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유령과 바리스타 탐정 한국추리문학선 1
양수련 지음 / 책과나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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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미스터리>에 발표한 작품 등을 모아 내놓은 연작소설집이다. 한때 한국 추리소설을 열심히 읽을 때가 잠시 있었지만 일본과 서구 미스터리로 금방 넘어갔다. 외국에서 엄선된 작품들에 비해 한국의 추리소설은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후 짬짬이 한국 추리소설들을 읽었지만 압도적으로 외국소설에 비해 적었다. 그래도 한국 추리소설이 나오면 관심을 두었고, 가끔 읽는 작품들은 발전하는 한국 장르 소설의 현재를 볼 수 있어 좋았다. 그 연장선의 정점이라고 할 수 없지만 작은 커피숍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각종 사건들은 작은 만족감을 조금씩 채워주었다.

 

마환. 스물세 살이고 열네 살에 재혼한 아버지를 떠나 홀로 살았다. 그의 주변에는 여덟 살에 갑자기 나타난 유령 할이 있을 뿐이다. 죽은 어머니 친구들의 도움으로 살아왔지만 기본적으로 인간관계가 좋은 편이 아니다. 그가 가끔 내뱉는 할과의 대화는 다른 사람이 볼 때 ‘뭐지?’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그가 경찰을 꿈꾸다가 할 때문에 할의 커피 맛이란 카페를 열었는데 이 공간이 그로 하여금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만나게 만든다. 그 방식은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것이다. 아홉 편의 연작 단편은 마환의 성장과 관계의 발전을 나타내는 기록이기도 하다.

 

커피유령 할은 19세기에 스물여섯 살로 죽었다. 그런데 그는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환 앞에 나타났다. 그의 기억 속에는 한 여자와 그녀가 전해준 커피 맛만이 있을 뿐이다. 할의 커피 맛 카페에는 할을 위한 지정석이 있고, 환은 매일 커피 한 잔을 그 자리에 놓아둔다. 할의 기억이 환으로 하여금 커피숍을 열게 만들었지만 사실 그는 커피맛을 잘 모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생전에 한 번 들이킨 커피와 환이 만들어준 커피말고는 없다. 이런 유령 때문에 카피숍을 열었다는 것이 조금 의외지만 할과 환이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할의 몇 가지 조언이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커피숍이란 공간이 있지만 모든 사건이 이곳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환의 옆집에서도, 제주도에서도, 거리에서도 일어난다. 이 사건들은 작은 장난이나 돈에 대한 탐욕이나 질투나 외로움 등에서 비롯했다. 이것은 다시 국제결혼, 아동학대와 보험사기, 제주도 땅 투기, 고미술 거래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된다. 환은 이 사건들의 중심에 놓여 있거나 주변에서 사건을 풀어낸다. 바리스타 탐정이란 명성도 바로 여기에서 생긴 것이다. 명성은 다시 사건을 몰고 오고, 사건 해결은 다시 이름을 더 높인다. 환의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과정도 이것의 연속선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와중에 풀리지 않는 두 가지 미스터리가 있다. 하나는 커피유령 할의 과거이고, 다른 하나는 바리스타 탐정 환의 가정사다. 환의 가정사 일부가 에필로그에 나오지만 이것이 모든 이야기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이 작품이 시리즈로 계속 나온다면 이 미스터리로 반드시 풀어내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 드러날 이야기가 과연 무엇일지, 그 진실이 만들어낼 충격은 또 어떤 식일지도 궁금하다. 단순히 살인사건만 다루지 않고, 일상의 미스터리도 같이 넣어서 과도할 수 있는 살인을 낮추고 이야기에 현실성을 불어넣었다. 그렇다고 해도 할의 존재는 비현실적이다. 앞으로 이 둘이 만들어낼 미스터리는 과연 무엇인지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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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이브스 1 - 달 하나의 시대
닐 스티븐슨 지음, 성귀수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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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닐 스티븐슨의 하드SF소설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스노크래시>를 아주 재밌게 읽었기에 다른 sf도 열심히 찾은 적이 있다. 몇 권으로 이루어진 그의 소설은 나의 취향을 언제나 왔다갔다했다. 기대한 바를 충족하거나 이해하는 부분이 많으면 재밌고, 그 이상이면 읽는데 힘겨웠다. 사실 이 소설은 후자에 가깝다. 사고실험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들이 현재의 과학과 어디까지 이어져 있고, 어디가 상상력의 경계인지 잘 모르기에 더욱 그렇다. 나의 짧은 물리학과 천문학 지식은 가장 기본적인 설정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달이 폭발했다란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이 문장을 읽고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달의 인력 정도가 전부였다. 지구의 중력에 의해 폭발한 달이 바로 지구로 내려오면서 생기는 대재앙을 먼저 떠올렸는데 작가는 폭발한 달이 중력을 어느 정도 유지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 중력이 깨어진 달의 파편들의 충돌로 이어지고, 이것이 가속화되면서 먼지처럼 지구 주변을 뒤덮는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깨어진 파편들 중 일부가 지구로 떨어지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아주 간결하게 말해준다. 인도양에 유조선 크기의 운석이 떨어져 4만 명이 해일 등으로 죽었다는 표현처럼.

