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엄마 낮은산 너른들 4
조은주 지음, 장호 그림 / 낮은산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올 겨울 지독히도 추웠다. 보일러를 틀면서 다음 달에 나올 고지서를 생각하고 또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살기도 힘든데 이렇게 추워서야....바람을 막아주고 끼니 걱정을 하고 살지 않는 사람들이야 그깟 겨울이 얼마나 힘겹겠냐만은 정말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겨울 찬바람은 내가 상상하기 힘든 것일 게다.
8편의 단편은 모두 그런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였다.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이었음에도 눈 한 번 질끔 감고 애써 외면해온 것은 아닌지....
치매에 방문을 밖에서 걸어 잠글 수 밖에 없는 처지의 <나무가 되고 싶은 할머니>, 재혼한 엄마를 따라 함께 살지만 할머니의 모진 말과 구박을 받는 선희, 자신의 처지가 호리병 속에 갇힌 것과 같음을 알고 용기를 내는 <호리병 속 작은 거인>, 얼음땡 놀이에서 술래가 잡으러 쫓오면 '얼음'했는데 진짜로 얼음처럼 몸이 굳어 자유롭지 못한 아이. "차라리 태어나지나 말지."하는 아버지의 말에 다락방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썩은 열매 같은 존재로 여기며 지내다가 봄햇살 같은 따스한 볕을 느끼는 이야기, <일흔아홉 번째 생일>은 나이들어 귀도 눈도 모든 것이 노후되어 쓸모없는 것처럼 아니 누구도 떠안지 않으려는 짐짝 같은 존재로 전락한 어머니의 모습은 길어진 수명이 결코 축복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을 무겁게 한다. 나도 언젠가는 나이 들 것이고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늙어갈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그 외에도 <가족의 탄생> <곰탱아, 너는 내 마음 아니?> 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마음을 아프게 한 이야기 두 편.
<어린 엄마> 냄비 속에서 서로의 숟가락이 부딪치는 작고 소박한 행복이 영원했으면.
차갑게 얼어 붙은 날씨. 불기 없는 부엌 창문에 쳐진 비닐마져 떨어져 나풀거리고 쌀은 떨어져 바닥을 드러냈다. 열여덟 언니는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다(열 살인 동생이 여섯 살 때 방 안에 나를 두고 나갔다고 했으니 언니는 열세 살에 엄마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어린 나이에 생활비를 벌고자 새벽 우유 배달도 마다 않는 기특한 언니에겐 가출한 남동생까지 몸도 마음도 편할 날이 없다.
철이 일찍 든 아이를 나는 결코 예뻐보이지 않는다. 그 내면의 슬픔과 안쓰러움에 맘이 더 아파오기 때문에. 왜 우리 사회는 이런 어린 엄마를 자꾸만 만들어 내는 것일까. 쉽게 결혼하고 쉽게 이혼하는 세태와 어려운 경제를 탓하고만 있으면 이렇게 어린 엄마들의 짐은 누가 들어주나....

<희망이>희망이가 뛰어가는 그 길에 돌부리가 없었으면 하는 따뜻한 시선
머리 한 번 잘라주는 것으로 커다란 자선이라도 베푼 듯 하지만 실제로는 더럽다는 말을 입 밖에 뱉어냄으로서 그것이 위선이었음을 드러내는 미용실 여자는 바로 내 모습이기도 했다. 진정성이 결여된 베품이자 나눔.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나눔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이웃사랑이며 친구가 되는 것인데 그것보다는 자신에게 이 정도는 하고 사니까, 하는 면죄부는 아니었을까?
또 돈을 훔친 아이가 희망이라고 동네방네 수선스러움을 피웠다가 희망이의 순수하고 바보스러움을 이용한 다른 아이의 잘못임을 알게 된 미용실 여자는 희망이를 의심했던 자신의 잘못을 알게되었어도 결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잔인함으로까지 비춰지기도 했다. 그 잔인성이 내게는 없었을까? 어떻게 미용실 여자에게 손가락질 하고 욕을 할 수 있을까?

물러설 것 같지 않던 겨울 추위도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고 베란다로 들어오는 햇볕이 따뜻하기만 하다. 이 햇볕을 그들도 같이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공평할 것 같은 햇볕조차 누군가에게는 더 많이 더 따스한 것이 아니라 골고루 나눠 가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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