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
송명빈 지음 / 베프북스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세/서평]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 기억의 소멸 의식의 탄생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 - 
송명빈 지음/베프북스
 

 언젠가 미혼모에 관한 다큐를 봤다. 거기서 나오는 미혼모들은 하나같이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다. 제대로 된 국가적인 복지 혜택이나 지원은 전혀 받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수절 개념을 고수하며 알게 모르게 정조에 대한 교육을 주입하며 미혼모 발생을 차단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와는 반대로 미혼모가 발생한 후의 일은 나몰라라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수 하지 않기 위한 교육은 하지만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가 인터넷이란 것을 접할 때는 이 새로운 매체에 대해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비판적 시각으로 장단점을 분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다르다.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서 글을 읽고 쓰기 전부터 인터넷을 접하고 있고, 그것이 자신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 올지 예측조차 하지 못한 채, 글을 올리고 파일을 전송하고 떄로는 철없는 시절의 조절하기 힘든 감정을 영구불멸의 디지털 세상에 각인시키고 있다. 마치 주홍글씨와도 같이 …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후다.
P. 17 

 정보화 사회가 급격히 성장하며 과도하고 공개적인 온라인 세상 역시 과거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한때 그룹 2PM에 소속돼 많은 인기를 받고 있던 가수 박재범도 연습생 시절에 온라인에 올린 한국에 대한 비난글이 화제가 되며 결국 소속사를 나오게 됐다. 지금은 대한민국 축구의 기둥으로 성장한 축구 선수 기성용 또한 SNS을 통한 발언이 문제가 되며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온라인상에서의 실수는 비단 특정 인물에 한정되지 않는다. 익명성과 비대면성이 보장된 온라인 공간에서 아직 윤리적 의식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을 때 많은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온라인 세상이 나와 연결되어 있는 현실이라는 점을 까마득히 잊고 그저 막연하게 어딘가에 존재하는 다른 세상이라는 착각으로 나 아닌 나의 모습을 기록하기도 한다. 그 기록은 마치 주홍 글씨처럼 온라인이라는 망망대해를 떠돌며 나에게 새겨지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바다에 던져 보낸 내 '실수의 유리병'은 다시 회수하지 못하는 것일까? 난 계속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공개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P. 24 

 「잊혀질 권리」는 웹이라는 영구적인 기억력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디지털 세상에 태어난 또 다른 '나'를 소멸시킬 권리와 방법을 주장한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이 생겨난지 반세기정도가 된 지금에서야 이제 '소멸'이라는 개념을 논하기 시작한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소멸 방법을 전부 나에게 맞춰 행할 수는 없지만, 점차 사람과 사람사이에 퍼져나갈 수 있도록 '잊혀질 권리'에 대한 의식이 생겨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쉽게 지울 수 없고 가볍게 여길 수 없다는 인식의 전환과 함께 누가 봐도 부끄럽지 않을만큼 성숙한 온라인 생활을 한다면 디지털 소멸이라는 개념 역시 더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죽더라도 꼭 나를 기억해줘"라는 영화 속의 슬픈 대사도, "내 제사상은 누가 차려주나"라는 노인네의 낡은 걱정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유명한 격언도, 따지고 보면 잊혀지는 것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이 죽음보다 더 크다는 것의 반증이 아닐까. 아날로그 시대에는 그랬다. 기억을 위한 수단과 양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P. 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초 사고
아카바 유지 지음, 이영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성공/서평] 「0초 사고」  저질 글쓰기 근육을 위한 해답

 


 

0초 사고 - 
아카바 유지 지음, 이영미 옮김/열린책들


 김훈 작가가 대표작 「칼의 노래」를 쓰면서 첫 문장을 '버려진 섬마다 꽃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 피었다' 중 어느 것으로 할 지 며칠 고민했다는 일화는 무척 유명하다. 그만큼 글에 있어서는 문장 하나, 단어 하나, 음절 하나까지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경을 써야 한다. 나는 대학에서 소설 창작이나 시 창작으로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고심 끝에 나온 글에 익숙하다. 그 상황을 정확히 묘사하거나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단어를 찾기 위해 계란을 품고 있듯이 마음 속에 의문을 품고 있다가 며칠이 지나서야 부화하듯 해답을 찾아내는 일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최근에는 이런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주제의 책 「생각의 씨앗을 심다」에 관심이 가기도 했고, 글쓰기를 다룬 책 중 가장 인상 깊게 본 「대통령의 글쓰기」에서도 '절실해야 좋은 글이 써진다' 라는 비슷한 내용을 보며 공감했다. 