 

70억 인류가 달의 폭발 여파로 죽게 된다는 것과 함께 2년이란 유예기간이 설정된다. 이 소설은 바로 이 2년 동안 인류가 어떤 준비를 하는지 보여주고, 지구가 달의 영향에서 벗어난 5천 년 후의 세계를 보여준다. 아직 1권만 읽은 상태라 어떤 이야기가 더 나올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읽은 부분만 놓고 보면 너무나도 이성적이다. 물론 사회의 작은 부분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전체 지구의 인구를 생각하면 작은 부분일 것이다. 작가는 이런 미시적인 부분은 생략하고 아주 과학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사실 이 부분이 쉽게 읽는 것을 방해한다.

 

하드sf소설은 과학과 기술적인 설명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재미가 달라지는데 1권만 읽은 지금은 그것을 충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달이 하나였던 시기가 지나가고, 생존을 위해 인류가 우주로 급하게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설정이 나의 과학지식 한계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끈다. 얼마 전 읽은 <스페이스 보이>가 중력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 것을 감안하면 이 부분도 살짝 건드리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책 후반부에 지구의 중력을 만들어내는 장면이 살짝 나오는데 이 부분의 설명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중력과 인력은 자연법칙이다. 폭발한 달은 인력에 의해 충돌하고, 그 깨어진 파편들은 다시 충돌한다. 중력은 이 깨어진 운석들을 지구로 끌어당긴다. 작가가 이름 붙인 하드레인이 수천 년 동안 일어날 수 있다. 작가의 설정에 의하면 5천 년 정도다. 이 하드레인의 시작을 달이 폭발한 2년 후라고 설정했다. 이 기간 동안 인류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대기권 밖으로 보내야 한다. 단순히 보내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드레인이 끝나는 날까지 생존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산소가 없으니 당연히 만들어야 하고, 먹을 것도 같이 재배해야 한다. 그리고 우주로부터 올 다른 위험에도 대비해야 한다. 결코 쉽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설정이다. 하지만 이 가정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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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라이터
사미르 판디야 지음, 임재희 옮김 / 나무옆의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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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작가의 작품을 아주 가끔 읽는다. 그런데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명인 줌파 라히리의 작품은 아직 읽지 않았다. 사 놓은 작품이 있는데도. 지금까지 읽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은 모두 인도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들은 아주 놀라웠고 재미있었다. 어떤 대목에서는 한국의 과거 모습이 보이기도 해서 반가웠다. 그런데 이번 소설은 무대가 미국이다. 어릴 때 이민 온 사람들이 성인이 된 이후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민자의 삶보다 그들의 현재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어떤 대목들은 조금 낯설었다.

 

현재는 과거의 기록과 기억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 소설 속 세 명의 인도인들도 자신들의 과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세 명의 중요한 인물은 역사학과 대학생 라케시, 소설가 아닐과 그의 아내이자 작가인 미라 등이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라케시다. 대학 졸업 후 월스트리트로 갈 수 있었지만 역사학으로 대학원에 들어갔다. 다시 월스트리트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다. 평범한 대학원생이다. 그런 그에게 하나의 아르바이트 요청 메일이 온다. 맹인 작가 아닐에게 신문 등을 읽어주는 일이다.

