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 램의 선택
제인 로저스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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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 인류는 엄청난 재앙을 만난다. 그 재앙은 인간에 의해 탄생한 바이러스다. 그 바이러스의 이름은 모체사망증후군(MDS)이다. 이 바이러스는 생화학 테러리스트가 만들었다. 이 바이러스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안전하지만 임산부를 공격하여 죽게 만든다. 전 인류가 이 바이러스에 걸렸다. 백신이 만들어지거나 다른 방법이 없다면 현재까지 태어난 아이들이 죽게 되면 인류는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런 끔찍한 종말을 앞둔 상황에서 영국의 한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 중심에는 제시 램이 있다.

 

열여섯 소녀인 제시 램은 소위 말하는 진보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환경운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자 하고, 몇 가지 급진적인 단체에 동의한다. 이 시대 가임 여성들은 피임 도구를 몸에 넣은 채 살아간다. 어느 날 누군가가 임신했다는 소식이 떠돌면 곧바로 그녀의 죽음 소식이 따라온다. 아내가 임신 후 이 바이러스 때문에 죽으면서 절망에 빠진 남편들이 자살을 하거나 이제 아이를 영원히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그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제시의 이모인 맨디 이모가 후자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아기다. 이제는 그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시한부 종말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같지만 다른 종말 소설과 다른 방향을 가진다. 좀비나 다른 행성의 충돌을 기다리는 상황을 다룬 소설은 있지만 이처럼 더 이상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수 없는 종말은 처음 본다. 이 독특한 설정 속에서 작가는 열여섯 소녀의 감성과 현실 속에 이 상황을 풀어내기 위한 과학적 정치적 윤리적 문제를 뒤섞는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SF소설로, 또 어떤 부분은 성장소설로 읽힌다. 이 다층적인 의미 속에서 나를 사로잡은 부분은 바로 SF적인 설정이 아닌 제목처럼 제시 램이 선택한 결정이다. 그리고 이 결정에 관련된 아빠와 딸의 대립이다.

 

예전에 에이즈가 전 세계적으로 퍼졌을 때 종말이 곧 일어날 것처럼 언론은 떠들었다. 하지만 피임기구와 환자들의 격리와 의학 검사 등을 통해 전염의 속도를 늦추었다. 의학은 이 병을 처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완전히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지만 에이즈로 인한 사망을 늦출 수 있게 만들었다. 단 치료약을 먹어야 한다. 이 약을 먹지 못하면 죽음에 이른다. 아프리카의 수많은 아기들이 에이즈에 걸린 채 태어나지만 그 약값이 없어 죽는다. 선진국은 난치병으로 바뀌었는데 말이다. 이런 기억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들었다. 이 바이러스도 곧 백신이 나오거나, 아니면 과학이 다른 방법으로 인류의 종말을 막을 것이라고. 실제 일어났다. 그런데 그 방법이 너무 잔혹하다.

 

현재까지 유일한 방법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고 부르는 방법이다. 뇌가 썩어 임산부는 죽지만 태아는 임산부 뱃속에서 살아남는다. 기존의 바이러스 감염자는 치료할 수 없지만 바이러스 발생 전 냉동 보관한 난자에 백신을 놓은 후 인공 수정하고, 대리모의 몸을 통해 태아를 성장시키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대리모는 죽게 된다. 동물을 이용해 인공자궁을 만들거나 다른 의학적 방법을 사용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유일한 방법이다. 참으로 잔혹한 방법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과학에 동참하려는 지원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제시 램이다.

 

