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이야기 - 시대를 뒤흔든 창조산업의 산실, 픽사의 끝없는 도전과 성공
데이비드 A. 프라이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미쳐야 살아남는다(Only the Paranoid Survive)”
이책을 보면서 떠오른 말이다. 앤디 그로브의 책제목인 이말은 창조성이 성공의 핵심인 시장의 생리를 잘 요약하고 있다. 그 일 이외의 모든 것을 희생할 정도로 그 일에 미치지 않으면 남보다 앞설 수 없고 앞설 수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첨단기술만 열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미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없다.

픽사를 세운 이책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런 미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책의 주인공들은 제대로 미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3D 애니메이션이란 분야에 미친 것은 컴퓨터로 필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세상이 알기도 전이었다.

이책의 주인공들은 폴리곤, 매핑, 라이팅, 퐁 쉐이딩이란 3D의 기초 알고리즘이 처음 만들어지던 1970년대에 컴퓨터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예상에 자신들의 일생을 걸었던 사람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컴퓨터의 출력장치로 모니터가 사용되기도 전에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하던 사람들이었고 컴퓨터 그래픽이란 분야를 개척해나간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시대를 너무 앞서 있었다.

컴퓨터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그들의 비전을 실현하기에 당시의 컴퓨터는 너무나 힘이 부족했다. 그들은 컴퓨터가 시각언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알고리즘부터 하드웨어까지 모든 것을 개발해내야 했다.

그러나 상업적인 결과를 보여주기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으니 돈이 될 리 없었다. 그들은 돈을 대줄 물주를 찾아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대륙을 가로질러 대학 이사장에서 조지 루카스, 스티브 잡스까지 물주들을 찾아 불안하게 20여년을 보내야 했다.

그들은 최고였다. 그러나 그 최고란 돈이 되지 않는 최고였다. 물주의 입장에선 돈을 벌기 위해 투자를 하는 것인데 최고인 그들은 돈을 벌어줄 수 없었다. 그들이라고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기술의 현재수준이 돈을 허용해주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실리콘밸리나 헐리우드로 갔다면 얼마든지 대우를 받으면서 떼돈을 벌 수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돈을 벌어오라는 물주들의 구박을 참아내며 픽사를 지켰다. 컴퓨터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꿈을 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같이 모여 있을 수 있는 픽사가 좋았기 때문이다.

어느날 그들이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이 아카데미 상을 받으면서 상황은 바뀐다. 당시 물주였던 스티브 잡스는 본능적으로 가능성을 느낀다. 그가 픽사를 산 것은 하드웨어 회사로서 였다. 그는 도대체 왜 하드웨어 회사가 애니메이션 부서가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카데미 상이 그의 생각을 바꾸게 된다.

이후 스티브 잡스의 승인 하에 픽사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가고 예비단계로 광고제작을 수주한다. 실적이 쌓이면서 디즈니가 관심을 보이고 토이스토리를 만들게 된다. 토이 스토리는 대박이었고 그 이후 픽사의 승승장구가 시작되어 만드는 영화마다 기록갱신 행진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결과 픽사와 디즈니의 대등한 합병에 이르게 된다.

이상이 이 책의 내용이다. 물론 이책의 내용은 이런 줄거리 요약으로 전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책은 픽사의 핵심 멤버들이 70년대 3D의 선구자 역할을 한 유타 대학에서 3D의 개척자로서 어떻게 어떤 알고리즘을 만들었는지,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에서 컴퓨터 그래픽의 가능성을 보게 되었는지, 정체된 디즈니에서 어떻게 실망하고 픽사팀에 합류하게 되었는지 등 IT의 개화기인 70년대부터 80년대, 90년대를 거치면서 컴퓨터 그래픽의 역사를 따라간다.

이책의 주제인 픽사의 역사는 단순히 한 회사의 역사가 아니다. 픽사는 3D 애니메이션이란 분야의 선구자이기 때문에 픽사의 역사는 한 분야 자체의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한 분야가 어떻게 불모지에서 태어나고 뿌리를 내리는가 그리고 그 황무지에서 살아남기 위해(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척자들이 어느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어떤 태도로 자신의 일을 했는가와 같은 ‘이야기’를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재미있게 쓰였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그 재미를 느끼게 위해선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책의 대상은 예술이기도 하면서 기술이기도 한 분야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기술용어들이 쏟아진다. 컴퓨터 용어는 기초이고 폴리곤(책에선 다각형이라고 번역하는데 보통 그 분야에선 그냥 원어를 그대로 쓰는 경향이다), 렌더링, 퐁 쉐이딩, 텍스쳐 매핑, 렌더팜과 같은 그 분야에선 아주 기초적인 용어이지만 그 분야 밖의 사람은 알기 힘든 용어들이 쏟아진다. 그뿐 아니다. 애니메이션에 관한 책이기 때문에 디즈니에서 정립한 셀 애니메이션의 개념들도 쏟아진다.

한 분야가 처음 생명을 얻어 뿌리를 내리기 까지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그런 생소함과 난점을 견디며 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평점 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