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은 모든 상실이요, 우리에게 없는 것 또한 모든 희망입니다. 논증 없이도 이런 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 두 동화책이 대견합니다.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한 작가에게서만 맛볼 수 있는 독창적인 작품세계와 마주합니다. 뻣뻣한 진실보다 유연한 거짓말이 선하고, 두꺼운 고찰보다 한줄의 상징이 오랜 잔상을 남기기도 합니다. 동화책에서 만날 수 있는 생각입니다.    
 

두 권의 그림책은 말쑥한 거짓부렁 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에 대해 우리는 언제부터 왈가왈부하게 된 걸까 새삼 궁금해졌습니다. 어린이 그림백과 <이야기>에 의한면 이야기는 든든한 동아줄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한데 묶어주었답니다. 이익을 두고가 아니라면 현실에서 인간들이 한데 묶이기란 그만큼 힘에 겹습니다. 누구는 이야기의 상상력을 추켜세우고, 누구는 그것 또한 잃어버린 교훈이나 도덕을 발견합니다. 누구에게는 순수한 즐거움이겠지요. 두 동화작가는 꾸며낸 이야기로 과연 상실과 희망의 감춰진 옷자락을 어떻게 발견할까요. 

<태양을 향한 탑>은 소원이 결핍을 동반할 때 가장 강력한 효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저 구름 너머 하늘이 아직도 파란지 궁금하구나."

구름을 뚫고 이런 호기심을 풀 수도 없을만큼 지구의 연료가 바닥난 미래의 어느 날이 이 책의 디스토피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남자는 손자인 소년의 격려에 힘입어 태양을 향한 탑을 세우기로 결심합니다. 불가능해보였지만 문득 '꿈을 이루는데 쓰지 않는다면, 돈을 어디에 쓰지?' 라는 강력한 주문에 걸립니다. 







태양을 볼 수 있는 탑의 꼭대기에 앉았을 때 증손자를 안고 있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피터르 부뤼헐의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이 갈망은, 인류의 허영심에 대한 상징물과는 달리 소박한 바램이 만들어낸 희망의 탑으로 탈바꿈 됩니다. 태양을 향한 탑을 쌓는 동안 모든 대륙의 건물들이 마음을 모아 블럭이 됩니다. 태양을 보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홀로 서서 자기에게 생명을 준 빛을 바라보았다'고 콜린 톰슨은 전합니다. 











눈 앞의 이익에 눈이 먼 현대인에게 이런 겸허함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콜린 톰슨은 디스토피아의 절망이 아닌 폐허의 희망을 비춰줍니다. 이 작지 않은 우화가 펼쳐질 동안 음울한 풍경과 복닥거리는 살가움이 교차됩니다. 이 탑 또한 지나친 욕망으로 저울질 할 수도 있었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남자가 늙고 더 늙고, 소년이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을 만큼의 시간을 희망에 대한 갈구로 보려는 의지가 역력합니다. 

작가 콜린 톰슨의 이력이 어둠 속에서 빠져나온 사람이라면 무얼 제일 먼저 보게 될 지를 확인 시켜줍니다.


1942년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스물다섯까지 심한 우울증을 앓아 세 번이나 정신 병원에 입원했는데, 이 우울증은 20대 후반에 사라져서 다시는 재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스코틀랜드아 영국 북부 지방에서 농사일을 했습니다. 1992년부터 어린이 책을 쓰고 그리기 시작해서 현재까지 50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는데, 어린이 책 일을 한 뒤부터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곁눈질도 하지 않았다고 밝힙니다.










<찰리, 샬럿, 금빛 카나리아>는 비오는 날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 같습니다. 맑지만은 않은 수채화가 자꾸만 흘러내리고 번지는 듯한 기법은 이 책의 서사를 앞지릅니다. 그림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도시의 새장-아파트로 살러간 샬럿, 그리고 샬럿을 그리워하는 찰리, 그들이 함께 구경한 새장 속의 카나리아는 모두 같은 모티브일 것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위로받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위로란 우산을 같이 쓰는 것이 아니라 같이 비를 맞는 것'이란 신영복 선생님의 말이던가요. -통증을 자각하기 이전부터 서로의 아픔을 제 몸처럼 잘 아는 셋은, 그들을 이어주는 중요한 감정의 끈으로 단단합니다.  

샬럿을 잃어버린 찰리에게 카나리아는 샬럿이었고, 카나리아는 샬럿과 찰리의 심장이었습니다. 이제 그 간절함을 전하려고 카나리아는 샬럿을 찾아가는 유년의 메신저가 됩니다. 지나치게 동화적인 구상이지만 그들이 어떤 위로로 똘똘 뭉쳐져 있는지를 느낀다면 동심을 미화한 환타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도시의 마른 꿈도 촉촉히 젖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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