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청접대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2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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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현청에 접대과라니 대담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눈에 음란마귀가 살아서 그런지 이 접대를 룸살롱 접대 등과 연결해서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책을 펴고 읽자마자 판다 유치론이 나오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십 몇 년 전 한 독특한 현청 직원이 고치 현 신생 동물원의 상업적 성공을 위해 기획한 것이다. 이 계획은 고치 현의 관광을 부흥하기 위한 시도이지만 관료 조직의 안일하고 복지부동의 자세 때문에 실패로 돌아간다. 이 입안자는 한직을 전전하다가 실망하고 현청을 떠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해 고치 현청 관광부에 접대과가 발족했다.

 

관광부 소속 접대과라고 하니 금방 감이 오지 않는다. 일본과 다른 용어의 문화 때문인지 아니면 접대를 너무 그런 쪽으로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 이름과 관광 부흥을 연결할 수 없었다. 현의 관광 발전을 위해 독창성과 적극성을 갖고 새로운 기획을 착착 내놓으라는 지사의 훈시가 있었지만 처절할 만큼 공무원인 그들에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때 한 직원이 관광 홍보대사를 도입한 다른 지자체의 경우를 말한다. 이것도 몰랐던 과장과 다른 직원들은 이 기획을 찬성하고 진행한다. 독창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진정’, ‘처절할 만큼’, ‘뼛속까지’, ‘공무원’이었다.

 

이 기획을 낸 직원은 과에서 가장 젊은 스물다섯 살 가케미즈 후미타카다. 현 출신의 연예계, 스포츠계, 문화계 유명인들에게 무료 할인 쿠폰이 든 홍보대사명함을 전달해서 그들에게 배포시키려는 계획이다. 이것에 비하면 지역 출신과 상관없이 홍보대사를 인명하는 한국의 지자체가 새삼 대단하게 다가온다. 이 계획을 위해 전화나 메일로 유명인에게 연락을 했는데 가케미즈에게 한 통의 답 메일이 온다. 소설가 요시카도 교스케다. 이 둘의 연결에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대외적인 업적과 성과만을 내세운 관청이 아닌 실제 도움이 되는 성과를 내는 접대과로의 변화가.

 

흔히 공무원이나 공사 직원이 되면 가장 똑똑했던 사람들이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멍청해진다는 말을 한다. 이것은 그 사람의 자질 문제가 아니라 조직 문제다. 조직이 요구하는 쪽으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복지안동’하는 공무원이 된다. 이들의 기획은 민원이 적거나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없거나 편리한 쪽으로 흘러간다. 시장이나 구청장이 새롭게 온다고 하지만 그들은 몇 년 지나면 사라지고, 어떤 문제가 생겨도 자신들의 책임은 어딘가로 전가된 채 없어지기 때문이다. 민간 업자들에게 이런 사람들은 봉이나 다름없다. 현실 감각이 떨어지다 보니 눈속임으로 속여먹기 좋은 대상이 된다. 퇴직 후 이들이 사기꾼들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 되는 것도 이런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젊은 만큼 때가 덜 묻은 가케미즈는 요시카도의 냉철하고 정확한 지적을 잘 받아들인다. 소설에 의해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열성적으로 요시카도의 의견을 접대과에 전달한다. 전형적인 공무원들인 접대과 직원들의 사고는 틀 속에 갇혀 있다. 이것을 깨기 위해 민간 감각을 가진 새로운 스텝과 외부 인사의 영입이 필요하다. 이렇게 계약직 다키와 이십 몇 년 전 판다 유치론을 주장한 기요토가 등장한다. 물론 이 둘의 등장이 바로 고치 현의 관광 부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요토의 아이디어는 그들이 당연하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 것을 유기적이고 창의적으로 연결한다. 이 책을 읽은 후 지방 도시를 둘러보니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많았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다고 해도 이것을 실행하는 것은 역시 관청이다. 당연히 저항이 있다. 가장 먼저 접대과에서부터 그렇다. 이런 저항과 반대를 하나씩 깨고 고치 현이 가진 관광 자원을 하나씩 보여주고 문제점과 해결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행했던 몇 곳의 이미지가 스쳐지나간 것은 이 아이디어가 독특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라 유기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여행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이 가진 관광 자원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는 내용과 이를 하나씩 깨닫게 되는 가케미즈의 모습은 약간 더디지만 충분히 매력적이다.

