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삼풍백화점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다가 생존한 분의 사고 후유증과 삶에 적응을 못 하던 시기, 다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 등을 읽었다. 사실 읽는 처음에는 저자가 너무 답답했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는 면들도 많았다. 그러다가 뒤로 갈수록 저자의 심경이 변하는 과정에 따라 나 또한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생기고, 앞에서 답답하게 굴던 부분들이 뒤늦게 이해가 가기도 했다. 저자는 사고를 겪고 난 후 사회에 적응을 못 하고 우울증을 오래도록 겪다가 결국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하며 다시 삶을 잘 살아가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 그렇게 받은 사랑을 글로 다시 나누게 된다.

🎈삼풍이라는 사고를 겪은 저자는 세월호를 겪은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을 보게 된다. 사회는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고를 지루해하고 심지어 악담을 퍼붓는 개인과 단체도 있다. 그렇게 책은 개인의 사고 후유증에서 시작한 글은 재난에 대한 시선까지 확장이 된다. 내 주위에도 천재지변으로 일어난 사고에 대해 본인으로서는 정의롭다고 여기는 발언을 하는 지인들이 있었다. 일본에서 일어난 재난이었다. 괜찮다고 여겨왔던 사람들이 악담을 퍼부을 때 충격적이었다. 이 책이 나올 땐 이태원 사고 이전이었는데 그때도 그런 사람이 있었고, 실제 내 주위에도 그런 비난으로 상처받은 사람도 있었다.

🎈프롤로그 부분은 그 자체로 이 책에서 제일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 아닐까. 김상욱 교수님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에서도 잠깐을 살아가는 생명이라, 그러기에 삶이 특별하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말이 나에겐 삶을 휘저을 정도로 크게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불행에 대한 글은 쓰면 쓸수록 아프다. 세상에 아름다운 흉터는 없다. 27p˝고 했는데 이 글을 쓰는 동안 많이도 앓았을 것 같다. 분명 살아 있는 건 기적이지만, 그렇게 재난 이후 얻은 삶의 이후는 너무도 힘들고, 순탄한 삶은 그 자체가 기적임을 인지하기 어렵다. 아니지. 누구도 순탄하게만 살아온 삶이 어디 있을까. 그렇기에 살아있는 자들로서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정을 주어도 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에 관한 6편의 에세이 공저를 읽으며 사람들의 다양한 사랑을 엿보았다. 내가 사랑에 대해 딱 한 가지 주제만을 정해 쓴 다면 어떤 주제로 쓰게 될까.

가족이라는 같은 주제도 육아를 하며 느끼는 매일의 아이, 손자에게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사랑, 일상을 함께하는 가족의 이야기, 이렇게 다른 가족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 다양함이 좋았다. 이다혜 작가의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것으로 시작해 자신이 배우는 것, 또 언젠가는 이 시절이 이별이 될 것이라는 이어짐이 잔잔하게 예쁘고 기쁘며 슬펐다. 내가 사랑으로 한 편의 이야기를 쓰면 김경모 작가처럼 일상의 가족을 쓰게 되지 않을까. 김경모 작가는 블로그에서도 가족을 향한 사랑을 잘 드러내는데 읽을때마다 가족 아닌 내가 다 뿌듯(?)하다.(ㅎㅎㅎㅎ)

그리고 김누나 작가의 아이돌 덕질의 이로움을 설파하는 이야기. ˝덕질을 포기한다면 내가 상대를 덜 좋아했단 거겠지. 꽤 많은 상처가 생긴 만큼 나는 사랑에 있어서 강해졌고, 면역도 생겼다˝에서ㅈ덕질이 삶을 살아가는데 강인함을 준다는데 완전 동의했다. 좋아하는 가수와 배우는 많지만 내게는 덕질한다고 할만한 누군가는 없다. 선미의 <덕질>이란 노래는 카카오 프사에 음악으로 넣을 정도로 좋아한다. 덕질의 대상은 이주희 작가로 가면 디저트와 보라색 등 범위가 확장된다. 오 이런거 완전 좋아. 이런 덕질이라면 나도 좀 많이 있는데. 나는 좋아한다를 넘어 덕질이라면 ‘책‘?

그리고 나는 상상 못한 사랑 두 가지. 황효 작가의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 (?) 로미오. 내가 이런쪽은 워낙 문외한이라 한 번도 경험 못 한 감정이랄까. 워커홀릭과는 다른 느낌.

그리고 사랑이라면 역시 연애지. 곰발 작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옛사랑. 할머니께는 비밀. 전지적아아 작가의 자신의 첫사랑, 헤어진 사랑, 놓친 (아마도) 현재진행형 사랑 이야기. 개인적으로 선생님 졸라서 듣는 이야기처럼 재미있었다. 남의 슬픔이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아버지가 독일 군인인 브루노와 그레텔 남매는 어느 날 아버지의 인사이동 문제로 베를린에서 아우비츠로 이사를 하게 된다. 남매는 이 아우비츠가 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브루노의 방 창문에서 보이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정체불명의 장소도 이상하다. 그곳은 잔디 없는 붉은 모래가 있고 오두막 같은 게 있다. 성인, 청소년, 어린이, 모두 남자만 있는데 표정은 전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은 이상하게도 똑같이 회색 줄무늬 옷을 입고 있다. 브루노는 그 철조망을 탐험하다가 사람들이 드문 곳에서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철조망 안에 있는 쉬뮈엘을 만나게 된다.