 「0초 사고」​에서 말하는 즉각적인 해답과 직관력을 키우는 것으로 과연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문학적인 글쓰기와 일상 생활에서 쓰는 실용적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무척 다르지만 결국 사고에 의해 옮겨지는 글은 언어 감각이 지배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생각했다. 


 「0초 사고」​에서 문제에 직면하자마자 답을 낼 수 있는 그 초고속 사고의 핵심은 바로 '메모하기'다. 번뜩이는 순간 반사적으로 그에 가장 적합한 단어와 문장을 토해내기 위한 연습으로 메모를 강력 추천한다. 확실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메모하는 습관은 대학에서도 교수님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할 작가의 조건으로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글쓰기'에 있어서 '메모'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알고 있다. 소설의 소재가 떠올랐을 때,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바로 메모할 수 있는 수첩을 들고 다닐 때부터 작가의 시작이라는 말씀까지 하셨을정도다. A4용지 1장 쓰는 데 1분. 그렇게 하루에 10분 10페이지를 쓰며 사고의 훈련과 언어 감각을 키우는 방법은 흡사 예전에 글쓰기 근육이라는 표현을 썼던 '글쓰기 고수'가 연상됐다. 글쓰기는 마치 우리의 육체처럼 하루하루 꾸준히 단련해주지 않으면 어느덧 감각이 둔해지고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게 된다. 「0초 사고」​에서 가이드한 대로 메모하는 연습을 하다보면 확실히 글에 대한 부담도 덜고 과거에 한창 유행했던 브레인 스토밍처럼 진귀한 아이디어가 쏟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유가 뭘까. 평소에 다양한 생각을 한다고 믿지만 그것은 분명 다람쥐 쳇바퀴나 반복, 망설임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1건 1페이지로 써나가면, 그 건에 관해서는 일단 결말이 나기 때문에 고민해야 할 것, 생각해야 할 과제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머릿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매일같이 많은 생각을 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는 확연히 다르다. 매일매일 새로운 10가지 고민이나 과제를 떠올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반대로 말해 보자. 메모를 안 쓰면 매일 똑같은 생각만 계속 되풀이하는 셈이고 고민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것은 곧 머리를 쓸데없이 사용하고 있고, 시간을 매우 낭비하고 있다는 증거다.

P. 121 


 글쓰기에는 실로 신비한 힘이 있는데, 「0초 사고」​의 작가는 경험을 했는지 글의 힘을 알고 있다. 글을 쓰다 보면 신기할 정도로 생각이 정리되고 품고 있었던 아픔이 조금은 치유된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적극 권장하고 있다. 글은 쓰다보면 솔직한 내면의 얘기가 나온다. 내 안에 샘물처럼 고여 있던 '말'이 출발선이 풀릴 것처럼 달려 나와 종이에 보기 좋게 글이라는 형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머릿속에 동네 축구처럼 무분별하게 흩어져 있던 생각이 현대 축구의 치밀한 포메이션처럼 완벽하게 자리를 잡는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글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보통 인간관계에 있어서 대화의 방법으로 상대방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는데,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내 안에는 아픔을 보살펴줄 위안도 들어 있고, 지금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해답도 들어있다. 메모하기의 연습이 '글'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일의 해답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은 들키지만 않으면 악마도 된다 -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한비자의 가르침
하야시 히데오미 지음, 이지현 옮김 / 전략시티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인간관계/서평]「사람은 들키지만 않으면 악마도 된다」의, 인, 이, 무엇을 택할 것인가


 


 

사람은 들키지만 않으면 악마도 된다 - 
하야시 히데오미 지음, 이지현 옮김/전략시티


 책을 읽으며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생각이 많이 났다. 「몬스터」는 '사람은 뭐든지 될 수 있어' 라는 주제로 구동독의 인간개조 실험에 휘말려 점점 괴물이 되어 가는 남매의 모습을 그린 만화다. 만화이기는 하지만 그 구성과 연출, 전개가 무척이나 훌륭해 많은 사람에게 인정 받은 작품이다. 「사람은 들키지만 않으면 악마도 된다」​도 이와 비슷한 주제 의식을 가졌다. 사람은 이(利)를 취하기 위해 들키지 않으면 악마라도 될 수 있는 이런 본성을 잘 통제하고 활용하여 경영에 보탬이 되게 하려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경영 방법이 적힌 책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런 솔직하고 당당한 태도는 의(義)나 인(仁)을 중요시하는 요즘 추세에서 특히 색다른 빛을 발하고 있다. 굉장히 현실적인 느낌에 오히려 귀가 솔깃하다.


