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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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인 앨리스씨>로 낯설게 만난 황정은 소설이다. 이 소설을 출장길에 가져갔다가 돌아오는 리무진 버스 안에서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많지 않은 분량이라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이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소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너무 낯선 문체와 이야기에 놀라 한동안 그냥 묵혀두었다. 내일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다른 책을 읽었다. 일주일 이상 다른 책을 읽다가 다시 손에 들고 집중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펼쳤는데 나나의 이야기는 더 낯설게 다가왔다. 역시 낯선 문장이 조금만 집중하지 않으면 뭔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만든다. 그렇게 조금 힘들게 끝까지 읽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이 문장은 나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쓴 말이다. 소라가 먼저 자신과 자기 가족과 나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었다면 나나는 임신한 자신과 애 아빠 모세와의 관계 등을 차분히 들려준다. 이야기는 두 시간이 겹치지 않고 이어서 펼쳐진다. 소라의 이야기가 끝나면 나나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 다음은 나기의 이야기가, 그리고 마지막엔 나나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이 각자의 이야기 속에 소라, 나나, 나기의 이야기가 뒤섞이지만 항상 중심에 있는 것은 화자들이다. 자신들의 시각에서 주변에 일어나는 상황을 보고 자신의 입장에서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솔직히 말해 낯선 문장과 문체를 제외하면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고 힘든 소설이 아니다. 흔히 보는 이야기라면 너무 심한 비약일까.

 

소라와 나나는 자매고, 아빠는 기계에 빨려 들어가서 죽었다. 그 날 이후 엄마 애자는 정신을 놓았고, 더 나쁜 환경의 집으로 이사한다. 하지만 이 이사에서 그들은 최상의 이웃을 만난다. 바로 나기와 그 엄마 순자다. 아빠가 죽은 후 보상금 모두 다른 가족이 챙겨갔다. 소라 가족에겐 한 푼도 남겨두지 않은 가족이 나중에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위악적이고 위선적인 삶의 한 단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아빠의 엄마이자 형제였다는 이유로 그들은 오랫동안 연락도 제대로 하지 않은 그들을 만나고, 그들 누군가의 장례식장에 찾아간다. 이 부분을 보면서 이들이 착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귀찮아서 그런 것인지 살짝 의문이 든다.

 

아빠가 죽은 후 그들은 편모 아래에서 살았다. 엄마 밑이라고 하기에는 그 엄마가 너무 넋을 놓고 산다. 오히려 그들에게 가족이라면 나기와 그의 엄마 순자가 더 적합하다. 나기 네 밥을 먹고 자랐고, 순자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학교를 졸업했다. 도깨비 사연으로 소라 네와 나기 네가 이어진 후 이들의 관계는 아주 밀착되고 이웃사촌을 넘어 그냥 가족 같다. 김치가 남아 만두를 만드는 에피소드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이들의 관계를 더 친밀하게 만든다. 이와 대조적인 가족으로 나나의 애인인 모세 네 가족이다. 모세가 가족이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보여준 모습은 우리가 너무나도 도식적으로 생각하는 그것을 당연하게 말하고 나나에게 강요한다. 나나의 선택에 공감하는 것도 바로 요강을 둘러싼 작은 이야기로 충분하다.

 

소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혹시 나기와 연결되는 누군가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그런데 나기의 이야기에는 전혀 다른 인물이 나온다. 그의 짝사랑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남아 이 자매 누군가와 연결되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을 말한다. 소라 자매의 엄마 애자가 죽은 아빠를 잊지 못하는 것이나 나기가 그를 잊지 못하는 것이 이어진다면 나나의 사랑은 한 사람에 묶여 있지 않다. 분명 소라도 사랑을 했을 텐데 그 대상이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아니면 이야기 속에 단서를 흘렸는데 놓친 것일까? 나나가 혼자 애를 키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도, 소라가 이것을 도와주겠다고 했을 때도 사랑은 이 자매와 배속의 아이와 이어준다. 일상의 힘겨움이나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거나 불편을 느끼기보다 자신들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힘차게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이 결코 작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계속하겠습니다, 란 말을 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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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6-04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정은의 문체는 저도 적응이 아직 어렵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