 

아닐과 마리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부부다, 마리는 라케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도 여성의 모습을 가졌다. 연상인 그녀에게 끌린다. 작가 아닐은 그가 작가가 되려고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있다. 그의 작품을 읽고, 그의 과거와 문체와 이야기에 빠진다. 이 소설 속에서 인도가 배경이 되는 몇 장면들은 바로 이런 과거 속 몇 가지 이야기들이다. 아닐이 어떻게 맹인이 되었는지, 그가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작가가 되었고, 어떤 여성 편력을 거치게 되었는지 등이 그의 글들에서 나온다. 이 장면들도 이전에 읽었던 인도 소설과 다른 모습이었다. 아마 현대적인 공간을 다룬 인도 소설을 읽지 않았기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인도인이란 설정을 지우면 대학원생과 작가와 그의 아내가 눈에 들어온다. 실제 읽으면서 이들이 인도인이라서 생기는 선입견이나 편견 등은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어릴 때 이민 온 이들이 자라면서 느꼈을 편견이 이 소설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과거가 나오지 않으면 전혀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지우면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가족과 과거다. 작가는 이 부분을 아주 솔직하게 풀어낸다. 이혼 아닌 이혼 상태인 부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삶이 성인이 된 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 삶들을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등. 이런 과정 속에서 라케시는 자신의 삶을 하나씩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세 사람의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다. 미라를 만난 후 작품을 내놓지 못하는 아닐, 아닐에게서 작가의 길을 배우려는 라케시, 아닐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미라 등이 엮이고 꼬인다. 이 관계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고, 은연중에 알려지지만 파국은 예상하지 못한 장면과 상황에서 일어난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며칠이 그 이후에 벌어진 사건 때문에 변질된다. 삶이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이 이외에도 작가는 몇 가지 관계를 조용히 암시한다. 라케시의 부모나 미라의 새로운 연인 등이 대표적이다. 노골적인 장면들도 있지만 이 암시와 여운이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 삶에서 명확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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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학 탐 청소년 문학 20
오조 유키 지음, 고향옥 옮김 / 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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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청춘들에 대한 이야기다. 수학을 잘 알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몰라도 큰 문제는 없다.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나와 수학 문제를 풀고, 이것을 대결하는 장면으로 채워져 있지만 수학은 하나의 소재일 뿐이다. 숫자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가야마가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이끌고 나가지만 주변 인물들로 나름 비중을 가지고 있다. 이 청춘들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향해 앞으로 나아갈 때 그 열정과 의지는 아주 멋있다. 그리고 다시 수학 이야기가 청춘의 열정 사이를 채워준다. 수학의 난제들은 언제나 나의 관심사 중 하나다.

 

가야마는 메뉴판에 있는 메뉴의 합계 금액을 순식간에 계산해내는 능력이 있다. 이것은 분명한 재능이다. 숫자를 잘 외운다는 것만으로 수학에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숫자는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다. 수학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수많은 질문이 있지만 배워야 하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논리적 사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이것은 최근 코딩으로 대체되는 모습이 조금씩 보인다. 그럼 수학이 필요 없을까? 아니다. 살면서 숫자와 수학은 우리 삶에서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일할 때나 놀 때나 이 숫자를 모르면 손해 보는 일이 정말 많다. 반면에 수학의 늪에 빠져 폐인으로 변하는 수학자들도 있다.

 

이 소설 속에서 중요한 공간 중 하나가 밤의 수학자가 만든 사이트 . 이곳에서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서로 경쟁한다. 수학 문제를 내고 누가 빨리, 누가 많이 풀어내는지를 두고 싸운다. 가야마는 가방 속에 연필과 수학문제를 풀 종이를 넣고 다닌다. E²에서 대결하기 전까지 그는 수학에 대해 잘 몰랐다. 제대로 된 수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헌책방 주인에게서 수학책 세 권을 받고 열심히 문제를 풀고 그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수학에 한 발 다가간다. 이런 그를 옆에서 친구들이 지켜본다. 수학을 잘 몰라 그에게 배우는 학생이 있고, 그의 재능을 부러워해 수학연구회란 동아리에 초대한 친구도 있다.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아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각각 다른 동아리에 들어가 열심히 노력한다.

 

수학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보니 수학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문제들이다. 한때 수학을 좀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딘가에서부터 한계에 부딪혔다. 논리와 사고력으로 수학을 접근하기보다 암기로 배우면서 나의 감각은 무너졌다. 딱 거기까지였다. 흔히 수학에 창의성이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이 소설에서 그 부분을 간략하게 보여준다. 하나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각각 다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예전에 수학의 난제 중 하나를 풀어낸 수학자의 책을 대충 훑어본 적이 있는데 나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영역이었다. 또 이 난제들을 풀다가 정신이상자가 된 수학자를 다룬 책도 있지 않았는가.