 

여기에 다키와 가케미즈의 풋풋한 사랑이야기와 요시카도와 사와의 묘한 긴장감(?)이 주는 재미도 상당하다. 연애소설이니 이들의 사랑이 가장 바탕에 깔려서 진행된다. 개인적으로 이 사랑보다 현청 접대과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과 가케미즈의 깨달음과 성장이 더 마음에 들었지만. 요시카도가 내세운 관청에 민간 감각을 도입하자는 취지는 이미 한국에서 많이 실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대외적 이미지를 위한 표어일 뿐이다. 현실에서 그들은 아직도 공무원이다. 읽으면서 가케미즈를 응원하게 되는 것도 그가 자신의 의식을 바꾸고 행동으로 옮기면서 성장해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흔넷의 젊은 과장 시모모토 구니히로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조직의 수장 역할과 그의 나이가 젊다고 말하는 조직의 노쇠함 등. 한국과 너무나도 닮은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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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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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이란 부제가 먼저 들어온다. 차별에 찬성한다는 제목과 함께. 단순히 제목만 보았을 때 왜 이 책을 많은 사람이 추천했는지 몰랐다. 이십대들이 차별에 찬성하는데 어떻게 추천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고. 하지만 저자가 내가 몰랐던 생생한 이십대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왜 이런 제목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의 이십대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점점 벌려지는 모습이 곳곳에 보였기 때문이다. 이 간극을 저자는 어디에서 생겼는지 주목했는데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지는 못한 것 같다.

 

첫 장이 강의실에서 바보가 된 어느 시간강사 이야기다. 이 사건은 2008년 5월 13일 경기도 소재 한 대학에서‘KTX 여승무원 철도공사 정규직 전환 요구’문제를 논의하면서 생겼다. 저자가 바란 것은 ‘뭘 잘못했는가?’를 확인해가려는 정도의 문제였는데 한 학생이 “날로 정규직이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라고 답한 것이다. 이것이 이 학생만의 의식이었다면 문제가 없을 텐데 대다수 학생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여직원들이 계약직이란 것을 알고 들어갔고, 남들도 어렵고 힘들게 공부해서 공사에 들어갔는데 이렇게 정직원을 넘보는 건 도둑놈 심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험을 치고 정정당당하게 들어가라고 말한다.

 

단순히 이 학생의 주장만 보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더 깊게 들어가서 인간답게 살기와 동일노동 동일임금 규칙의 문제가 되면 달라진다. 비정규직들의 연대와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바꿔 정규직으로 점진적 전환 등을 이뤄 나가야 하는데 문제는 이들의 의식과 인식 속에 이런 철학이나 사회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사회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계발을 하지 않은 각자의 탓이란 것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사회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하나의 사회현상을 대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후 저자는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로 자기계발과 대학서열을 내세운다. 한국에서 대학서열이 지금처럼 공고하게 굳어진 적은 없지만 이것은 80년대에도 있었다. 하지만 지방 명문대의 몰락과 우스운 IN서울이면 서울대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이상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 분위기를 동기들이나 고등학교 선생인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면 하나의 당연한 진실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가끔은 자신들의 과거를 왜곡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끔 나 자신도 이런 현상에 빠져 허우적거린 적이 있으니 이십대들을 탓할 수만은 없지만 이제는 이것이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제가 더욱 심해진다.

 

얼마 전부터 이십대들은 자기계발의 하나로 스펙 쌓기에 몰두하고 있다. 사실 실제 업무에서 이들이 쌓은 스펙은 거의 쓸모가 없다. 영어 등의 언어는 업무의 필요에 따라 다르겠지만 실제 업무와 상관없는 수많은 스펙은 참조사항 중 하나일 뿐이다. 이력서를 받으면 당연한 듯 토익은 900 언저리고, 어학연수와 수많은 자격증도 같이 나와 있다. 이런 스펙들이 자기계발이란 이름으로 이십대의 시간을 좀먹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간들은 다시 그들의 의식과 행동을 조금씩 바꿔 놓는다. 2008년 촛불 집회에서 청춘들의 밝은 미래를 낙관했던 나에게 현실과 미래를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이십대는 실제 사회의 약자다. 하지만 그들은 앞으로 사회의 강자로 변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 흔히 386세대가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다시 기득권층으로 변해 더 심한 보수로 변했다는 일각의 주장을 볼 때 현재 이들이 차별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현상이 지금만의 문제가 아님을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자신의 이십대와 다르다고 말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자신이 속했던 조직과 현재 학생들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런 사회 분위기를 만든 것이 이십대가 아님을 머릿속에 두어야 한다. 기성세대가 이것을 이십대들에게 가르치고 요구하는 현실에서는 특히.

