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 대미지의 일기
벨린다 스탈링 지음, 한은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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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 여성 제본사 도라 대미지 이야기다. 19세기 영국 소설을 읽다 보면 여성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 독립이 불가능하니 남편 등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여성의 노동력이 현실에서 이용되고 있었지만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대우받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성별과 인종과 계급간 차이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작가는 이 시기에 어쩔 수 없이 제본사가 된 여성을 통해 뒤틀리고 왜곡된 19세기 영국의 이면을 선명하게 낱낱이 파헤치며 보여준다. 그곳에는 상상을 초월한 일들이 생각보다 많이 일어난다.

 

도라가 제본사의 일에 뛰어든 것은 남편 피터가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피터는 사채까지 빌렸다. 가진 물건을 전당포에 맡겨 현금을 만들지만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 제본 일이 없다면 당장 굶어야 한다. 도라가 직접 거래처를 찾아가 일감을 부탁한다. 일거리가 들어왔지만 제본 기술은 없다. 남편의 지도를 받으면서 겨우 일을 해낸다. 이렇게 그녀는 일을 하나씩 배우고, 일감을 가져온다. 하지만 그녀에게 일거리를 준 디프로스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협회에 알리면 당장 짤릴 수밖에 없다. 이 약점이 경제적으로 그녀에게 도움이 된다. 바로 포르노 작품의 제본 때문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부터다.

 

초반에 도라의 일상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그 시대상을 알려주지만 조금 지루했다. 그녀의 힘겨운 일상이 답답했다. 그 시대 여성이 가진 한계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러다 제본을 하면서부터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었다. 일감들이 밀려오고, 그 사이에 아주 자극적인 포르노가 끼워져 있다. 이 작업은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한다. 디프로스는 그녀가 제본사란 사실을 의뢰인인 조슬린 경에 알리고, 그녀를 데리고 간다. 음란 서적의 비밀이 공유되고, 은밀한 계약이 맺어진다. 당연히 조용한 협박도 곁들여진다. 여기에 조슬린 경의 아내 실비아가 흑인 노예 딘을 부탁한다. 딘은 미국에서 해방시켜주기 위해 사온 노예다.

 

제본을 하기 위해서는 가죽을 다루는 기술뿐만 아니라 문자도 알아야 한다. 그녀는 정확한 작업을 위해 제본하는 책을 내용을 읽는다. 그런데 아주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당시의 금서였던 음란 서적들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제본을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불편하다. 실비아의 요청으로 딘을 고용했지만 그가 글자를 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디프로스가 그들의 은밀한 작업이 들통날까봐 걱정하며 딘을 내보내라고 한다. 핑계를 대면서 디프로스를 안심시키는데 딘이 글자를 알뿐 아니라 지식도 상당하다. 분위기가 여기서 살짝 변한다.

 

19세기는 과학의 시대라고 하지만 그만큼 잘못된 과학 지식이 범람한 시대였다. 도라의 딸 루신다가 간질을 앓고 있는데 이것을 음욕 때문이라고 말하고 음핵 절제술을 주장한다. 끔직한 일이다. 그 당시 지배계급은 자신들은 문명화되었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일들은 과학을 위해서란 핑계를 댄다. 역사 속에서 되풀이되는 비극 중 하나다. 그리고 도라는 딘의 지식에 놀라고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끌린다. 포르노 서적을 제본하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감정이다. 딘은 그를 노예에서 구해준 귀부인협회의 실체를 알려준다. 순수한 의도 뒤에 숨겨진 음란하고 저속한 욕망들이 꿈틀거린다.