이 소설은 제시 램이 화자가 되어 자신이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과학자인 아빠의 의견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실제 당사자가 된 아빠는 이 선택을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 딸을 납치해서 가둔다. 여기서 이야기는 시작하고, 과거로 돌아가서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솔직히 말해 그녀의 선택이 아주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든 사회적 과학적 분위기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바로 ‘인신공양’이다. 인류의 생존을 위한다는 거대한 대의를 여성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단체가 등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남의 일일 때 인류와 과학을 말하며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말하던 아빠가 자신의 딸이 인신공양의 대상이 되었을 때 변하는 모습을 보고 과학자의 논리와 이성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아빠의 의견에 동의한다. 이 실험을 주도하는 과학자가 몇 번의 단계를 거쳐 중간에 그만둘 수 있게 만들었지만 그의 본심이 실제 드러나는 대목을 보면 그 자신이 얼마나 잔혹한지 알 수 있다. 이런 부분을 감안하고 읽게 되면 종말과 인신공양이란 두 주제가 연결된다. 아무리 발단한 문명이라고 종말이란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이에 저항하는 수많은 시민단체가 등장하지만 현재의 법체계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과학자는 그 법의 허점을 이용한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제시의 선택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종말을 앞둔 상황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수많은 조직과 사람들이 나와 현실의 높은 벽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직 인류에게 시간이 남아 있는데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왜 제시가 하게 되었는지 의문이다. 이런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제시가 아빠와 한 이야기 속에 고대인들의 인신공양이 나오는데 이 희생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자신을 하나의 영웅으로 생각한다고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그녀가 한 것은 자궁을 제공한 것밖에 없다. 생명을 바쳤지만 그 태아를 키운 것은 과학자와 의료기계들이다. 이렇게까지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인류가 생존해야 한다면, 그것이 한두 사람이 아니라면 인류의 존재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 것 같다. 이렇게 이 한 편의 소설을 통해 인류와 과학 등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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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 - 비만기자 김민하의 육체개조 프로젝트!
김민하.이근형 지음, 똥똥배 만화 / 메디치미디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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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기자 김민하의 육체개조 프로젝트란 부제가 눈에 들어온다. 표지만 보면 만화로 된 책이다. 실제 만화인 줄 알았다. 김민하 기자의 운동을 똥똥배라는 만화가가 만화로 표현한 것으로 착각했다. 만화라면 가볍게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고 기대했다. 그런데 책을 받으니 아니다. 만화가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글이다. 비만인이 살을 빼는 다이어트 프로그램 정도로 너무 쉽게 생각했다. 점점 늘어나는 나의 뱃살을 생각하면서 이 만화를 보면서 쉽게 따라할 운동이 있을 것이란 기대를 했다. 이 기대는 책을 받아 읽기 시작하면서 간단히 무너졌다.

 

101kg 거구의 기자가 몸을 생각해서 선택한 운동은 조금은 낯선 크로스핏이다. 가끔 보는 방송에서 이 운동을 아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아주 격렬했다. 단시간에 운동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기자가 이 운동을 하면 얼마나 많은 살들이 얼마나 빠르게 빠질까 하는 기대를 했다. 이 기대도 역시 산산조각났다. 흔히 살빼는 다이어트 운동과 성격이 다른 운동이기 때문이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같이 진행하면서 전신을 발달시킬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는데 읽는 것만으로도 만만찮게 다가온다.

 

비만에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이 이 격한 운동을 한다고 했을 때 어떻게 버틸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체계적인 운동은 언제나 그 사람에 맞춰진다. 그리고 그 한계를 조금씩 높여간다. 김민하 기자도 자신의 운동기록이 책으로 나올 것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고? 하루의 운동을 마친 후 그가 보여주는 간결한 마무리 글들이 늘 운동을 멀리하는 나의 핑계와 너무나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좋은 트레이너를 만났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자신이 4개월에 걸쳐 이 혹독한 운동을 했다. 그 결과는 살 빼는 목적인 사람들의 바람과는 완전히 다르다. 몸무게가 겨우 4kg 빠진 97kg이기 때문이다. 대신 지방을 버리고 근육을 얻었다.

 

이전에 중년인이 폭식과 폭음과 운동 부족을 겪은 후 다이어트한 내용을 적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거구의 남자는 가장 먼저 한 것이 음식량 조절과 운동이었다. 운동의 기본은 걷기였다. 이 조합의 결과는 좋았다. 운전하던 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한 정거장 앞에서 내려 집까지 걷는 그는 아주 많은 살을 뺐다. 멋졌다. 하루 걷는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나에게 이 조합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물론 실천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이런 조합으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살을 뺀 사람이 있다. 몇 개월 사이에 홀쭉해진 상태로 나타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더 살이 쪘다. 그렇다고 걷기를 포기한 것도 아니다. 먹는 것을 잘 조절하기 못한 탓이다. 이때 즈음에 방송에서 근력운동의 중요성을 다룬 프로그램을 봤다. 그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살을 뺐을 때 근육운동을 같이 했다면 훨씬 건강하고 좋은 몸을 만들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런 간접 경험들을 가지고 읽은 이 책은 낯선 용어들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아주 효과적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역시 몸무게다. 근육이 늘었다고 해도, 라인이 좋게 변했다고 해도 몸무게가 무거우면 내가 기대한 것과 조금 다르다. 개인적으로 헬스 트레이너들의 근육질 몸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다. 물론 이런 몸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책 속에서도 나오는 지적이다. 학창시절 이와 조금 유사한 운동을 하고 난 후 엄청난 헛구역질을 한 경험이 있는 나에게 저자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공감이 된다. 이근형이 지적한 많은 것들은 사실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게으름도 있지만 말이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 늘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언젠가 실천하리라! 는 다짐 말이다. 당연히 아직 한 번도 실천한 적이 없다. 간단한 것 조금 하다가 중단한 것을 제외하면. 만약 이 책을 통해 몸무게를 많이 빼는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면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진짜 건강한 몸을 원한다면 읽고 당장 크로스핏 헬스장으로 달려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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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는 것
와시다 기요카즈 지음, 김경원 옮김 / 불광출판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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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이 책을 모두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 선택했을 때는 기다림에 대한 간단한 에세이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받고 읽기 시작하면 금방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이것은 착각과 나의 오만이었다. 결코 만만한 책이 아니다. 기다린다는 것에 대한 심리학적 문학적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어 곱씹어야 하는 대목이 곳곳에 나온다. 기다린다는 것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는 것에 박수를 친다. 초조함에서 시작한 열아홉의 여정은 열림의 장으로 끝난다.

