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책방 천일야화
2021년, 마흔 세 번째 책. (2021년 12월 읽음)
백창화 (지은이)
8월말 미영, 애리 , 영주와 함께 강화도 책방 투어를 할 때 들렸던 ‘국자와 주걱‘에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보자 마자 고른 책이다. 그 동안 읽을 책은 많고 시간은 없다가, 2021년 읽은 마지막 책이 되었다.
일단 표지가 정말 내가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었는데, 책이 있고 야옹이들이 있었고 따뜻한 밤 배경이었다. 제목이 무언가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헤라자데가 들려주는 천일동안의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한 동화 같은, 조금은 환상적인 이야기를 읽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막상 읽어 보니 이 책은 괴산에서 가정식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분의 동네책방이야기였다. 동네책방 이야기는 이미 소소하지만 몇 권 흥미롭게 읽었음에도, 처음에 가진 기대와 달라 어느 정도는 실망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쩐일. 읽다 보니 올 해 마지막 책이 이 책이 되어 너무 다행이고, 너무 또 너무나 많은 설레이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제목의 천일야화 처럼 이야기는 천권은 아니지만 끝없는 책 소개를 동네책방이야기와 묶어 전하고 있다. 소개된 책들을 보며 읽고 싶단 생각이 계속 들었고, 소개를 하는 그 글에서는 끊임없이 적고 싶은 문장들이 넘쳐 났다.
숲속책방의 이야기는 괴산의 시골 책방이야기와 책 소개 외에도, 동네 책방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훈계가 아닌 같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 한다. 그리고 책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책으로 세상은 변화 시킬 수 없지만, 책의 역할을 얘기한다. 직접적이지 않았으나, 책이 더 살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다는 대답을, 상처받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었다는 노트를 발견했다는 것으로 대신한다.
<˝책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책이 세상을 더 살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받은 날, 힘없이 계단을 올라가 다락방 청소를 하던 나는 손님들이 남기고 간 책방 노트에서 이 글을 만났다.
˝상처받은 내게 작은 위로가 되어 줘서 고마워.˝
- P6>
책을 읽는 건 사람과 마음과 세상을 읽는 거란 말이 와 닿았다.
<책을 읽고 사람들을 읽고 마음을 읽고 세상을 읽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었어도 육체는 서글프다‘는 시인의 말처럼 어쩌면 책이란 읽을수록 생에 서러움을 더해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읽지라도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읽은 책들이 숲속작은책방 서가에 쌓였다.
- P7>
많이 바뀌었지만 불과 몇년전에는 취미가 책이라면 올드하거나 너드같은 느낌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약 4년가까이 건대독서모임 브레이니에서 이런저런 마음을 나누었고, 브레이니가 파토날 즈음 인천독서모임을 시작하여 벌써 만 4년이 지났다. 책을 읽고 마음을 나눈다는건 너무 소중한 일이다.
<그 뒷모습이 어찌나 애잔하고 쓸쓸한지.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삶이란 쓸쓸하기 짝이 없고 주변에 가족과 이웃들이 있다 해도 한 권의 책을 읽고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이는 적다.
- P43>
도시는 아무리 동네책방이 망해간다해도 서점이 있고, 온라인으로도 많이 파니, 이렇게 서점이 없는 지역이 많을거라곤 생각 못했다..
<농촌 지역에는 서점이 별로 없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분석에 따르면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서점이 한 군데도 없는 서점 소멸 지역이 2019년 기준으로 5곳(인천 옹진군, 전남 신안군, 경북영양군, 울릉군, 경남 의령군), 서점이 단 한 곳뿐인 서점 소멸 예정 지역‘도 총 44곳이나 된다 (지역서점 현황조사 및 진흥정책연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9.12). 내가 살고 있는 괴산군도 그중에 속해 있다.
- P33>
나도 최근에야 동네책방을 이용하려하고, 올해는 동네책방서 사온 책이 반을 넘지만, 그래도 온라인 중고를 먼저 뒤적이고, 10%할인과 무배를 찾는다. 동네책방이 단순히 책을 파는곳이 아닌 커뮤니티를 위한 사랑방이되고 책을 파는 곳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지금의 경쟁은 쉽지 않지. 아니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현행 도서정가제의 최대 문제점은 불공정 경쟁이라는 점이다. 책은 그 성격상 어디에서 팔든 똑같은 상품일 수밖에 없다.
