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은이),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이재황 (옮긴이) 문학동네 2005-07-30, 140쪽, 독일(체코) 소설
🪲 <변신>의 제목 자체를 생각해봤다. ‘벌레‘가 아니고 ‘변신‘이다. 내게는 변신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변한 느낌이 강하다. 예를 들면 마법소녀들이 요술봉으로 휙 변하는 것처럼. 그런데 책 속의 변신은 어느 날 갑자기 내린 일종의 저주에 가깝다. 그런데 주인공 그레고르는 상당히 자기 자신이 벌레로 변한 모습을 잘 받아들인다. 내적 갈등이 거의 없다. 그래서 든 나만의 어이없는 생각. 그레고르가 정말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을 위해서 희생을 하지만, 사실 지쳤던 게 아닐까. 여동생을 음악원에 보내고 싶어 하는데 여동생은 그냥 어리고, 그러는 와중에도 아버지는 몸은 멀쩡하지만 아무 일도 안 하시고, 어머니도 딱히 다를 바 없다. 그래서 한쪽 마음에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는 말은 못하지만 알아듣기는 다 알아듣는다. 그런데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알아들을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는다. 벌레가 되는 것이, 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나 치매 환자가 되는 것과 비슷한 의미라는 가정을 해본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도 환자가 된 가족 구성원을 못 알아듣는 사람 취급하는 상황이 많지 않을까란 무섭고도 슬픈 생각을 해본다. 나 자신도 너무 막말을 하지 않았었나 하는 죄책감과 함께. 어느 날 내가 벌레로 변한다면 가족들과 친구들은 내게 어떤 반응일까. 반대로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변한다면 나는 어떻게 대응할까.
🪲 내가 그레고르처럼 만약에 변했다면 어떻게든 다시 되돌아올 방법을 생각했을 듯. 가족이 변한 나를 이해해줄거란 판단은 안 하지 않을까. 무엇을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조건이 가족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레고르의 가족은 벌레가 된 그레고르를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이 상황에서 따뜻한 가족이 가능할까? 가족 개개인이 마음이 있어도, 노력해도 쉽지는 않을 듯 하다. 가족으로서 도덕적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 같이 모임을 한 분의 소감이 마음에 팍 꽂혔다. 그레고르는 가족과 회사에는 성실했지만 자신에게는 그렇지 못 했다며, 남을 위해 사는 것도 좋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삶도 중요하다는. 모임을 나누고 정리를 하면서 다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자기 자신에게 성실한 삶은 어떤 삶일까? 삶에 성실하다는 건 무엇일까? 부조리한 삶에도 성실해야할까? 답은, 아직 모르겠다. 충실히 살며 깊게 고민해봐야 겠다.
🪲 나누고 싶은 구절
˝내쫓아야 해요!˝ 여동생이 소리쳤다.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아버지. 저것이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다는 것 자체가 바로 우리의 진짜 불행이에요. 도대체 저것이 어떻게 오빠일 수 있겠어요? 저것이 정말 오빠라면 우리가 자기와 같은 짐승과는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쯤은 벌써 알아차리고 제 발로 나가주었을 거예요.
114p
#문학을낭독하는사람들
#문낭사
#빈칸놀이터프로그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