 

밤의 수학자는 수학 때문에 눈이 멀었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광기일까? 아니면 지나친 열정 탓일까? 밤의 수학자가 초대한 학생들이 모여 서로 수학을 경쟁하는 장면들은 말로만 듣던 수학올림피아드를 떠올리게 만든다. 2017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한국이 1위를 했다는 것을 검색으로 알게 되었는데 이전에는 이것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몰랐다. 수학이 아름답다고 할 때 솔직히 아직 모르겠다. 내 수준이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수학 이야기 틈사이로 푸른 이야기가 조금씩 넘실거린다. 오래전 지나간 나의 청춘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부러운 상황과 장면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들의 관계를 간략하게 보여주는데 아주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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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눈 April Snow K-픽션 21
손원평 지음, 제이미 챙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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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단편 소설이다. 한영대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왼쪽의 한글과 오른쪽 편의 영어가 서로 완전히 맞물리지 않는다. 이런 불편함은 원문의 문장이 영어로 어떻게 번역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을 때 바로 찾아보기 쉽지 않다. 물론 영어 실력이 좋고, 두 글을 비교해서 계속 읽었다면 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 읽으면서 영어 번역과 비교한다는 것은 그 소설의 재미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과 같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 문장을 공부한다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손원평. 솔직히 낯선 이름이다. 작년 한해 나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끈 표지의 작가지만 한 편의 글도 읽은 적이 없다. 작년에만 두 권의 장편소설이 나왔는데도 말이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그 표지의 이미지와 엄청난 평을 들은 작가의 첫 단편이란 사실이었다.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여운을 남기는 구성 등은 다시 장편으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장편으로 바뀐다면 어떤 이야기가 더 풀려나올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기대였다.

 

두 부부가 이혼을 말한 날 한 통의 메일이 온다. 스웨덴의 마리다. 1월에 한국에 와서 이 부부의 집에서 자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취소한 그녀다. 한때 이 부부는 무료 숙박 공유 사이트에 자신들의 집 정보를 올려놓았다. 자신들도 외국에 나가 다른 집에서 자고, 자신들의 집에서 외국인을 상대하면서 외국에 간 듯한 느낌을 받기 위해서다. 마리의 취소는 이 가족의 불화와 연결되면서 숙소 정보를 취소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마리가 한 통이 편지를 보내 그들의 집에 머물겠다고 한 것이다. 자신들의 사정을 말하고 하루만 재우자고 합의한다. 이 결정은 잠시 현재와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그리고 이 부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마리는 50대 여성이다. 한국에 온 이유는 한국 아이돌 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1월에 온다는 것을 취소한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정리된 후 한국에 갑자기 왔는데 이 부부가 자신들도 모르게 손님 접대한다고 분위가 좋아진다. 혹시 이러다 다시 사는 일이 생기는 것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이 부부의 비밀이 드러난다. 양수검사와 사산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양수검사로 잘못될 확률이 10만분의 1정도라고 말한다. 초음파를 보면서 검사하기에 문제없다고. 기형아에 대한 불안감을 고조시키면서 고액의 검사를 독촉한다. 이 불안감을 안고 검사한 사람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작가가 이 부분을 부각시킨 것은 아마 자신이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따뜻해야 할 4월에 폭설이 내린 서울. 이 이상 기온 속에 마리의 방문과 순간 따뜻해진 부부 관계 등은 아름다운 결말을 예상하게 만든다. 잘못된 기대다. 이 부부의 갈등 원인을 몰라서 그렇다. 남편이 “난 단지 우리가 행복하길 바랐을 뿐이야.”라고 말했을 때 아내는 “난 차라리 우리가 처음부터 불행했길 바라.”라고 대답한다. 이 엇갈림이 둘 사이에 결코 건널 수 없는 큰 장애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 둘이 어떻게 만나 결혼했는지 들었을 때 느낀 감정은 순식간에 휘발되어 사라진다. 이 부부의 싸움을 밖에서 마리가 들었다. 이때 마리의 늦은 한국행이 결코 좋은 일 때문이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생략된 이야기와 상황은 독자의 상상력을 끼운다. 장편을 기대한 것도 바로 이 상상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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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5-18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몬드작가죠! 전 이름보고 처음엔 남자인줄 알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