🧟 유태인이 아닌 독일인 시점에서, 그것도 전쟁조차 모르는 독일 어린이 시점에서 서사는 신선하기도 하지만 답답하기도 했다. 주인공 브루노가 순수하게 수용소에 갇힌 쉬뮈엘에 하는 행동도, 브루노에게 수용소의 정체를 대략 알려주지 않은 사령관 부부도. 그리고 철조망을 그렇게 허술하게 세팅한 작가도. 철조망은 전기가 흐르지 않았고 심지어 철조망을 들면 조그만 아이가 드나들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이런 건 소설적 허용이라 생각하고 넘어가고 싶지만, 자꾸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같은 시대와 장소에서 여러 사람의 시선을 보고 싶었다. 소설은 현실과 닮기도 다르기도 했다. 브루노의 아버지 랄프는 의외로 가정에선 다정했다던 실존 인물 ‘루돌프 회스‘가 모티브로 추정된다고 해서 찾아보기도 했다. 소설 속 배경 아우비츠는 실제 장소인 아우슈비츠다. 베를린에서 온 브루노는 쉬무엘이 폴란드인이라고 듣고는 폴란드가 멀리 있는 곳 아니냐며 저 먼 세계처럼 얘기한다. 바로 브루노가 있는 곳이 폴란드인줄도 모르고.

🧟 소설을 읽는 동안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았다. 꼭 그 시대 독일인 아니더라도. 요즘이라도. 지금 여기라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주어진 환경 이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정말 없을까?˝ 결말은 충분히 해피하게 끝날 수 있었으나, 그렇지 않았다. 슬프고 처참하고, 아름다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제목과 부제를 보면 챗 GPT를 일상에 사용하는 법이 있을 것 같으나, 안에 내용은 생성형 AI의 원리를 교양 수준 내에서 최대한 자세하게 명기한 책이었다. 목차를 보고 빌린 책이었는데, 기대했던 것처럼 생성형 AI 를 진행하고 있는 업체를 중심으로 현재의 시장을 설명해 줬다. 경제적인 팁을 주는 책은 전혀 아니었다. 철저하게 초거대 언어 모델(LLM)등의 개념과 반도체 등을 교양서 내에서 쉽게 설명해줬다. 책을 읽고 어디선가 용어만 알던 내용에 눈이 떠졌지만, 여전히 무슨 소리인지 모를 내용이 있었다.

👾 작가님의 이력을 살펴보니 인공지능 엔지니어로, 현대자동차 인공지능 연구소에서 기술 리더를 담당, 카카오에서 챗봇, 다음 커뮤니케이션에서 검색엔진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는 벡터 데이터베이스와 개인용 LLM 장비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에서 연구한다고 하니 이론과 현장을 잘 정리해 주신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책의 전작인 비슷한 제목의 AI 관련 책을 검색해 보니 1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다고 한다. 지금 이 책이 나의 무식을 어느 정도 일깨워줘서 그 전작도 궁금해졌다.

👾 챗GPT(라고 했지만 전체적인 AI)를 구성하는 실제 기술,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을 간단하게라도 읽는 게 좋았다. 뒷장에 가서는 AI가 직면한 윤리적, 사회적 문제도 나온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과 같은 상황이 되지 않으려면 최종 결정은 AI가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웃긴 얘기 같아도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니까. 기술의 발전을 막는 게 방법이 될 것 같진 않다. 일단 기본적인 것이라도 알아야겠다. 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일부나 관련 담당자의 일이 아닌 모두의 일이 되어버렸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소년 소설이 이렇게 무겁다니. 생존, 자살, 자퇴를 키워드로 한 짧은 청소년 소설 세 편, 작가의 말을 대신하는 에세이, 에세이 속 다른 작가의 글인 발문. 세 편의 글은 무거운데 두 편의 에세이는 무거우면서도 담담했다. 좀, 많이 생각해 봐야겠다. 몸이 안 좋아 가볍게 읽으려고 했던 트리플 시리즈였다. 나는 어쩌다 최진영 작가라는 걸 까많게 잊었던 걸까. 책은 얇지만, 읽고 나서 섣불리 한 글자도 쓰기가 어렵다.

첫 번째 단편 <일요일>에서 작가는 ˝ ‘다르다‘와 ‘불공평‘은 얼마나 다른 단어˝인지, 그리고 ˝ ‘불공평‘과 ‘평화‘는 어떻게 다른 단어˝인지 묻는다. 나 자신에 관하여 10대는 아니더라도 정말 쉽지 않은 20대와 30대를 보냈고, 그럼에도 꽤 진취적이라고 자신했었다. 이게 자신할 종류도 아니고 어떤 자신감으로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글에 나오는 몇 특성들을 비교해보고 내가 그동안 꼰대 꿈나무였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아이구냥.

<수요일>은 등장인물 누구에게도 몰입되지 않아 어려웠다. 역시 꼰대 꿈나무였나...

<금요일>은 오랜만에 생각나는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래도 자퇴가 많지만(여기서도 꼰대 꿈나무 특유의 화법인 라떼가 나오지만 사실이 그렇다. ), 나의 여고생, 여대생 시절에는 미성년자의 자퇴가 거의 없었다. 그때 자퇴한 애들은 뭔가 학교에 큰 문제를 일으킨 애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사실 난 자퇴하거나 퇴학한 사람을 알지도 못했다. 그런데 대학생 때 했던 피자집 파트타임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생들이 자퇴를 했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되었다. 자퇴 이유 같은 건 물어본 적이 없다. 아마도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너무도 순했던 애들이라. 그 시절엔 정말 수다도 많이 하고 같이 영화도 보곤 했는데, 단편 <금요일>을 보다가 생각이 났다.

에세이와 발문은 트리플 시리즈지만 오히려 더 쉽게 닿았다.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