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소텔 이야기 2
데이비드 로블레스키 지음, 권상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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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성장소설이 뭐 그렇고 그렇지 뭐..편견이라고 할까 아님 '단 한 편의 소설로 전 언론과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한몸에 받으며 무섭게 등장한 신예작가' 라는 극찬에 가까운 소개 덕분이었을까 책을 읽기 전 가진 기대감은 반감되어 있었다는 말이 맞을 거 같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고 너무나 화려한 등장은 오히려 그 감동을 전달하는데 방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읽으면서도 역시나 그렇군! 하는 씁쓸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그런가 보다.

 

책을 받는 순간 느껴지는 포스는 평온함이었다.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 권의 책을 손에 들고는 이 책을 언제 읽지? 하는 두려움 보다는 먼저 느껴진 것이 편안함이었다. 목가적인 풍경과 소년과 그 옆은 지키는 커다란 개.. 언젠가는 답답하고 전쟁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내 꿈을 표현하기라도 한 것처럼 너른 들판 바람에 흔들리는 초지의 모습이 마음을 끌어당기며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책읽기가 시작되었다.

 

데이비드 로블레스키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는 『에드거 소텔이야기』는 말을 할 수 없는 아이 에드거와 그 가족들 그리고 평생의 친구인 개 앨먼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별한 개들을 교배하고 훈련시켜 분양하는 일을 가업으로 시골농장에서 아버지 가르와 어머니 트루디와 함께 소박하게 생활하는 에드거는 자신이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

 

자극적이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견공들의 이야기가 1권의 초반에 집중되어 있어 읽는 내내 즐겁다. 그래서 넘어감이 버겁지 않았다.  커다란 개와 작은 꼬맹이들 그들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 특성을 파악하는 일들 그리고 함께 하는 훈련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차피 개들과의 대화는 인간의 언어가 아니다. 에드거가 말을 할 수는 없어도 마음으로 표정으로 행동으로 개들과의 소통을 하고 있다. 강압적이거나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와 사랑과  배려를 통한 대화가 마음에 썩 든다. 그래서 이 책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개들의 내면세계 또한 놓칠수 없는 부분이다. 말이 새어나갈 일이 없기에 비밀을 얘기할 수도 있고 모의를 하는데 가장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 주기도 한다. 에드거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지만 나도 그와 교감을 하는 일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면 조금의 신체적 문제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에드거의 생활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고를 당하면서 변화해 가기 시작한다. 119로 전화를 걸었으나 말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사고소식을 전할 수 없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죄책감을 갖게 되는 에드거... 큰 울타리였던 아버지가 없던 자리를 십대의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컸고 앞으로 전개될 일에 가슴을 졸이게 된다. 이제  평범하고 잔잔했던 에드거의 생활속에 닥쳐올 그 어떤 일들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저자의 문체속에 에드거를 응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평온했던 에드거의 가족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삼촌인 탕아 클로드의 등장과 함께 였다. 아버지 가르가 있을 때 다툼면서 집을 떠나버린 클로드는 가르의 죽음 후 힘겨워하는 가족들의 힘이 되어주기는 커녕 농장의 삶에 관여하며 서로 사랑하던 가족들 사이에 반목이 생기고 의견 충돌을 만들어 낸다. 결국 슬픔과 혼란을 극복하지 못한 에드거는 세마리의 개와 함께 농장을 떠나게 되고 이제 살아남기 위한 생활을 하며 스스로가 자라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 두꺼움에도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어떤 현란한 문장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아님에도 시선을 뗄 수가 없다. 힘들이지 않고 읽으면서도 감각적인 언어에 빠져 에드거와 함께 울고 웃고 힘겨워 하며 여행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고 놀라게 된다. 풍요롭다는 아마 이 책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내용의 풍성함과 넉넉함 그리고 가슴 가득히 담긴 충만함을 고루 갖춘 이 책.. 한동안 내 책장을 떠나지 못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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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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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읽으면 몰아치기 인가? 어제 온다리쿠 책의 행복함이 채 식기도 전에 요시다 슈이치를 만나게 된다. 내가 한동안 일본 소설을 멀리 했다고 했던가? 웃기는 이야기다. 빠져들면 헤어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것이 일본 소설인 듯 하다. 역시 가깝다는 것은 비슷함을 가장한 정서를 이끌어 내는데 최고의 조건이다.워터 악인에 이은 세번째 만남이다. 워터야 성장소설이었고 악인은 그 두께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연애소설로 만나게 되는 요시다 슈이치가 남녀의 사랑을 어떻게 풀어내었을지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기대하면서 책장을 펼쳤다.

 

다큐멘터리 제작가인 슌페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교코 이 둘이 주인공이다.

