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맥은 호랑이 등허리를 닮았다 - 백두대간의 설화를 찾아서
김하돈 글.사진 / 호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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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퍼덩 머슴

신기하게도 그 머슴의 몸은 온통 털로 뒤덮여 있었다. 얼굴 일부를 빼고는 온몸이 털복숭이였다. ..마을사람들의 놀림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견디다 못한 머슴은 마을을 떠나 향로봉 기슭에 있는 '설퍼덩'이라는 곳으로 숨어들어 갔다.
머슴은 오래도록 마을로 내려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향로봉 산속으로 들어간 머슴이 어찌 지내는지 매우 궁금했다. ..
통나무집 안을 살피던 마을 사람들은 그만 깜짝 놀랐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털북숭이 머슴이 키가 구 척이나 되는 커다란 짐승처럼 생긴 누군가와 함께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의 생김새로 보아 여자인 것은 분명했지만 사람인지 짐승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었다. (중략) -<그 산맥은 호랑이 등허리를 닮았다>에서




서양으로부터 들려오는 완벽한 얼개의 신화에 기세가 눌려 전혀 허리를 펴지 못했던 호랑이의 등자락이 기지개를 켜는 책이다.

'신화'와 '설화'의 개념은 다르지만 허황된 이야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전하는 옛 이야기인 점은 같다. 고려시대, 전격적으로 단군신화가 채택되어 우리나라의 창세신화로 널리 알려지고 있지만, 이 책은 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설화를 다루고 있다. 또 그 설화의 주인공들은 다름아닌 '백두대간'의 산과 물들이다. 

설악부터 지리까지, 바위 하나하나, 절간 한채 한채를 감싸는 아기자기한 설화들이 령을 넘을 때마다 한숨 한번 웃음 한번 선사한다. 실제 지명을 꿰맞춘 지어낸 이야기임이 도드라져도, 우연에 기댄 황당무계 일지라도 그저 즐겁고, 즐거웠다. 우리설화의 목마름을 해결해주는 고마움이 앞서기도 해서지만, 과장되면서 무덤덤한 옛사람의 기질들이 유머러스했다. 

결국 백두대간을 따라 수집한 설화들은 충실한 여행지도의 역할로도 빛난다. 산에, 절에, 고개에, 바위에 얽힌 명승지의 사연은 영화<로마의 휴일>로 최대의 수혜지가 된 스페인 광장에 비견될 명승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소박한 기대를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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