 

여성의 인권이 바닥인 시대에 여성 제본사와 흑인의 사랑은 쉽게 용인되지 않는다. 음란 서적을 단속하는 경찰이 존재하고, 의심스러운 가죽으로 작업해야 하는 책도 나타난다. 불법의 은밀한 틈새에서 여성 제본사로 살지만 자존심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더럽고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19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아주 현실적이다. 역사적 자료와 작가의 상상력이 덧붙여져 좁은 공간에 풍성한 이야기를 덧씌웠다. 가수 겸 작사가였던 고 벨린다 스탈링이 이 한 작품만 남겼다는 사실이 아쉽다. 여성의 자립과 자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시대를 딛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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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의 기술 - ‘남을 위한 삶’보다 ‘나를 위한 삶’에 몰두하기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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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의 인문 에세이다. 나를 위한 삶에 몰두하기란 부제가 보인다. 이것을 위한 하나의 조건으로로 평온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여섯 장으로 구분하고 풀어낸 이야기들은 최근까지 우리 삶에 이래야 한다는 조건이나 전제들을 비판하고 다른 시각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 과정에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례와 기존 정의들은 우리의 현실을 강하게 짓누르고 있다. 어딘가에서 듣고 본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정의 등은 우리를 알게 모르게 그것을 받아들이게 한다. 그 의미도, 그 의도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말이다.

 

개인적으로 강준만 교수의 책을 좋아한다. 아마 초기 책들이 준 강한 임팩트 때문일 것이다.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상황을 풍성한 자료를 바탕으로 비판한 것들이 나의 시선을 새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그 단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은 분명한 나의 한계지만 하나의 글이나 언론 등을 다른 면에서 보게 만든 것은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인상은 늘 그의 신간이 나오면 관심을 가지게 되고, 나의 시각을 다른 면에서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한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다. 김난도의 책에 대한 그의 평은 완전히 동의할 수 없지만 시대와 우리를 조금 더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든다.

 

평온한 삶은 정말 어렵다. 가장 먼저 다룬 욜로, 휘게, 소확행, 카르페디엠 등의 용어들은 최근까지 유행한 라이프 스타일들이다. 한참 유행한 뒤에 알게 된 용어들도 있는데 이 용어들의 이면을 파헤친 부분은 개인적으로 아주 신선했다. 행복의 기준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이면을 지적한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노래 가사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낸 방식은 가사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 조금 낯선 노래로 다가오지만 아주 대중적인 해석이다. 솔직을 방자한 무례 이야기는 나 자신도 수없이 저지른 잘못 중 하나다. 아마 지금도 알게 모르게 저지를지 모른다. 경계하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민감에 대한 부분은 개인적으로 크게 공감한다. 우리 사회는 이 부분에 너무 예민하다.

 

거절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경우는 어느 정도 한계를 정해놓고 거절한다. 에코의 책에 대한 저자의 기억은 멋모르고 선택한 후 힘겹게 읽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거절을 너무 단호하게 하는 나의 성격을 하룻밤 자면서 생각하는 법으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났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독창성을 강요하는 사회에 사는 힘겨움을 풀어낸 이야기는 절로 공감한다. 산책에 대한 예찬은 공감하지만 현실에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행운을 능력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사기극이라고 말하는데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불평등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법적 질서의 산물일 뿐이다.” 이 문장은 현실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모든 조직의 기본 모델은 조폭이라고 했는데 군대라고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력한 비판이다.

 

성공강박증과 목표 설정은 우리의 삶에 계속 강요되는 것들이다. 개인적으로 목표도 없고, 성공의 의지도 없는 나에게 작은 만족을 준다. 거대한 목표나 성공이 없지만 일상의 매일 매일 속에 작은 목표와 성공 의지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변화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변화를 주체하는 쪽의 의도와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의지 등을 들여다봐야 한다. 포기와 체념에 대한 글은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나의 성격을 돌아보면서 그것이 작은 집착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콩코드 효과는 현실에서 적용하기 참 어렵다. 용기와 제대로 된 의지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포기하지 않는 게 의지박약이란 지적에 공감한다.

 

이전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수많은 인용과 자료를 이용했다. 어떻게 보면 짜깁기를 하면서 그 사이사이에 자신의 이야기를 편집해 넣었다고 할 수도 있다. 왕성한 글쓰기는 풍부한 자료가 없다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생각하면 독창성에서 그가 주장한 바와 묘하게 겹쳐진다. 이전처럼 이번 책도 가독성이 좋아 잘 읽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 깊이 와 닿는 내용이나 주장이 거의 없다. 조금 밋밋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의 주장이 낯익은 부분이 많다고 해야 하나? 아직 평온을 가지지 못한 나이기에 나의 삶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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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평선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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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전에 읽은 작가의 소설은 <유리 갈대>가 전부다. 검색하니 익숙한 표지가 몇 권 더 보인다. 아직 이 작가는 나에게 낯설다. 이번 단편집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읽으면서 낯익은 모습들을 만나게 된다. 비슷한 환경과 문화에서 비롯한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고부간의 갈등을 다룬 작품은 거의 보지 못했다. 농촌이란 지역 특색이 나올 때 한국의 농촌과 이미지가 겹쳐지고, 몇 장면은 앞으로 한국에서 일어날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 더 많이 진행되었을 수도 있다.

