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
송명빈 지음 / 베프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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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서평]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 기억의 소멸 의식의 탄생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 - 
송명빈 지음/베프북스
 

 언젠가 미혼모에 관한 다큐를 봤다. 거기서 나오는 미혼모들은 하나같이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다. 제대로 된 국가적인 복지 혜택이나 지원은 전혀 받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수절 개념을 고수하며 알게 모르게 정조에 대한 교육을 주입하며 미혼모 발생을 차단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와는 반대로 미혼모가 발생한 후의 일은 나몰라라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수 하지 않기 위한 교육은 하지만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가 인터넷이란 것을 접할 때는 이 새로운 매체에 대해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비판적 시각으로 장단점을 분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다르다.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서 글을 읽고 쓰기 전부터 인터넷을 접하고 있고, 그것이 자신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 올지 예측조차 하지 못한 채, 글을 올리고 파일을 전송하고 떄로는 철없는 시절의 조절하기 힘든 감정을 영구불멸의 디지털 세상에 각인시키고 있다. 마치 주홍글씨와도 같이 …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후다.
P. 17 

 정보화 사회가 급격히 성장하며 과도하고 공개적인 온라인 세상 역시 과거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한때 그룹 2PM에 소속돼 많은 인기를 받고 있던 가수 박재범도 연습생 시절에 온라인에 올린 한국에 대한 비난글이 화제가 되며 결국 소속사를 나오게 됐다. 지금은 대한민국 축구의 기둥으로 성장한 축구 선수 기성용 또한 SNS을 통한 발언이 문제가 되며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온라인상에서의 실수는 비단 특정 인물에 한정되지 않는다. 익명성과 비대면성이 보장된 온라인 공간에서 아직 윤리적 의식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을 때 많은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온라인 세상이 나와 연결되어 있는 현실이라는 점을 까마득히 잊고 그저 막연하게 어딘가에 존재하는 다른 세상이라는 착각으로 나 아닌 나의 모습을 기록하기도 한다. 그 기록은 마치 주홍 글씨처럼 온라인이라는 망망대해를 떠돌며 나에게 새겨지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바다에 던져 보낸 내 '실수의 유리병'은 다시 회수하지 못하는 것일까? 난 계속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공개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P. 24 

 「잊혀질 권리」는 웹이라는 영구적인 기억력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디지털 세상에 태어난 또 다른 '나'를 소멸시킬 권리와 방법을 주장한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이 생겨난지 반세기정도가 된 지금에서야 이제 '소멸'이라는 개념을 논하기 시작한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소멸 방법을 전부 나에게 맞춰 행할 수는 없지만, 점차 사람과 사람사이에 퍼져나갈 수 있도록 '잊혀질 권리'에 대한 의식이 생겨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쉽게 지울 수 없고 가볍게 여길 수 없다는 인식의 전환과 함께 누가 봐도 부끄럽지 않을만큼 성숙한 온라인 생활을 한다면 디지털 소멸이라는 개념 역시 더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죽더라도 꼭 나를 기억해줘"라는 영화 속의 슬픈 대사도, "내 제사상은 누가 차려주나"라는 노인네의 낡은 걱정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유명한 격언도, 따지고 보면 잊혀지는 것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이 죽음보다 더 크다는 것의 반증이 아닐까. 아날로그 시대에는 그랬다. 기억을 위한 수단과 양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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