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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있는
문목하 지음 / 아작 / 2018년 12월
평점 :
한국 SF소설이다. 최근 한국 SF소설을 자주 보게 되는데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당연히 반갑다. 이 소설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은 한국 SF소설이기 때문이다. SF와 판타지, 미스터리를 효과적으로 결합했다는 표현은 그냥 지나가기 힘들게 만든다. 미리보기로 먼저 읽고 그 흡입력에 빨려 들어갔다. 정제된 문장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면들은 멋진 한국 SF소설을 예고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읽으면서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른 이야기들을 만났다. 읽으면서 외국 SF소설 한 편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윤서리. 신입 수사관이다. 비원이란 조직을 비호하는 서형우 팀장의 밑으로 들어간다. 이 비원이란 조직의 특성을 작가는 초반에 잘 숨겨둔다. 비원의 성장을 억제하면서도 결코 깨트리지 않는 서형우의 의도는 쉽게 알 수 없다. 윤서리와 서형우 사이에는 작은 충돌이 있지만 큰 문제없이 넘어간다. 그러다 서형우가 오랫동안 기획한 일이 윤서리의 개입으로 깨어진다. 평소 서형우라면 그녀는 죽은 목숨이다. 대신 그녀를 죽을 수 있는 임무에 투입한다. 장소는 그녀가 살았던 도시다. 그러다 일어나는 일이 이 소설의 첫장이다.
윤서리가 살았던 도시는 어느 날 거대한 싱크홀이 생겼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싱크홀 때문에 4만여 명의 시민들이 죽었다. 어마어마한 재앙이다. 이 싱크홀은 정부에서 관리되었고, 싱크홀 주변은 출입제한구역이다. 이 소설은 바로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다. 느와르 같이 진행되던 도입부를 지나면 이 싱크홀이 생기게 된 이유가 설명되어지고, 이 때문에 일어난 사건과 상황들이 이야기의 전면에 나선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두 무리와 이 두 무리 사이에서 이들을 없애려는 조직의 개입이 조금씩 드러난다.
정여준. 서형우가 죽이려고 한 남자다. 윤서리는 여준의 정체를 모른다. 암살 부대원으로 그를 죽이기 위해 다시 그 도시로 돌아왔을 때 예상하지 못한 모습을 본다. 그것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서진 건물들이 날아다니고, 깨어지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초능력이 거대한 힘을 발휘한다. 비현실적이다. 왜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 좁은 도시에 머물고 있을까? 이들은 어디에서 나타난 것일까? 이 의문의 답은 윤서리가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데리고 온 남자의 동료 이찬과 함께 서형우를 만나면서 풀린다.
싱크홀이 생긴 원인, 그 속에서 살아나온 사람들, 이들이 가진 능력 등은 하나의 실험에서 비롯했다. 하지만 왜 이런 능력이 생겼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가설만 다룰 뿐이다. 싱크홀에서 살아나온 사람들이 두 무리로 나누어져 싸운 이유는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들이 가진 능력을 두려워하지만 결코 극복하지 못할 능력은 아니기에 지역적 제한을 둔다. 재밌는 것은 이들의 능력이 정지자, 파쇄자, 복원자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여준의 능력은 정지자이고, 이찬은 파쇄자다. 이런 특정 능력의 극대화가 이루어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데 이것이 소설 속에서 아주 극단적으로 표현된다. 제목도 여기서 비롯했다.
이런 능력을 감안하면 무대가 확장되어야 할 텐데 작가는 무대를 한정적으로 묶어둔다. 외연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아 조금 답답한 면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외연을 확대할 수 없다. 더 활기 넘치고 액션이 신나고 재밌을지 모르지만 선택과 시간의 문제를 풀어내는데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 그리고 작가는 윤서리를 꾸준히 전면에 내세우지만 그녀의 내면을 풀어내기보다 그녀의 동선과 그녀와 관련된 사람들의 심리 묘사에 더 공을 들인다. 최소한 그녀가 전면에 나서기 전까지는 그랬다. 마지막 장면에서 떠올리게 되는 여준의 시간들은 아주 강한 인상을 남긴다. 만약 이 작품이 시리즈로 발전한다면 과연 어떻게 외연 확대를 이룰지, 여준의 시간들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