 

마지막 장에서 자기계발을 권하는 사회를 치유하자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계발은 모든 문제의 시발점을 개인으로 보는 사회를 바꾸자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하나의 해석으로 문재인의 대선 슬로건을 말한다. 기회 균등,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 이 슬로건의 해설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아주 잘 나타낸다. 현재의 사회 현상이 원래 그랬던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려온 대학 서열과 자기계발의 악순환은 현실에서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분명히 이 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러나 언론이나 대학사회를 쥐고 흔드는 사람들의 출신 학교를 생각하고 그들이 지금까지 한 행동과 표현을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이십대들의 이런 적나라한 모습은 본다는 것은 불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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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또 죽었네?
K.Kajunsky 지음, ichida 그림 / 애니북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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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를 선택하게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일단 제목이 눈길을 끌었고, 다음은 <살인자ㅇ난감>의 만화가 꼬마비가 직접 번역했다는 것이다. 꼬마비의 만화를 정말 좋아하지만 그가 번역까지 했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것도 일본만화를 말이다. 문득 공항에서 집어든 만화가 재미있어 편집자 친구에게 소개를 했는데 출간이 결정되고 번역은 자신이 맡게 되었다란 사연도 나중에 알고 나서 재미있었다. 또 번역의 고민이 살짝 실려 있는데 의역 쪽으로 기울어 아쉬움이 남았다고 한다. 재미있는 외국 작품을 번역할 때 그 느낌과 재미를 제대로 살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제목만 보면 왠지 호러나 판타지 같은데 읽으면 전혀 다른 내용이 펼쳐진다. 이 만화가 나온 사연도 ‘일본 Yahoo! 지혜주머니’에 ‘집에 돌아가면 아내가 반드시 죽은 척을 하고 있습니다’란 질문을 올리다가 인기를 얻었고, 이를 정리해서 자신의 블로그에 아내와의 생활을 올리고 있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단순히 제목만 보면 낚시성 제목인데 이 아내의 기행이 일본 네티즌들의 호응을 상당히 많이 받은 모양이다. 책을 읽으면 물론 이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아내도 재미있지만 남자의 입장에서 남편의 행동과 반응도 상당히 공감하게 된다.

 

첫 장면은 아내가 죽은 척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놀라는데 매일 매일 이어지면서 둔해진다. 이 과정 속에 아내의 죽음 연출 강도는 점점 강해진다. 이런 일상이 간결하게 이어지면 인터넷에 왜 이런 것일까 하는 질문을 올린 것이다. 남편이 제대로 모르는 것처럼 네티즌의 답변도 역시 추측일 뿐이다. 우연히 이어지는 상황 때문에 추리를 해보지만 제대로 맞을 리가 없다. 아내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난이었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 사이에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단지 이런 생각은 제삼자의 멋대로 판단일 뿐이다.

 

이후 아내의 귀엽고 놀라운 장난은 마이클 잭슨 흉내에서 안마시술소 등으로 이어진다. 이 사이에 두 사람의 만남과 연애 이야기가 흘러나오는데 아주 풋풋하고 입가에 미소를 자연스레 떠오르게 만든다. 많은 에피소드 중 침대와 벽 사이에 낀 아내의 모습은 다시 대충 넘겨볼 때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두 사람 사이에 가정 내 헌법이 제정되는 상황을 보면서 이 둘의 알콩달콩한 신혼 생활이 조금씩 정착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아내가 정말 예술적인 죽은 척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는다. 물론 금방 후회한다.

 

인터넷 글을 만화로 옮겼는데 개인적으로 내용과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간결한 선과 배경으로만 연출해서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순간순간 살아있고 재미있는 표정을 연출하여 자연스럽게 웃게 만들었다. 가끔 이런 만화들을 볼 때면 좀더 대화와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화려한 연출은 없지만 그 비어있는 공간을 독자의 상상력으로 충분히 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이야기와 강한 액션에서 잠시 벗어나 일상의 풋풋함과 장난끼 넘치는 이야기를 살짝 들여다보는 것도 즐거운 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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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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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의 후속편이다. 전작의 주인공인 대니는 살짝 찬조 출연하고 실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은 커글린 가의 막내 조지프다. 오래전에 읽은 <운명의 날>은 솔직히 자세한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그 당시 시대 분위기만 어렴풋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 잔상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조금씩 살아났다. 물론 이 이미지들이 단지 전작에서 비롯한 것만은 아니다. 다른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받은 영향이 작가의 문장과 결합하여 이미지와 함께 되살아난 것이다. 이런 이미지는 소설을 읽은 내내 작용했다.

