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퍼즐
최실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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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재일 한인 3세 소설가의 작품이다. 유명한 문학상도 3개나 수상했다. 이런 대외적인 정보보다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조금 낯선 재일 한인 3세가 경험했던 일들이다.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면 한인 3세나 4세가 나왔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언제나 읽었던 작품들의 작가가 2세까지였던 것 때문에 이 당연한 시간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동시대에 있었고 그냥 하나의 사건 정도로 생각했던 일들이 조총련 계열 학교 학생들에게 어떤 일로 다가왔는지 보여줄 때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야 했던 재일 한인들의 또 다른 삶이 눈에 들어왔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는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비록 나 자신이 이 작품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재일 한인 3세 박지니가 미국에서 경험하는 일들이나, 왜 그녀가 그곳까지 가게 되었는지 보여줄 때 한 소녀의 방황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이해의 폭은 깊지도 넓지도 않지만 작은 충격을 주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다. 이것은 다른 방송을 통해 알게 된 재일 한인의 삶과 일본에 있었던 북송사업 등과 엮이면서 좀더 깊어졌다. 정치라는 거대한 행동 속에 개인의 삶은 너무나도 무력하고 한계가 분명하다.

 

첫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나온 존이란 존재는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다. 이후 펼쳐진 이야기들에 존은 등장하지 않는다. 왜 자신을 표현하기 전까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존을 가장 먼저 내었을까? 지니를 비롯한 재일교포들의 삶을 대변하기 때문일까? 이 소설 속에서 가장 큰 충격을 주는 것은 1998년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한 일이다. 이 사건은 전 일본을 긴장시켰다. 극우단체들의 폭력이 자행되던 시기다. 치마저고리로 대변되던 조총련계 학교 학생들이 체육복으로 등교해야 할 정도였다. 지니는 이 소식을 듣지 못해 폭행과 성추행을 당한다. 어린 소녀에게 이것은 씻을 수 없는 아픔과 공포로 기억된다.

 

오래전 한국도 교실에 박정희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1998년 일본 조총련계 학교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다른 학생들은 이 초상화를 풍경의 일부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지니에게는 깨트려야 할 대상이다. 독재국가이자 재인교포들에게 위험을 주는 이들은 타도의 대상이다. 자신이 만든 선언문을 뿌리고, 초상화를 교실 밖으로 내던진다. 이 행동 때문에 그녀는 일본에 거주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 일이 벌어지기 전 북송사업 당시 떠난 외할아버지의 편지가 중간중간 나온다. 편지 내용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른 북한의 실상이 드러난다. 그 또한 정치 문제의 희생자였다.

 

미국에서도 지니는 아웃사이더다. 홈스테이 주인이자 동화작가인 스테퍼니는 이런 그녀를 품고 세상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하늘이 무너질 때라는 가정에 ‘하늘을 받아들일 거야’라고 외친다. “언젠가, 누군가 날 용서해줄 날을, 무너지는 하늘을, 그것이 어떤 하늘이라 해도 허락하고 받아들일 날을. 괜찮아, 그걸로 됐어, 하고 누군가 인정해줄 날을 죽 기다려왔던 건지도 모른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지니가 겪었던 아픔과 고통과 외로움과 공포 등이 가슴 속에서 흩어졌다. 정치문제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정치문제에 휘둘린 사람들이 어떤 폭력을 행사하는지 등은 현실의 삶을 잘 보여준다. 한 편으로는 그 현실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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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랑 - 김충선과 히데요시
이주호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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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랑(逆浪)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역풍으로 인하여 거슬러 밀려오는 물결과 세상이 어지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작가가 이 단어를 제목으로 사용한 것은 중의적인 의미 때문일 것이다. 사야가란 인물이 겪은 일과 그 시대의 상황을 한 데 묶은 것이다. 사야가는 임진왜란 당시 항복한 왜군 출신이다. 이후 김충선이란 이름을 사사받았다. 작가는 실존 인물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덧붙여 이야기를 풀어냈다. 쉽게 생각하면 임진왜란 때 조선이 무대일 것 같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일본에서 펼쳐진다. 일본의 전국시대 마지막과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까지의 시기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했지만 기본적으로 소설이다. 읽으면서 개인의 생각과 결이 다른 부분이 많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사야가의 능력이다. 당쟁 때문에 살기 위해 밀항을 하고, 뎃포 부대원으로 팔려가는 것까지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열 살 소년이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새로운 전술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가능할까? 오다 노부나가가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 3열 전술도 이 책에서는 사야가의 전술로 바뀌어 있다. 이 책 내용대로라면 사야가가 보여준 능력은 특정 부대에 한정한다고 해도 너무 천재적이다. 그리고 이 시대에 자유연애를 집어넣은 것은 시대를 초월한 설정이다. 일본 전국시대의 살벌함을 감안한다면 더욱 더.

