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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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도리스 레싱의 소설을 읽었다. 아마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다섯 번째 아이> 이후 처음이다. 그때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한참 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을 내놓기 시작한 때라 냉큼 들고 읽었다. 약간은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독서였다. 나의 내공이 많이 부족한 탓이었다. 그리고 책 욕심은 이것과 별개로 작가의 다른 책을 모으게 만들었다. 흔히 있는 일이다. 나중에는 이해하고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작용했고, 그 바탕에는 책 욕심이 강하게 자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다시 도전했다.

 

작가의 60년대 단편들을 모은 책 중 일부다. 나머지는 다른 제목으로 곧 나올 모양이다. 이 책에는 모두 열한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각각의 분량이 모두 다르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읽기가 그렇게 녹녹하지 않는 것 정도랄까. 물론 여유를 가지고 문장을 음미하고, 장면을 머릿속에 차분히 그려내고, 시대를 조금 더 이해한다면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한 재미가 곳곳에서 나타날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독서법은 그렇게 여유 있는 편이 아니다. 문장과 문장은 집중하지만 호흡이 조금만 흐트러지면 그 장면과 상황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 단편집에서 쉽게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아 호흡이 깨어졌다. 그 결과는 쉬운 책읽기가 아니란 것이다.

 

단편은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그려내는 경우가 많다. 그 이야기 속에는 그 시대의 모습이 생략되어 있다. 사회와 문화의 변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현대에 들어오면서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이것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특히 1960년대를 다룬 소설이라면 감안해야 할 게 많다. 그 중 하나는 화폐의 가치고, 다른 하나는 성의 역할이다. 사실 화폐의 가치는 그 돈이 현재 얼마 정도일까 하는 수준에 머무는 작은 호기심이다. 반면에 성의 역할은 다르다. 이제 막 성의 자유가 대중적으로 퍼지던 순간이었다. 여성의 인권이 좀 더 신장되는 시간이었다. 작가는 이 시대를 날카롭고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표제작 <19호실로 가다>는 네 아이의 엄마인 수전이 자기만의 방을 찾고, 그 속에서 휴식하지만 결코 자신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행복한 만남과 결혼과 출산이었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녀의 삶은 힘을 잃어간다. 남편의 불륜이 있고, 집에 묶인 그녀의 삶은 점점 비루해지는 과정에서 결코 평온함을 찾지 못한다. 반복되는 일상은 그녀의 내면을 우울함으로 잠식한다. 남편의 황당한 제안을 보면서 이것이 그 시대에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닌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극단적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은 필요한 법이다. <영국 대 영국>의 엄마도 그렇지 않은가. 이 단편이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다.

 

사실 첫 작품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를 읽을 때는 이제 좀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다. 착각이었다. 성공하지 못한 작가의 전업과 그의 욕망이 집착으로 변하는 과정은 아주 추했다. <옥상 위의 여자>는 남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그려낸다. 문제는 여자가 아닌데 보는 그들의 감정이 문제다.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은 실연의 아픔과 고통을 날카롭게 보여주고, <한 남자와 두 여자>는 출산 후 여성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와 미묘한 남녀 관계를 그려낸다. <방>은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데 나의 이해와 해석이 부족하다. 다시 한 번 더 정독한다면 다른 느낌일 것 같다.

 

<영국 대 영국>은 탄광노동자의 아들이 명문대학에 입학 한 후 집에 와서 겪는 일은 짧게 그려내었다. 계급과 계층문제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먼 훗날 그들의 삶이 어떻게 급락할지 알기에 걱정되었다. <두 도공>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나누고 해석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실제 토끼가 없는 영국이란 설정도 낯설다. <남자와 남자 사이> 속 두 여인은 연인과 아내의 경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둘의 연대가 보기 좋지만 현실은 어떨까? <목격자>는 한 십대 여직원을 두고 벌어지는 두 늙은 남자의 반응이 노골적이다. <20년>은 사랑했던 두 연인 20년 만에 만나 서로의 만남이 엇갈린 이야기를 한다. 만약 그들의 사랑이 진짜였고, 그 갈망이 감정의 소모보다 노력으로 이어졌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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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자
구소은 지음 / 바른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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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보다 작가가 처음 쓴 소설 <검은 모래>로 먼저 각인되었다. 이 작품은 제1회 4.3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을 읽을 당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가독성과 재미와 역사성 등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잊고 있던 작가가 새로운 작품으로 나타난 것이다. 소개글에서 <검은 모래>의 작가란 사실을 알고 반가웠고, 주인공이 프랑스 외인부대원이란 사실이 나를 유혹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이 작품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한 가족과 개인의 역사를 현대사의 흐름 속에 녹여내면서 말이다.