어떤 현장이든지 소리를 모으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세상의 돌아가는 일들을 알리는 슌페이와 소리 없는 세계속에서 살아온 교코의 만남은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전달이라는 매개체가 다른 두 사람이 짧은 단어가 적힌 메모와 마음으로 서로 소통해 가며 닮아가는 모습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여느 연인들처럼 토닥토닥 싸우기도 하고 애절하게 안타깝기도 하고 미치도록 그립고 보고 싶기도 한 서로의 마음을 전달한 목소리가 없기에 항상 조용하고 차분하게 만남을 이어갔다. 하지만 역시 무리인가. 느끼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서로에 대한 사랑은 슌페이를 지치게 만들고 점차 마음에서 멀어지게 만드는데.. 어느날 쿄코가 사라졌다.

 

귀을 막아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갑자기 무서워진다. 주변의 모든 소음이 일시에 사라진다는 느낌이 이런것일까. 익숙하다기 보다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소리는 언제나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소통의 매개체였다.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목소리에 감정이 담겨 있었고 목소리를 통해 그날을 기분을 파악했다. 정적은 답답하고 지루한 만남이었고 서로의 일상에 대한 재잘거림은 활기찬 데이트를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서로의 소통이 단지 짧은 메모라니 과연 그 마음을 온전히 알수 있을지 궁금해 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을거 같기도 하다. 말은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슌페이와 교코는 쉴새 없이 내뱉은 생각없는 말들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정리되고 정돈된 몇 마디의 글로 서로의 마음을 보듬는다. 그 안에는 날카로움도 순화되고 비난의 단어라면 여러번 생각하게 된다. 시간을 담보로한 소통은   최소한의 말. 적으면 적을 수혹 상대에게 확실하게 가 닿는 말 (p48) 로 표현되게 되고 세상사람들이 말을 너무 많이 하기에 벌어질 수 있는 온갖 일들이 조금씩 희석되어 감을 알 수 있다.

 

전에는 입에서 머저 튀어나왔던 말을 일단 머리속에서 문장으로 바꾼후, 그것을 메모장에 쓴다.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그 과정이 '사람이랄까'. '인간의 감정' 을 가라앉혀 버리는 일도 있는 것이다. p58

 

태풍의 눈안에 있는 고요함처럼 교코에게는 주변의 소음이 문제가 되지 않고 그녀의 일상은 평온 그 자체이다. 주변에서 피를 흘리며 살기등등하게 싸움이 벌어져도 관리인이 불평불만을 쏟아 부어도 보안시스템이 작용하여 온동네에 비상벨이 미친듯 울려퍼질 때도 그녀의 주변은 온통 조용함이다. 정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평온함이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화를 낼 필요도 급할 필요도 없다. 세상의 온갖 소리가 담아내야 했던 직업을 가졌던 슌페이가 느꼈던 고요의 부담스러움은 어느새 그리움으로 변해  이제 슌페이는 쿄코를 찾아 나선다.

 

너무나 많은 소리에 둘러싸여 우리는 무엇을 보지 못하고 모르고 살고 있었던 것일까? 말이 주는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소설이었다.. 근데 이거 연애소설 맞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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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코스모스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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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일본 소설을 멀리했다.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그들의 사고가 너무나 내게 익숙해졌다고 해야 할까 가깝거도 먼나라 일본에 대한 살짜쿵의 반기였다. 좀 더 다양한 소설을 읽어 보고 싶었고 우리와는 생각과 문화가 다른 서양인들의 소설속으로 빠져 보고도 싶었다. 뭐 그렇게 성공한 반란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온다 리쿠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서 궁금했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전작( 한 작가의 책을 전체 읽기) 을 하고 싶다거나 그녀의 모두 소장하고 싶다는 이야기들을 종종 하고 있어서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오쿠다 히데오나 가네시로 가즈키와 같은 일본 작가의 책이 모두 내 취향이 었던 것은 아닌지라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것이 바로 초콜릿 코스모스 이다.

 

어린시절을 만화방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순정만화에 빠져 정신 못차리던 내 기억을 웃으며 동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곘다. 열 몇권이나 되는 책들을 한꺼번에 돈을 내고 읽을 수가  없어서 서서도 읽고 친구가 읽는 것을 어깨너머로도 읽곤 했었다. 그 기억 한편에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난하지만 헤어와 패션에 관해서 만은 타고난 천재 소녀와 어릴적부터 주변의 기대를 받고 화려하게 패션계에 데뷔했던 길러진 소녀의 숨막히는 경쟁이야기에 대한 것이 있었다. 초콜릿 코스모스는 그 친구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연기 초보자 사사키 아스카의 천부적인 연극에 대한 감각은 연습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뛰어난 직감과 연출력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관찰력과 암기력 이 모두가 그녀에게 신이 부여한 선물이다. 어릴적 부터 가라테를 익혀 몸동작도 가볍고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다. 배역속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배역이 되는 것이다. 내가 없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그녀에게 굉장한 오디션의 기회가 온다.