 

이런 몇 가지 거슬리는 부분을 제외하면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고, 조선을 침공하는 과정을 아주 간결하면서도 흥미롭게 잘 다루었다. 이 사이에 사야가의 능력을 극대화시킨 부분은 액션과 스릴을 느끼게 만들었고, 이에야스의 비중을 적지 않게 다룬 것은 그 시대 정국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시대를 초월한 사랑 이야기는 이 둘의 결말이 어떻게 될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온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역사가 재밌기 위해서는 간결하게 서술된 역사 속에 작가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킨 부분이 필요하다. 최소한 이 작품의 몇 가지 이야기는 이 부분을 아주 잘 표현했다. 방대한 참고자료를 감안한다면 오히려 이렇게 축소하는 것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사야가가 행주산성에 와서 권율과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순신의 추천이 있었다. 그리고 작가는 이 사야가란 인물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풀어낸다. 사화에 휩쓸려 일본으로 밀항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 어머니는 죽고 아이는 뎃포 부대원으로 팔린다. 하지만 이 소년이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면서 뎃포 부대에 도움을 준다. 조선인을 멸시하는 장면과 조직원 간의 작은 갈등이 나오지만 핵심은 소년의 천부적 재능과 아츠카와의 사랑이다. 특히 아츠카와 사랑은 둘을 굳건하게 묶어주고, 붉은 돌 뎃포 부대를 위험에 빠트린다. 그의 재능을 탐낸 전국시대 장군들 때문이다. 히데요시의 아츠카에 대한 구애와 사야가에 대한 욕망은 이후 중요한 이야기 거리다.

 

이 작품 속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사야가의 정체성과 아츠카와의 사랑이다. 두 연인의 사랑은 시대의 한계 안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파국의 씨앗을 품고 있다. 시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둘의 사랑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마지막까지 변함없었다. 그리고 조선인이란 정체성을 둘러싼 고민은 민족의식에 대한 과도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만약 이런 민족 정체성을 그가 가졌다면 그를 따른 뎃포 부대원들의 정체성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같이 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나의 지식이나 상식들과 충돌하면서 읽혔고, 역사적 사실과 엮인 몇몇 장면들은 예전에 읽었던 역사서들을 떠올려주었다. 더불어 사야가가 보여준 활약은 긴장감을 불러왔다.

 

