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신데렐라에서 빠진 건? 사랑. 백설공주에도 빠진건? 사랑. 생략은 오히려 황홀한 상상력을 부추겼건만 이제와서 불만이다. 사랑해서 잘 살았다는데 사랑이 빠졌다?
신데렐라의 주제가가 '사랑'이 아니라 '착하게 살자'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데 신데렐라의 성정은 감동적이었지만 수없이 책장을 넘기게 한 주범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추었던 촉박한 시간과, 키스로 지난 고난을 화답받는 예정된 운명의 순간 이었다. 동화책이 지속적으로 주입하려던건 도덕, 예의, 선, 용기였지만 난 이를테면 '사랑의 육화'(<멜랑콜리 미학-사랑과 죽음 그리고 예술>90p)에 푹 빠졌다. 그들이 숨겨놓은 '사랑의 육화'에 애가, 애가 탈 거라고 순진한 어른들은 생각이나 했을까. '교육적'이란 미망아래 감춰진 인색한 노출이 끝내 그것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동화책은 남녀간의 사랑, 설레임, 열정, 환희 같은 감정들의 불모지 였다. 동화책을 뗀 후 그리고 성인이 되기 이전, 그 떨리는 영혼들의 공백이, 간혹 칼날같은 첫사랑과, 짜릿한 불륜과, 영원한 사랑과, 육체적 쾌락에 잠식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동화책이 대를 이어 읽히는 현실은 위선같기도 하다. 마치 육체의 사랑이 영혼의 사랑보다 하위에 있다는 암묵적 메시지가 뱀처럼 도사리고 있는 모양으로.
사회적 금기와도 맞닿은 일일테지만, 금기를 깨부수는 쾌락의 정당한 구실이 되어주는 동화의 교육적 작용에 난데없이 의심이 든 건 <테이킹 우드스탁> 때문이다. 신데렐라를 완벽히 복습하지만 또한 철저한 성인코드의 신데렐라 이야기.
이런 노래가 있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샤바샤바 아이샤바 얼마나 울었을까♪
우선 게이이자 우리의 신데렐라인 엘리엇 타이버의 성인동화 속으로 들어가보자. 그가 어려서 어떻게 부모님을 잃었는지.
..우리는 그저 초콜릿을 '사랑'하고, TV를 '사랑'했을 뿐,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법도 없었고, 가족에게서 진짜 현실적인 사랑을 받아본 구성원 역시 단언컨대 없었다. ..알고 보면 내가 경험한 섹스는 우리 집에서 사랑이 지금까지 쭉 그래왔던 것만큼이나 가학적이었다.
엘리엇 타이버가 경험한 사랑이란 기실 조작과 폭력이었다. 그에게 맨 처음 사랑, 즉 가족은 없었다. 오히려 그의 가족들은 계모와 언니들의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지독한 돈 밝힘증의 수전노 어머니는 아들에게 "넌 어쩜 그리 뚱뚱하고 멍청하니, 엘리야후."라고 주기적으로 안부를 물었고, 단순하고 수수한 분이었던 아버지 조차도 엄마가 어떤 이유로 아들을 혼내고 싶어할 땐 이미 허리띠를 풀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중이었다. 또 불과 네 살밖에 안된 엘리엇에게 랍비의 운명을 함부로 덮어 씌우기도 했다.(물론 우리의 신데렐라는 고작 다섯 살에 무신론자임을 선언했지만)
엘리엇 타이버가 얼마나 울었는지에 대한 증거는 회고록의 성격을 띄는 이 책 안에 충분하다. 그의 울음은 이랬다.
내 신사 고객이 일을 끝내고 자리를 뜨면, 나는 몸을 떨며 다시 스스로를 추스를 때까지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나는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본능적이었고 자연발생적이었다. 하지만 바야흐로 내 앞에 새로운 성적 탐험의 활로가 활짝 열렸다. 즉 영화관에 가학적 아동변태성욕자를 찾아 헤매는 것. 이것은 나의 비밀 세계이자 은밀한 쾌락이었다.
하지만 엘리엇이 마음씨 착하고 여린 신데렐라였음은 분명하다. 타이크버그가의 저주를 받은 모텔 엘 모나코를 살려내기 위해, 그토록 자신의 인생을 자빠뜨리고 시궁창으로 몰아넣었던 부모님을 돕기 위해
주중에는 뉴욕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고 가끔은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섹스를 나눴다. 그리고 금요일 밤에는 화이트 레이크로 차를 몰고 가 부모님의 사업을 파산으로부터 구원했다.
