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요리책>을 리뷰해주세요.
비밀의 요리책
엘르 뉴마크 지음, 홍현숙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화자가 자신의 이름이 루치아노라고 말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성도 없는 그는 사생아다. 장면은 바뀌어 바로 총독의 식탁에서 비루한 농부가 총독과 함께 식사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는 농부는 황홀감에 휩싸여 먹고 마신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죽는다. 이를 보고 총독은 죽은 자의 입을 벌려 불멸의 약을 흘려 넣는다. 시체는 변화가 없다. 총독은 신을 향해 불경한 손동작을 보여준다. 소설은 바로 이렇게 의문 가득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화자 루치아노는 소매치기에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거리의 소년이다. 어느 날 그가 석류를 훔치다 만난 스승 페레로 주방장의 호의로 그의 제자가 된다. 소년이 바랐던 것은 그가 줄 것이라는 음식뿐이었다. 그런데 이 만남은 새로운 세계로 그를 인도하는 시발점이다. 하루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훔치고 도망 다니고 쓰레기통을 뒤져야 했던 그가 깨끗하고 풍족한 음식이 있는 세계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 뒤에 무시무시한 음모와 거대한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런 환경에 적응하면서 세상과 요리와 비밀을 배우면서 한 소년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 편의 팩션이자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15세기 말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지저분하고 거칠고 미신으로 가득한 도시와 황홀하고 저절로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 요리는 잠시 그 시대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음식을 통해 사람을 조종하는 조리장의 멋진 솜씨에선 감탄을 자아내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사람들을 스스럼없이 죽이는 사람들을 통해 그 시대의 한 단면을 보게 된다. 미신과 욕망과 환상이 교차하는 그 시대에 한 소년과 주방장을 통해 이성의 햇불을 번쩍 들고 나타나 현대까지도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을 흔들고자 한다. 이 놀랍고 당혹스러운 주장은 기존의 기독교 팩션과는 다른 분위기와 접근방식으로 조금씩 흘러나온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수호자들의 이런 주장이 이 소설의 중요한 핵심이 아니란 점이다.  

 

 신세계와 새로운 음식 재료나 허브들이 등장한다. 변화의 시기다 보니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먹는 것들이 그들에게 악마의 음식처럼 보인다. 이런 것들은 변화와 도전을 싫어하고 아직 경험하지도 적응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페레로 주방장이 자신의 온갖 기술을 동원해 총독이나 다른 위정자들의 음모를 깨트리는 것이 마법처럼 느껴지는 것도 바로 무지와 미신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나를 매혹하는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총독의 식탁에서 펼쳐지는 만찬 장면일 것이다. 한때 즐겨보았던 일본 요리만화의 과장된 표현이나 미사여구를 생각나게 하고, 음식이 훌륭한 외교 수단이 되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눈앞에 펼쳐진 듯한 묘사가 나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게 한다. 고대의 지식과 비밀을 요리사들이 수호자가 되어 전달한다는 설정과 더불어 나를 가장 매혹시킨다.  

 

 이야기의 구성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한 소년의 성장이자 모험이고, 15세기 말 베네치아의 정치와 역사의 한 장면을 구성하여 펼쳐 보여준다. 그 속에 살짝 녹여낸 이성의 힘은 그 시대의 욕망이 빚어낸 환상과 전설이 뒤섞어 멋진 긴장감을 연출한다. 소년 루치아노가 늙은 후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나이가 든 후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미숙하고 실수로 가득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 순간 자신을 사로잡았던 열정과 감정들은 현재의 나를 만드는 밑거름이지만 그때는 결코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책을 읽기 전 무심코 본 표지가 지금은 색다른 해석으로 다가온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음식의 중요성과 역사의 비밀을 전달하고 유지하는 존재를 요리사로 설정한 점이 재미있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팩션을 좋아하고 음식을 즐기는 사람 모두.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긴장이 풀린 때문이지. 루치아노, 내가 말했듯이 마법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기술이란다. 의원들은 사자 고기를 먹으며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떠올린 거지. 베네치아에서 자신들이 두려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5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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