이런 똑같은 상품을 동네책방에서는 정가로 파는데 온라인 서점에서는 일단 10퍼센트 할인은 기본이며, 온갖 특혜와 화려한 사은품까지 선물로 받을 수 있다면 어떤 소비자가 동네책방에서 책을 사겠나.
- P103>
이 책을 읽다가 소리 내는 낭독, 좋은 글을 마음에 새기는 필사를 조금 조금 하면 좋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세상은 빨리도 흘러가서 책을 읽는 것도 하나하나 씹으며 되새기며 읽기보다는 효율적?으로 읽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을 읽으며 좋은 구절은 소리 내어, 좋은 구절은 남기면서 읽는 것을 하고 있다. 이렇게 불로그에 좋았던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 또한 시간의 양으로만 따지면 상당히 비효율적인 일이다. 그런데 무언가 시간을 들여 쓰고 나면 더 많이 남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나를 위한 기쁨이 있다. 그리고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기쁨이 있다. 책을 읽는 다는 게 효율을 따져야 할 일은 아니니까. 학생 때 외우던 시들을 기억도 못하지만, 정말 좋은 시는 한 편 정도 외워보아야 겠다.
<해먹 위에서 내가 가장 많이 읽는 책은 바로 시집이다.
사가 긴 책은 도무지 읽어 낼 수가 없다. 여기서 5분만 책을 읽으면 곧바로 스르르 잠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구름과 기분 좋게 머리칼을 날리는 실바람, 옆에서 속삭이는 새들의 노래까지, 이곳에는 부족함이란 없다. 더욱이 손, 혹은 발 닿는 거리에 책방 고양이 두 마리까지 함께 누워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것도 없다. 이런 만족스러움을 만끽하기 위한 허영심으로 나는 시를 읽는다. 누워서 읽는다. 소리 내어 읽는다. 읽던 시집을 배위에 얌전히 내려놓고 방금 읽은 시를 왼다. 외워 본다.
- P26>
이 책은 정말 천일야화다. 읽고 싶은 책이 한아름 쌓였다. 계속 보관함에 클릭 클릭했다. 읽어봐야겠다. 그러나 읽는 속도가 읽고싶은 책이 늘어나는 속도를 못 따라간다는건 공공연한 비밀! 아래 읽고 싶은 책 중 하나이다. 하정우의 걷는 인간을 읽으며, 걸어야 겠다 생각하고 걸으려 하고 있고, 지금은 때론 뛰고도 있다. 아래 구절을 보며 정말 읽고 싶었다.
<책방지기 인생에 아주 소중한 감동을 전해 주었던 책, <나는 걷는다〉였다. 프랑스 저널리스트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은퇴후 심한 우울증에 사로잡힌다. 아내와도 사별했고 이제는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삶의 우울을걷어 내기 위해 그가 선택한 건 실크로드 횡단의 여정이었다.
예순두 살 나이에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1만 2000킬로미터를 두 발로만 걸어서 완주했던 4년간의 기록이 책 세 권으로 묶였다. 처음 책을 발견했을 때는 선뜻 읽기 시작하기가 어려웠다.
한 권이 무려 50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 게다가 여행기라고 하면 아름다운 정경들을 사진이나 이미지로 담기 마련이라 대개글 반 사진 반인데, 이 책은 사진이나 그림이 한 장도 없고 글만 빽빽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뒤 어떤 여행기도 나를 감동하게 만들지 못했다.
- P37>
아... 여기 소개된 <우리집엔 할머니 한 마리가 산다>그림책을 읽어보고 선물도 해 봐야겠다. 읽지 않았지만 어떤 느낌이고 마음인지, 위 구절이 충분히 공감간다.
<책은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반려견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함께 사는 내내 기쁨이었던 반려견이 수명을 다해 점차 생명이 꺼져 가는 과정이 동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늙어가는 내 엄마에 관한 이야기처럼도 읽힌다. 어느새 책을 읽어 가는 친구의 목이 메고, 곁에서 낭독을 듣고 있던 친구가 갑자기폭풍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떠나보낸 반려견, 그리고아직 곁에 남아 점점 늙어 가고 있는 또 다른 식구 생각에 왈칵 울음이 터져 버린 것이다. 눈물은 전염이라 책을 읽고, 또 들으며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함께 울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함께 앉아 펑펑 울었다.