 

여섯 편의 단편들은 모두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한다. 그렇다고 한 마을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다. 홋카이도 하면 가장 먼저 삿포로를 떠올리는데 홋카이도는 생각보다 넓다. 한반도의 삼분의 일 크기다. 왜 홋카이도의 크기를 말하느냐면 소설 속 주인공들이 사는 공간이 일반적인 우리의 인식보다 먼 곳이기 때문이다. 첫 작품 <설충>의 다쓰로가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간 곳이 삿포로다. 최근에 한국은 거의 수도권으로 인구가 집중되고 있지만 불과 수십 년 전에는 각 지역의 대도시로 인구가 몰렸다. 이 기억을 공유한다면 작품 속의 몇 가지 상황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또 다쓰로의 아버지가 필리핀 여자를 며느리로 데리고 온 것도 우리에겐 낯익다. 농촌 총각이 동남아 등지에서 여자를 사오는 것이 요즘은 흔하니까.

 

 

관능소설가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에로틱한 장면이 가득하지는 않다. 몸과 섹스에 대한 묘사가 있지만 그것은 관계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의도가 전혀 없지는 않다. <설충>에서 다쓰로와 시키코의 섹스는 익숙한 행위의 연속으로 다가온다. 감정의 밀도는 없고 행위만 있다. 하지만 이 행위의 이면에는 감정이 숨겨져 있다. 일상에 변화가 생길 때 이것이 드러난다. 그것은 돈을 주고 산 아내 마리의 존재다. <안개 고치>는 기모노 침선장 이야기다. 결혼 2년 만에 이혼한 마키와 그녀 밑에서 수련하는 야요이의 과거를 작가는 담담하고 건조하게 보여준다. 상황은 분명히 분노를 자아내는데 설명은 감정이 많이 배제되어 있다. 소재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재밌다.

 

<여름의 능선>은 결혼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착한 할머니는 시어머니가 되고, 온후한 남편은 착한 아들로 변해버렸다.” 이 문장은 결혼이란 제도가 만들어낸 현실이다. 아들 손자를 원하는 시어머니와 삶에 지친 아내, 시골에 온 젊은 선생, 작은 마을에서 도는 소문 등은 개인의 삶이 사라진 공간이 얼마나 힘겨운지 보여준다. <바다로 들어가다>는 유일하게 1974년 과거의 시점을 다룬다. 젊은 이발사와 그를 찾아온 술집 여자의 관계는 서서히 진행되면서도 은밀하다. 감정은 평온한 일상 속에서 조용히 소용돌이 친다. 이 이발사의 이후 삶은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물의 관>은 정체된 관계와 그 밑에 가려진 감정과 사실들이 치과 치료 등의 문제와 연결되면서 펼쳐진다. 작은 지방 마을의 의료기관이 부족해 의사를 공고해서 찾아야 하는 현실과 지금의 정체된 관계를 벗어나려는 충동이 엮이면 상황은 급진전된다. 소소하지만 재밌는 장면이 많다. 료코가 연상의 세이치로를 맡는 것은 사랑일까? 아니면 연민이나 집착일까? 표제작 <빙평선>은 이 작품집에서 가장 관능적이다. 성공이 보장된 도쿄대 출신 재무성 관료가 과거의 여자이자 몸 파는 여자에게 매몰되는 모습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직 젊기 때문일까? 아니면 과거의 집착일까?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에 놓인 그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아버지다. 그런데 이 부모가 죽는다. 가장 먼저 의심하는 인물이 있는데 이 또한 반전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장면은 그 상황보다 그 다음에 벌어질 상황에 더 눈길이 간다. 장편과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소설은 어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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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팝콘북
이부키 유키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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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단숨에 읽었다. 처음에는 <샐 위 댄스>를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이 다르다. 춤을 소재로 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비슷한 점이 없다. 그리고 영화가 사교춤이라면 이번에는 발레를 다룬다. 주인공이 발레를 배워서 대회에 나가는 종류가 아니라 발레단의 공연을 돕는 역할이다. 그 발레단은 회사 사장의 딸 사라가 주연으로 활약한다. 공연은 단원들이 표를 팔아야 가능하다. 사라가 주연인 것은 회사에서 표를 많이 팔아주기 때문이다. 발레의 재능보다 다른 재능이 더 우선인 곳은 이곳 이외에도 많이 있다. 이런 냉혹한 현실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각가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아오야기. 제약회사 만년 총무과장이다. 아내가 집을 나갔는데 합병한 회사에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회사 음료수의 모델인 발레리노 다카노가 연말에 회사가 지원하는 발레단에서 공연하기로 했다. 이 공연의 성공에 따라 회사로 돌아올 가능성이 생긴다. 하지만 아오야기는 발레를 모른다. 다만 회사에서 가라고 해서 갈 뿐이다. 젊고 능력이 있다면 사직서를 던지고 나오겠지만 마흔일곱 살의 그가 새로운 직장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아내의 이혼 요구로 가족은 깨어지고, 이제 직장마저 불안하다. 다만 처음 간 발레 공연에서 발레리나의 멋진 공연에 빠진다.

