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이인 -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함께하는
기타 야스토시 지음, 박현석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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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가지 감사할 조건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첫째는 11살에 부모님을 여의었다는 것. 그래서 남보다 일찍 철이 들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는 초등학교 4학년이 내 학력의 전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생 공부할 수 있었던 행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고 그 결과로 이렇게 건강할 수 있는 행운이 있었습니다."

아마 마쓰시다의 말 중에서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일 것이다. 이말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두가지일것이다.

첫째 낙관주의이다. “고노스케의 인생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인생의 밝은 면만을 찾아내서는 그것만을 보아 왔다. 사고를 당했다는 불운보다는 목숨을 건졌다는 행운을 보고 ‘나는 행운아다’라고 생각함으로써 그것을 살아가는 힘으로 바꿨다.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한들 무슨 득이 있겠는가? 자신의 강한 운을 믿고 노력하면 결국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성공할 때까지 계속한다면 실패란 존재하지 않는다. 성공만이 있을 뿐이다. 실패를 하는 이유는 실패한 채로 중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성공을 하면 ‘운이 좋았다’고 겸허하게 하게 생각했고 실패를 해도 ‘운이 없었다’고 탓하지 않고 ‘노력이 부족했다’며 반성했다. 그랬기 때문에 후에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사물을 보는 견해’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엇다.”

10살도 안된 나이에 집안이 기울어 고용살이를 해야 햇고 가난 때문에 차례차례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형과 누나를 모두 잃어야 했으며 그 자신도 허약한 체질이 되었고 교육도 받을 수 없엇다. 그런 그가 무일푼에서 천하의 기업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낙관주의의 힘이었다.

그러나 모든 낙관주의자가 마쓰시다만큼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겸허함’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겸허함은 어릴 때 학교 대신이었던 고용살이 덕분이엇다.

“야단을 맞는 건 그나마 나은 편으로 때로는 조그만 망치로 머리를 맞는 적도 있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여러 가지 것들을 인사를 하는 법에서부터 하나하나 배워 나갔는데 때로는 뺨을 맞아야 할 정도로 혹독한 것이었지만 그는 후에 ‘센바의 유명한 가게에서 일을 배워 새로 가게를 낸 사람은 처음부터 사람들의 신용을 얻을 수 있었다.’고 그리운 듯 말했으며 센바에서 일을 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고용살이는 혹독햇다. 그러나 “고노스케는 고용살이 경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그것들은 후에 그가 상업에 뛰어들었을 때의 기본자세가 돼 주었다. 한번은 고노스케에게 ‘상도’에 대해 물었더니 중요한 것은 세 가지라고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하나는 ‘장사의 의의를 알 것’, 다음으로는 ‘손님의 마음을 읽을 것’, 그리고 ‘상대방보다 더 겸손할 것’.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고노스케의 인사는 언제나 정중했다. 그것은 단지 머리를 숙이는 데만 그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얼굴이 무릎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뿐만아니었다. 손님이 돌아갈 때는 손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손님의 모습이 사라지기 직전에 다시 한 번 마음을 담아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손님을 대할 때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기자들의 취재에 응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고용살이 시절에 익힌 이런 습관을 평생에 걸쳐서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실천했다. ‘그쪽으로 발을 두고서는 잠을 잘 수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센바의 가게에서는 실제로 중요한 단골이 있는 쪽으로는 다리를 두고 자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장사가 녹녹치 않은 일이라는 것도 이런 말을 되풀이해 깨우쳐 줬다고 한다.

‘이것만은 잘 기억해 둬야 한다. 어엿한 한 사람의 상인이 되기 위해서는 소변이 빨개지는 그러니까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올 정도의 일을 한두 번쯤은 겪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엿한 상인이 될 수 없단다.’”

어릴 때 몸에 밴 상인의 자세는 그의 일생을 만들었고 그의 경영철학이 되었다. “고노스케는 사원교육에 특히 힘을 쏟았다. 구체적으로는 ‘애교 있게 행동하라’, ‘인간적인 매력을 갖춰라’라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비결이다라며 상인으로서의 기본자세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마쓰시다전기가 아무리 거대해진다 할지라도 언제나 일개 상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그 종업원, 혹은 그 점원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 소박하고 겸손한 자세로 업무에 임해야 한다.”

초창기 시절 고노스케는 자신이 고용살이 하던 시절처럼 종업원들이 회사의 기숙사에 기거하며 몸가짐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소부터 인사하는 법 같은 자잘한 규칙들은 그가 고용살이할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마쓰시다의 독창성은 자신의 고용살이 경험을 상도에 그치지 않고 경영철학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상인의 겸손한 자세는 손님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했다.