 그러므로 현실은 나쁜 놈들이 득세하는 세상임을 직시해야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식으로 위로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힐링의 숲으로 도피하려 하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그렇다고 당신도 나쁜 살마이 되라는 뜻은 아니다. 현실을 냉청하게 바라보며 누가 나쁜 놈들인지 간파하여 그들에게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이들을 장악하여 내 편으로 만들라는 얘기다.

P. 7 

 

 인간의 본성을 악(惡)으로 규정하고 경영에 활용하는 전략은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하나였던 한비자에게서 시초를 찾는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현대 경영에 맞춰 이를 적용 하고 그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책에는 한비자의 삶을 추적하고 거기서 힌트를 얻는 등의 전개를 가지는데, 한비자의 삶이 책을 보는 또 다른 재미가 된다. 왕의 아들이지만 서자로 태어나는 바람에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에 처하고, 왕의 아들이라는 점을 노리고 그에게 접근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이가 많으니 그는 자연스럽게 사람의 겉마음과 속마음을 구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떤 사상가라든지 시인, 화가와 같은 예술가가 타고 자란 고향의 풍토와 불우하거나 풍족했던 가정 환경에 따라 후에 펼치는 예술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사람에게 있어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점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재밌는 단상이 되었다. 사람을 믿지 말고 이해 관계에 충실해야 된다고 주장한 한비자가 친구를 잘못 믿어 최후를 맞이하는 부분도 무척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였다(사람이 죽은 걸 재미있어 하디니...).


 '군주의 우환은 사람을 믿는 데서 비롯된다.'라고 주장하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라는 끈을 과감히 버릴 것을 충고했던 한비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해 최후를 맞았다. 아무도 믿지 말아야 한다는 자신의 이론을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니,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P. 60 


 인간의 본성에 관해 책의 내용이 꼭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과 악의 경계에서 본인의 주체성을 결정짓지 못하기 때문에 이 사람을 잘 통제 하는 것이 책의 주된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책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이득을 위해 움직일 때 가장 큰 효율이 나오는 것일까?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았다. '관을 만드는 장인은 사람이 죽기를 바란다' 라는 대목은 특히 마음이 아팠고 그게 사람의 본성이니 관 만드는 장인을 욕할 수 없다는 생각에 또 마음이 아팠다. 

 현실에서 모든 사람이 이득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는다. 눈앞에서 명백하게 손해를 보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사람은 의나 인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그게 바로 사람의 다양성이다. 그리고 그 일이 훗날 더 큰 이득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이 가장 발달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는 들키지 않았을 때 악마가 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자비한 악플에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은 이미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 또한 들키지 않았을 때 악마가 되기에 최적의 조건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의를 따를지, 인을 따를지, 이를 따를지 그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도 인간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직감했다. 인간은 천사와 악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그래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선과 악을 규정하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선한 사람만이 아니라 악한 사람과도 사귈 수 있는 도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P. 2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 - 속도에서 깊이로 이끄는 슬로 리딩의 힘
이토 우지다카 지음, 이수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자기계발/서평]「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기적의 독서법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 - 
이토 우지다카 지음, 이수경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노벨상 수상자를 무려 81명을 배출한 미국의 명문 대학 중 하나인 시카고대학교가 사실은 3류 똥통 학교였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 대학은 일명 '시카고플랜'을 시행하면서 명문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시카고플랜이란 고전 100권 읽기 제도다. 5대 총장 로버트 허친스가 1929년 5대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적용한 제도다. "100권을 읽지 않으면 졸업을 시키지 않겠다", 이 말이 노벨상 수상자 81명을 만들었다. 이와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학교가 있다. 세인트존스대학교다. 여기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도 없다. 전공도 없고 교양 수업도 없다. 오로지 고전 100권을 읽으며 토론하는 것이 수업의 전부다.


