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상처가 나에게 말한다 - 나하고 얘기 좀 할래?
울리케 담 지음, 문은숙 옮김 / 펼침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공교롭게도 하루사이로 읽은 두 권의 책이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내면의 아이를 간직하라'

물론 겉으로는 전혀 다른 유형의 책이다. <어린시절 상처가 나에게 말한다>는 심리치유사가 쓴 심리학 책이고, <유태인 가족대화>는 가족 상담가가 쓴 육아 지도서다. 심리상담을 공통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저자 간의 유사점이 분명하긴 하다. 

두 책에서 단연 이 메시지가 돋보였다고는 할 수 없었는데도 굳이 눈에 띄였던 데는 퇴행하라는 말도 안되는 조언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내면의 아이를 불러내라는 말은 반듯한 어른의 삶으로 잠입하기 위해 애써 일궈온 성과들을 무너뜨리는 말 같기도 하고 유치함의 소치인 '자기 멋대로 구는 사람들'을 옹호하는 발언같기도 했다.  

도데체 이 두 책이 간직하라는 '내면의 아이'란 어떤 모습일까.

우선 <어린시절 상처가 나에게 말한다>는 누구나의 안에 아이가 존재함을 기정사실화한다. 순지무구함, 연약함, 즐거움, 태평함, 호기심, 사랑의 능력, 제멋대로, 등은 어른 안에도 충분히 잠재되어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는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내면의 독재자가 사회적 경력을 쌓는대신 조용하고 여유있는 생활을 원하거나, 현재의 직업이 싫어 완전히 다른 일을 찾길 바라거나, 가벼운 책으로 시간낭비를 하라고 부추길 때, 그 아이를 몰아내거나 무시하면 안된다는 충고는 여태 학습해온 삶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삶의 지침서들, 성공을 위한 조언들, 능력을 키워 스스로 강해져야만 하며 유혹을 물리치라고 조리있게 기술하는 언어들과는 반대의 입장이지 않은가.  


비록 처음에는 깨달을 수 없겠지만 내면의 아이로부터 멀어질수록 아이는 마음깊은 곳에서부터 우리의 삶을 더 강하게 지배하게 된다. 게다가 내면의 아이로부터 멀어질수록 우리는 삶에서 기쁨과 활력이라는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 구절은 <유태인 가족대화>에서의
 

내면의 아이를 잃어버린 어른은 미약한 토대 위에 세워진 집과 같아서 평생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는 경고와 같다. 마찬가지로 이 교육 지침서도 어른이 어린 시절을 간직하고(기억하거나 변형하지 않은채로), 원할 때마다 내면의 아이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어른은 책임을 지게되고(동시에 책임감을 짊어지고), 할 줄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며(해야하는 것도 많아지고), 실제로 강해지고(의무적으로 강함을 부여받고), 경험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경험으로 녹슬어간다) 성숙한 자기 주체성을 찾는 일은 지당한 성장과제이지만 어른이 되면서 받은 상처들은 우리를 냉소적으로 혹은 무감각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두 책이 '어른'에게 하는 경고는

<유태인 가족대화>는 그만큼 호기심을 잃어가는 것을 걱정한다.
<어린시절...>은 우리의 삶이 온통 '의미있는' 것으로만 채워져서 언제나 이성이 승리하는 것만 목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몰지도, 모두 껴안지도 못할 이 골치덩이 아이를 어쩌면좋단 말인가. 그 아이들이 제 멋대로 다 큰 어른인 나를 휘두르도록 놔두어서 치기어린 예술가나, 태평한 백수나, 자리만 옮겨가며 누군가에게 의존해야만하는 어른아이로 방목해야만 내가 행복하다는 말일까. 당연히 '책'이 이런 걸 권장할리는 없겠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다. 

<어린시절...>은 내면의 아이를 부분인격으로 인식하고, 아이를 위로함과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 '의식된 자아'를 강조한다. 한마디로 내면의 아이를 잘 다루라는 것이다. 보살피고, 욕구를 인식하고, 충족시킨다면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것이라고 말이다. 
<유태인 가족 대화>는 내면의 아이를 어른의 모습과 잘 융화시킬줄 아는 사람만이 완벽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을 보호해주고 신비함과 놀라움의 영역을 간직할 수 있도록 부모가 도울 수 있다면 아이와 어른의 장점을 모두 취할 수 있을것이다. 성공한 사람의 일부는 여전히 자기 자신의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예를 들기도 한다. 

새삼 '내면의 아이'와 간지러운 대화라도 나눌 마음은 없지만 문득 찾아오는 순진한 욕구들을 '어른답게' 억누르는 법을 배우기 보단, 낯설고 어리숙한 그 아이디어들도 빼놓지 않고 보듬을 필요가 있음을 기억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돈 걱정 없는 우리집 플래너 - 돈 걱정 없는 우리집 실천편
김의수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가계부에 적힌 엄마의 메모, 요리팁, 주부가 공감할 수다. 가계부의 이런 모양새들이 떠오릅니다. 쌓인 카드 통지서를 보고 어디에 썼는지 아리송 하다면, 늘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 매달 빚으로 허덕인다면, 여기 저기 빠지고 저축할 짬이 도무지 나지 않느다면 무조건 허리띠 졸라매는 것 말고, 2010년 가계부 한 번 써보는 건 어떨까요?