다 큰 어른들이 그림책을 읽으며 같이 운다는 것, 그래도 흉이 되지 않는 공간, 말로 미처 하지 못했던 내 안의 감정들이 무언가에 공명해 밖으로 터져 나오고, 그 감정은 다시 옆 사람에게 전이되고, 그래서 다 함께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책방에서는 자주 일어난다.
- P50>
책 마지마에 다른 책방지기님들이 남긴 응원 글을 보며, 연대의 마음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응원 받고, 또한 함께 어려운 상황을 견디고, 좋은 것을 한다는 공감된 마음의 힘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갔던 용인의 생각을담는집과 국자와주걱의 지기님들의 응원을 보며 반가웠다. 책방을 하고 싶다면, 더 많은 책을 추천 받고 싶다면, 책을 사랑한다면 이 책을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그 밖에 마음에 남은 구절, 내 맘대로 pick.
끊임없이 우리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나, 얼마나 더 발전해야 하나, 확장해야 하나, 땅을 더 사야 하나, 이곳을 떠나 이사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 시간을 살았다. 행복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늘 편치 않았다. 삶이란 끊임없이 문젯거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걸 실감하는 순간들이었다. 어제 읽은 책에선 이렇게 살라 했는데 오늘 읽은 책은 또 다른 길을가라 이야기하고, 어젯밤엔 깃털같이 가벼운 삶을 살리라 결심하고 훌훌 털어 버렸는데 아침이 되면 다시 또 삶의 무게에 휘청거렸던 시간들.
- P7
내 단잠을 방해하는 방문객들이 잠깐 성가시게 느껴지지만, 모쪼록 냥이 세상에선 ‘일하지 않는 냥, 먹지도 말라‘는 오래된 속담이 전해 내려오는바 몸을 일으켜 부르르 떨어 봅니다. 앞으로 뒤로 몸을 길게뻗어 쭉쭉 스트레칭도 한 번 하고요. 그리곤 자세를 바로 합니다. 오후 1시, 이제 책방 문을 열고 영업을 시작할 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이 시골 책방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존재, 영업이사를 맡고 있는 ‘나비‘입니다, 냐옹.
- P15
내 순찰 영역인 마을을 한 바퀴 다 돌아봐야 책 읽는 목소리 한 번 듣기 어려운 이 시골에 책을 파는 서점이라니, 말이 되냐고요. 한심한 집사들을 대체 어찌하나 걱정이었습니다. 그렇잖아요? 집사의 벌이는 그대로 아옹이 삶의 질과 비례하는데 걱정이 안 될 리가 없잖아요. 귀찮지만 어쩔 수 없이 나도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고양이 손을 빌면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지 세상사람들에게 한번 보여 주고 싶은 욕망도 있었고요.
- P17
다음 날 아침 마당 정자에 일명 그물침대, 해먹을 걸고 누워 흔들거리며 쉬는 조카를 보았다. 눈이 부셨다. 이모의 탐심에 조카는 결국 해먹을 그대로 둔 채 돌아갔고, 난 단 한 번도 치우지 않았다. 이토록 편안하고 사랑스러운 정원의 소품이라니.
- P25
말린 고사리 한 뭉치, 누군가에겐 하잘 것 없이 가벼운 것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겨우내 얼어 있던 땅을 뚫고 나온 봄의 소식이며 빛의 시간을 온전히 견뎌낸 보람이 아니던가. 그렇게 내게로 와서 살이 되고 피가 된 말린 고사리 한 뭉치. 가슴이 뭉클했다.
- P29
사람들이 바다에 병을 던지듯, 나는 실크로드에 나를 던졌다.
존재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나 먼 곳에서 무엇을찾을 거냐고 물었다. ‘살아남을 이유‘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 나는 가야만 했다. 살아 있는 한, 인간은 가야 하니까..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고정아 옮김, (나는 걷는다), 효형출판
인생 2막을 기약하는 이들에게 나는 언제나 이 책을 골라준다. 과거를 묻고 새 삶을 시작하고픈 이들, 쉼 없이 달리는 것으로 존재감을 확인하다 문득 멈춰 서게 된 퇴직자들, 그들에게 나는 새로운 시작을 이 책과 함께 하라고 권한다. 책은 때로 직접 하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해 주는 고마운 조력자다.