 이런 사례는 중국에도 있다. 중국 최고의 명문 칭화 대학의 학생들도 100권의 동서양 고전을 읽는다. 칭화 대학은 고전 읽기를 시작한 다음부터 중국대학 종합 평가에서 베이징 대학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칭화 대학을 다니며 고전을 읽었던 학생 중에는 중국 최고 지도자가 된 사람도 있다. 중국의 주석 후진타오다.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은 일본판 고전 읽기 수업의 훌륭한 예를 보여주는 책이다. 일본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 「은수저」만을 교재로 사용해서 수업을 진행했는데 은수저 수업 3기에 해당하는 1968년 졸업생은 사립학교 사상 최초 도쿄 대학 최다 합격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다. 고전의 힘은 이다지도 대단한 걸까?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수업을 하는 선생이 있다면 반응이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난리 중의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한창 수능 공부를 할 시기에 무슨 쓸데없는 짓을 하냐고 원성이 빗발칠 것이다. 수능 공부에 따라가는 게 속도를 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빠르기를 바라는 세상이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속도와 깊이, 무엇이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단어 속에는 넓은 공간이 있습니다. 단어 하나를 철저하게 이해하면 역사 · 문화 · 사회 · 전통 등 다방면에서 지식의 폭이 얼마든지 넓어집니다. 속독으로는 습득할 수 없는 그 폭을 여유 있게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P. 122 


 책은 은수저 수업을 시행했던 하시모토 선생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천천히 흘러간다. 그 구성과 전개는 정말 놀라울 정도다. 이 책은 자기계발 도서로 분류되어 있지만 인문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독자의 지루함과 싸우는 게 중요한 해결과제였는데, 이 책에서는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다. 스토리텔링이 훌륭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소설인지 자기계발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검색을 해봤을 정도로 스토리텔링이 잘 돼 있다. 전혀 겉멋 부리지 않은 솔직하고 담백한 문체가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울리기도 하다. 


 '빠름'이 시대적인 가치가 되어 습관처럼 몸에 베어버린 요즘이라도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을 읽다보면 그 '천천히' 속도에 맞춰가게 된다. 빠르지 않으면 뒤처지는 세상을 여유롭게 비웃는다. 애당초 독서는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한 역할이 1순위라고 생각한다. 정보 수집의 기능으로 꼽히는 속독의 방법은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정보 수집은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깊이의 중요성을 인지시키면서 고전을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자칫 '깊게 읽기'를 고전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강박에 흡수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억지로 붙들고 있는 고전은 고문이나 다름없다. 하시모토 선생은 무엇보다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는 걸 우선으로 했다. 요즘 독서 교육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책과 놀기'를 훌륭하게 보여준다. 「은수저」에서 주인공이 막과자를 먹으면 학생들에게 막과자를 나눠주고 맛을 보게 한다. 연을 날리면 학생들도 연을 직접 만들어 날려보기도 한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 단어에 대해 알려주고 밖에 나가 그 단어와 연관되는 물건을 찾아본다. 주인공에게 편지를 써보기도 하고 이야기의 내용을 바꿔보기도 한다. 수업이 재미있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나 재밌었으면 전학 간 학생이 수업을 그리워하며 편지로 수업 내용을 물어보며 따라가기도 한다. 

 천천히 깊게 읽는 방법은 재밌다. 학습에도 최고의 효율을 보여준다. 대체 왜 우리는 이런 수업이나 방식을 놔두고 그저 빠르게 달려나가는 수업만 하고 있을까? 은수저 학생들을 만든 기적의 교실처럼 대한민국에서도 하루빨리 '기적의 교실'이 나오길 바라겠다. 이 책은 그 기적에 조그마한 일조를 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당장 도움이 되는 것은 곧바로 쓸모없어집니다. 그런 것을 가르칠 마음은 없습니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조금이라도 흥미를 느낀 것에서 마음이 동하여 스스로 깊이 파내려 가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내 수업에서 힌트만 찾으면 됩니다……. 이 인쇄물에 정답을 쓰기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 순간 여러분에게 떠오른 진심이나 글을 남기면 됩니다. 그렇게 스스로 찾아낸 것은 여러분의 평생 재산이 됩니다. 언젠가는 알게 될 겁니다."