 

소설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는 편지 형식을 통해 두 어머니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그 사이를 현대사로 간략하게 채웠다. 작가의 관점이 담긴 이 1부는 60년대 이후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요약하고, 그 시대 속에서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로 떠났던 두 직업군을 중심에 둔다. 간호사와 광부다. 말도 통하지 않은 먼 이국에서 이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열심히 일했다. 주인공 기수의 아버지도 돈을 벌어 번듯한 집을 사고 자본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서울대 출신이었던 외삼촌도 그곳에 갔다. 그리고 그 먼 이국에서도 한국의 남녀는 서로를 찾고 만났다. 숙희와 외삼촌도 그렇게 만났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를 위한 과한 노동이 문제가 된다. 외삼촌이 다리를 잃은 것이다. 기수가 고모의 아들이 된 이유다.

 

아들을 아들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아이는 자란다. 두 어머니는 편지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한다. 한국의 발전상과 개발독재의 폐해를 보여주고, 그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고 급속하게 변하는 민중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 장면들을 읽으면서 내 어릴 때 기억들이 순간순간 겹쳐졌다. 나의 무식함도 같이 떠올랐다. 경제의 고속성장은 국민의 배고픔을 없앴지만 부의 불평등과 정치 민주화 욕구를 키워주었다. 아직 어린 기수와 일반 시민 가정에게는 큰 일이 아니다. 정작 큰 일은 큰돈에 대한 욕심과 친구에 대한 믿음으로 생긴다. 사기로 힘겹게 쌓아올린 가족의 재산이 사라진다. 이 일이 기수를 프랑스 외인부대로 가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부족함이 없이 자란 기수가 대학을 포기하고, 알바의 세계로 뛰어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집안의 몰락이 있은 후 결혼한 두 누나는 자신들의 몸만 쏙 빠져나갔다. 특전사를 제대한 후 조폭의 보디가드가 되지만 누명을 쓴 채 외국으로 달아난다. 그 사이에 불행이 또 하나 있다. 언제나 불행은 소리 없이 다가와 오랫동안 머물다 떠난다. 2부는 바로 기수가 박희준이란 이름으로 한국을 떠나 프랑스 외인부대원이 되고, 그가 경험한 일을 다룬다. 여기서는 한국의 정치 상황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수가 겪은 프랑스 자본주의의 민낯이 더 부각된다. 외인부대의 파병지들이 프랑스의 이익을 대변하는 곳들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장신자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어머니 모습을 발견한다. 자식들에 대한 사랑과 강한 생활력과 굳은 의지를 가지고 나아가는 모습 말이다. 그녀가 기수의 친모에게 보여주는 애정과 관심은 안타까움과 공감에서 비롯한 감정 때문이다. 잘만 되었다면 자신의 가족이 되었을 테다. 이 두 여인의 편지는 절제된 감정이 담겨 있다. 그 중심에 기수가 있다. 편지는 기수의 비밀을 알려주는 동시에 파독 간호사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려준다. 지금과 너무나도 다른 환경이라 그들이 겪었을 외로움과 그리움이 가슴 깊은 곳까지 와 닿지 않는다. 장신자의 마지막 편지는 지극히 현실적인 반응이고 배려이지만 기수에 대한 아픈 미련을 가진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매몰차다.

