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항설백물어 - 상 - 항간에 떠도는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8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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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가 정말 오랜만에 나왔다. <속 항설백물어>가 2011년에 나온 것을 감안하면 7년 만이다. 이 시간은 이 시리즈에 대한 기억을 많이 희석시켰다. 집 어딘가 둔 전작들을 찾아서 비교하면서 읽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어디에 놓아두었는지도 모르겠다. 읽으면서 반가운 이름을 만났는데 처음에는 분명하지 않았다. 바로 마타이치다. 이 작품에서도 마타이치는 계속 등장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잇파쿠옹이다. 그의 이름은 모모스케다. 이전 작품과 구성에 차이가 있는 듯한데 저질 기억력은 이 차이를 바로 알아채지 못한다.

 

실제 한 권을 너무 두툼하다는 이유로 두 권으로 나누었다. 개인적으로 분권을 좋아하지 않지만 한 권의 분량이 750여 쪽이라면 들고 다니면서 읽기 쉽지 않다. 이 분권 과정에서 순서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이런 사소한 것은 뒤로 하고 세 편의 이야기에 집중하자. 각각의 이야기는 메이지유신 이후 시대를 배경으로 벌어진 사건을 다룬다. 이 사건이 담고 있는 의혹이 너무 강해 작은 단서라도 얻고 싶어 찾아가는 인물이 잇파쿠옹이다. 이야기의 문을 여는 겐노신 등은 고서에 실린 고사를 인용하면서 갑론을박한다. 자신들의 경험이나 이성으로 판단할 때 너무나도 불가사의하다. 잇파쿠옹의 폭넓은 지식은 이 의혹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든다.

 

첫 이야기 <붉은 가오리>는 에비스신의 얼굴이 붉어지면 섬이 멸망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장난으로 칠한 것이 섬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이야기는 다양한 책에 등장한다. 갑론을박하면서 찾아간 잇파쿠옹은 이 논쟁을 들으면서 40년 전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 마타이치와 함께 다니던 시절의 모모스케로 돌아간다. 도적에게 납치되어 에비스지마 섬까지 가서 경험하는 이야기는 기괴하기 짝이 없다. 전설과 고립된 섬과 법도를 둘러싼 참혹한 이야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작가는 이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의 이면을 또 만들어 넣으면서 중첩적으로 구성한다. 사실 재미는 이 중첩적인 구성에서 발생한다. 비현실적 이야기 속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가 반전처럼 펼쳐진다.

 

<하늘불>은 현실 사건에서 시작하여 과거 이야기로 넘어간 후 현재 사건 해결로 이어진다. 이 세 작품 중에서 이전에 본 소설과 가장 유사한 설정과 전개다. 색욕에 불타는 대관의 아내가 불법 높은 니콘보를 유혹하다 실패한다. 당연히 사실을 왜곡해서 남편에게 알리고, 니콘보는 살해당한다. 이때 저주를 남기고 이것이 실현된다. 이 과정을 모모스케는 지켜보면서 계속 의혹을 품는다. 마타이치가 죽다니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도 반전에 반전을 담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와 반전은 마타이치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주연으로 등장하지 않은 것이 아쉬울 정도다. 물론 이 이야기에서 단서를 얻은 일등순사 겐노신은 실제 사건을 해결한다. 이 또한 재밌다.

 

<상처입은 뱀>은 뱀의 수명과 전설을 둘러싼 이야기다. 물론 실제 이야기는 뒤에 숨겨져 있다. 뱀을 수호신으로 섬기는 쓰카모리 집안의 무덤 위 사당에서 가주가 뱀에 물려죽는다. 독살일까? 밀폐된 상자 속에서 뱀이 70년 동안 살 수 있을까? 쓰카모리 집안의 삼대가 뱀에 물려죽은 것은 지벌일까? 우연의 일치일까? 실제 이 사당을 지을 때 있었던 이야기를 전달하는 잇파쿠옹은 사건 해결의 단서를 제공한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훨씬 어둡고 복잡하고 성실하다. 읽으면서 혹시나 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도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이 단편에서도 마타이치의 정교한 계획은 그대로 적용된다. 뱀을 둘러싼 서늘한 이야기는 상상과 맞물려 기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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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 일주로 돈을 보았다 - 회사를 박차고 나온 억대 연봉 애널리스트의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하경제 추적기
코너 우드먼 지음, 홍선영 옮김 / 갤리온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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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자의 세계 일주 시리즈를 처음 읽었다. 처음 제목을 보고 별로 관심이 없었다. 흔한 세계 일주를 다룬 글로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제에서 위험한 지하경제 추적기란 설명을 보고 관심이 생겼다. 지하경제란 용어가 지닌 위험성과 긴장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목차를 보니 여덟 나라 여덟 도시가 나왔다. 몇몇 나라는 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지만 몇몇 나라는 의외였다. 과연 어떤 지하경제를 다룰까 하는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고, 매력적인 첫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가 조금 높았다.

