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끔은 길을 잃어도 괜찮아 - 카투니스트 동범의 네팔 스케치 포엠
김동범 지음 / 예담 / 2010년 3월
평점 :
사진을 곁들인 감상적 하이쿠 시선집에 대한 혹평으로 벌어진 기상천외한 사건에 학을 떼고 다시는 이런 책은 보지도, 읽지도, 더군다나 글도 쓰지 말아야지 했더랬습니다. 일률적인 비판의 도마위에 올릴 책이라면 한 권으로 족하겠지 자조하면서요. 그러면서도 그것과는 조금 다른, 좀 더 유익한 대안이 있을거란 기대도 했습니다. 철부지 감상을 적더라도, 진부한 철학을 포장하더라도 썩 볼만한 책도 존재할 거란 믿음은, 망치를 들고 있는 제가 못만 찾는 것과도 같겠지요? 감안하고 들어주세요.
비쥬얼이 강조된 기행문에서의 차별화는 카투니스트 동범에겐 걱정거리가 못되었습니다. 그는 그림을 아주 잘 그리니까요. 글이 좀 형편 없어도(이 책이 꼭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그림의 힘을 따라 적절한 감흥이 찾아옵니다. '아. 네팔에 가보고 싶어. 그래, 여행의 묘미는 우연과 인연에 있지. '밖'에서 나를 찾는 것도 괜찮아.'
사진도 그림처럼 예술적 대우를 받는 시대이긴 하지만 거꾸로 카메라가 지극히 대중화된 시점에 작품 사진이 살아남기는 더욱 척박해졌지 않나 싶습니다. '장식용 사진'으로 도배되는 책들의 범람 속에 지극히 내밀한 글이 뭍어가려는 가벼운 시도들은 좀 견제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글이 대단하거나 사진이 모든 걸 압도할 정도는 되야하지 않을까요.
섬 제주의 풍경에 반미치광이가 되었던 사진쟁이 김영갑의 에세이는, 온통 주체할 수 없는 감상적인 고백들로 넘쳐 흐르다가 불현듯 사진의 황홀경처럼 깨달음의 언어를 쏟아내길 반복합니다. 전혀 세련되지도 정제되지도 않은 일기같은 글들은 오히려 펄펄 살아나 궁핍하지만 아름다웠던 예술가의 삶을 거칠게 담아냅니다.
사진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답습니다. 대수롭잖은 풍경사진이 어떻게 '외로움과 평화'를 공존시키는 지를 확인합니다. 오름이나 중산간, 바다나 꽃, 억새의 물결들이 길게 늘여져(대부분 파노라마(6x17)로 찍힌) 외로움을 상쇄합니다. 사진 뒤에 드러나는 그의 궁휼한 삶이 루게릭병으로 받은 시한부 선고로 클라이막스를 향할 때, 버려진 폐교에 만든 갤러리는 신화같은 장소로 남습니다.
또 <가난한 이의 살림집>은 어땠습니까. 먹물이 번지는 듯한 깊은 숲과 외딴집, 주물집, 차부집 사람들이 섞이는 사진들이 소외된 건축물의 양식과 그들의 헐벗은 이주를 역사적인 동시에 서정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자의 5년 간의 발걸음과 또 다시 5년 간의 집필을 통해, 또 끊임없는 돌아보기를 통해, 가난한 이들의 살림집을 머리 숙여 들여다 봅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하는 일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쓰고, 찍고, 걷고 있나를 고민하는 과정은 '가난한 이들을 향한 연민'없이도 몸이 저절로 수그러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드러내면서도 젠체하지 않고 날것을 보는데도 신물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사진은 덧칠된 유화 같았고 발은 그림을 그리는 붓과도 같았습니다.
사진과 글이 더 할 수 없이 깊숙히 상응 하는 두 책에 '네팔 스케치 포엠'이라 이름 붙인<가끔은 길을 잃어도 괜찮아>가 비교된다는 건 공정한 일은 아닌것 같지만 그보다 몸을 가볍게 해 본다면 줄 세우지 못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 책들의 모든 출발은 사진과 여행, 여행과 메모에 있으니까요.
으례 그렇듯이 청춘과 여행, 관계, 연민에 대한 성찰이 대단히 창의적이지는 않게 반복되지만 든든한 그림이 완전히 길을 잃게 하지는 않습니다. 스케치는 익숙하고 지루한 깨달음을 환기시키기도 했습니다.
네팔의 개들이 이미 인생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여기저기 태평하게 누워있다는 가벼운 사색에 머물지만, 전봇대에 모인 전깃줄 그림으로 '하늘에도 길이 있다. 그 길의 끝에서 너를 만날 수 있을까?'라는 미사여구에만 도달하지만,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에게서 '자식을 위해 살아가는 세상 모든 어머니의 몫' 밖에 발견하지 못하지만, 그림과 물건을 주고 받으며 마음이 물건보다 갚지다는 착한 말만 하지만,
|
|
|
반대로
'높새'라는 여행 선생을 만날 때부터 초라한 1인분의 생각이 조금씩 풍성해 집니다. 그가 말했던데로 '여행은 혼자 떠나 수백 명의 친구과 함께 걷다 혼자서 돌아오는 것이다'를 구현하기 시작합니다. 그 때부터 시작되는 움직임은 거부할 수 없는 여행지의 참 맛을 포함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국내와 국외를 여행하면서 삶을 가르치고, 여행을 하지 않을 때는 농사를 짓는 '높새'와 함께하는 트래킹. 포터의 등짐을 바라보고 '네가 들어도 나는 무겁다'의 한 줄이나, 언젠가 꼭 다시 네팔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칠판을 선물할 것이라는 약속, 암투병 중인 전직 비행기 조종사가 묻는 '지금 그리는 그림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머리에서, 아니면 마음에서?', 독실한 불교신자이신 어머니에게 부처님의 고향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 룸비니를 찾은 저자가 보리수 나무 염주를 산 일,은 혼자 나선 길에서 만나는 수백명의 친구의 몫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물론 이 책은 '타인의 취향'이지만 시각적 효과에 편승하려는 오염된 출판문화 속에서, 적어도 그의 사진이나 그림들이 장식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몇 년전 라오스에서 날아온 친구의 엽서 한 장처럼, 그 곳의 네가 여기의 나에게 격없이 전해집니다.
<가끔은 길을 잃어도 괜찮아>/조동범/예담/2010.3
<그 섬에 내가 있었네>/김영갑/휴먼북스/2009.4
<가난한 이의 살림집>/노익상/청어람 미디어/2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