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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ㅣ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평점 :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이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데 무려 <베어타운> 그 이후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최고 작품으로 손꼽고 그 재미와 감동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다. 사실 이번 작품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작 <베어타운>을 읽어야 한다. 물론 읽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렇지만 전작을 읽고 이번 작품을 읽으면 그 재미와 감동과 여운은 더 오래간다. 전작에서 몇 명의 미래를 알려주지만 이 미래로 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빠져 있다. 삶은 바로 이런 과정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번에도 이야기의 중심에는 베어타운 하키팀이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정치가 전면에 나선다. 정치인 리샤르도 테오가 바로 그다. 그는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것을 철저하게 이용한다. 인맥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 인맥과 지저분한 정치 행동을 통해 뒤에서 목적을 달성한다. 그가 일을 이루는 과정을 보면 정치에 혐오를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들지만 목적을 달성한다는 측면을 보면 아주 유능한 정치인이다. 그가 어떻게 페테르와 그 일당을 대립하게 만들고, 갈등하고 고민하게 만드는지 보여줄 때 현실 정치의 한 모습을 그대로 본다.
한 마을의 하키팀이 없어진다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일까? 그렇다. 최소한 이 소설 속 베어타운은 그렇다. 베어타운 하키팀은 그들의 삶이다. 아이들이 자라면 하키팀 선수가 되길 바란다. 다른 삶이 있다고 해도 일순위는 하키다. 아맛의 친구가 프로게이머로 나아갈 때 그의 부모가 보여준 모습이 대표적이다. 그들의 삶은 갇혀 있다.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 다른 삶이, 다른 스포츠가 있다. 하지만 삶은 공간 속에 묶여 있다. 그 공간을 박차고 나가려면 그 곳에 머물지 말고, 더 성장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결국 이 소설은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하나의 사건이 터졌을 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 비난하는 것이 더 쉽다. 마야의 사건이 일으킨 문제들을 비난자들은 기준점을 옮기면서 비웃는다. 남탓을 한다. 찌질하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다. 한때, 아니 지금도 나에게 이런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이런 비난은 갈등을 불러오고, 갈등은 어떤 문제를 만들지 모른다. 순간적인 갈등의 폭발이 만들어내는 비극 중 하나가 이 소설에 나온다. 의도하지 않은 일들이 연속으로 이어지면서 벌어진 비극이다.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기억해야할 특별한 러브 스토리이진지도 모르겠다.
생존자. 마야는 자신을 그렇게 말한다. 학교에서 그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남겨진 쪽지와 문자와 댓글 속에서 아주 힘겹게 생존한다. 벤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 마야에게 한 말에서 그녀가 얼마나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타인의 시선, 암묵적인 무시, 노골적인 욕설 등에 먹히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단어가 생존이다. 전작에서 그녀의 성공을 말했기에 잊고 있던 사실을 이번 소설에서 아주 잘 보여준다. 깨어지기 쉬운 아주 얇은 유리와도 같은 상태의 그녀를 보여줄 때 아나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아나는 큰 실수를 한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순간의 실수다. 하지만 이 실수가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 인터넷은 순간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공간이다. 그녀가 올린 하나의 동영상은 베어타운에 폭풍을 몰고 온다. 작가는 결국 좋은 쪽으로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벤이를 믿고 좋아했던 그 일당들이 보여준 반응이 대표적이다. 마야가 아나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도 그녀 자신이 피해자였기 때문에 겪었던 일을 아나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검은 재킷을 입은 일당에 대한 이야기가 이번에 전면에 나온다. 티무와 그 일당들이다. 훌리건이지만 베어타운 사람들에게는 좋은 이웃이다. 하나의 모습에서 나쁜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나쁜 모습도 같이 본다. 정치인은 이것을 이용하고, 하키팀 단장은 이 문제로 고민한다. 하지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이들도 누군가의 가족이다. 작가는 이 부분을 아주 잘 포착해서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눈시울을 붉힌 것도 이 대목들이다. 그 속에 우리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의 집을 찾아와 서로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진한 감동이 몰려온다.
정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궁금한 것도 있다. 베어타운과 헤어의 두 번째 경기 결과다. 이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이 상위 리그로 간 후의 이야기다. 아맛이 성공한 후 그가 자란 동네 아이들의 삶이 어떻게 될지 작가는 결코 장밋빛으로 그리지 않는다. 현실을 그대로 요약한다. 전지적 시점으로 미래의 삶 일부를 알려주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니까. 청소년들은 이 소설 속에서 점점 자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보도, 빌리엄도 조금씩 성장한다. 남탓하기보다 자신에게 더 집중하면서 생긴 변화다. 배크만은 말한다. “삶은 항상 공평하고, 항상 불공평하다.”고.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