개인적으로 기대한 만큼의 재미와 완성도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어쩌면 나의 선입견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녹여내는 과정에서 캐릭터를 과도하게 포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편의 역사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고 더 깊이 있는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은 어떨지 호기심이 조금은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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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클락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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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읽었던 기시 유스케의 소설과는 다른 작품이다. 여기서 ‘다르다’라고 한 것은 트릭 등을 중심으로 다룬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은 조금 낯설게 다가오기도 했다.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유리망치>라는 작품이 트릭을 다루었고, 에노모토 케이와 아오토 준코가 <유리망치>에도 등장했다 한다. 이번 작품들에서 준코가 보여준 황당한 추리 등이 과연 전작에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이것과 별개로 이번 작품집은 밀실 트릭을 다룬다. 이 고전적인 소재를 시대에 맞게 풀어내는데 나의 지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네 편의 밀실 트릭을 다룬다. 순수하게 트릭을 풀어내는 것에 집중했다. 덕분에 법인이 누군지는 금방 알 수 있다. 이번 작품들에서 중요한 것은 범인이 누구인가? 가 아니고 어떻게 밀실을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미 밀실 트릭의 시대는 끝났다고 하는데 작가는 이 부분을 아주 현대적이고 극단적으로 풀어낸다. 아직 밀실 트릭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고전 작품과 비견될 수 있는 것은 개인적으로 표제작인 <미스터리 클락>과 <완만한 자살>이다. 첫 작품 <완만한 자살>의 경우는 이전의 밀실과 닳은 부분이 꽤 많다. 야쿠자의 집 문을 열기 위해 등장한 케이가 이렇게 밀실 전문가인지는 이때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밀실은 독자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상식의 틀에 갇히면 밀실은 도저히 풀 수 없다. 당연히 편법을 이용하는 것은 안 된다. 과학으로 중무장한 밀실의 경우 전문 지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밀실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단편 <거울나라의 살인>은 광학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풀 수 없다. CCTV라는 명확한 증거가 있는 상황에서 이것을 깨트리려면 범인이 만든 밀실의 허점을 파악해야 한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준코를 처음 만났고, 그녀의 상상력이 나와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렇구나’ 이상을 결코 넘어가지 못했다. 내가 밀실 트릭을 다룬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미스터리 클락>은 흥미로운 구성을 가지고 있다. 살인이 일어나고, 자살로 단정 지은 후 다시 그때 사람들이 모여 상황을 재현하고 케이가 밀실 트릭을 깨트린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인데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나온다. 그리고 섬세하게 조작된 트릭이 나온다. 이 트릭을 머릿속에서 이해하는 것은 나에게 불가능하다. 그림으로 설명해주지만 역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 나타나는 일반적 이해와 기발한 발상 등은 아주 재밌었다. 특히 준코는 첫 작품을 제외하고 모두 등장해서 서툰 탐정 역할을 아주 잘 한다. 이때 케이가 보여주는 반응도 아주 현실적이다.

 

마지막 단편 <콜로서스의 갈고리발톱>은 바다를 무대로 한 밀실 트릭이다. 살인자는 바닷속 300미터에 있었다. 그가 살인하기 위해서는 감압을 거쳐야만 한다. 현실적으로 살인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트릭을 깨트리는 것은 작가가 다른 살인에 이용된 도구를 설명하면서 생긴다.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 과학기술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 기술을 안다고 모든 트릭이 풀리지는 않는다. 마구 트릭을 풀었다고 외치는 준코의 아이디어 하나가 케이에게 빛을 던져준다. 마지막에 법인이 왜 이런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줄 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작가는 아주 다양한 밀실을 만들고, 새로운 지식을 그 속에 녹여낸다. 밀실 트릭 마니아라면 좋아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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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인간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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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핫한 중국 작가인 찬호께이의 연작단편집이다. 아직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13.67>을 읽지 않았지만 늘 관심에 두고 있다. 물론 책은 구입해서 모셔두고 있다. 이번 작품은 기존의 작품과 다르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다르다. 초능력을 가진 킬러가 등장한다. 비현실적 인물이 주인공이지만 핵심 전개 방식은 추리소설이다. 미스터리를 중심에 놓고, 초능력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렇게 길지 않은 단편 속에 아주 재밌게 이야기를 구성하고 반전을 펼친다. 짧은 글이라 훨씬 집중하기 좋다. 거기에 얼마나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주인공인가.

