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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초 사고
아카바 유지 지음, 이영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성공/서평] 「0초 사고」 저질 글쓰기 근육을 위한 해답

 | 0초 사고 -  아카바 유지 지음, 이영미 옮김/열린책들 |
김훈 작가가 대표작 「칼의 노래」를 쓰면서 첫 문장을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중 어느 것으로 할 지 며칠 고민했다는 일화는 무척 유명하다. 그만큼 글에 있어서는 문장 하나, 단어 하나, 음절 하나까지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경을 써야 한다. 나는 대학에서 소설 창작이나 시 창작으로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고심 끝에 나온 글에 익숙하다. 그 상황을 정확히 묘사하거나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단어를 찾기 위해 계란을 품고 있듯이 마음 속에 의문을 품고 있다가 며칠이 지나서야 부화하듯 해답을 찾아내는 일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최근에는 이런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주제의 책 「생각의 씨앗을 심다」에 관심이 가기도 했고, 글쓰기를 다룬 책 중 가장 인상 깊게 본 「대통령의 글쓰기」에서도 '절실해야 좋은 글이 써진다' 라는 비슷한 내용을 보며 공감했다.
「0초 사고」에서 말하는 즉각적인 해답과 직관력을 키우는 것으로 과연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문학적인 글쓰기와 일상 생활에서 쓰는 실용적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무척 다르지만 결국 사고에 의해 옮겨지는 글은 언어 감각이 지배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생각했다.
「0초 사고」에서 문제에 직면하자마자 답을 낼 수 있는 그 초고속 사고의 핵심은 바로 '메모하기'다. 번뜩이는 순간 반사적으로 그에 가장 적합한 단어와 문장을 토해내기 위한 연습으로 메모를 강력 추천한다. 확실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메모하는 습관은 대학에서도 교수님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할 작가의 조건으로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글쓰기'에 있어서 '메모'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알고 있다. 소설의 소재가 떠올랐을 때,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바로 메모할 수 있는 수첩을 들고 다닐 때부터 작가의 시작이라는 말씀까지 하셨을정도다. A4용지 1장 쓰는 데 1분. 그렇게 하루에 10분 10페이지를 쓰며 사고의 훈련과 언어 감각을 키우는 방법은 흡사 예전에 글쓰기 근육이라는 표현을 썼던 '글쓰기 고수'가 연상됐다. 글쓰기는 마치 우리의 육체처럼 하루하루 꾸준히 단련해주지 않으면 어느덧 감각이 둔해지고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게 된다. 「0초 사고」에서 가이드한 대로 메모하는 연습을 하다보면 확실히 글에 대한 부담도 덜고 과거에 한창 유행했던 브레인 스토밍처럼 진귀한 아이디어가 쏟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유가 뭘까. 평소에 다양한 생각을 한다고 믿지만 그것은 분명 다람쥐 쳇바퀴나 반복, 망설임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1건 1페이지로 써나가면, 그 건에 관해서는 일단 결말이 나기 때문에 고민해야 할 것, 생각해야 할 과제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머릿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매일같이 많은 생각을 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는 확연히 다르다. 매일매일 새로운 10가지 고민이나 과제를 떠올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반대로 말해 보자. 메모를 안 쓰면 매일 똑같은 생각만 계속 되풀이하는 셈이고 고민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것은 곧 머리를 쓸데없이 사용하고 있고, 시간을 매우 낭비하고 있다는 증거다.
P. 121
글쓰기에는 실로 신비한 힘이 있는데, 「0초 사고」의 작가는 경험을 했는지 글의 힘을 알고 있다. 글을 쓰다 보면 신기할 정도로 생각이 정리되고 품고 있었던 아픔이 조금은 치유된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적극 권장하고 있다. 글은 쓰다보면 솔직한 내면의 얘기가 나온다. 내 안에 샘물처럼 고여 있던 '말'이 출발선이 풀릴 것처럼 달려 나와 종이에 보기 좋게 글이라는 형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머릿속에 동네 축구처럼 무분별하게 흩어져 있던 생각이 현대 축구의 치밀한 포메이션처럼 완벽하게 자리를 잡는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글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보통 인간관계에 있어서 대화의 방법으로 상대방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는데,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내 안에는 아픔을 보살펴줄 위안도 들어 있고, 지금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해답도 들어있다. 메모하기의 연습이 '글'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일의 해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