 

지수를 중심에 둔 이야기지만 이 소설 속에는 한국 현대를 살아온 우리의 부모님들이 있다. 지수가 외인부대를 제대한 후 파리 한인사회의 비리 등을 까발리는 것도 우리 삶의 한 단면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삶에 깊이 들어갔지만 하나의 사건을 중심에 놓기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삶이 어떻게 흘러가고 변하는지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마지막 어머니의 편지는 순간 울컥하고 먹먹하게 만든다. 그 여백은 채워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상상력이다. 간결하게 그려진 기수의 삶을 보면서 긴 세월이 지난 나의 삶을 잠시 돌아본다.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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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죽인다
손선영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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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사는 남자>란 작품으로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백용준 경감이 이번에도 나온다. 하지만 전편처럼 그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은 손창환이다. 그는 일반 고등학교 졸업 한 후 은행에 취직하고, 열심히 일하다, 동기이자 상사에게 이용당해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감옥도 갔다 오고, 먹고 살기 위해 온갖 일을 다한 끝에 택시 운전수가 되었다. 그냥 무력한 일상을 살던 그에게 어느 날 그 동기이자 상사였던 박상준이 손님으로 탄다. 이 만남이 겨우 살아가던 그에게 희망을 던져준다. 그를 죽인다는 희망이다.

 

이야기는 손창환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면서 왜 그가 이런 살인을 희망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살인을 의뢰하는 한 남자와 히트맨의 만남과 어떤 목적에 동원될 사람들의 간단한 목소리가 등장한다. 현재 속에서 손창환은 박상준을 완전범죄로 죽이는 것을 바라면서 그를 뒤좇는다. 본업이었던 택시 기사도 퇴직한 채로. 박상준의 발견은 그의 얼굴에 웃음과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그를 죽이기 위한 손창환의 조사는 꾸준하지만 아마추어라는 한계는 어쩔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박상준의 딸이 그의 삶에 끼어든다. 자신을 납치하라고 말하면서. 이때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손창환과 박상준의 만남은 지방은행 동기연수다. 고졸과 대졸의 학력 및 나이 차이는 90년대 한국에서는 절대적인 벽이다. 여기에 손창환은 상고 출신도 아니라 그의 뒤를 봐줄 사람도 없다. 이 사실은 기회주의자이자 비열한 성격의 박상준이 손창환을 괴롭히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지방세를 계산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고, 은행원으로써 부족함이 없었던 그이지만 상하 직급과 나이가 만든 권력은 그의 일상을 뒤흔든다. 이 소설에서 박상준이 보여준 권력 남용과 패악이 90년대 은행에서 가능한 것인지는 별도로 생각하고, 그 시절의 부패와 퇴락의 흔적들은 아주 노골적으로 잘 드러난다. 이 썩은 물에서 어떻게 노느냐에 따라 삶의 수준이 달라진다. 혼자 깨끗한 척하면 당연히 배척의 대상이 된다.

 

박상준의 딸이라고 말하는 민정 혹은 엠제이는 납치 자작극을 펼친다. 이유는 박상준이 화훼단지를 운영하는 엄마의 돈을 사기 쳐서 가져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녀의 행동이 어색하다. 처음에는 손창환도 그녀의 바람대로 끌려다닌다. 50억이란 거금을 요구하는 납치 사건인데 허술한 구석이 곳곳에서 보인다. 손창환과 엠제이는 이 납치극을 성공하기 위한 장치를 몇 가지 설정한다. 그러다 이 계획 중 하나를 손창환이 뒤틀어버린다. 그것은 시간 변경이다. 시간을 앞으로 당기고, 도주에 대한 계획도 바꾼다. 이것이 또 다른 계획을 뒤튼다. 잘 짠 설계지만 변수는 언제 어떻게 생길지 알 수 없다.

 