 

소심한 성격에 체력도 평균 이하인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초능력을 가진다. 이것을 다룬 첫 단편이 이 연작소설집에는 없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그 작품이 외전 격이라고 하는데 언젠가 읽어보고 싶다. 물론 그 작품을 읽지 않았다고 해도 이 단편집을 이해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 이 초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그가 사람에 접촉하고 프로그램된 명령어를 입력하면 그대로 실행된다. 즉 며칠 뒤 어떻게 죽는다라고 하면 그대로 죽는다. 다만 한 가지 약점이라면 신체에 접촉해야 한다는 점이다. 킬러라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기 위해서는 살해 대상과의 접촉에 신중해야 한다. 무차별 살인도 가능하지만 하나의 행동 방식이 반복되면 그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 전제 조건을 아주 중요하게 다룬다.

 

<이런 귀찮은 일>은 이 직업이 가지는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신분을 숨기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져야 한다. 대상을 관찰하고 조사해서 최상의 접촉을 만들어야 한다. 대상의 생활방식을 조사해야 하는데 방해하는 아이가 있다. 풍선으로 햄스터를 만들어 달라는 아이다. 이 도입부에서 그의 능력과 이전 직업을 알려준다. 하지만 더 문제는 그의 외딴집 옆에 이사온 한 남자다. 괜히 신경 쓰인다.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떤 일이 펼쳐질까? 이 이야기의 끝에 이 초능력의 또 하나 문제점이 드러난다. 그것은 한 번 입력한 명령어는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십면매복>의 화자는 초능력 킬러가 아니다. 형사다. 거대제약회사의 합병을 추진한 사장을 보호해야 하는 형사다. 살인은 통보되었고, 경호회사 사장은 이상한 모습으로 죽은 채 발견되었다. 어떻게 살인했는지 결코 알 수 없다. 이 단편에서 킬러의 별명이 풍선인간이라는 것이 알려진다. 죽은 시체의 모습들 때문이다. 형사의 경호는 단단하다. 신분이 확인되지 않으면 회의장에 들어올 수 없다. 총도 반입이 되지 않는다. 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킬러는 이런 방식으로 살인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대상과 접촉해야 한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로. 지키는 자의 입장에서 풀어가는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이어진다.

 

<사랑에 목숨을 걸다>는 기본 트릭이 쉽게 드러난다. 거대한 부를 가진 남편을 둔 전직 미인대회 우승자이자 영화배우인 궈 부인이 남편의 유일한 딸의 살인을 의뢰한다. 킬러는 다른 의뢰도 있다고 말한다. 작은 실수다. 궈 부인이 살인을 의뢰한 이유는 남편이 암에 걸렸는데 자신에게 말하지 않고 딸에게만 말했기 때문이다. 음! 사실일까? 킬러는 의뢰비로 왕년의 육체파 배우의 몸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녀가 어떻게 한 자리씩 올라가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몸 로비다. 이런 소소한 것도 재밌지만 진짜로 흥미로운 것은 예상된 이야기 다음이다. 마지막 문장은 새로운 사실을 섬뜩하게 알려준다.

 

<마지막 파티>는 선입견을 그대로 깨트리는 서술 트릭을 이용했다. 킬러가 살았던 동네에 남매가 할아버지 집에 놀러온다. 뉴스에서 박물관 살인 사건이 나온다. 하나의 암시다. 남동생 샤오바오는 탐정 놀이에 빠져 있다. 누나와 술래잡기를 한다. 누나가 한 집에 몰래 숨는다. 그러다 킬러로 추정되는 남자와 대리인의 대화를 듣는다. 그녀가 들었다는 것을 알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동생과 함께[ 간 뒷동산에서는 이상하게 죽은 무수한 동물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리고 킬러가 이 남매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잘못하면 할아버지까지 죽을 수 있다. 반전은 바로 여기서부터다. 아주 멋진 서술트릭으로 나를 놀랜다. 풍선인간의 다음 이야기도 나온다고 하니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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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사랑을 잘못 배웠다
김해찬 지음 / 시드앤피드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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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인 제목이다. 사랑을 배워야 하는 시대에 감히 사랑을 잘못 배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럼 그는 사랑을 제대로 했을까? 아니다. 이 에세이를 읽다 보면 ‘너’는 ‘나’가 된다. 그의 경험들이 글 속에 조용히 녹아 있다. 이 경험들은 한 번 이상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이 글속에 나오는 사랑들은 현재 사랑보다 과거 사랑에 더 가깝다. 만남, 사랑, 헤어짐, 그리움, 추억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들 속에 진한 경험담과 아쉬움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 감정을 경험했기에 오히려 담담하게 읽을 수 있었다.