일기나, 계획표처럼 한달을 못간다구요. 가계부 쓰기를 부추기는 가계부라면 한 번 들춰볼만하지 않을까요. 저도 몇 번 시도해봤지만 금새 헤이해지기 마련이더군요. 누가 검사하는 것도 아니고(그런 남편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돈 들어오는 데는 없는데 나갈데만 차곡차곡 적다보면 신경질이 나기도 하고, 적어서 씀씀이가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닌 것 같았죠.
 
그래도 반짝 지나간 효과가 하나 있었는데, 얼렁 뚱땅 기억나는 것 보다 외식이 잦았다는 사실 이었죠. 외식! 이거 참 구멍입니다. 외식 한 끼로 몇 일을 버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가계부로 직면하는 순간, 확실히 횟수는 반으로 줄었습니다. 그래도 역시나 가계부의 동기부여에는 힘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흐지부지 앞장만 본 참고서처럼 매년 반이상 빈 가계부가 쌓여갔죠. 

요 가계부는 책과 가계다이어리가 합쳐진 모드예요. 재무상담사가 직접 나서 가계플래너로서 가정재무를 코치해주는 거죠. 매주 의욕을 붇돋아 새해에 계획했던 돈관리에 대한 의지를 상기시킵니다. '내 얘기 같은 남 얘기'로 다른 가정의 사례들로 공감하고 '저자의 팁'으로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 달의 목표를 임으로 세워줍니다.
 
복잡한 가계부의 항목 떄문에 괜히 골치아팠다면 소관대로 묶거나 풀어 쓸 수 있는 합리적인 형태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월급을 받으면 곧바로 저축액을 떼어놓고 남은 돈으로 지출 계획을 세운다''월급날 급여통장 잔고를 0원으로 만든다'등 사소하지만 중요한 지혜들을 전달하는 <돈 걱정없는 우리집 플래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들의 봉우리 3
다니구치 지로 지음, 유메마쿠라 바쿠 원작 / 애니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비즈니스 점프에 연재되었던 <신들의 봉우리>가 책으로 묶였습니다.

에베레스트 초등정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공식적인 기록 이전에 1924년, 정상을 불과 200여미터 남기고 실종된 조지 맬럴리의 이야기로 3권이 시작됩니다. 실제 실종 75년만에 그의 시신이 발견되었지만 고지를 찍은 다음인지, 다다르기 직전의 지점인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신들의 봉우리>에는 그 곳에서 피켈이라는 등산 장비가 발견되고, 육안으로 확인된 맬럴리의 마지막 지점을 염두했을 때 피켈이 아니라면 등반이 불가능 했으므로 당시 초등정을 했으리라는 추측으로 기웁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한 누구도 확인시켜 줄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단, 한가지 단서는 맬럴리가 가져간 카메라입니다. 정상에 올랐다면 당연히 사진으로 남아있겠지요. 문제는 그 카메라가 어디에 있느냐 입니다.
 
이 카메라에 얽힌 두 명의 일본인이 나옵니다. <신들의 봉우리>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철인 등반가 하부 조지, 또 초등정의 의혹을 풀려고 하는 후카마치라는 사진작가.

카메라는 하부 조지의 손에 있는게 확실하지만 어째서 그는 그 사실을 공개할 수 없는 것일까요. 초인적인 도전으로 일컫어지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무산소 단독 등반을 감행하려는 하부 조지의 뒤를 쫓을 수밖에 없는 후카마치의 신념은 대체 무엇일까요. 

우선 그들에게 알아내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왜 산을 오르는지.' 

끊임없이 주변 산을 오르면서 고도 순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자연의 횡포와 싸우고, 목숨이 위태로울만한 상황에 자주 직면하고, 불구에 가까운 부상을 입으면서도 오로지 등정을 향한 갈망을 멈추지 않는 그들의 기질이 무엇일까, 꼭 알고 싶었습니다. 산이 허락해야 오를 수 있다는 그 신성함에 압도된 것일까요. 자기자신과 싸우는 일이 지닌 관성 때문일까요. 기록을 달성하고 최초의 이름을 지니고픈 그 아리송한 욕망은 인간의 욕심에 불과한 건 아닐까요.
 




고산의 아찔한 형세와 세밀한 묘사에 등정의 실사를 절절히 전하고 있는 <신들의 봉우리>. 셰르파들이 기거하는 마을, 산악인들의 짐승과도 같은 삶을 통해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되는 책입니다. 일단, 주인공 하부 조지는 '다른 사람에게 추월당하고 싶지 않다'는 단서를 남깁니다. '여태까지 아무도 본 적 없는 에베레스트의 꼭대기 사진을 찍겠노라고' 출발한 조지 맬러리는 죽었습니다. 왜 산을 오르는지는 그들과 같은 병에 걸려봐야 알 수 있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들의 봉우리 4
다니구치 지로 지음, 유메마쿠라 바쿠 원작 / 애니북스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신들의 봉우리, '왜 산에 오르는가'를 묻게 했던 3편에 이어 그 해답이 모습을 조금 드러내는것 같다.