 

여기 또 한명의 배우 교코가 있다.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연극과 영화 매체에서 일하고 있어 어릴적부터 배우가 천직임을 알고 일해왔다. 어떤 역활이 맡겨져도 본인으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고 인기도 많지만 아직 나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해 본적이 없다. 정말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해야 하기에 하는 것인지 스스로도 판단이 안선다. 그저 최고의 위치에서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좋아 이일을 계속하고 있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그녀에게 선택 받지 못했다는 좌절을 안겨준 오디션이 있다는데...

 

두 명의 여주인공만으로 이루어진 연극을 준비하는 전설적인 프로듀서 세리자와 다이지로의 신작 오디션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숨막히는 경쟁이다. 1차 오디션은 서로의 연기를 볼 수가 없고 2차 오디션은 서로의 연기를 볼수 있으나 비교당하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여기 온타리쿠의 소설의 최고의 매력이 부가된다. 마치 내가 오디션을 받는 듯 긴장이 이어지고 연기하는 배우들의 숨소리가 느껴진다. 빠른 전개에 눈을 뗄수도 없고 활자로 읽고 있는데 내 눈앞에는 영상을 보든 모든 그림이 그려진다. 나는 이미 책을 읽는 독자가 아니다. 무대위 그들의 연기를 함께 보고 있는 관객이 되어 몰입하고 있다. 손에 땀이 흐르는 채로.

 

천재들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다면 미웠을지도 모른다. 아스카도 교코도 말이다. 하지만 그 둘에게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고 오디션을 보는 동안 스스로가 깨닫게 된다.  분명 세리자와 다이지로의 날카로운 안목에 서서히 극복해 나갈 것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수 있다.

 

잊고 있던 충동이 몸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렇다 무대는 어디까지나 소우주, 그곳에는 영구한 시간이 흐르고 귀족의 성도, 망망대해도 나타날 수 있다. 과거도 미래도 마음먹은 대로. 무대에는 늘 우리의 전부가 있다. p504

 

온다리쿠... 그녀의 다른 작품들이 너무나 기대되어진다. 이제 나도 그녀의 포로가 된건가...... 너무나도 즐거운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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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발칙한 지식인을 만나다 - 왕을 꾸짖은 반골 선비들
정구선 지음 / 애플북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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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목숨은 하나다. 권력자에게 대항을 할 때는 사실 목숨을 내놓는다는 심정으로 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왕권이 어느 시절 보다도 굳건하고 셌던 조선시대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가장 힘 센 사람에게 다른 의견을 말한 다는 것 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 나와 관계된 일이 아니라면 나조차도 그냥 묻어버리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선의 지식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왕의 심기를 건드릴 줄 뻔히 알면서도 충언이라면 직언도 마다하지 않았던 열다섯 처사들의 이야기가 담긴『조선의 발칙한 지식인을 만나다 애플북스』를 만나본다.

 

자신들이 가진 재산인 학문과 인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교육에 힘쓰고 정치의 중심에서 권력을 탐하기 보다는 재야에 묻혀 자연과 벗삼아 세상의 오류를 시로 읊어 내던 처사들 그들이 바로 발칙한 지식인들이다. 처사의 뜻은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들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조선시대의 개념은 약간 다르단다. 관직에 임명되었어도 이를 거절하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출사를 했다고 하더라도 돌아와 은거생활을 하던 일들도 모두 포함되어 있단다. 요즘이라면 공무원이 되는 길을 마다했다는 이야기인데 글쎄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든지 내 먹고 살 일만 해결되면 된다고 생각하는 나라 녹을 먹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한 현실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한다.

 

전하는 왕위에 오른 뒤 도대체 무엇을 하셨습니까?

이 말이 절절히 다가오는 이유는 요즘 정치권과 너무나도 맞아떨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무릇 지도자란 자신의 안위만 걱정해서도 안되고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서도 안된다. 그 위치란 것이 큰 돈과 힘을 좌지우지 할 수 있기에 무슨 이유로 자신이 그 자리에 있는지를 마음속에 머리속에 두고 한시 잊어서는 안된다. 어렵고 힘든 시간일수록 백성들은 지도자들의 멋진 활약과 결단을 기대하게 되고 이에 부응하여 행동하는 것이 다시금 나라를 활기차게 돌아가게 하는 일이다. 조선시대 왕이 실정을 할 때면 상소를 올려 꾸짖고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처사들, 그 처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선비라 함은 도포에 갓쓰고 예절을 중시하며 걷는 것 마저도 조심스러운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예와 도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며 유교적 관점에서 항상 생각하여 보수적이고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들이라 때론 답답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올곧은 사고와 지식이 있었기에 조선의 처사들은 물질적 유혹에서 당당할 수 있었고 어떤 힘의 경쟁에서도 기죽지 않을 수 있었으며 자신들이 하고픈 말을 모두 뱉어버리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날카롭지만 옳은 이야기를 쏟아내는 처사들 앞에서 그들을 힘으로 굴복시키려 때론 벼슬로 달래보려한 임금의 모습은 더욱 초라해 질 수 밖에 없었으리라.