 

축제의 도시 뉴올리언스. 우리에겐 재즈와 허리케인으로 더 잘 알려진 도시다. 그런데 이 도시의 축제가 유명한 모양이다. 축제 기간 동안 관광객을 노린 수많은 사기와 도박이 벌어진다. 저자는 그중에서 레즐이란 도박을 파헤치고 싶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사실 단순하다. 그 도시의 작은 사기판에 자신을 미끼로 던지고, 상대방을 자기를 물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속된 말로 도시 전설 같은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한 번 가보고 싶은 도시다. 여행 관련 방송에서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여줬던가. 그런데 이 도시에 위조지폐가 범람한다고 한다. 그냥 무심코 듣고 지나간 위조지폐가 어떤 식으로 다루어지는지 파고드는 그를 보면서 무모한 용기를 느낀다.

 

뭄바이의 택시 사기를 보면서 누군가가 터키에서 경험한 일이 떠올랐다. 출장자들이 호텔 택시를 불러가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보다 저자가 관심을 두는 것은 발리우드 배우 사기다. 여행자의 붕 뜬 기분을 이용한 이 사기는 제3자가 보기엔 너무 분명하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뭄바이 사람들은 모두 배우를 꿈꾼다고 하는데 실제 그런 것 같다. 바르셀로나에 소매치기가 많은 이유를 알려준다. 나는 파리에서 당했다. 그들의 기발한 소매치기 수법은 이미 여행 방송들에서 들었고, 실제 당한 주변 사람도 있다. 저자와 함께 실제 그 현장을 보여주는 장면은 놀랍다. 이런 사람들이 늘어난 이면에 높은 실업률이 있다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영국 버밍엄이 나왔을 때 가장 의외였다. 저자의 가족이 사는 이 도시에서 재배되는 대마초와 이를 둘러싼 폭력배와 조직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휴대폰, 매춘, 마약 등으로 이어지는 관계들을 보면서 하나의 현상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대마초를 기를 수밖에 없는 원인이 또 범죄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멕시코시티의 악명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런 도시에 어떻게 사나? 하는 일차원적인 물음이 생기지만 통계적으로 한국의 자살자보다 적은 숫자의 살인 사건이 있다고 한다. 신속 납치 방법을 보면서 기발함에 놀라고, 경찰을 믿을 수 없다는 믿음이 경찰 범죄를 만든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란다.

 

예루살렘 같이 고대의 유적이 있는 도시라면 유물 사기가 없을 수 없다. 골동품이 돈이 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진짜는 이스라엘이 친 담장 너머 팔레스타인에서 들려준다. 테러조직 등이 유물을 어떻게 다루었고, 이것이 어떻게 이스라엘로 들어온 뒤 전세계로 팔려나갔는지 말할 때 약탈 잔혹사란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그가 알고 싶어한 것은 스코프란 약물을 이용한 약탈이다. 이 약을 먹으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하게 된다고 한다. 술집에서 잠시 자리를 비우면 누군가 술에 이 약을 탄다. 그러면 며칠에 걸쳐 자신의 모든 자산을 약탈당한다. 병원에서 며칠을 보내야 한다.

 