 

유이. 학창시절 정상을 꿈꾸었지만 부상으로 꿈이 좌절된다. 여자 마라토너 마이의 트레이너를 맡고 있는데 그녀가 임신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도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다. 이때 발레리노 다카노의 트레이너가 되라는 지시를 받는다. 다카노는 허리를 다쳤고, 한 연예인의 난입으로 바람둥이 이미지를 얻는다. 그녀가 그에게 자신에게 몸을 맡겨 달라고 하지만 다카노는 거절한다. 자신이 더 잘 알고, 남에게 몸을 맡기는 것이 어색한 것이다. 대신 그녀는 다카노의 운전수가 되어 그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닌다. 시작부터 다양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다카노. 세계적인 발레리노다. 그의 몸으로 표현한 광고가 큰 관심을 끌었다. 회사의 스폰서로 자신이 배웠던 발레단의 주연으로 연말 공연하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허리가 다치는 등 문제가 생긴다. 아주 괴팍하고 독선적이고 여자를 밝힐 것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현실은 다르다.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몸은 노쇠화 된다. 젊은 재능들이 앞으로 나오는 시점이다 보니 언제 은퇴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보니 연말 공연에 주연으로 활약할 생각이 없다. 마지막 은퇴 무대를 생각해둔 곳이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이 세 사람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발레에 무지한 중년의 총무과장과 발레리나의 몸을 모르는 트레이너가 부상당한 발레리노와 함께 공연의 성공을 위해 나아간다. 하지만 이 과정은 그렇게 평탄하지 않다. 다카노가 출연한다면 매진될 것 같았던 표도 다 팔리지 않고, 아이돌그룹의 한 명이 발레단에 합류하면서 이야기는 더 꼬인다. 그렇다고 이 공연을 방해하는 악당 무리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아이디어를 내어 대중의 관심을 끌고. 새로운 발레 체조를 만들어 홍보한다. 이 사이사이에 이 세 사람과 주변 사람들의 삶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작가는 이 과정을 과도하게 흥분하지도 긴장하지도 않은 채 풀어낸다. 곳곳에 작은 감정들을 심어놓으면서.