화이트 레이크에 있으면 나는 낙오자, 슐레밀(얼간이 패배자), 언제고 탄로날 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있는 불안하고 은밀한 게이였다. 하지만 맨해튼에서 나는 잘나가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미국 인테리러 디자이너 협회의 일류멤버, 그리고 헌터 칼리지의 선생이었다.
신데렐라는 새엄마가 시키는 힘든 일을 하면서도 항상 웃는 얼굴이었어요.(<디즈니 신데렐라>/삼성출판사/에서)
내가 모텔 안팎에서 해야 했던 일의 종류는 끝이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변기 청소는 물론, 접수계원, 잔디 깎기 담당, 요리사. 수영장 관리인, 하수구 오수 청소원, 접객담당 매니저, 호텔 안전 요원, 뚱뚱한 아들, 멍청하고 쓸모없는 몸 역할을 동시다발적으로 해내야 했다. 내 인생은 화장실 청소와 팬케이크 굽기의 무한 반복 사이클이 되고 말았다.
그가 완벽히 웃는 얼굴이라고 할 순 없지만 동물들은 가엾은 신데렐라(엘리엇)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맨하탄의 일면식도 없는 동성 섹스 파트너들은 그를 열렬히 원했다. (오직 성적일지언정) 하지만 그가 감정이 거세된 신데렐라는 아니었다. (엘리엇 타이버와 가학적 사랑을 나눈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작품(사진출처))
그토록 지독하게 사회에서 경멸당하는 데 어떻게 자기혐오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내면화된 동성애혐오증이야말로 우리 대다수가 시달리는 병이었다.
사랑받을 가망이 없다고 느끼게 되면 섹스는 순전히 육체적 경험으로만 남는다.
그런 그에게 무도회의 기회는 찾아온다. 대형 야외 락 페스티벌이 황폐한 도시 베델, 그리고 엘리엇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그러나 두 새언니가 신데렐라의 드레스를 갈기갈기 찢어버린것처럼, 동네 주민들은 그의 마지막 희망에 침을 뱉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요술 지팡이를 든 할머니가 있다. 우드스탁의 유능한 연출가 마이크 랭은 베델이라는 보수적이고 경직된 동네에 불시착해 섹스, 마약, 로큰롤이 한바탕 어우러진 떠들썩한 파티를 연다. 갑자기 엘 모나코에는 생기가 넘치고 3류 모텔이 우주의 중심이 된다.
또 하나의 관문 12시. 엘리엇에게도 주민들과의 협상, 가족과의 화해, 자기 혐오에서의 탈출이 시급했다.(이 중대한 과정이 신데렐라에는 빠졌다!) 그리고 유리구두의 주인을 찾는 마지막 여정이 바로 우스스탁 페스티벌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될 필요가 없는 그곳, 그 누구도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을 시험대 위에 놀려놓지 않는 곳, 나를 이해받는 곳, 해시시 초코칩 쿠키를 구워 나눠 먹으며 동성애를 병리증상으로 분류하지 않는 곳, 바로 그곳이 엘리엇 타이버에게는 돌아온 유리구두 였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에필로그에서 그는 정말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았다.
이 완벽한 신데렐라 코드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으며 죽는 날까지 반복된다해도 질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내 인생은 비슷한 기회라도 온다면 기다렸다는 듯이 신데렐라 행세를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의 이 성인버전 신데렐라에서 동화가 애써 가리려했던 열렬한 섹스 코드와 유머로 환상에서 탈출하고 만다. '사랑'에 대한 질문이 고목의 새순처럼 되살아 난다.
영혼과 육체의 분리가 가시화되는 세상에 <테이킹 우드스탁>은 육체를 선동하는데 일조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영혼을 갈망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육체가 고갈될 수록 영혼을, 영혼이 바닥날 수록 육체를 탐하게 되는 순환적인 한 인간의 사랑의 여정을 만난다. 고답적 품성을 복습하면서도 사회적 편견과 질시에 대한 분노는 표출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논의되는 사랑이 동성애적 전우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멜랑콜리 미학-사랑과 죽음 그리고 예술>85p)은 <테이킹 우드스탁>의 사랑의 가능성에 정확히 조준되어 있다. 또 같은 책에 '사랑은 육체에서 영혼으로만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서 다시 육체로 하강하면서 사랑의 높이와 깊이를 동시에 확장시킨다.'를 볼 때 동화에 빠진 사랑의 육화는 절실하기까지 하다. 동화책의 사랑은 늙었다. 나는 유연하고 팽팽한 육화된 사랑 속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테이킹 우드스탁>/엘리엇 타이버/문학동네/2010.4
<멜랑콜리 미학-사랑과 죽음 그리고 예술>/김동규/문학동네/2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