이 여덟 도시의 지하경제는 실제 지하경제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낮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범죄를 다룬다. 하지만 진짜 지하 경제의 무서움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그 문제점을 폭로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책 한 권에 한 소재만 다루어도 엄청난 분량이 될 수 있다. 솔직히 처음에 내가 기대한 것은 이런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도시를 여행하려는 여행객이라면 이 책이 오히려 더 좋다. 그 도시에서 조심할 것을 저자의 경험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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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벚꽃
왕딩궈 지음, 허유영 옮김 / 박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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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띠지의 광고 문구다. 하루키를 말하며 ‘글을 무기로 싸울 수 있는’이란 표현을 썼다고 한다. 그 내용이 나오는 것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고 하는데 읽은 적이 있지만 이런 문장을 기억하지 못한다. 남는 시간이 있으면 다시 읽으면서 검증을 할 수 있겠지만 예전 같이 잉여롭지 않다. 아쉬운 대목이다. 다시 읽지 못한다는 것과 확인하지 못한다는 두 가지가 겹쳐진 아쉬움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이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매력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력이 이 소설 속에 녹아 있다. 그것은 화자가 택한 직업과 그가 경험한 것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 건설업의 부침을 간략하게 다루면서 그 속에 한 개인의 아픔을 녹여내는 과정은 빠르면서도 깊이가 있다. 빠른 것은 시간이고, 깊이는 그 시간 속에서 화자가 느끼는 감정이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우리의 그것과 조금 다르다. 평론가들이 고전적이라고 한 것과 닮아 있다. 상실의 아픔을 견디고, 그 아픔 속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그의 삶은 처음에는 의문으로 시작했다. 그의 아내 추쯔와 뤄이밍은 어떤 관계였던 것일까 하는.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지만 그 예상은 틀렸다.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소설 속 중요 인물 네 명 중 두 사람이 이야기 속에만 등장한다는 것이다. 바로 추쯔와 뤄이밍이다. 이야기는 화자가 뤄이밍의 딸 뤄바이슈에게 대화 속에서 풀려나온다. 바이슈는 왜 그가 손님 없는 카페를 하는지 궁금해 하고, 그가 카페를 연 후 왜 아버지가 자살하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자 한다. 실제로 뤄이밍은 기부도 많이 한 유력 인사다. 마을 사람들은 이 때문에 화자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다. 바이슈의 이야기에 따르면 엄마가 죽은 후 재혼도 하지 않고 홀로 살았고, 옷은 구김이 없을 정도로 꼿꼿하고 훌륭한 인물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이 바람이 나는 것인데 이것만으로 추쯔의 실종이 설명되지 않는다.

 

외딴 바닷가 카페에서 화자는 아내가 오길 기다린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기약 없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바이슈와의 대화가 없다면 그의 삶과 슈쯔가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사랑은 요즘 거의 없다. 이들의 만남은 특별하지도 않다. 가난한 연인들은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그들의 삶에 큰 변화로 다가온 것은 대지진이다. 추쯔에게 이것은 이전 사고의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이런 아내를 돌보기 위한 그의 노력은 처절하다. 가난은 단숨에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돈이 생겼을 때 작은 것을 사는 행복은 또 다른 것을 사지 못하는 아쉬움과 겹쳐진다. 작은 행복이 또 다른 행운을 불러왔지만 실제로 이것은 불행의 시발점이다. 수동 카메라의 당첨이 뤄이밍으로 이어지는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인품을 가진 뤄이밍은 추쯔와 무슨 일을 저질렀을까?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만나는 그는 화자의 바람을 들어주는 착한 인물이다. 하지만 불행의 연속선상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은 악의로 가득하다. 화자만의 착각이라고 한다면 그의 자살 시도가 설명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는 아내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사회의 변화는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추쯔가 직장에서 짤렸을 때도, 화자가 회장의 심복으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담당했을 때도 잘 드러난다. 그리고 가진 자들의 허세와 욕망은 회장의 행동으로 잘 표현된다. 가벼운 욕망의 배출로 매춘을 선택한 회장과 그를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하는 화자의 대비는 삶의 부조리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동시에 절망에 빠진 그의 선택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아픔은 가슴 깊숙이 파고든다.

 

적의 벚꽃. 이 제목을 보고 처음에는 빨간 벚꽃을 떠올렸다. 그런데 아니다. 그 적은 원수를 의미한다. 이 벚꽃 이야기는 마지막에 가면 나온다. 그 벚꽃이 의미하는 바와 어떻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 풀려나오는 이야기는 한 사람의 삶이자 한 시대의 풍경이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짧았던 행복한 시절의 기억은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같다. 현실에 깊이 뿌리 내리지 않은 삶은 외부 바람에 너무 쉽게 흩어진다. 화자와 추쯔의 삶을 보면서 우리 시대의 청춘을 떠올린다. 그리고 화자의 열정과 다시 없을 사랑을 생각한다. 그가 뤄이밍의 벚꽃 이야기를 듣고 떠올린 미소를 생각한다. 그의 떠남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아직도 계속된다. 좋은 대만 작가 한 명을 또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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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노래
미야시타 나츠 지음, 최미혜 옮김 / 이덴슬리벨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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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음악을 소재로 메이센 여자고등학교 학생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녀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원해서 이 여고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원했던 학교에 가지 못해서, 자신이 원했던 것과 동떨어져 있어서 선택한 학교다. 그러니 학교생활에 특별히 관심이 없다. 흔히 말하는 여고시절이 이들에게는 대부분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 반 대항 합창대회를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함께 한 이 경험들이 쌓여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고, 인정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작가는 이 과정을 아주 섬세하면서도 재밌게 그려내었다.