- P38
대신 세 권의 책을 통해 나만의 실크드를 걷는다. 어쩌면 야비한 방법이지만 독서란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은퇴한 선생님이 이 책을 읽고 당장 배낭을 꾸린다고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독서란 또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 P39
˝괴산에 와서 살아가며 가장 소중한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숲속작은책방이요‘라고 대답해 왔는데 소중한 이유가 또 하나 더해졌다. 책방에 와서 내 인생 책을 찾았다고 하는아이,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지금 자신이 살고있는 것 같다는 아이, 이렇게 저렇게 아이들의 마음 깊은 곳을건드려 준 책방에서의 하룻밤이 너무나 소중하다.˝
얼마 전 학교 북클럽 어린이들과 책방에서 북스테이를 하고간 초등학교 선생님이 남겨 주신 글이다.
- P45
우리 세대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내게 첫사랑 같은 설렘을 안겨 주었던 세계 명작들이 있다. <빨강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 <소공녀>, 〈작은 아씨들> 같은 추억의 명작들. 책 속에서 주인공들은 모두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냈고 그러나 시련의 끝에는 해피엔딩이 있었다. 그들처럼 가난이 보편이던 시절, 어려웠던 우리들은 앤과 주디와 세라, 조와 자매들을 통해 힘든 일상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웠다.
- P56
˝시련을 즐기지 말라. 시련은 흔히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고 하지만 시련은 사람을 깎아내리고 거칠게 하고 고통을 남길뿐. 애써 시련을 거둘 필요는 없다. 나는 네가 시련 없는 행복한삶을 살기를 원한다.˝
불안정한 젊음과 해답 없는 미완의 청춘으로 방황과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던 내게 이 말은 추운 겨울 아침, 눈앞에서 쟁하고 부서지는 햇빛마냥 명징한 언어로 다가왔다.
- P57
그럴 때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생각한다. 내가 가장 많이 울면서 읽었던 책. 꼬마 제제의 아픔이 그토록 처절하게 다가올 수가 없었다. 제제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내 머릿속에 항상 질문으로 남아 있던 그 삶을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다시 만났다. 시리즈의 2부인 〈햇빛사냥), 3부인 (광란자)가출간된 것을 알았다. 짧은 유년기 이후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제제의 청년기가 가슴 아팠다. 그리고 도서관 관장이 되어 다시읽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나를 제제보다 뽀르뚜가 아저씨에 감정 이입하게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인가를 고민하게 했다.
- P63
할머니란, 모든 것을 보듬어 주는 따뜻한 존재가 아니라 실은 괴팍하고 까탈스럽고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존재라는 걸 나를 통해 확인하는 순간 책 속의 삶과 책 밖의 현실이 괴리된다. 아아, 나의 현실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 P63
˝온갖 새가 계속해서 우는 소리가 들리고 아름다운 고양이두 마리가 느릿느릿 걸어 다니고 하늘은 시시각각 변하고인기척처럼 바람이 불면 꽃들이 하늘하늘거리고, 그 마을에가서 느꼈던 충격이랄까, 감동 같은 것은 저의 미래와 연결되어있을 것 같은 그림 한 장일 텐데요. 그곳에서 누군가를기다리는 삶이에요. 이렇게 조용한 곳에 조용히 있으려고 들어왔지만 어느 한편으론 사람들을 끊임없이 기다리고 때 외로움을 다독이고……. 그 시간에 책을 읽고, 책장을 정리하면서 사는 내 미래의 삶은 어떤 것일까, 생각하게 된 것이죠.˝
- P67
한 사람의 꿈이 다른 누군가의 꿈으로, 나의 삶이 어느 낯선 타인의 삶으로, 이렇게 마음은 돌고 돌아 긴 인연의 끈으로 지구를 휘감고 그래서 세상은 아직 조금 더 살아볼 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 P67
나 역시 큰 도시에서만 살다가 시골로 이사 와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일을 겪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처음엔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관계가 틀어진 자리에 한숨과 한탄이 남았다. 되돌아갈 수 없기에 마음을 다잡고 남과 관계없는 나의 삶을 살기로 했다. 묵묵히 집과 정원을 돌보고 마음밭을 가꾸다 보니 척박한 돌밭이 윤택해졌고 상처가 퇴비가 된 자리엔 예쁜 꽃이 피었다. 비로소 삶을 이해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조급해하지 않는 법을 배우니 시골살이가 살 만해졌다.
- P79
마음은 먼 미래를 바라보며 꿈을 꾸지만, 현실은 오늘도 하루하루 그림을 그리는 대신 노동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차가운 겨울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 공모전에 출품할 작품을 그릴 시간이 없고, 당장 먹고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만 하다보면 꿈꾸던 작가가 될 날이 참으로 요원하다.