백용준 경감이 등장하는 것은 중반부터다. 이 납치극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수사를 더 깊이 진행하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납치범을 잡고, 수사를 제대로 하기에는 시간도 정보도 부족하다. 어쩔 수 없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작가는 앞과 바뀐 설정과 계획으로 파편화된 이야기 조각을 하나씩 맞춰간다. 앞부분의 어색함이 잘 짠 구성과 설정으로 하나씩 메워진다. 이야기에 속도감이 붙고,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앞에 깔아둔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또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해진다. 등장한 분량만큼 역할을 하고 사라지는데 이 부분은 왠지 모르게 그 장면들이 하나의 설명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잘 짠 구성과 설정이지만 손창환의 변신은 조금 급하고 어색한 느낌이다. 아마 이것은 나의 선입견일지도 모른다. 90년대 한국과 IMF 구제 금융 등으로 더욱 팍팍해진 우리의 삶을 그려준 장면들은 결코 낯설지 않다. 작가가 던진 완전범죄의 방법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지만 완전히 낯선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아쉬움 중 하나는 손창환에 의해 그려진 박상준의 모습이다. 그의 속내나 의도를 직접 보여주지 않아 그가 저지른 범죄에 비해 그 매력이 조금 떨어진다. 손창환의 과거에 드러나는 모습만으로는 개인적으로 성에 차지 않는다. 또 하나. 에필로그는 조금 사족의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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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사 - 조금씩, 다르게, 살아가기
요조 (Yozoh) 지음 / 북노마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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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라는 이름을 듣고 일본 뮤지션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다른 일본 음악인과 혼동한 모양이다. 음악을 열심히 들은 적이 있지만 CDP나 TV에 자주 나오는 가수가 아니면 잘 몰랐던 시절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아마 그녀를 제대로 인식한 것이 홍대여신이란 이름으로 알려지면서였을 것이다. 한때 얼마나 많은 인디씬의 여가수가 이 이름으로 불렸던가. 이 이름을 가지고 메이저 방송에서 아주 성공한 가수도 있으니 꼭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덕분에 나도 아주 좋은 작가 한 명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사실 요조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이 책은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놓고 밀린 책이 많은 지금 우선순위는 늘 바뀐다. 그런데 유명하지도 않고, 좋아하는 장르의 소설이 아닌 경우라면 더욱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 책도 다른 책에게 우선순위를 빼앗겼다. 300 여 쪽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금방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이 기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짧은 글과 단상들이지만 숨을 고르고 차분히 음미해야 할 부분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책방 무사를 운영하면서 만난 사람과 일과 자신의 삶을 풀어내는 방식도 가슴 한켠에 조용히 다가왔다.

 

이 책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요조가 책방 무사를 운영하면서 경험했던 일과 만난 사람과 일상을 적은 글이다. 작은 동네서점을 찾아 간 적이 거의 없어 분위기를 잘 모르지만 아마도 내가 그 서점을 찾아갔다면 그것은 요조를 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의 속물성이 작용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가 서점을 찾아온 사람들을 이야기한 나쁜 모습 중 한 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최근 동네서점에 대한 많은 글이 올라오는데 가보고 싶은 곳들도 늘어났다. 예전에 헌책방을 열심히 돌던 때가 생각나면서 옛 추억도 떠올랐다. 그 헌책방들이 지금은 문을 닫아 아쉬움이 큰데 이런 작은 서점들이 또 다른 위안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무사 일기는 책방 기록이기도 하지만 요조의 일기이기도 하다. 가장 놀랍고 재밌는 부분은 손님과 함께 하는 모습들이다. 선물을 사오고, 선물을 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이웃과 함께 하는 모습들. 화려한 글이나 진부한 감상을 주절주절 늘어놓지 않아 담담하게 읽을 수 있고, 책방 운영하면서 느낀 감상과 일상이 잘 어우러져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순간도 있다. ‘쇼난에 가다’에서 그녀가 느낀 감정이 나의 감성 어딘가를 살짝 건드리고 지나갔고, ‘상실의 시대’는 집에 있는 책이 몇 판인지 궁금해졌다. 그녀가 ‘울었다’고 한 책을 내가 울었던가 하는 기억을 더듬었고, ‘취미는 독서’란 너무나도 흔한 취미가 정말 나의 취미란 사실에 놀란다.

 

처음 책을 펼치면서 요조의 이미지를 알 수 없어 검색했다. 홍대여신이라고 불린 미모의 귀여운 여성이 나왔다. 글을 읽어 나가면서 그녀의 나이를 보고 놀랐고, 그녀 곁에 있는 남자 친구 이종수를 보면서 10년 연애 끝에 결혼한 직원이 떠올랐다. 돈에 대한 솔직한 감상이 좋았고, 에필로그에 나온 사람에 대한 글도 공감했다. 사람에게 상처 받은 것 사람으로 치유한다는 뻔한 문장이 그녀에게는 사실인 모양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잘 가지 않는 ‘서울국제도서전’이 괜히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이번 전시회 이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잠시라도 다녀왔을 텐데. 이렇게 이 책은 나에게 다양한 감상을, 감성을 던져주었다.