 

아오야기의 삶을 보면서 오랜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큰 개성이 없고 욕심도 많지 않은 그가 싫어 이혼한 아내와 달리 발레단의 사람들은 그를 좋아한다. 발레단 사람들에게 서툰 일을 잘 처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때문이다. 달필이란 소리를 듣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참고해 좋은 기획서도 만든다. 이 기획은 직장 상사의 몫이다. 이 기획 등으로 작은 갈등도 생기지만 사람들의 사이는 조금씩 가까워진다. 극단적으로 이 갈등을 표출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일은 없다. 어떻게 보면 조금 밋밋한 것 같은데 상황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흥미를 유발한다. 각자의 노력과 열정과 동료는 유이의 학창시절과 다름없이 현실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실 이 소설은 큰 자극이 없다. 괴팍하고 이상한 캐릭터도 없다. 발레의 매력을 표현한 장면은 많지만 압도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재능이 현실에서 꽃 피우지 못하는 불운을 보여주기도 하고, 발레단의 현실적인 미래도 알려준다. 발레가 좋아 발레단에 들어왔지만 월급은커녕 회비를 내고 표까지 팔아야 하는 단원들의 모습은 냉혹한 현실이다. 알바까지 뛰어야 가능하다. 이렇게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그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잘 발달된 근육과 바른 자세는 말할 것도 없다. 앞으로의 꽃길이 보장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이 사이에 작은 감정의 씨앗들이 뿌려진다. 화려하게 꽃피울 것 같지만 아직 알 수 없다. 아! 컴퍼니는 회사란 의미보다 발레단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동료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 중의적인 단어가 소설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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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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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관성적으로 어떤 작가의 책이라면 관심을 두고, 사고, 읽는다. 물론 사거나 읽는 행위가 빠지는 경우도 있다. 좋아하는 작가라고 모두 읽지 못하는 것처럼 선호하는 정도가 약간 미흡한 작가라도 읽는 경우가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경우는 후자에 더 가깝다. <개미> 이후 계속해서 읽어온 그의 작품들은 늘 재밌거나 잘 읽혔다. 놀라운 가설과 상상력은 관찰력과 더불어 매혹적인 독서로 이어지곤 했다. 하지만 어느 작품은 취향과 달랐고, 그 상상력이 판타지 소설에 멈춘 듯한 느낌도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 기대하고 읽는 것은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고양이. 그것도 암고양이다. 이름은 바스테트이다. 이 이름은 이집트의 고양이 모습을 한 여신에서 비롯했다. 바스테트는 보통의 암고양이인데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종과 대화를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생쥐와 대화를 시도하려는 장면은 본능에 의해 가로 막히지만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른 종과의 상생과 대화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영적인 고양이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 대척점에 있는 수고양이가 피타고라스다. 이 피타고라스는 머리에 USB단자가 있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다. 덕분에 인간의 지식을 습득한다.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정보에 기반한 사고를 한다. 바스테트에게 고양이와 인류의 역사를 가르치는 역할을 한다.

 

보통의 고양이가 파리에서 벌어진 테러와 폭동으로 영적인 고양이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다. 고양이의 성장소설이란 평이 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암고양이의 시선으로 모든 상황을 바라보다보니 인간의 모습과 행동과 문화 등이 비판적으로 다루어진다. 특히 테러에 대해서 그렇다. 개와 고양이의 차이를 묘사한 장면들이 있는데 공감한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을 집사라고 부르는데 낯익은 명칭이다. 재미난 것은 노동을 바라보는 바스테트의 시점이다. 놀면서 본능적인 활동만 하는 고양이에게 시간을 내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피타고라스가 인류가 멸종되면 고양이들이 인간처럼 일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은 재밌는 대목이다.

 

테러가 점점 과격화되고, 내전처럼 벌어진 가까운 미래의 파리가 배경이다. 이 테러와 더불어 한 가지 문제가 더 생긴다. 바로 패스트다. 쥐들이 번식하면서 전염병이 확산된다. 1일 생활권으로 묶인 현대에 병의 전파는 더욱 빨라진다. 약탈은 일상화되고, 생존을 위해 개인들이 무장한다. 이 무장도 쥐들에 공격에는 무력하다. 한두 마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쥐와 고양이의 대결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양이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니다. 압도적인 쥐의 숫자와 거대해진 몸집은 상식을 뒤집는다. 고양이들이 쥐를 피해 외곽으로 물러난 것도 이 때문이다.

