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서정시
리훙웨이 지음, 한수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205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위원왕후가 별세했다. 사인은 자살이다. 문학가에게 영광스러운 상을 수상하기로 한 인물이 죽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죽기 전 그는 한 인물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렇게 단절한다. 잘 지내길.” 이 시대는 이제 인터넷도 이메일도 구식이다. 사람들은 12살이 되면 뇌에 의식결정체라는 기기를 이식하여 기억을 저장한다. 이동영혼이라는 매개체로 의식공동체라는 일종의 서버에 접속한다. 당연히 이동영혼을 본인이 끌 수 있다. 이 부분을 보면서 다시 <공각기동대>의 전뇌로 생각이 넘어갔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이야기가 다른 부분으로 넘어간다. 구성도 일반 소설과 달라 솔직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위원왕후가 보낸 이메일을 받은 인물은 리푸레이다. 제국에서 일하다가 도서관으로 전직했다. 리푸레이는 이 소설 속에서 탐정 역할을 맡는다. 그가 보낸 메일 속 문장의 의미와 자살의 이유를 찾고자 한다. 왕후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데는 <타타르 기사>라는 서사시가 큰 역할을 했다. 작가는 이 노벨문학상 수상자 숫자를 2050년까지 중국에서 12명이 받았다고 말한다. 현재까지 2명인데 앞으로 30년 동안 10명이 받아야 한다. 이 정도면 거의 독식이다. 처음에는 이 설정을 보고 국뽕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은 지금 작가가 왜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설정을 넣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최고 권위의 문학상 수상자가 자살을 했으니 정부도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 그가 죽었다는 것을 의심하게 된 것도 이동영혼이 의식공동체에 비상경보를 보냈기 때문이다. 리푸레이가 이것을 끄고 술을 마시면서 경고음이 없다고 한 것을 보면 의식결정체의 역할은 아주 광범위하다. 이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하나의 예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부록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리푸레이가 왕후의 죽음을 조사하는 과정에 나온다. 제목 <왕과 서정시>는 이것과 관계있다. SF소설의 외피를 가진 채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지만 그 속에는 문자와 서정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가득 담겨 있다.

 

왕이란 명칭을 보았을 때 전제군주를 떠올렸다. 미래에 왕이 통치하는 국가 말이다. 하지만 이 왕은 의식결정체를 만들어낸 제국의 수장을 말한다. 그의 이름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의 기업은 인류의 정보를 관할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왕의 거대한 실험이 조금씩 실체를 보여준다. 재밌는 것은 이 제국의 왕이 과학 전공자가 아닌 문학 전공자였다는 점이다.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을 발전시키는 기술자의 이미지는 흐려져 있다. 이 부분이 일반적인 SF소설에서 천재 과학자를 등장시킨 것과 다른 점이다.

 

문자. 여기서 문자는 한자다. 표의 문자다. 1부는 4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소제목이 한자다. 설명은 <설문해자>와 <신화자전>에 수록된 것이다. 이 한자들은 내가 이해하는 것과 다른 의미도 꽤 있다.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는 한자들은 한정적이다. 리푸레이는 사용되지 않는 한자를 서글퍼하면서 한 밤중에 술을 마시고 그 글자를 쓴다. 이것이 언어의 서정성과 관계있다. 왕과 위원왕후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게 되면서, 그의 조사가 더 진행되면서 다른 의미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그리고 마주하는 마지막 장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다른 SF소설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이 소설에서 가장 난해한 것은 2부다. 2부를 1부의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기초적 물질이자 재료라고 해석한 것을 보고, 정말 내가 놓친 것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그 자체를 하나의 산문시로 읽기는 했지만 1부와의 연관성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1부에서 말한 언어의 소멸과 하나로 융합됨의 의미를 계속 떠올려본다. 표의문자와 표음문자의 차이는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가까운 미래를 그려내고 있지만 이 속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의 문제다. 생각할 거리를 잔뜩 던져준다. 중국 SF소설의 발전에 놀란다. 작가는 이 소설을 SF소설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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