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의 미래 - 벤저민 프리드먼
벤저민 프리드먼 지음, 안진환 옮김 / 현대경제연구원BOOKS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항산항심(恒産恒心), 변치 않는 재산이 있어야 변치 않는 마음도 있다. 맹자의 말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곶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다.

경제성장의 미래라는 제목이 붙은 이책의 원래 제목은 ‘경제성장의 도덕적 결과들’이다. 잘 살아야 도덕적이 된다는, 항산항심을 다른 말로 풀어놓은 말이다.

곶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을 증명하기 위해 본문만 700 페이지 짜리 책을 써야 하나? 그런 생각을 들지 모르겠다. 아무리 슬로우 라이프가 어쩌고 행복은 재산순이 아니라는 말을 해봤자 물질적 여유와 정신적 여유는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도 직관적으로도 옳다.

그 뻔한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그렇게 두꺼운 책이 필요한가? 그러나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도덕적’이란 공적 영역의 가치를 말한다.

“경제성장은-즉 명백한 절대다수 시민의 생활수준의 향상- 대체로 더 많은 기회,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 사회적 지위의 유동성, 공정성 및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촉진한다. 계몽주의 이래로 서구사상은 이런 각각의 경향을 긍정적이며 명백히 도덕적인 것으로 여겼다.

이런 부분에서 이미 엄청난 발전을 이뤄온 사회들도, 생활수준이 향상할 때 진보를 이루기가 훨씬 더 쉽다. 그러나 생활수준이 정체되거나 하락할 경우 대부분의 사회는 대체로 이런 요소에서 명백히 퇴보하며, 설령 이런 목표들 중 일부가 진보한다 해도 그 정도는 극히 미진하다. 미국을 비롯해 경제가 고도로 발전한 많은 국가도 경제성장과 장기침체를 교차로 경험했으며 그에 따라 민주주의의 가치가 강화되거나 취약해졌다.”

이것은 자명한 명제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실제 역사를 검토하면서 증명해야 하는 명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미국과 유럽의(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역사를 추적하면서 공적 영역의 가치가 경제의 성장과 침체에 따라 어떻게 부침을 겪었는가를 보여준다. 이책의 두께가 이상하지 않은 작업이다.

물론 경제와 공적 가치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변수는 아니다. 두가지를 연결하는 변수는 사람들의 심리, 경제현실에 대한 인식이다.

“더 풍요롭다는 것은 다른 많은 것들 중에서도 특히 더 나은 음식, 더 큰 집, 더 많은 여행, 향상된 건강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좀 더 많은 사람이 더 나은 교육을 감당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20세기에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이 경험햇듯이 가족과 친구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해주는 더 짧은 주당 노동시간을 의미한다. 게다가 소득 증가의 이런 물질적 이점은 개인 및 그 가족은 물론 공동체 사회와 심지어 국가 전체에도 축적된다. 보다 풍요로운 상황은 또한 더 나은 학교와 더 많은 공원 및 박물관, 더 큰 콘서트홀과 스포츠 경기장을 의미하며 이런 공공시설들을 즐길 수 있는 더 많은 여가시간도 의미한다. 평균소득의 증가는 국가가 해외에서 국익을 꾀할 수 있게 해주거나 인간의 달 탐사도 가능하게 해준다.

전체적으로 그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생활수준의 하락과 샹상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자신과 자녀의 경제적 전망에 대해 우려나 두려움을 느끼는지 아니면 확신을 갖는지에 따라서도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달라진다.’

그러나 “충분히 많은 국민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인식을 잃어버리고 나면 단순히 부유해지는 것만으로는 경직성과 편협으로 치닫는 사회의 퇴보를 막을 수 없다.”

지난 30년간 미국 경제는 번영이란 말이 잘 어울렸다. 그러나 성장의 결과는 불평등하게 분배되었고 대다수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으며 자식들이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란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경제와 주식시장 모두 급상승을 이어가던 1990년대 후반에도 설문조사에 응한 미국인 중 절반 이상이 ‘이제 아메리칸 드림은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데 동의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지속된 장기침체의 결과는 많은 측면에서 미국 사회구조의 면면을 갉아먹었다. 이 기간 동안 다시 표출된 이민자에 대한 대중의 반감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당시 미국의 반이민 정서는 2차대전 이래 최고였다. 또한 30년간 아프리카계 소수민족을ㅇ 주류에 편입하려는 노력을 계속 해왔던 상황이 이 기간에 반전되어 대중의 저항이 차별철폐조치를 무효화하도록 압박햇다는 점도 우연이 아니다. 백인우월주의 단체들이 1930년대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활발하고 두드러졌던 상황과 반정부를 표방하는 사설 ‘민병대’가 전에 없이 번성했던 일, 그리고 정기적으로 헤드라인을 차지한 교회 방화와 국내 테러공격, 사법당국과의 무장 교착상태 등에도 불구하고 정치 리더들이 사건의 주범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를 꺼렸던 상황도 전적인 우연은 아니다. 또한 ‘사회복지의 종결’ 노력이 전후 미국 사회의 성격과는 극히 다른 보복 심리를 종종 드러냈던 것도 단순히 우연이라고는 볼 수없다.

과거 미국 사회의 중요한 측면들로 꼽을 수 있던 관대함과 개방성이 줄어들고 편협하고 무례한 태도가 증가하는 최근의 현상은 20세기 4/4분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미국 중산층의 생활수준이 침체한 결과다.”

미국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여중생의 죽음과 광우병을 계기로 일어난 촛불시위나 노사모를 통해 드러났던 한국사회의 모습은 그리 달랐던 것같지 않다. 그리고 그 심리의 메커니즘 역시 그리 달랐던 것같지 않다.

저자는 경제성장과 공적가치 사이에는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인과관계는 편도가 아닌 왕복이다.

“경제성장은 사회를 더 개방적이고 관대하며 민주적으로 이끌고 그런 사회는 다시 기업가정신과 창의성을 더 잘 독려할 수 있으며 그 결과 훨씬 더 큰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다.’

두 변수는 서로를 결정하면서 선순환을 만든다. “ㅋ토크빌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성취하고 발전할 기회는 다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할 의무 의식을 만들었다. 거의 2세기가 지난 현재 시점에서 당시를 되돌아 볼 때 한때 엄청난 수의 인구를 배제했던 여러 형태의 차별 철폐가 미국 경제의 노동 자원과 브레인파워를 보다 강화했다는 점 또한 자명하다.

미국은 마마도 사회적, 정치적 개방성과 경제성장의 상호관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미국의 역사는 경제적 향상과 자유의 확장의 과정을 상호 보강해주는 뚜렷한 양상을 보였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을 말할 것도 없이 경제와 가치는 서로를 결정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사회의 도덕적 가치들이 경제성장을 자극하는 행위를 증가시키는 상황은 생활수준의 향상이 다시 우리 사회를 좀더 개방적이고 관대하며 민주적으로 만들 경우에 특히 더 잘 들어맞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시장의 측면보다 도덕적 차원에서 이런 품성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시장의 힘 자체만으로는 성장이 불충분해진다. 따라서 어느 정도 추가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베버는 익히 알고 잇는 도덕적 원칙들이 경제성장을 촉진한다고 주장했다. 내 주장은 여기에서 더 좀 더 나아간다. 경제성장은 도덕적 자극에 의존할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도덕적 ‘결과’를 낳기도 한다.”


평점 4.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