 

몇 년 후의 한 장면에서 시작한다. 조 커글린은 멕시코 만 바다 위 배에서 두 다리를 시멘트 통에 담구고 있다. 영화에서 흔히 보는 장면이다. 그리고 한 여자의 이름이 나온다. 에마 굴드. 이제 시간은 과거로 흘러간다. 1926년 어느 날 새벽 사우스보스턴 비밀 술집의 골방도박장이다. 그와 바르톨로 형제는 도박장을 털려고 한다. 그런데 이 도박장은 보스턴 조폭 앨버트 화이트 소유다. 만약 알았다면 그대로 줄행랑치고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흔적도 깡그리 지웠을 곳이다. 하지만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그들은 도박장을 털러 갔고, 성공했다. 바로 그곳에서 그는 에마 굴드를 만난다. 운명처럼 강하게 끌렸다.

 

어떤 사람에게 평범한 남녀가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강할 수 없는 끌림을 준다. 이 소설 속에서 에마 굴드가 그렇다. 그녀가 앨버트 화이트의 정부임을 알면서도 조는 끌린다. 그녀에게 다가가서 비밀연애를 시작한다. 만약 앨버트 화이트가 이 사실을 안다면 그는 죽음 목숨이다. 청춘의 열정은 뜨겁게 타오르고 이 둘의 관계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때 조와 바르톨로 형제는 은행을 턴다. 이 순간에도 조는 그녀의 향기에 취해 실수를 한다. 경찰과의 추격전 도중에 차가 뒤집어진다. 그런데 경찰차도 사고가 난다. 경찰 3명이 죽었다. 그가 죽인 것은 아니지만 이 사건은 그로 하여금 경찰의 적이 되게 만든다. 그의 아버지가 경찰총장을 바라는 순간에 벌어진 최악의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그는 감옥에 들어간다. 검사가 엄청난 기간을 구형할 수 있지만 아버지의 도움으로 겨우 5년 형을 받는다. 그냥 5년만 버티면 될 것 같지만 이 감옥에서 살아남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가 조금만 긴장을 풀고 방심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감옥 안은 아버지의 영향력 밖이다. 아니 아버지 때문에 그가 목표물이 된다. 앨버트와 함께 보스턴을 두고 싸우던 마소가 감방에서 이 상황을 묘하게 조정한다. 마소는 조를 통해 경쟁자의 근거지를 공격하고 압박을 가한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도움을 주지만 언제나 조폭의 요구는 끝이 없다. 자신의 신념과 갈등하면서 토머스는 고뇌하고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이 소식은 조에게 엄청난 공포와 고통을 안겨준다. 그리고 단순한 애송이에서 한 명의 조폭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모두 세 시기로 나눠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10년이라는 긴 시간이지만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갱들의 대립과 갈등을 긴장감 넘치게 묘사한다. 단순히 갱들만의 대결이 아니라 그 시대의 풍경과 상황도 같이 그려낸다. 보스턴의 이야기가 조의 성장을 다룬다면 마이애미로 내려온 후 이야기는 성공을 보여준다. 이 성공은 단순히 난폭하다고 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의 기지와 대범함이 결합하고 상황과 시장 등을 제대로 파악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쿠바 인들과의 독점 거래를 위해 군함에서 무기를 훔치는 장면은 놀랍기 그지없다. 그리고 이 일에 숨겨진 쿠바 인들의 의지는 전작의 향기를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조는 갱이지만 특이한 인물이다. 경찰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범죄자로 살았고, 죽음의 위기를 넘기면서 성장하고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손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것을 거부했고 두려워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조직폭력배가 아니라 치외법인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한 사람을 죽이면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사라진다. 이후 그의 사업은 성공가도를 달린다. 그리고 그의 삶을 뒤흔든 에마 굴드 대신 쿠바 여성 그라시엘라가 등장한다. 마약과도 같았던 에마 굴드가 사라지고 진실한 사랑을 만난 것이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갱으로 한 지역을 관리하고 불법 사업을 성장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쟁 상대도 제거해야 하고 성장하는 적들도 없애야 한다. 이 소설에서 이 부분은 간결하게 나오는데 그를 조사하는 경찰은 잘 다루지 않는다. 경찰이 그에게 포섭된 상태라 그런지 모르지만. 조는 보통의 갱들과 다르다. 금주법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지만 누군가를 죽이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도 않고 오히려 거부감을 느낀다. 물론 사업에 장애가 되면 주저함이 없다. 예쁘게 포장된 갱의 모습이다. 그의 심리 갈등을 잘 묘사해 기존의 갱들과 차별시킨다. 덕분에 그에게 감정 이입이 잘 된다. 하지만 그가 밤에 살아가는 인물이란 것은 변화가 없다. 그 밤은 언제 그를 삼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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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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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다. 글을 읽으면서 헤맨다. 앨리스씨가 주인공인 듯한데 읽으면 앨리시어가 등장한다. 그를 관찰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그의 정체성이 처음에는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디서 잘못 알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와 그의 친구 고미의 성별을 착각했다. 이 착각은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분명해졌다. 이런 모호함이 이 글 속에 담겨 있다. 딱히 뭐라고 정의하기 힘든 문장 구조와 전개라 높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많은 쪽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이 걸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162쪽에 끝나고 세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자로 內, 外, 再 外 다. 시작은 앨리시어가 여장 부랑자로 사거리에 서 있는 장면이다. 처음 이 장면을 읽을 때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중에 인터넷 서점 소개글을 읽으니 일본 오사카 한신백화점 지하보도에서 여장을 한 노숙인을 보고 그 뒷모습에 압도되어 한국에 돌아온 후 단편을 Tm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문학동네 잡지 연재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때 이 소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고 다시 첫 문장을 읽으니 새롭게 다가온다.