P. 132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 - 
이토 우지다카 지음, 이수경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크릿 데일리 티칭 - 소원을 이루어주는 시크릿 습관 365
론다 번 지음, 이민영 옮김 / 살림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기계발/서평]「시크릿 데일리 티칭」불친절한 설득


 


 

시크릿 데일리 티칭 - 
론다 번 지음, 이민영 옮김/살림



 「시크릿 데일리 티칭」을 읽을 독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전편이라고 볼 수 있는「시크릿」을 읽은 독자와 그렇지 않은 독자다. 모든 독자가 「시크릿」을 읽을 순 없으므로 「시크릿 데일리 티칭」은 두 가지 기능을 해야 한다. 첫 번째는 기존의 「시크릿」을 읽은 독자가 「시크릿 데일리 티칭」을 읽었을 때 이전 편에 이해했던 내용을 확실히 숙달시키 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속편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 나는 이전 편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이 확실히 역할을 다 했는지 알지 못한다. 

 두 번째 기능은 「시크릿」을 읽지 않은 독자가 「시크릿 데일리 티칭」을 읽고 시크릿의 주요 내용을 이해하고 단 권으로써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영화 속편을 제작할 때 전편을 보지 않고 그 속편만 보더라도 충분히 내용을 이해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할 속편의 숙명이기도 하다. 「시크릿 데일리 티칭」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한 책일까? 나는 「시크릿」을 읽지 않은 독자다. 「시크릿 데일리 티칭」이 단 권으로써 역할을 충분히 했느냐, 라고 물어본다면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시크릿 데일리 티칭」은 너무 맹목적이다. 흡사 강요적인 신앙 같다. 책을 펼치자마자 매일 감사한 일 100가지를 적으라고 한다. 별다른 설득도 없이 에너지를 감사로 바꿀 때 삶에서 기적을 본다고 한다. 과연 이 이야기만 듣고 매일 감사의 말 100가지를 적는 독자가 있을까? 어떤 책이든 책에 담긴 메시지는 한 문장, 두 문장으로 요약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왜 작가는 그 긴 시간을 할애하여 몇백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적을까? 바로 그 한두 문장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몇백 페이지를 통해 설득하는 것이다. 「시크릿 데일리 티칭」은 별다른 설득력을 느낄 수가 없다. '감사' 라는 주제가 반복적으로 나오긴 하지만 각기 다른 스토리텔링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맹목적인 강요밖에 느낄 수 없다.

 



 아쉬운 점을 한 가지 더 찾자면 책이 조금 무책임한 편이다. 이 책에는 목차가 없다. 페이지에도 따로 쪽 번호가 매겨지지 않고 Day 1, Day 2 이런 식으로 번호가 매겨져 있어 하루에 한 쪽 읽기를 유도하고 있다. 하루에 한 쪽 읽기 자체는 좋다. 독자로 하여금 부담없이 책을 펼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한 줄이나 두 줄이 적혀 있는 경우도 있고 웹서핑 중에 흔히 볼 수 있는 인용문으로 때운 페이지도 있어 곤혹스럽게 한다. 「시크릿 데일리 티칭」을 읽는 독자는 흔한 인용문이 아니라 '시크릿' 만이 가질 수 있는 설득력을 원하는 것이다.

 대학생 시절 방학 때 잠시 잡지사에서 객원 기자로 일한 적이 있다. 대학을 그만두고 바로 일을 시작한다면 정기자로 채용하겠다는 제의도 받았다. 그때 편집장님은 한 쪽 당 100만원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라고 하셨다. 실제로 광고비를 그정도 받는다고 했다. 내 글로 한 쪽을 채울 때마다 이 글은 100만원의 가치와 무게를 가지고 있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물론 잡지 외에 다른 책에는 본문에 광고가 들어가진 않지만 '한 쪽'에 대한 가치가 다르다고 볼 수는 없다. 이 페이지에 독자의 시선이 머물 수도 있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여기서 책을 덮고 책장에 꽂아 영영 꺼내보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책이든 친절과 불친절의 간격을 잘 조절해야 한다. 책이 너무 친절하다면 독자는 이미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학교에서 복습 할 때 지루함을 느껴 학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듯이 책에도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독자를 무시하고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독자에게 너무 불친절하고 혼자 하고 싶은 얘기만 한다면 독자는 그 책을 외면한다. 내용도 쉽게 이해할 수 없어 진저리가 난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책을 펼쳤는데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다. 마치 음식의 맛을 조절하듯 적당하게 친절과 불친절의 간을 맞춰야 한다. 많은 독자를 포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시크릿 데일리 티칭」은 아쉽게도 조절에 실패한 듯 보인다. 





 

시크릿 데일리 티칭 - 
론다 번 지음, 이민영 옮김/살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