 

첫 번째 이야기의 문을 여는 미키모토 레이는 이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원했던 음악학교에 떨어진 후 음악부조차 없는 학교를 고르다가 메이센여고를 선택했다. 원래 성악을 공부했던 그녀는 반 합창에서 노래를 부르지조차 않는다. 그러다 반 대항 합창단을 지휘하게 된다. 다른 학생의 추천이다. 그냥 무시할 수도 있는데 이를 수락한다. 그녀를 추천했던 치나츠를 피아노로 추천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합창반이 선택한 ‘아름다운 마돈나’는 어려운 노래다. 제대로 된 연습도 없고, 특별한 열정도 없는 합창반이 좋은 결과를 얻기는 어렵다. 그런데 반전이 펼쳐진다. 그것은 교내 마라톤 대회다. 마지막에 힘들게 들어오는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반 친구들이 부른 ‘아름다운 마돈나’가 그녀를 일깨운다.

 

하라 치나츠는 음악을 하고 싶지만 가정 형편상 불가능하다. 소녀의 꿈은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미키모토 레이의 엄마의 존재하지 않는 아들을 아빠의 식당에서 만나는 것이다. 헛된 꿈이지만 레이를 알기 전까지는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녀의 피아노 실력은 서툴다. 제대로 교습을 받은 적이 없으니 당연하다. 레이의 존재를 알고 있기에 그녀를 지휘자로 추천했다. 그녀가 메이센여고를 선택한 이유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로 한 시간 정도 거리다. 재밌는 것은 이 소설에서 가장 긍정적이고 음악을 가장 잘 즐기고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카미조 사키는 여중생 때 소프트볼 투수에 4번 타자였다. 하지만 어깨가 망가지면서 그녀의 꿈은 사라졌다. 훌륭한 선수였기에 그 여파는 더 깊고 길다.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과거에 묶여 있다. 레이의 실패와 가장 닮아 있다. 레이가 당연하게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한 학교에 떨어졌다면 그녀는 부상이다. 학생을 잘 돌보지 못한 코치를 탓하지만 그뿐이다. 이런 그녀가 합창을 통해 한 발 나아간다. 황당한 이야기가 하나 슬쩍 끼어든다. 마키노 후미카의 영혼을 보는 능력이다. 현실에서 아이가 이런 말을 한다면 부모는 놀란다. 병원을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제 그녀는 영혼을 본다. 이 능력을 말했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에 친구들에게 말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레이는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

 

사토나카 요시코는 읽으면서 조금 겉돌았다. 왠지 집중이 되지 않는다. 남친 집에 있는 지하대피소와 레이의 지하음악실에 반감을 가진다. 이것들을 친구에게 말할 수 없다. 그림을 좋아하지만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학창 시절과 가장 닮았는지 모르겠다. 반장 사사키 히카리는 모든 것을 잘하지만 특별히 잘 하는 것은 없다. 주어진 일은 열심히 하지만 그 이상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읽다보면 여름을 말하지 않는 그녀의 심리 상태가 이상하다. 봄의 끝자락과 친구의 열정을 부러워하는 그녀가 언니의 선택에서 빛을 발한다. 합창이 그녀에게 새로운 재미와 길을 알려준다.

 