 

서울에서 제주로 옮긴 책방 무사. 아마 아이를 데리고 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서울 무사와 제주 무사의 사진들은 널널하지만 여유와 세심함이 엿보인다. 책방 주인 요조가 선택한 책들이 조용히 진열된 그곳은 요조의 말처럼 그녀의 현재와 과거의 관심사들이 놓여 있을 것이다. 이 선택이 다른 사람의 선택으로 이어져야만 책방은 계속 유지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괜히 가서 한 권 정도 사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록 요조의 서가에 나온 책들은 대부분 낯선 책들인데 아주 흥미롭다. 산다고 해도 금방 읽을 것 같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인식을 넓혀줄 것은 분명하다. 언젠가 다시 책을 펼쳐 읽는다면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그녀의 음악도 한 번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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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안는 것
오야마 준코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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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의 저질 기억력과 오독이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줄 때가 있다. 이번이 그런 경우다. 처음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가의 <하루 100엔 보관가계>를 읽었었다. 그것도 상당히 재미있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감독이 이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 소설의 작가라고 잘못 읽었다. 급한 성격과 인터넷 서점의 책소개를 대충 읽는 버릇이 만든 실수들이다. 자주 하는 실수다. 이런 실수들이 있었지만 소설은 잘 읽히고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머릿속에서는 얼마 전에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와 비교하고 있었다.

 

첫 이야기를 읽을 때는 고양이의 시선으로 전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줄 알았다. 자신이 인간인 줄 아는 고양이 요시오가 주인공으로 말이다. 그런데 바로 사오리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야기는 옴니버스 식으로 꾸며져 있고,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간의 흐름 순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 잠시 혼란이 있기도 했지만 부드럽게 이어지는 이야기라 큰 불편함이나 거북함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각각의 사연을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대표적으로 사오리가 왜 고양이에게 요시오란 이름을 붙였는지, 그 연모의 대상이었던 요시오를 보고 오해했던 장면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등 세심하게 이야기를 짜놓았다.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상황을 판단하고 오해하는지 잘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고양이가 각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이 고양이와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같이 어우러진다. 요시오와 사오리나 키이로와 고흐나 르누아르 같은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소설의 제목인 ‘고양이를 안는 것’은 키이로와 고흐의 이야기에서 나온다. “고양이는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안는 것”이라는 고흐의 말이다. 미완성된 그림만 그리던 고흐가 하나의 그림을 완성했지만 예상하지 비극을 맞이하는 장면은 삶의 아이러니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이야기 또한 뒷이야기에서 새로운 상황 설명이 덧붙여진다. 깔끔한 정리다. 그래도 각자의 감정에 남겨진 여운은 그대로다.

 

도쿄 변두리 아오메 강의 네코스테 다리는 고양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네코스테란 단어는 고양이를 버린다는 뜻이다. 이것은 강가의 창고가 신식으로 바뀌면서 쥐가 쉽게 구멍을 내지 못하면서 고양이가 필요 없어졌고, 부가 쌓였다는 의미다. 시대의 변화와 발전이 만들어낸 풍경과 현상이다. 이후 고양이들은 이 네코스테 다리 근처에 모여 살아간다. 이 다리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바로 세 명의 남녀가 고양이들에게 물과 사료를 준다는 것이다. 최소한 이곳에 오면 굶주릴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 고양이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한다. 재밌는 것은 각 고양이의 기억이 달라 작은 에피소드를 만든다는 것 정도랄까.

 

고양이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인물들이 나와 짧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을 한꺼번에 다룬 이야기가 크리스마스인데 따뜻함과 안타까움이 조용히 뒤섞인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희망이 깔려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도 알려준다. 그리고 고양이의 이름을 둘러싼 이야기에서 순간 울컥했다. 아이가 서투르게 발음한 이름에 부모가 숨을 죽이는 대목이다. 단순히 이 부분만 읽었다면 그냥 그랬겠지만 앞에서 쌓여온 감정이 이때 폭발한 것이다. 여기에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현실도 덧붙여졌다. 화려하지도 감정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감성을 건드리지 않지만 책을 덮은 뒤 충분히 그 여운과 감동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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