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해 볼 생각이 없는 건가?"
신임 나리는 이목구비가 단정하다. 그러나라고 할까 그래서라고 할까, 시원하게 생긴 눈이 차갑게 보인다.
- P167

더는 어쩔 도리가 없다. 기타이치는 화가 나기보다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도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슬퍼졌다.
- P193

"내칠지 모른다가 아니라 그걸 각오하고 장래를 생각해야지"
그렇게 비정하리만치 단호한 어조로 말한 사람은 도미칸이었다. 
- P196

무력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자신이 그 ‘누구나‘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초조했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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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하지 않는 인터뷰어는 달인일 확률이 높다. 기억의 달인이거나 왜곡의 달인이거나.
- P176

그런 너를 보고 듣고 맡고 만지고 먹고 기억하는 나. 문학의 이유는그 모든 타자들의 총합이다.
- P181

과자를 먹더라도 계획적으로 소량만 먹는다. 꼬깔콘을 뜯은 뒤 개인접시에 딱 열개만 덜어서 젓가락으로 집어먹는 딸을 보며 복희는 생각한다.
‘날씬하다는 건 성격이 안 좋다는 거구나..…‘
- P185

돌아와보면 복희는 또 새로운 풀에 몰두해 있다. 이제 들어가자고 슬아는 말한다. 복희가 대답한다.
"네가 걷다가 고양이한테 인사하는 것처럼 나도 이 풀들을 보는 거야. 고양이나 얘네나 똑같이 귀하잖아."
- P188

"네가 너무 아름다운 걸 써서 그래."
유명 작가의 삶 같은 건 코딱지만큼도 부럽지 않지만 복희는실감한다. 글쓰기의 세계가 얼마나 영롱한지를. 오랫동안 그 곁에서 고구마 마탕이나 해주고 싶다고 복희는 생각한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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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만 잘 챙겨준다면 가장이 집안에서 어떤 잘난 척을 하든 상관없다. 남이 훼손할 수 없는 기쁨과자유가 자신에게 있음을 복희는 안다.
- P142

말수가 적은 게 아니라 눈물을 참는 것이었던 다운을 생각하다가 슬아의 마음이 아파진다. 그는 일렁이는 마음으로 다운의 문자메시지를 여러 번 다시 읽는다. 세상에 없는 다운의 엄마를 생각하며 읽고, 세상에 있는 복희를 생각하며 읽는다. 다운이 겪은 상실을 언젠가는 슬아 또한 겪게 될 것이다. 그럼 슬아는 다운에게 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대체 그동안 이 슬픔을 어떻게 참았느냐고.
- P148

미란이는 슬픈 와중에도 미리 생각해둔 메뉴가 있다.
"저 복희표 떡볶이 먹고 싶어요"
- P152

"폴 발레리가 그랬어요."
복희는 폴 발레리가 누군지 모르지만 묻는다.
"뭐라고 했는데요?"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대요. 단지 어느 시점에서 포기하는 것뿐이래요......."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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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는 일단 이번주에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정도를 생각하며 살았다. 웅이는 미래 계획에 관해 딱히 묻지 않는 보기드문 어른이었다. 미래에 관해 오리무중인 것은 웅이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 P121

할말이 없어진 철이가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괴롭겠다………… 대박………"
슬아는 허공을 보며 중얼거린다.
"무슨 일을 해도 괴로운 건 마찬가진데…………"
그러다가 철이를 돌아본다. 철이의 빡빡머리와 완벽한 두상을 응시하며 슬아가 말한다.
"잘하고 싶은 일로 괴로우면 그나마 낫잖아."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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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카타, 라고 말하면 마음이 놓였다. 요카타는 다행이란 말보다 더 다행 같았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어도 요카타라고 말하면 안심이 되었다. 어쩌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요카타, 라는 말로 체념하고 요카타, 라는 말로 달래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오늘을, 다시 내일을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 P35

이곳의 천장은 너무 하얗다. 다른 색으로 칠해보고 싶어.
무슨 색이 좋을까.
- P63

안나가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냐고 묻자 미영이 말했다.
나의 안녕과 건강을 바라지. 이 작은 방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 P66

"고양이는 행복할 때 진동 소리처럼 몸을 울리는 소리를 내는데 사실은 아플 때도 그래. 그 소리를 우리가 구분할 수있을까? 내가 제대로 구분한 건지 자신이 없어."
마지막 순간에도 치자는 은재의 품 안에서 골골송을 불렀다고 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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