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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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도리스 레싱의 소설을 읽었다. 아마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다섯 번째 아이> 이후 처음이다. 그때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한참 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을 내놓기 시작한 때라 냉큼 들고 읽었다. 약간은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독서였다. 나의 내공이 많이 부족한 탓이었다. 그리고 책 욕심은 이것과 별개로 작가의 다른 책을 모으게 만들었다. 흔히 있는 일이다. 나중에는 이해하고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작용했고, 그 바탕에는 책 욕심이 강하게 자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다시 도전했다.

 

작가의 60년대 단편들을 모은 책 중 일부다. 나머지는 다른 제목으로 곧 나올 모양이다. 이 책에는 모두 열한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각각의 분량이 모두 다르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읽기가 그렇게 녹녹하지 않는 것 정도랄까. 물론 여유를 가지고 문장을 음미하고, 장면을 머릿속에 차분히 그려내고, 시대를 조금 더 이해한다면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한 재미가 곳곳에서 나타날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독서법은 그렇게 여유 있는 편이 아니다. 문장과 문장은 집중하지만 호흡이 조금만 흐트러지면 그 장면과 상황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 단편집에서 쉽게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아 호흡이 깨어졌다. 그 결과는 쉬운 책읽기가 아니란 것이다.

 

단편은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그려내는 경우가 많다. 그 이야기 속에는 그 시대의 모습이 생략되어 있다. 사회와 문화의 변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현대에 들어오면서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이것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특히 1960년대를 다룬 소설이라면 감안해야 할 게 많다. 그 중 하나는 화폐의 가치고, 다른 하나는 성의 역할이다. 사실 화폐의 가치는 그 돈이 현재 얼마 정도일까 하는 수준에 머무는 작은 호기심이다. 반면에 성의 역할은 다르다. 이제 막 성의 자유가 대중적으로 퍼지던 순간이었다. 여성의 인권이 좀 더 신장되는 시간이었다. 작가는 이 시대를 날카롭고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표제작 <19호실로 가다>는 네 아이의 엄마인 수전이 자기만의 방을 찾고, 그 속에서 휴식하지만 결코 자신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행복한 만남과 결혼과 출산이었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녀의 삶은 힘을 잃어간다. 남편의 불륜이 있고, 집에 묶인 그녀의 삶은 점점 비루해지는 과정에서 결코 평온함을 찾지 못한다. 반복되는 일상은 그녀의 내면을 우울함으로 잠식한다. 남편의 황당한 제안을 보면서 이것이 그 시대에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닌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극단적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은 필요한 법이다. <영국 대 영국>의 엄마도 그렇지 않은가. 이 단편이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다.

 

사실 첫 작품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를 읽을 때는 이제 좀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다. 착각이었다. 성공하지 못한 작가의 전업과 그의 욕망이 집착으로 변하는 과정은 아주 추했다. <옥상 위의 여자>는 남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그려낸다. 문제는 여자가 아닌데 보는 그들의 감정이 문제다.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은 실연의 아픔과 고통을 날카롭게 보여주고, <한 남자와 두 여자>는 출산 후 여성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와 미묘한 남녀 관계를 그려낸다. <방>은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데 나의 이해와 해석이 부족하다. 다시 한 번 더 정독한다면 다른 느낌일 것 같다.

 

<영국 대 영국>은 탄광노동자의 아들이 명문대학에 입학 한 후 집에 와서 겪는 일은 짧게 그려내었다. 계급과 계층문제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먼 훗날 그들의 삶이 어떻게 급락할지 알기에 걱정되었다. <두 도공>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나누고 해석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실제 토끼가 없는 영국이란 설정도 낯설다. <남자와 남자 사이> 속 두 여인은 연인과 아내의 경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둘의 연대가 보기 좋지만 현실은 어떨까? <목격자>는 한 십대 여직원을 두고 벌어지는 두 늙은 남자의 반응이 노골적이다. <20년>은 사랑했던 두 연인 20년 만에 만나 서로의 만남이 엇갈린 이야기를 한다. 만약 그들의 사랑이 진짜였고, 그 갈망이 감정의 소모보다 노력으로 이어졌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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