- P90
학교 선생님들이 방문할 때마다 이런 설명을 구구하게다. 지역에 서점 하나가 살아 있는 것이 지역 문화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작은 책방에서 할인하지 말고 책을 구매해라고 여러 번 얘기했다. 시골에 있는 작은 책방을 사랑하고.
우리를 응원하는 몇몇 학교와 교사들은 이런 호소에 귀를 기울여주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말 일부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도교육청 장학사를 비롯해 괴산뿐 아니라 충북 지역 많은 학교와 교사들이 책방에 견학 혹은 연수라는 이름으로 단체 방문했다. 이 공간이 정말 좋다며 가족과 꼭 다시 오고 싶다고 이야기하지만, 돌아가서 우리 책방에 공식적으로 책을 주문하는 곳은 많지 않다. 개인의 응원이 시스템을 움직여 실제 협업과 지원로 돌아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고 있다.
- P104
20년 세월을 가뿐히 뛰어넘어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순정만화의 전설이 되었고, 이 만화를 읽었던 소녀들이 엄마가 되어 다시 딸과 함께 읽겠다고 펀딩에 힘을 보탠 것이다. 또한 잊지 못할 불후의 명언을낳은 작품이 아니던가. ‘인생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다‘, 복잡다단한 우리들의 운명과 삶을 한마디로 정리해버린 그 작품 앞에서 나는 고개를 숙인다.
- P110
만화로 우리 사회 내면을 들여다본 북직한 작품 중에 발군은 윤태호의 <미생>이다. 2012년부터 다음 웹툰 플랫폼에 연재를 했던 이 작품은 새 회차가 나올 때마다 눈이 발개지도록 울며 봤던 작품이다. 작가가 그린 만화는 북받치는 감정을 애써 눌러가며 읽었으나 독자들이 올린 댓글을 보다가 끝내 눈물이 터져 버린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닐 테다. 바로 이게 웹툰이 가진 힘이라는 걸 느꼈다. 만화가 올라오면 순식간에 수백, 수천의 댓글이 주르르 달리는데, 댓글을 읽으면서 공감의 폭과 깊이가달라진다. 본문 내용은 물론이지만 댓글 사연을 읽으며 눈물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 P112
네 편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한결같다. 개와 고양이를 내세웠지만 실상 그것은 가난한 인간들의 이야기며 상처와 고통에 관한이야기다. 책 속에서 개와 고양이를 버리고 학대하는 사람들 역시 이 사회의 가장 취약지대에서 하루하루 생존을 근심해야 하는 약자다. 교과서는 약자끼리 힘을 합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 약자들은 생존 앞에 비루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인간은 생존이라는 절대 과제 앞에 으르렁대는 야수와 다를 바 없고 따라서 김중미 작가의 동화 속에서 개와 고양이와 인간은 서로 종만 다를 뿐, 벼랑 앞에 내몰린 삶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 P113
시골로 이사를 하면 사실 개를 키우고 싶었다. 새끼 곰처럼 덩치가 산만 한 커다란 개와 푸른 잔디밭을 뒹구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막상 시골에 와 보니 개들은 목줄 하나씩을 매단 채 좁은 마당만 하릴없이 맴돌고 있었다. 인간과 친구가 되어 배고픔과 추위를 벗어나게 된 대신 자유를 잃어버린 개들이 나는 슬펐다.
이렇게 인간을 위해 길러지고, 인간에게 덕을 끼치는 동물들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삶의 반려로 생각하고 있을까.
- P132
누군가의 빈 집에는 개 한 마리가 조용히 죽어 있다. 목줄만 풀었어도 다니면서 먹이를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이삼일이면 돌아올 거라 생각했던 주인의 다급한 걸음이 원망스럽다. 아니, 이런 지옥의 풍경을 만들어 낸 인간들의 탐욕과 문명이 무섭다. 이 모든 게 단지 바다 건너 일본의 일일 뿐이라고,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누가 말할 수있을까. 인간에 대해,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본다.
- P134
사르트르는 ‘작가란 폭로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세계를 드러내고 누구도 그 세계에 관해 책임이 없다고 회피할 수 없도록 하는 문학의 힘을 저는 믿습니다. 살아야겠다는 제게 그런 소설로 읽혔습니다.