반 대항 합창단은 마라톤대회의 합창으로 빛을 발한 후 선생의 추천으로 다시 시작한다. 레이는 이때 경험으로 자신의 음악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앞에 나온 친구들이 음악으로 자신의 삶을 새롭게 만들었듯이 그녀도 음악의 재미를 새롭게 깨닫는다. 좋아하고 즐긴다는 의미를 치나츠를 통해 배운다. 작가는 이렇게 한 학생 학생을 통해 그 시절 소녀들의 고민과 걱정과 희망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제목처럼 그녀들의 노래는 기쁨의 노래다. 현재의 자신보다 미래의 자신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할 때 그 열정은 더욱 빛을 발한다. 괜히 이 작가의 작품들을 한 번 검색해본다. 여운과 감동이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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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원
알렉산드라 올리바 지음, 정윤희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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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홍보문구 중 가장 시선을 끈 것은 <헝거 게임>과 <로드>, <서바이버>와 <워킹데드>를 합친 듯한 이야기란 부분이다. 본 적은 없지만 내용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라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그런데 실제 이야기가 펼쳐질 때 나의 예상과 달랐다. 생존 게임을 다룬 방송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인지 리얼리티 쇼의 몇몇 설정들은 낯설었다. 첫 장에서 편집자의 죽음을 말하면서 전염병으로 대재앙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이것이 리얼리티 쇼의 재미를 조금 떨어트렸다. 그 쇼를 통해 각 출연진의 다양한 성격과 행동과 선택들을 아주 잘 보여주었다고 해도.

 

이 소설은 두 개의 시간을 교차하면서 진행한다. 하나는 실시간이다. 서바이벌 게임 <어둠 속으로>에 참가한 캐릭터명 주가 홀로 챌린저를 수행한다고 생각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실제 세상은 전염병의 대재앙에 휩싸여 있다. 다른 하나의 시간은 <어둠 속으로>의 다양한 챌린지에 도전하는 도전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열두 명의 도전자들은 상금 100만 불을 획득하기 위해 이 프로그램에 신청했다. 물론 방송의 재미를 위해 프로듀스들이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빨간 머리에, 예쁘지만 육체적 지적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웨이트리스 같은 인물 말이다.

 

방송은 편집에 따라 한 인물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 악마의 편집이란 단어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시청률이란 지상 최대의 명제를 안고 있는 방송국에서 이런 작업은 흔하다. 이 소설 속에서도 주를 주인공으로 만들려는 편집자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곳곳에서 보여준다. 작가는 리얼리티 쇼 촬영 현장에 들어가면 이들이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만 그리지 않고, 그들 각자의 내면과 함께 방송의 편집 방향도 같이 보여준다. 주인공이 습관적으로 내보인 혐오의 표정을 카메라맨이 잡았다고 해도 편집 과정에서 삭제한다. 긴 챌린지 시간을 압축할 것이란 설명은 당연하지만 이런 부분들이 우리 머릿속에서 영상 이미지를 재생하게 만든다. 이미 이런 편집과 영상에 우리가 얼마나 익숙한가.

 

다양한 출연진은 다양한 성격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각 챌린지에서 각각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자 트랙커가 주에게 알려준 몇 가지 지식은 이후 주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가장 문제 캐릭터인 엑소시스트와 웨이트리스는 그들의 실력과 상관없이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런 인물들이 등장한다면 각 출연진의 출연 이유와 각자의 삶을 깊이 파고들 수도 있을 텐데 작가는 간단히 다루고 넘어간다. 방송의 편집처럼 다른 볼거리에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챌린지의 상황에 더 많은 분량을 사용한다. 이것은 나처럼 이런 방송 문외한에게 어떻게 이런 프로그램이 연출되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각 챌린지의 우승자는 누굴지. 어떤 우승 혜택이 있을지 궁금하게 만든다.

 

의혹과 함께 흥미로운 것은 주의 행동과 심리 상태다. 방송이 중지된 상태에서 그녀가 계속 챌린지 상태라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과 현실을 회피하는 심리를 솔직히 이해하지 못한다. 시력이 지독히 나쁘다고 해도, 중간에 브레넌을 오해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심리를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그녀의 행동의 조금은 이해된다. 현실을 외면하고, 이 모든 것이 방송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란 상상은 그녀를 더욱 가혹한 환경으로 몰아넣는다. 만약 단순하게 이 상황만 보여주었다면 심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주의 왜곡된 심리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독자의 공감을 얻으려고 한다. 물론 나의 마음은 계속 불편한 상태지만.

 

책의 마지막에 이르면 이 전염병이 불러온 대재앙의 결과를 보여준다. 그리고 주가 봤지만 외면했던 사실들에 대한 감상도 나온다. 친절하게 다른 출연진의 상황도 알려준다. 그런데 이런 함축적인 설명 속에서 숨겨둔 몇 가지는 개인적으로 아쉽다. 현실을 외면하고 방송이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브레넌의 나이를 묻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어둠 속으로>란 방송을 둘러싼 댓글들도 마지막 장면을 위한 하나의 설정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지 않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가 조금 실패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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