 

SNS를 거의 하지 않는 나에게 김해찬이란 작가는 낯설다. 이 낯섦이 가끔은 가벼움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글들이 범람하는 인터넷에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잘 정리해서 풀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사랑이라면. 세상에는 사랑을 참 쉽게 하고, 잘 헤어지는 사람도 많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다. 이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딴 세상 사람 같다. 나보다 훨씬 힘들게 사귀고 헤어지는 친구들을 보면 답답하다. 아마 전자의 친구들이 볼 때 내 모습이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절대적 시간은 동일하게 흐르지만 상대적 시간은 다르게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속에서 자주 느끼는 감정 중 하나가 시간이다.

 

세 부분으로 나눠 이야기가 진행된다. 앞의 두 부분은 사랑과 이별과 추억 등을 다룬다. 마지막 부분은 작고 사소하지만 그가 소중하게 생각했고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당연히 앞의 두 이야기는 무겁다.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도 있다. 지나간 추억을 떠올리는 일은 더 많다. 이제는 회색빛으로 가득한 그 시간을 잠시 컬러로 바꿔주기도 한다. 이런 사랑 이야기는 사랑과 실연을 경험했을 때 더 많이 공감한다. 아마도 젊은 청춘들에게 이 글은 현재의 감정을 대변해줄 것이다. SNS에서 ‘좋아요’가 많아지는 것도 그들의 현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흔한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구속은 사랑이 아니다.’ 뻔한 말이다. 그런데 이 문장 밑으로 가면 “사랑은 더 넓은 세계를 보여주는 거다.”란 문장이 나온다. 이것을 “자신 안에 머무르길 바라는 것”이란 욕심으로 해석한다. 그럴까? 소유욕과 머무르길 바라는 것을 같이 놓을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린 사랑을 잘못 배워도 한참 잘못 배웠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아마 책 제목이 나왔을 것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우리가 가지는 감정과 욕심을 구속이란 단어로 표현했으나 완전히 동의하지 못한다. 구속의 다른 의미가 머릿속에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란 거짓말도 있지만 감정은 영원할 수 없다. 만나면 헤어지는 순간이 온다. 이때 우리의 본모습이 아주 잘 드러난다. 찌질한 성격이나 후회나 아쉬움이나 집착 등이 밖으로 드러난다. 물론 이것도 시간 속에 조금씩 희미해진다. 새로운 사랑을 위해서는 추억 속에 조용히 묻어둬야 한다. 잊는 것이 아니라 지우는 것이란 글에서 우리의 한계를 깨닫는다. 집에서 졸면서 봤던 <이터널 션샤인>의 내용을 설명해줄 때 결코 지울 수 없는 기억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다행인가.

 

“매일이 괜찮은 척하는 날들의 연속. 그 척이 쌓여서 정말 괜찮은 날이 되기를 바라는 작은 바람.” 이것은 사랑에서도, 삶에서도, 일에서도 늘 있는 일이다. 삶은 견디고 견디고 견디는 일의 연속이다. 어떨 때는 거짓과 허세로, 어떤 순간은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진실된 마음을 숨긴다. 작가의 정제된 문장들은 자신의 감정을 그렇게 정리하고 있다. 자신을 감정의 늪 속에 빠트려 허우적거리지도 않는다. 짧은 문장이 더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은 바로 작가의 긴 풀이보다 자신의 감정을 돌아볼 시간을 더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절제된 감정의 문장들을 읽으면서 작가의 삶이 궁금해졌다. 나와 주변 친구들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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