제게 문학이란 그런 것입니다. 삶에 대해 가르쳐 주고 진실과 거짓 사이, 빛과 어둠 사이, 나와 타인의 사이에 흐르고 있는 깊은 강을 응시하며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게 만드는것입니다.
- P136
감정을 넣어 소리 내 글을 읽다 보면 달라지는 주변의 공기를 느낄 수 있다. 눈으로 조용히 책을 읽을 때와는 다른 격렬함과 열정이 전해져 온다. 때로 그 열기가 온몸으로 퍼져 마음과함께 몸이 반응하는 독서의 또 다른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 P149
지역주민들은 도서관보다 좀 더 자유롭고 열린 분위기를 지향하는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책을 매개로 문화를 만들어 간다. 나아가서는 지역의 사람과 공간이 점점이 연결되어 우리 지역의 생활문화 지도를 만들어 내고 지역 공동체가 회복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애정을 갖게 하는 것. 돈으로 결코 환산할 수 없는 만남과 소통과 향유의가치로 바꿔 놓는 것. 그런 일들이 우리가 바이 로컬 캠페인을통해 할 수 있는 일이다.
- P153
좋아하는 책을 말해야 오늘 밤을 살아남을 수 있다면 나는 천일 동안 쉼 없이 책의 이름을 대고는 기어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 가운데는 폭풍같이 휘몰아쳐 내 감정을 흩어 놓은 것도, 도끼처럼 내 생각을 쪼개 버린 것도, 읽을 때는 한없이 비밀스러웠으나 읽고 나선 미련 없이 던져 버린 것도 있을 테다. 그 천권의 책을 한 줄로 세워 일일이 무게와 경중을 잰다면 어떨까?
- P158
도서관은 사후 세계이고, 한 사람이 읽은 모든 글이 보관된 낡은 캠핑카는 천국이다. 이 천국은 대체 무엇일까? 우리가 몇 시간씩, 몇 주씩, 평생토록 책을 읽으며 갈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후의 완연한 햇살 아래 아늑한 의자에 앉아 아끼는 책을 영원히 읽을 수 있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희생할 수 있겠는가?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권예리 옮김, <심야 이동도서관), 이숨 인용
- P161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나비와 공주, 책방 고양이 두 마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심야 산책을 하며 이 천 권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게 외우고 또 외워 본다.
- P162
아이슬란드에서 작가는 대략 최고의 직업이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자기네 작가들을 무척 사랑한다. 이것은 일종의 자아도취다. 아이슬란드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작가 아니면 시민이기 때문이다.
- P166
그때껏 읽어 왔던 많은 책의 이야기가 쌓이고 쌓이다가 중요한 어느 순간, 뒤통수를 탁 후려치는 책을 만나게 되는 것이리라. 이것은 마치 구름 속에 가려진 햇빛이 반짝 나왔을 때, 하필 그 순간 밤새 내린 빗물에 흙더미가 씻겨 내려 숨겨진 보석의 반짝거림을 만나는 것과 같은, 그런 운명적인 찰나와도 같이리라. 그렇게 그 책은 내 인생의 소중한 한 권이 되었지만, 사실 그 한 권의 뒤에는 수많은 독서의 체험이 깔려 있다.
- P170
각성의 토대 위에서 내가 살던 지역에 ‘작은 도서관을 시작했다. 책을 좋아하고 책이 결국 사람을, 사회를 변화시킬 거리는 믿음을 갖고 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 P172
때로 한 권의 책은 사람의 삶을 바꾼다. 그 한 권을 만나고 싶어 오늘도 우리는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 서가 앞을 서성이고 또 서성인다.
- P173
‘디아스포라‘는 원래 이산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켰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본래 살던 땅을 떠나거주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좀 더 폭넓게 사용한다.
- P177
재일동포 2세로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고 있는 저자 서경식은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그들의 삶과 생각을 전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경계인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에 가서 실재하는 존재로서 그들을 마주 대하며 역사와 운명의 수레바퀴에 치인 개인의 삶, 그 처연함에대하여 마음으로 느꼈다.
- P178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인간의 본능과 욕구는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고 음모와 모략이 판치는 이전투구의 삶 속에서살아남은 자가 이기는 것이라는 승자독식의 결과론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하지만 그렇게얻어 낸 교훈 역시 지금의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더욱 견고히 하는 데 쓰일 뿐이니 지식인의 독서가 과연 세상을바꿀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서 나는 회의할 뿐이다.
