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서평을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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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김훈의 에세이는 처음 읽는다. 다른 에세이를 몇 권 가지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손이 가지 않는다. 그의 출세작인 <칼의 노래>를 읽을 당시만 하여도 그는 나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지만 그의 글에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덕분에 후배에게 부탁한 책 한 권은 몇 년이 되었는데도 읽지 못하고 있다. 손에 들고 읽는다면 단숨에 읽을 수 있을 텐데 주저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의 단편집 <강산무진>은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는 점이다.
왜일까? 나의 그 이유를 그의 문장에서 찾는다. 그의 문장은 짧은 글에서는 분명하고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조금 이야기가 길어지면 그 사실적이고 간단한 문장들이 나를 지치게 만든다. 몇몇 좋아하는 작가들이 유연하고 재미있는 문장으로 나를 사로잡고 계속 읽게 하는 반면에 그는 건조하게 느껴지는 문장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것이다. 예전엔 그의 직업 탓으로 생각했다. 신문기자 시절의 습관이 글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의 에세이에서 그 이유 하나를 찾게 되었다. 그것은 “문장 하나하나마다 의미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를 구별해서 끌고 나가는 그런 전략이 있어야만 내가 원하고자 하는 문장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141쪽)라고 말한 대목이다. 그를 세상에 알린 첫 소설이 <칼의 노래>란 점도, 그가 어릴 때 가장 영향을 준 책이 <난중일기>란 점도, 이순신의 글이 사실만을 가지런하게 챙기는 문장이란 점도 앞에서 말한 그의 특징을 나타내는 단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 에세이에는 작가의 세상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가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추억이 실리고, 현재의 삶에서 느끼는 사고의 단편들도 있고, 자신이 생각하는 글에 대한 단상도 담겨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억, 딸에 대한 추억과 현재, 기자 시절의 경험들이 분명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다가온다. 잠시만 집중력을 잃어도 그 의미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는 문장은 다시 봐야 하는 순간도 생긴다. 추억과 회상으로 넘어가면 쉽고 재미있게 읽히고, 그가 경험한 육이오의 현장은 역사책 속에서 결코 발견하지 못했던 사실들이 살아있다. 또 한때 그의 희망직이었던 소방수에 대한 이야기는 가슴속에서 울컥 솟구치는 감상을 불러오기도 한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그의 문장과는 역시 짧은 글이 더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길지 않은 글 속에서 만난 박경리의 이야기는 그 시대의 아픔과 현실을 아주 잘 나타내주고, 신문기자가 된 이유에 대한 설명은 너무 직설적이라 건성건성 대답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말과 사물에 대한 글은 그의 철학을 짐작하게 한다. 표제작인 <바다의 기별>에서 다루어진 김승옥에 대한 일화는 십 수 년 전 처음으로 그를 만났을 당시의 충격이 재현되는 듯하다. 아직도 다 읽지 못한 <임꺽정>은 언제고 다시 읽어야지 하고 다짐을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예전에 헤밍웨이의 문장에 적응하지 못해 잠시 힘들어했던 기억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다시금 그의 장편에 손을 내밀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