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붕괴 - 미국은 소련의 종말을 쫓고 있는가
드미트리 오를로프 지음, 이희재 옮김 / 궁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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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왜 붕괴했는가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소련의 시스템이 더이상 지속가능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너졌다는데는 다들 동의한다.

단지 논란이 있는 부분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왜 좌초했는가에 대한 것이다.

소련이 무너졌을 때 미국은 의기양양했다. '역사의 종말'이란 책까지 나오면서 이제 세계는 미국의 것인양 축배를 들었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는 과연 미국이 이긴 것인가? 라고 묻는다.

저자는 냉정의 두 라이벌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닮은 점이 많았다고 말한다.

고르바초프가 서툰 개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소련 시스템의 문제를 미국 역시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련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었던 것은 "기존의 자본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소련의 문제는 많았다. 시스템의 재생산이 불가능하게 된 것은 경제학자들이 흔히 말하듯이 효율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중앙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계획경제는 자본재와 군수산업에는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소비재와 농업에는 재앙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경제의 비효율성이 소련을 무너트린 것은 아니라고 본다.

미국과 소련 모두 과학과 기술, 진보를 죽어라 믿었다. 모든 문제는 과학과 기술의 진보와 함께 해결된다는 낙관주의도 똑같았다. 그리고 이념적 경직성도 둘 다 똑같았다. 소련은 계획경제라는 이념 때문에 시장을 외면했고 미국은 반대로 시장이란 이념 때문에 계획이 더 효율적인 분야에도 시장을 고집했다.

예를 들어 소련 시절의 교육과 의료는 미국보다 더 질이 높았다. 미국은 의료까지 시장에 맡긴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 덕분에 말도 안되는 의료제도를 가지고 있으며 시장적응자를 만든다는 교육의 목표는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고 글조차 읽지 못하는 교육실패자들을 양산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소련의 시스템에 치명적이었던 것은 시장의 효율성과는 다른 문제였다고 본다. 적어도 소련의 시스템은 소비재와 생활수준은 낮았지만 기본생활은 보장이 되었었다. 그러나 그 낮은 수준의 보장조차 불가능해진 것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1980년대 초 소련은 막대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그리고 그 적자를 메우기 위해 빌린 외채에 시달리고 있었다. 결정타는 1980년대 저유가로 타격을 받고 적자에 시달리면서 석유생산에 투입할 재원 자체가 고갈되면서 1980년대 중반 석유생산고가 정점을 찍고 하강하면서 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때부터 시스템은 사실상 무너졌다. 그러나 관성에 의해 몇년 정도는 버틸 수 있었지만 소련이란 정치 시스템이 사라지면서 우리가 알듯 소련은 석기시대로 돌아갔다.

당시 소련의 참상은 '추운나라에서의 나날들 ( http://www.joara.com/view/book/bookPartList.html?book_code=328297&sl_category=novel )'이란 중편에 잘 그려지고 잇다. 이 소설에선 기본적인 생활보장이 되지 않을 때 사람들이 생존에 필요한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어떻게 변해가는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마피아가 등장하게 되는가를 설득력있게 그려나간다.

저자는 미국 역시 그런 붕괴를 겪게 될 것이라 본다. 미국의 문제는 소련과 마찬가지로 석유와 다른 천연자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낭비구조라고 말한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는 80년대 소련의 상황과 미국의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은 싼값의 석유가 없으면 유지되지 않는 나라이다. 담배 하나 사러갈 때도 차가 필요한 나라에 석유를 구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은 70년대 이후 석유의 절대다수를 수입하고 잇다. 그러나 쌍둥이 적자의 문제가 터져 달러가 폭락하는 일이 일어난다면(저자는 상당히 개연성이 높다고 말한다) 석유를 더 이상 수입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미국의 시스템은 붕괴할 것이라 말한다. 미국 역시 소련 붕괴 이후의 상황과 다르지 않은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상황에서 미국인이 얼마나 잘 버틸 수 있을까 묻는다. 러시아인들보다 훨씬 못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이다.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장점은 단점이 되고 단점은 장점이 된다. 미국의 시장시스템은 분명 자원활용에 있어서 소련의 시스템보다 효율적이다. 그러나 그 효율성 때문에 시스템이 붕괴했을 때 미국은 소련보다 더 큰 재앙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저자는 본다.

예를 들어보자. 9.11 사태가 일어났을 때 미국 제조업과 유통업은 심각한 문제를 겪었다. 도요타 시스템에 따라 필요한 재고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타격이었다. 9.11 사태로 국경의 물류속도가 정체되면서 효율적인 시스템이 비효율적인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다.

붕괴가 일어났을 때 러시아인들은 바로 그 비효율성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계획경제의 비효율성 때문에 국영기업들은 자체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데 익숙해있었다. 원료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으니 원료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확보하는 습관이 있었고 소비재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직원들을 위해 소비재를 쟁였었고 주택, 교육, 의료까지 회사가 책임졌었다. 갑자기 시스템이 붕괴했을 때 그런 자급자족적인 습관은 독립영지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

개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련 시절 빵만은 국가가 죽을 힘을 다해 조달해주었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은 부족했다. 러시아인들은 텃밭에서 먹을 것을 길러 조달하는데 익숙했다.

소련 시절 돈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돈이 아니라 인맥으로 구하는데 익숙했고 시스템이 붕괴한 이후에도 인맥에 기대 서로 필요한 것을 교환하는 석기시대가 왔을 때 더 잘 적응할 수 있었다. 마피아는 그런 인맥을 따라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시장에 의존하는 미국에서 시장시스템이 붕괴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이책의 질문이다. 저자는 매우 비관적이다.

이상이 이책의 요지를 간추려 본 것이다. 이책의 내용은 얼마전 나왔던 '석유종말시계'란 책과 비슷한 문제를 다룬다. 석유가 구하기 어렵게 될 때 시스템이 어떻게 무너질 것인가?란 질문이다.

그러나 석유종말시계는 점진적일 것이란 전제에서 사회의 시스템이 적응해나갈 것이라 본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는 시스템은 적응하지 못하고 소련처럼 붕괴할 것이라 본다. 쌍둥이 적자라는 거품때문이다. 거품은 서서히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점진적 적응일지 붕괴일지 알 수 없다. 아니면 대체에너지가 개발되어 석유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면 두가지 시나리오 모두 맞지 않을 수도 잇다. 어느 것이 맞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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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go 2010-09-17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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