- P183
오오, 이 책이야말로 ‘고전이란 읽어야 한다는 소문은 무성하지만 정작 끝까지 읽은 사람은 별로 없는 책이라는 정의에딱 부합하는 그런 책이 아니던가. 학교 다닐 때부터 이 책에 대한 해설은 얼마나 많이 들었으며 인용된 구절만도 얼마인가 그러나 내겐 아무리 애를 써도 읽을 수 없던 책, 한 줄, 한 장도 주해가 없이는 넘어갈 수 없는 난공불락의 책, 문자를 보고 있어도 내용이 전혀 그려지지 않는 책. 대체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고하소연을 늘어놓았더니 단테 신곡 강의〉라는 책을 권한다.
- P185
마침 텔레비전에서는 일타 강사가 이 책을 읽어 주고 있었다. 그래서 책방 북클럽에서 이 책을 읽어 보기로 했다. 혼자 읽기 어려운 책, 도전하기 힘든 책은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으면좋다. 소화능력에 따라 분량을 조절하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읽으면 되기 때문이다. 간혹 중간을 놓치더라도 대신 읽어 온 이들의 발제와 토론을 들으면 모임 뒤라도 책을 쉽게 읽을수 있다.
- P187
나는 생각한다. 전쟁 중에도 사랑을 하고, 폐허가 된 땅에서도 예술은 고통 속에 꽃을 피운다. 음악이 주는 힘은 놀랍고도 놀라워서 고통을 잊게 하고 상처를 아물게 하며 우리를 위로하고 달래는 치유의 능력이 생각보다 크다. 이 비관적인 어둠의 터널을 지나면서 음악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위로를 받았을까. 그 힘으로 또 하루를 버티고, 웃고, 힘을 내서 다시 내일을 살아간다. 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어떤 이에게,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그 하루는 코로나로 힘든 수개월을 살아남게 하는 힘이다.
- P191
길가에 보리수가 한 그루 서 있어.
처음으로 그곳에서 잠들어 안식을 찾았네!
보리수 아래로꽃들이 눈송이처럼 내 위에 내려앉았지.
나는 거기서 세상 모든 것을 잊었고,
모든 것이 다시 좋아졌지.
모든 것이, 사랑도 고통도 그리고 세상도 꿈도!
- 이언 보스트리지 지음, 장호연 옮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바다출판사
- P193
˝남은 인생 동안 만일 책을 읽는 것과 음악을 듣는 것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할 거예요?˝
- P195
단 하루도그것이 연주든 걷는 행위든 운동이든 혹은 독서든, 매일 아침 그것이 없이는 하루를 시작할 수 없는 그 위대한 일상의 힘이 내게는 있는가. 이것은 평생을 살아오면서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던 질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없기 때문에 오늘 나의 삶은 이다지도 초라한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 P201
나이가 들면서 경험한 세상은 그렇게 가볍게 치부하기에 너무 망가져 가고 있고, 인간이라는 종의 야만성이 충분히 그런 지옥을 불러올 만큼 교양을 압도하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렇게 어두운 디스토피아에서 여자의 삶은 더욱 혹독하다.
- P207
그 불편함을 참으며 끝까지 읽어 볼 것을 권한다. 불편한 것들은 내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 그 불편함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 P210
아름다운 글은 읽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름다운 글을 낭송하다 보면 아름다움이 눈앞에 잡힐 듯 선연하게 다가온다. 아름다운 글을 옮겨 적다 보면 아름다움이 내 안에 스며든다. 뜻을 몰라도, 이해하지 못해도 아름다운 것은 따라해 볼 만하다.
- P214
그림책의 정의 중 최근에 가장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게 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 누구나 보는 책‘이라는 표현이다. 원래 그림책은 어린이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림책을 보는 어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 P218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용정, 문학과 청춘이 영글었던 서울, 생의 마지막 순간이었던 교토와 후쿠오카를 차례차례 다니면서, 별처럼 멀리 있던 시인은 비로소 내 작은 책방 서가 한편에 꽃으로 내려앉아 나와 함께 숨쉰다. 그리고 나는 다짐한다. 잊지 않으리라. 그러나 과거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리라. 새로운 길을 가리라. ‘내가 가장 예뻤던‘ 그 시절은 나의 어제가 아니고 지금 이 순간이다. 그러니걷자. 새로운 길로.
- P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