좀처럼 흔들지지 않았던 하부답지 않은 분노로 맬러리(히말라야 남서벽 등반으로 고지 탈환의 의문을 남긴채 70년 후 시신으로 발견된)의 죽음을 대하는데서 첫 번째 오답이 나온다.

돌아오지 않은 자가 정상을 밟았는지, 밟지 못했는지 따위의 의문은 무의미해. .. 산사나이는 산에 오르기 때문에 산사나이라고. 죽기 위해서 오르는 게 아니야. 죽으면 쓰레기일 뿐.

하부의 평소답지 않은 모습은 무산소 단독등반에 대한 두려움을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맬러리의 죽음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강한 인간애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순수한 정답이라고 보긴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이건 오답이라고 제껴버릴 수 있는 시험문제는 당연히 아니다. 산에 대한 알 수 없는 하부의 열정은, 죽음이나 불행에 관계 없이 '산에 오르지 않는 하부 조지'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것으로 대체된다.
 
곧 나올 다음 말은 동일어의 반복일지도 모르지만 또 한번 맬러리를 통해 산사나이 하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맬러리는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여기에 내가 있기 때문이야. ..이것밖에 없기에 산을 오르는 거야.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부서질 것 같았던 하부에겐 산을 오르는 일만이 유일한 목표점이었다. 가만이 돌이켜보면 필자가 내거는 인생의 목표들도 허무하기 그지없을데가 많았다. 차라리 행복을 목표로 한다면 현실의 고통을 견딜필요도 없을 것이다. 산사나이가 산을 정복하기 위해서만 그곳에 선 것은 아닌 것처럼 인생도 정복될 무엇은 아닐 것이다. 하부의 표현을 빌려 '이것밖에 없기에 삶을 사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

등반직전 하부의 둘도 없는 세르파 앙체링은 '하늘한테 사랑받고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묻기위해 저길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삶과 죽음의 운명을 시험하는 극도로 단순해지는 고산 클라이머의 삶의 한 면을 제대로 엿볼 수 있는 한 줄이다. 산에서 누구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을것이며, 거대한 히말라야의 얼음벽 만큼이나 힘이 센 운명과 싸우는 일이 그 곳에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쩐지 이 산악만화는 자꾸 무언가를 묻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산맥은 호랑이 등허리를 닮았다 - 백두대간의 설화를 찾아서
김하돈 글.사진 / 호미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설퍼덩 머슴

신기하게도 그 머슴의 몸은 온통 털로 뒤덮여 있었다. 얼굴 일부를 빼고는 온몸이 털복숭이였다. ..마을사람들의 놀림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견디다 못한 머슴은 마을을 떠나 향로봉 기슭에 있는 '설퍼덩'이라는 곳으로 숨어들어 갔다.
머슴은 오래도록 마을로 내려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향로봉 산속으로 들어간 머슴이 어찌 지내는지 매우 궁금했다. ..
통나무집 안을 살피던 마을 사람들은 그만 깜짝 놀랐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털북숭이 머슴이 키가 구 척이나 되는 커다란 짐승처럼 생긴 누군가와 함께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의 생김새로 보아 여자인 것은 분명했지만 사람인지 짐승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었다. (중략) -<그 산맥은 호랑이 등허리를 닮았다>에서




서양으로부터 들려오는 완벽한 얼개의 신화에 기세가 눌려 전혀 허리를 펴지 못했던 호랑이의 등자락이 기지개를 켜는 책이다.

'신화'와 '설화'의 개념은 다르지만 허황된 이야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전하는 옛 이야기인 점은 같다. 고려시대, 전격적으로 단군신화가 채택되어 우리나라의 창세신화로 널리 알려지고 있지만, 이 책은 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설화를 다루고 있다. 또 그 설화의 주인공들은 다름아닌 '백두대간'의 산과 물들이다. 

설악부터 지리까지, 바위 하나하나, 절간 한채 한채를 감싸는 아기자기한 설화들이 령을 넘을 때마다 한숨 한번 웃음 한번 선사한다. 실제 지명을 꿰맞춘 지어낸 이야기임이 도드라져도, 우연에 기댄 황당무계 일지라도 그저 즐겁고, 즐거웠다. 우리설화의 목마름을 해결해주는 고마움이 앞서기도 해서지만, 과장되면서 무덤덤한 옛사람의 기질들이 유머러스했다. 

결국 백두대간을 따라 수집한 설화들은 충실한 여행지도의 역할로도 빛난다. 산에, 절에, 고개에, 바위에 얽힌 명승지의 사연은 영화<로마의 휴일>로 최대의 수혜지가 된 스페인 광장에 비견될 명승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소박한 기대를 품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