 

초조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해도 나의 일상과 부합하는 부분이 많았다. 학창시절부터 약속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나와 사람들을 기다린 경험이 많기에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 곧 이 기다림은 시간과 심리와 철학과 종교 등과 엮이면서 난해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인용되는 문학과 철학 등은 낯선 이름과 학설로 잠시 동안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미묘한 문장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 부분도 적지 않아 조금만 집중력을 깨트려도 뭔 말인지 모르고 그냥 넘어간다. 이 말은 집중하면 아주 많은 사유를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많은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치매고, 다른 하나는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해석한 부분이다. 치매 부분은 임상심리를 다룬 부분이 많고, 새로운 시도를 다룬 부분이 있어 신선하게 다가왔다. 몇 장으로 다 다루기는 어려운 부분이지만 치매 환자와 요양원의 관계가 이전에 흔히 보던 것과 달라 놀랐다.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을 생각할 때 유념해야 할 부분이 많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예전에 한 번 읽은 적이 있다. 당연히 뭔 소리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제목 때문에 읽으면서 이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했는데 적중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반복되는 곳도 있지만 새롭게 다가온 내용이 더 많았다. 약간이나마 희곡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 제목처럼 그들은 기다리지만 그는 결코 오지 않는다. 이 부조리 연극이 많은 무대에 올려지고, 수많은 해석서가 나오는 것은 이미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다린다는 행위는 수많은 곳에서 일어난다. 수많은 감정을 불러온다. 누군가는 이 기다리는 것이 올 것이란 기대가 없는 경우도 있다. 오지 않을 것을 기다린다는 점에서 <고도를 기다리며>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런 심오한 경우가 아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또 시간과 관계있다.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해설은 기존의 인식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시간을 흐름의 개념으로 볼 때 생기는 오류를 감안하면 더 쉬울 것이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꼼꼼하게 읽고, 수많은 인용과 주석을 읽다 보면 나의 지식이 얼마나 협소한지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은 새로운 기대로 당연히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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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올해 1월에 나온 책들을 보니 눈길이 가는 책들이 많이 있네요^^ 뭐 없었던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중에서 일단 다섯 권만 추려봅니다.

1. 레버넌트 : 마이클 푼케

 영화로 알려진 작품인데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가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책이 강한 울림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극한의 추위와 그를 이겨내는 뜨거운 증오가 과연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풀어낼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영화는 책을 본 후에 볼 예정이다. 영화 먼저 보면 그 이미지가 소설 읽을 때 너무 간섭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어서...

 

 

 2.화성의 포드케인 : 로버트 A. 하인라인

 하인라인의 소설을 오래 전에 읽었었다. 한때는 아주 열심히 헌책방을 뒤져 찾아서 읽었다. 이렇게 나오기 시작하니 쉽게 손이 나지지 않지만 왠지 반갑다. 그때 나를 사로잡았던 재미가 이 작품 속에서 그대로 나올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당대 미국 소녀들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안겨준 문제작이라고 하는데 어떠 부분일지 궁금하다.

 

 

 3. 사라바 : 니시 카나코

 내가 끊지 못하는 몇 가지 문학상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나오키 상이다. 대중 취향 저격의 이 상은 아직 나를 실망시킨 적이 거의 없다. 여기에 일본 서점대상 2위라니 더 기대된다. "삶이란 흔들리고 부유하는 궤적임을, 이렇게 흔들리는 삶에서 때로 넘어지는 것은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찾고 있는 것을 향해 내딛는 착실한 걸음이라는 사실을 멋지게 그려낸다."란 아주 멋진 평까지 달려 있다.

 

 

 4. 블랙랜드 : 벨린다 바우어

 데뷔작으로 골드대거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놀라운 이력이다. 스릴러의 특성을 모두 갖추었다는 평가는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범죄의 속성을 환기시키며 결국 인간과 범죄,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장르의 경계를 확장시킨다"로 이어진다. 깊이 있는 이야기로 재미와 많은 생각을 줄 것 같다.