 

고양이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고, 인간의 능력 같은 주다 보니 조금 어색한 부분도 생긴다. 설정에서 조금 무리가 있기도 한 피타고라스의 USB 머리나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모습 등은 살짝 거부감이 생긴다. 테러와 폭동 등으로 파괴된 파리에서 전기와 인터넷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대통령마저 쥐들을 피해 도망간 상태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마지막에 쥐들과 대결하고, 최후의 보루를 만드는 것도 인간이 아닌 고양이들이 진행하는데 인간의 입장에서 아주 어색하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들이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흥미로운 장면들이 많은데 파리 외곽에서 피타고라스가 자신이 조사한 정보를 바탕으로 파리에 가야 한다고 연설하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그에 반대하는 다른 고양이들이 과거의 기억에 의해 바다의 물고기를 쉽게 잡아먹을 수 있다고 외치는 장면이다. 선지자와 그 반대의 모습인데 어딘가에 많이 본 장면이다. 쥐떼와 고양이와 인간의 연대가 전투를 펼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빠른 번식이란 것과 날씨라는 변수 등은 미래를 쉽게 전망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바스테트가 영적으로 발전하는 장면은 <갈매지 조나단>이 연상되었다.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와 끊임없는 노력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1권으로 충분한 분량인데 2권으로 나눈 것은 조금 심한 분권이다. 너무 많은 부분에서 자신의 철학과 교육 등을 강하게 나타내는 것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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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조 2019-02-16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언제부터인가 관성적으로 어떤 작가의 책이라면 관심을 두고, 사고, 읽는다. 물론 사거나 읽는 행위가 빠지는 경우도 있다. 좋아하는 작가라고 모두 읽지 못하는 것처럼 선호하는 정도가 약간 미흡한 작가라도 읽는 경우가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경우는 후자에 더 가깝다. <개미> 이후 계속해서 읽어온 그의 작품들은 늘 재밌거나 잘 읽혔다. 놀라운 가설과 상상력은 관찰력과 더불어 매혹적인 독서로 이어지곤 했다. 하지만 어떤 작품은 취향과 달랐고, 그 상상력이 판타지 소설에 멈춘 듯한 느낌도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 기대하고 읽는 것은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베르나르의 <고양이>는 보통의 고양이가 파리에서 벌어진 테러와 폭동으로 영적인 고양이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다. 고양이의 성장소설이란 평이 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암고양이의 시선으로 모든 상황을 바라보다보니 인간의 모습과 행동과 문화 등이 비판적으로 다루어진다. 특히 테러에 대해서 그렇다. 개와 고양이의 차이를 묘사한 장면들이 있는데 공감한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을 집사라고 부르는데 낯익은 명칭이다. 재미난 것은 노동을 바라보는 바스테트의 시점이다. 놀면서 본능적인 활동만 하는 고양이에게 시간을 내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피타고라스가 인류가 멸종되면 고양이들이 인간처럼 일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은 재밌는 대목이다.

다만 고양이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고, 인간의 능력은 엇비슷하게 주다 보니 조금 어색한 부분도 생긴다. 설정에서 조금 무리가 있기도 한 피타고라스의 USB 머리나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모습 등은 살짝 거부감이 생긴다. 테러와 폭동 등으로 파괴된 파리에서 전기와 인터넷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대통령마저 쥐들을 피해 도망간 상태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마지막에 쥐들과 대결하고, 최후의 보루를 만드는 것도 인간이 아닌 고양이들이 진행하는데 인간의 입장에서 아주 어색하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들이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잘 읽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금 더 치밀한 구성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이희조 2019-02-16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행인님. 제가 임의로 기사 성격과 분량에 맞게 줄이고 마지막 문장만 추가해보았는데요, 혹시 이런 식으로 싣는 것이 문제가 없으시다면 진행하고 싶습니다. 거미(방구석힙스터) 와 같이 필명과 짧은 소개문구 하나 정도만 주시면 좋겠습니다.

행인01 2019-02-17 15:10   좋아요 0 | URL
필명은 특별히 없고 그냥 행인이나 행인01을 사용합니다.
그냥 책 모으는 것 좋아하고, 읽는 것 좋아하는 중년 직장인 정도로 해주시면 됩니다.

이희조 2019-02-18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알겠습니다. 잡지 받아보시길 원하시면 heejo@chaeg.co.kr 으로 주소 한 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