 

앨리시어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살았던 고모리라는 마을을 알아야 한다. 그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그가 자랐던 당시는 재개발 직전이었다. 이제는 거대한 주거단지로 변했다. 이미지와 간략한 정보가 나온 후 개로 이야기가 넘어간다. 이때부터 과거로 들어간다. 과거 속 개는 개장에 있다. 이 개들은 여름이나 늦가을에 정성껏 불에 구워 이웃과 나눠 먹는다. 새끼는 살아남지만 다음은 기약할 수 없다. 개장 속 개들은 어린 앨리시어를 단번에 쓰러뜨릴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인간의 눈치를 본다. 이것은 나중에 앨리시어가 자신의 엄마보다 커졌지만 엄마의 권위와 폭력 앞에 제 힘을 쓰지 못하는 것과 연결된다. 한번 심어진 공포와 권위는 그 굴레를 벗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려준다.

 

앨리시어가 동생에게 이야기를 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 이야기 이상하다. 동생도 느낀다. 이상하다 말하지만 그때 또 이야기가 변한다.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는 앨리시어를 통해 변주된다. 어떻게 보면 황당하지만 어린 아이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결말이다. 아니 어쩌면 정답일지도 모른다. 동생의 상황과 대화는 이 소설을 구성하는 중요한 하나의 축이 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꾸는 꿈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씨발. 이 단어는 앨리시어에게 중요한 단어다. 그의 엄마가 휘두르는 폭력을 가장 잘 나타내준다. 이 폭력은 아이들에게 원초적인 공포를 안겨준다. 그녀가 흔히 내뱉는 씨발이 아이들의 입에도 달라붙는다. 앨리시어의 동생도 내뱉는다. 욕이 가지고 있는 기세와 분위기가 아이로 하여금 따라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단어가 어머니의 입에서 나와 그들에게 향하면 달라진다. 이런 가정 폭력은 이 고모리에서 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고미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정 폭력이 성장기의 소년들을 흔들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또 하나는 재개발 보상이다. 인간의 욕망이 그대로 쏟아져 나오는 장면이 바로 시위 장면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들이 보여주는 시위는 우리 시대의 어그러진 삶의 한 단면이다. 아이까지 동원해 자신들의 이익을 채우려는 그들의 모습과 이들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는 자산가들의 충돌과 합작은 시간 속에 새겨져 있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금액을 얻은 후 마을 잔치에서 개를 태워 먹는 것을 보면서 다시 첫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몇 쪽 되지도 않는 마지막 장을 읽는다. 앨리시어의 실패와 패배의 기록이라는 문장을 보면서 비어있는 시간과 표현된 시간의 괴리를 느낀다. 불친절하고 야만적이면서 은근히 매력적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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