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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로키언
그레이엄 무어 지음, 이재경 옮김 / 비채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셜로키언이 아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끝까지 다 읽은 기억도 없다. 이전에 헌책으로 셜록 홈즈 책을 샀었다. 그러다 최근에 새책으로 홈즈 시리즈 전권을 샀다. 이런 과정 속에 홈즈는 늘 나의 곁에 있었다. 드라마로 영화로 책으로. 학교에 처음 들어가서 읽었던 몇 권의 책 중에 홈즈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어린이용 요약본이었을 것이다. 이 기억이 나로 하여금 홈즈를 제대로 읽지 못하게 만들었다. 뭐 이것도 변명이다. 한때 홈즈 시리즈가 여러 출판사에서 전집으로 나왔을 때 완독하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파편적으로 만난 홈즈지만 그의 매력은 늘 나를 끌어당겼다. 솔직히 말해 셜로키언이란 단어도 알게 된 것이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몇 년 전에 이 단어를 보고 그냥 홈즈 덕후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덕후 중의 덕후들이 등장한다. 최근에 덕후들이 출연한 ‘능력자들’이란 방송이 있는데 셜로키언에 비하면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 셜로키언들이 홈즈 시리즈를 ‘정전’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 셜록 홈즈는 하나의 신화이자 성인이자 종교다. 문장을 하나를 말하고 이것을 가지고 출처를 말할 때 성경을 외우고 있던 신자들의 모습이 그대로 겹쳐졌다.
소설을 두 개의 시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하나는 실제 코난 도일이 활약한 1900년이고, 다른 하나는 셜로키언의 모임이 있던 2010년이다. 이 두 시간대는 모두 살인사건을 다룬다. 과거의 살인사건은 홈즈의 사라진 일기에 대한 상상과 추론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었고, 현재의 살인사건은 이 사라진 일기로 인해 일어난 죽음이다. 다른 두 시간이 겹쳐지지는 않지만 홈즈의 사라진 일기에 대한 진실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피어날 때 이 진실은 현실의 셜로키언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는 차분하고 끈질기고 재밌는 독서를 해야만 한다.
과거는 실제 코난 도일에게 있었던 사건을 기본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곁들여지면서 한 편의 멋진 추리소설로 탄생했다. 재미난 점은 코난 도일이 홈즈를 질투했고,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 홈즈의 팬들은 이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소설 속 인물이 현실로 변해 코난 도일을 욕하고 공격하는 사람이 등장할 정도다.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를 죽였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그리고 다시 홈즈 시리즈를 쓴다면 엄청난 금액을 안겨주겠다는 유혹이 끊어지지 않는다. 작가는 이 과정들을 모두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선거에 나가 떨어진 것, 여성참정권에 반대한 것 등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 이때 약간은 낯설었다. 나의 우상이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하고.
현재 최고의 셜로키언 모임인 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스 회합에 알렉스가 사라졌던 셜록의 일기장을 발표하려고 한다. 이 일기는 셜로키언이라면 누구나 보기를 바라는 아주 중요한 자료다. 수많은 코난 도일의 책이나 자료 중 유일하게 사라진 것이다. 실제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사라진 일기에 적혀 있었던 사건이다. 그리고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를 라이헨바흐 폭포로 떨어트린 후 새로운 작품을 쓰고 있다. 이 작품 중에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세 권만 데라고 해도 아마 대부분 제목조차 모를 것이다. 이런 갑갑한 현실이 코난 도일의 목을 죄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에게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편지를 보낸다. 물론 이 편지는 모두 셜록 홈즈에게 온 것이다.
홈즈의 사라진 일기를 발표하겠다고 한 알렉스가 죽은 채 호텔방에서 발견된다. 이 사건을 두고 셜로키언들은 자신만의 추리를 뽐낸다. 시체를 발견한 사람 중에는 현재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 해럴드가 있다. 그는 이 시체를 보고 홈즈처럼 움직인다. 그리고 이 사라진 일기를 찾기 바라는 코난 도일의 손자가 등장한다. 그는 해럴드에게 홈즈의 일기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해럴드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영국으로 간다. 자신을 기자라고 소개한 세라와 함께. 그 첫 목적지는 당연히 알렉스의 집이다. 집은 일기를 찾는 사람에 의해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이들을 뒤좇는다. 이제 해럴드는 자신이 가진 논리적 추리와 앞에 놓은 단서들을 가지고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셜로키언이 아닌 사람들은 브램 스토커가 등장한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그와 짝을 이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달린다는 설정도 낯설 것이다. 작가가 상상력으로 사라진 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재구성하는데 솔직히 그렇게 현실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다른 수많은 팩션처럼 읽힌다. 하지만 그 사이를 채워주는 코난 도일의 사실들은 이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큰 틀보다 세부적인 이야기가 더 매력적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드러나는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작위적으로 다가온다. 가장 크게 와 닿는 것은 해럴드가 보여준 몸부림과 반응이다. 그의 삶을 뒤흔든 인물이 코난 도일과 셜록 홈즈임을 생각하면 더욱 공감한다. 그리고 이 책은 셜록 홈즈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셜로키언들에게는 별다른 것이 없을지 모르지만 홈즈를 좋아하는 일반 독자라면 작가가 풀어내서 들려주는 이야기에 푹~ 빠질 것이다. 갑자기 든 아쉬움 중 하나가 <셜록키언을 위한 주석 달린 셜록 홈즈>를 반값일 때 사지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