 

 

 

 5. 여신기 : 기리노 나쓰오

각국의 신화를 현대 시점에서 재해석하는 대형 프로젝트 '세계신화총서' 11권이다. 이 시리즈 중 읽은 책이 한 권도 없다. 그런데 나의 레이다에 기리노 나쓰오가 걸렸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작가 중 한 명이 그녀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 <고지키>의 이야기가 나쓰오의 손길을 거치면 어떤 모스으로 변할지 궁금하다.

여성의 이야기를 아주 날카롭고 잔혹하게 잘 그려내는 그녀를 감안하면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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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잡았나 - 정신의학자이자 여섯 아이의 아버지가 말하는 스웨덴 육아의 진실
다비드 에버하르드 지음, 권루시안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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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부모는 자기 아이가 없는 부모다.” 이 문장은 책 마지막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이 말에 공감했다. 나에게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나는 친구와 그들의 아내들로부터 아기를 잘 키울 것이란 칭찬을 들었다. 당연히 나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나 만이라면, 아기가 아프지 않았다면 조금 쉽게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변수는 늘 자신감을 무너트린다. 현실은 가정법도, 여기저기에서 주워들은 지식도 모두 무력화시킨다. 그래서 이 책은 무너진 나의 자신감을 새롭게 세우는데 약간을 도움이 된다.

 

사실 책 제목과 저자가 여섯 아이의 아버지란 사실 때문에 선택했다. 스웨덴이란 복지국가를 생각할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의 글을 읽다 보니 최근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본 모습이 그대로 겹쳐진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휘둘리고, 교사의 권위는 떨어지고, 학교는 부모들에게 점점 더 많은 참여를 요구한다. 화를 내는 부모를 보면 왜 저럴가? 하고 혀를 차는 일까지 생겼다. 이런 나의 변화가 어느 순간 당연하게 다가왔다. 이 일련의 반응들이 단순히 나에게만 생긴 것은 아니다. 물론 나의 경우는 여기저기서 보고 듣고 단편적으로 내린 판단들 때문이지만 그 뒤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는 것 같다.

 

480일의 유급 육아 휴직과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보육시설, 가족 중심 육아법이 탄탄히 자리잡은 육아 천국으로 불리는 스웨덴의 실제 모습은 아주 많이 다른 모양이다. 복지 정책이 훌륭한 것은 좋은데 그 내부를 들여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있다. 이 문제들을 여섯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정신의학자인 저자가 냉정하게 풀어낸다. 읽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횟수가 적지 않지만 아직 그만큼 크지 않은 아이 때문에 깊게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복지 천국이라고 불리는 스웨덴의 육아법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하는 부분에 더 놀란다.

 

현대 사회는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다. 그리고 불안 심리를 강하게 조장한다. 이것을 저자는 두 가지로 요약했다. 하나는 부모에게 아이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안겨 주는 것이고, ‘교육적이다. 안전하다. 자극을 준다. 심지어는 필수적이다.’란 말로 포장한 쓸모없는 제품을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온갖 쓰레기를 은근슬쩍 넘기려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인용문은 내가 항상 아이의 부모들과 만나면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이성이 아닌 감성에 휘둘리고,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인지 모른다는 죄책감이 심리 바탕에 깔리게 한다. 이 때문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너도 아이를 낳아봐라”였다.

 

좋은 부모는 모든 부모가 바라는 바다. 스웨덴에서는 이것을 위해서라면 아이들에게 강하게 야단치지를 못한다. 이유는 아이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입힐 위험이 있다는 이론 때문이다. 어릴 때 생긴 트라우마를 강하게 강조한 탓에 점점 더 아이들을 유하게 대하고 제대로 된 교육이나 야단치기 등이 어려워진다. 그 결과로 아이들은 버릇이 없어진다. 유약해진다. 그런데 이 이론이 아주 정확하고 명확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예로 과거 육아법 및 교육법을 말하는데 아주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과장된 위험에 대한 그의 경고는 나에게도 적용된다. 불안으로 가득한 사회는 비용 지출을 늘일 수밖에 없다. 뭔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이 책에 나오는 육아법 중 일부는 한국에서도 이미 일어나고 있다. 아이들의 생떼에 무너진 부모들과 학업 성적을 올리기 위해 늦은 밤까지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약간 다른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은 동일하다. 과거의 육아법을 깡그리 무시하고 최신 육아법만 고집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이 엄청난 충격이겠지만 보통의 시민들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스웨덴처럼 복지국가였다면 이런 문제가 대두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전통적인 유교 문화가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고, 학업을 위해 온 가족이 전력투구를 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에이미 추아의 ‘호랑이 엄마’에 더 가까울 것이다. 나만의 육아법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 조금 더 세밀하게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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