“부하의 장점이나 훌륭함을 분명히 알고 있는가? 자기 부하가 100명이라면 나의 훌륭함은 101번째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참된 리더다.” 손님뿐만 아니라 부하에게도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마쓰시다에게 상인의 겸허함은 경영철학일뿐 아니라 인생철학이기도 햇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회사를 말아먹고 국가를 망치게 하니 머리 좋은 사람은 마쓰시타에 들어올 수 없다.’ 나는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면 거기서 성장은 멈춘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기본을 익힐 수 없다. 그런 건방진 사람은 필요 없다, 이런 뜻이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귀가 큰 사람’이었다. 그저 크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마치 레이더처럼 앞으로 내밀어져 있었다. 사람들의 말에 유심히 귀를 기울였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실제로 그는 누구보다도 타인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사람이엇다.”

겸허한 사람은 끊임없이 배운다. 저자는 “그 지칠 줄 모르는 향상심과 겸허함에 훗날 ‘신’이라 불릴 수 있었던 비밀이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한다.


마쓰시타는 경영자의 필수조건으로 ‘순수하게 귀를 기울이는 힘’, ‘민감하게 감지하는 힘’을 꼽았다. 그것은 모두 자신을 낮추고 귀 기울일 때 가능한 힘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쓰시다는 겸허함을 ‘순수함’과 같은 말로 보았다. “고노스케는 평생을 통해 (3살 아이의) ‘순수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겸손하면 오만해지지 않을 수 있고 오만하지 않으면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다.

“그는 수차례에 걸쳐서 커다란 결단을 해 왔다. 신기하게도 그의 경우에는 그것이 멋지게 적중했지만 다른 회사들은 도중에 경영부진에 빠져 사라져 갔다. 그 차이는 대체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그 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자신이 ‘순수’했기 때문이며 ‘천지자연의 이’에 잘 따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미묘한 느낌은 추상적인 말로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선문답과도 같은 ‘자연의 이법’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사업에서 늘 성공을 거둬 오셨는데 그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평소 같았으면 판에 박은 듯 ‘운이 좋았다’고 대답했을 테지만 이때만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천지자연의 이법’을 따랐다는 데 있습니다.”
선문답 같은 그의 말에 당황한 기자가 그 뜻을 물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쓴다’는 말입니다.”
더욱 당황한 기자의 얼굴이 떠오를 듯하지만 이것은 그의 경영의 본질인 ‘순수한 마음을 말한 것일 뿐이다.

여러 사람들의 지혜를 모은 뒤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반 대중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그러면 나아가야 할 길이 눈앞에 저절로 떠오른다. 세상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 갈때는 마음을 다잡고 잘 풀리지 않을 때라도 비관하지 말고 문제점이 분명해졌으니 잘된 일이라 생각하고 착실하게 노력하며 호전되기를 기다린다. ‘호황도 좋고 불황은 더욱 좋다’란 그의 말은 바로 이 ‘순수한 마음’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언뜻 그렇고 그런 개똥철학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쓰시다 경영철학의 힘은 그것이 생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경영현장을 움직여 결과를 냈다는 것이다.

기업의 비전이란 개념 고안(‘수도철학’),
“이유이란 사회가 우리에게 맡긴 것이다.”, ‘기업은 공기(公器)이다’ (기업의 공익성을 처음 제시),
‘조례’ 제도 고안(조직의 구심력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
“사장이라면 사원들에게 적어도 5년 뒤에는 어떤 회사로 만들 생각인지 그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경영계획이란 개념을 처음 제시),
‘좋은 생각 제안 운동’ (카이젠 운동의 효시가 되는 제도),
종신고용제의 효시,
사업부제 고안,
‘광고는 기업의 의무다’ (홍보의 중요성 인식)
투명한 경영,
정가판매제

마쓰시다가 생각해내고 실행했던 제도들이다. 지금은 당연한 것들이 되었고 진부하게 들리지만 그것을 처음 생각해내고 실행했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도 그렇지만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제도를 생각해낼 수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마쓰시다가 경영의 신으로까지 불리는 것은 그런 아이디어 제조기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힘은 상황을 읽고 상황에 따라 정책을 만들어내고 상황이 변하면 자신의 정책을 바로 폐기처분할 수 있는 능력에 있었다.

“’경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한 가지 수단을 강구한 뒤에는 반드시 그 다음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수명은 30년이란 설이 있다. 마쓰시다전기가 30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아직까지 존속할 수 있엇던 것은 ‘사업부제’를 실시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분사제’를 실시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고 또 그 어느 쪽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선문답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다시 말하자면 시대의 요청을 남보다 한 발 앞서 포착, 조직뿐만 아니라 주력상품이나 비즈니스모델까지도 민첩하게 바꿔 ‘나날이 새로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잇었던 것이다. 조직을 바꾸고 또 바꿔서 결국에는 예전과 거의 같은 조직으로 되돌아간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도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효율적인 조직이라 할지라도 ‘너무 오랫동안 똑 같은 모습을 유지’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풀어져 생산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영원히 효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조직의 이상형’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모든 것은 ‘나날이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나날이 새로워져야 한다. 오늘날은 혁신이라 말한다. 혁신이란 말이 유행하기 오래 전에 그것을 실천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혁신이란 말이 나오기도 훨씬 이전에 혁신의 본질을 알고 실천했다는 것이 더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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