 

멋지다. 왕을 꾸짖을 수 있었던 반골 선비들의 끝이 항상 행복했던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멋지다. 때론 가난에 휘청이고 때론 정치싸움의 희생양이 되어 사라져 갔다 하더라도 바른 말을 서슴치 않았던 그들의 정신이 남아 지금의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을 보니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조선의 유명한 선비도 대단한 재상 아니었다지만 그들과의 만남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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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전 3
이종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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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는다. 언젠가 본 주온이 떠오른다. 고개가 꺽인채로 계단을 내려오고 있던 그 끔찍한 공포에 손발이 오그라들었던 기억이 있다. 호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뭘 그 정도 가지고' 하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유달히 무서움이 많은 내게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괴로움이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그 괴로움을 즐기고 있다. 내게 스릴러나 SF 적인 장르소설들이 유난히 많이 읽히는 이유는 그 무서움과 끔찍함이 마지막에 통쾌함으로 또는 여운으로 남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은근히 날씨가 더워지는 요즘 공포와 스릴러물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그 길목에서 '분신사바','이프' 등의 공포소설등으로 익히 알려진 이종호씨의 소설 "귀신전 3(랜덤하우스코리아 200903)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귀신을 본 적이 있는가? 어른들 말씀에 죽은 사람을 꿈속에서 보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라고 했다. 이미 이승과의 연을 끊은 이들인데 산자의 공간을 돌아다닌 다는 것은 그만큼 미련과 연민과 증오가 죽은 자들의 쉼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처럼 누구도 가 보지 못한 저승을 상상하는 일은 어렵다. 추억이라는 또는 미움이라는 이유로 산자와 죽은자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자들 그들을 물리치는 자들이 퇴마사들의 이야기가 귀신전에서 펼쳐진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무너지고 악귀들이 쏟아져 나오는 귀사리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본 퇴마사들과 악귀와의 대결이 귀신전의 시작이었다. 이전에 나왔던 퇴마록의 주인공들보다도  조금 더 밝고 장난스러운 퇴마사들인 선일, 박법사, 용만, 수정, 찬수, 공표가 그들이고 나이도 하는 일도 생각도 다르지만 서로를 의지하고 이해하고 세상을 편안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누구보다 강한 그들이다. 무서움과 맞서고 일반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악령과 싸우는 것만이 다가 아닌 서로를 사랑한다는 휴머니즘이 있어 따스함이 함께 있는 공포소설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집안에 남이 버리는 물건을 들이지 말라. 이야기의 출발은 세연이 아버지가 가져온 경대에서 시작된다. 골동품 수집이 취미인 아버지가 얻어온 경대 그 안에 숨겨진 악령의 저주가 세연이 가족을 위협하는데.. 온 집안을 핏빛으로 감싸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상황속에 보이는 것이 다 진실이라고 믿을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고 믿지 말아야 한다. 오오오... 읽는 동안 온 몸에 떨림이 오기 시작한다. 폐쇄된 학교 음악실에서 사라지는 인하, 그녀를 찾기 위한 공표의 노력이 이어지고 자꾸만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의 정체, 어린 퇴마사의 앞에 무슨일이 펼쳐지려고 하는지 눈을 뗄 수가 없다.

 

누구보다 예쁜 수정을 항상 시기하는 숙희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수정이기에 자신과 항상 비교할 수 밖에 없는 숙희는 무언가 비밀을 가진 친구다. 점점 이야기의 중심을 다가오는 숙희, 불기만 하면 나쁜 일이 일어났다는 그녀가 어릴 적부터 몸에 지녔다고 하는 피리 설을 불게 되고 연이어 이어지는 불길한 일들, 어쩌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무너지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숙희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혼자 그려보게 된다. 그리고 퇴마사들 앞에 본격적인 악령과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정말로 후다닥 읽었다. 멈출수도 없었고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도 했다. 살짝 숙희와 천수 그리고 용만과 수정의 엇갈리는 로맨스도 보이는 듯 했고 4권에서 이어질 엄청난 사건들을 통해 공포소설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이종호 작가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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