험이 될 것 같다. 특히 맥주와 재즈 페스티벌은 오래 머문다면 천천히 여유를 즐기면서 누리고 싶다. 아쉬운 점이라면 맛집을 그렇게 찾아다니지 않아 풍부한 정보가 없다는 것 정도랄까. 대신 그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이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몇몇은 읽으면서 내 방 모습이 떠올라 괜히 아내의 눈빛이 스쳐지나갔다.

 

퐅랜에서 그는 수집을 계속한다. 이 느낌, 나도 안다. 멈출 수 없다. 파월 북스에서 딸의 첫 번째 책을 만들어준 이야기는 아주 환상적이다. 에스프레소 북 머신이란 것도 처음 알았다. 헌책과 새책이 공존하는 책방 이야기는 나를 유혹한다. 실제 책을 사는 경우는 이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늘 쌓여 있는 책들 보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면 한두 시간은 그냥 지나간다. 대형 중고 가게 이야기도 자주 나오는데 우리와 다른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이것을 즐긴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사인을 받으려는 그의 열정은 최근 특정 작가에 대한 열정을 잃어가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 날씨를 빼면 많은 부분이 날아간다. 비가 와도 맞고 다닌다고 했을 때 얼마 전 다녀온 여행지에서 내린 비가 떠올랐다. 조금 내린 비는 그냥 맞고 다녔다. 마리화나를 피우는 공원도 놀랍지만 많은 사람들이 타투를 했다는 부분은 더 놀랍다. 아무리 타투가 자유로운 나라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이 심한 도시라고 하지만 그들이 경험하지 않았다는 부분에서는 다행이라고 느꼈고, 미국 사는 후배가 한 말이 동시에 떠올랐다. 아직 인종차별이 심하다는 그 말. 그리고 아직 잘 살고 있다는 현실. 이렇게 퐅랜의 이미지 하나가 추가된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 수집과 책과 잡동사니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자동통역기. 특히 자동통역기는 나도 가까운 미래에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알파고라면 가능할 것이란 기대를 안고. 한 도시에 살면서 생기는 다양한 경험을 이 가족은 한 듯하다. 트럼프 당선의 비극도 보았다. 읽으면서 작가가 매일 달린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작가는 역시 하루키다. 다음으로 박연수다. 이제 이우일도 기억해야 하나? 아직 모르겠다. 그가 퐅랜에서 누린 시간들은 보통 사람들의 부러움을 불러온다. 제목을 패러디하면 그가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나는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 현실이다. 하지만 언제 이 현실을 벗어나 작가처럼, 아니 그보다 적은 날짜라도 낯선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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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4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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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 많은 스릴러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애칭으로 <모기남>으로 불렸고, 나도 어느 순간 ‘모기남’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역사 속에 엄청난 기억력을 가진 이야기가 나오지만 현실에서 이런 인물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 작가에 따르면 전 세계에 수십 명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이런 사람들이 이슈화되지 않고 있을까?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 대한 책도 있는데 말이다. 이런 의문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이어졌다. 그리고 읽으면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엄청난 장점이지만 또 엄청난 고통이란 것도 다시금 깨달았다. 그 고통을 극대화시켜 보여주는 것이 이 소설의 첫 장면들이다.

 

에이머스 데커. 전직 미식축구선수. 현직 경찰.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 처참하게 살해된 가족의 시체를 발견한다. 보통 사람에게도 엄청난 고통이지만 그는 더 심하다. 그가 바로 과잉기억증후군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즉 모든 것을 기억한다. ‘모기남’은 여기서 비롯했다. 이 비극과 고통은 그가 자살을 시도하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실패하고, 좌절하고, 거의 패인이 된다. 일상으로의 복귀는 아주 더디고, 완전하지도 않다. 범인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그러다 그가 다녔던 맨스필드 고등학교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난다. 동시에 그의 가족을 죽였다고 말하는 인물이 자수한다. 분노와 살의 가득한 그가 경찰서로 간다.

 

경찰서에서 만난 범인은 허술하다.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입 경찰을 속이고 면회를 했지만 범인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의 진술과 데커의 기억이 어긋난다. 그가 몰래 들어왔다는 사실을 서장이 알아채지만 그냥 넘어간다. 그러다 맨스필드 고등학교 총격 사건 조사원으로 채용된다. 서장의 선택이다. 이 학교에서 그는 사건 현장을 둘러보고, 사건 보고서를 읽는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그는 자신의 모교란 장점을 살려 다른 시각에서 사건을 보게 된다. 사건 당일 들렸던 소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전까지 조사에서 결코 발견하지 못했던 장소를 찾아내고, 단서의 꼬리를 쫓아간다.

 

누가 봐도 범인이 아닌 것 같은 자수범과 고등학교 총격 사건은 뒤엮인다. 데커의 일차 관심은 가족을 살해했다고 자백한 범인이다. 하지만 이 범인은 변호사를 통해 너무 쉽게 풀려난다. 다른 곳 경찰에 잡힌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데커가 풀려난 그를 쫓고, 한 술집에서 대화를 나누지만 어느 순간 사라진다. 이 순간 독자들은 이 놈의 정체가 무엇일까?,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고등학교로 돌아가서 새로운 단서와 증거들을 발견한다. 이때 아주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데커의 기억력이다. 창의성은 없지만 모든 것을 기억하는 그 기억력 말이다.

 

현대의 과학 수사는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하고 분류하고 걸러내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이것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인물이 데커다. 자료를 그가 보기만 하면 입력되고, 필요에 의해 불러내어지고, 분류된다. 과연 소설 속에서 묘사된 것 같은 다양한 능력이 이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가능한지는 의문이지만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하는데 아주 효율적이다. 데커에게 기억은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그건 이미 거기 있거나, 아니면 없는 것”이다. 이 기억도 입력될 때 약간의 오류가 생기는 모양이다. 원본과 기억의 비교가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결정적 단서가 된다. 이 능력만 놓고 보면 정말 부럽지만 그가 겪은 고통과 수많은 아픔 등을 생각하면 결단코 가지고 싶지 않다. 망각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솔직히 말해 데커의 원맨쇼에 전 동료 골초 랭커스터와 FBI 특수요원 보거트, 여기자 재미슨 등이 살짝 곁다리를 얹은 느낌이다. 가끔 창의적인 의견을 던져주지만 이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데커의 발이 되거나 의지를 유지하는 일이다. 물론 묘사되지 않은 수많은 일들을 홈즈 등의 소설처럼 경찰들이 해주었을 것이다. 그가 단서를 빠르게 쫓고, 발견하고, 의견을 교환하는데 이들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작가는 너무 데커에 집중했다. 그의 능력과 삶을 풀어내는데 열심이었다. 이것도 이 사건들의 단서가 데커의 삶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이해하게 되었지만.

 

소설은 잔혹하고 거침이 없다. 하나의 죽음은 다른 죽음을 발견하는 단서가 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물음은 마지막에 풀리지만 그것을 따라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 해답도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처럼 완전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뇌는 현재까지 미개척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자들은 상식과 지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괴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냥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데커가 다음 소설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한다. 금방 <괴물이란 불린 남자>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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