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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발명
린 헌트 지음, 전진성 옮김 / 돌베개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인권이란 자유와 평등의 다른 이름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모두는 평등하며 나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나와 같은 권리를 갖는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이 평등하다면 나와 대등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당연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유럽에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개념의 시초는 기독교로 올라갈 것이다. 인간은 신 앞에서 평등하다면 신의 창조물로서 인간은 평등할 수 밖에 없고 대등한 인격체로서 대등한 권리를 갖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동등하다는 생각이 보편적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개념이 오늘날과 비슷한 모양으로서 등장한 것은 계몽주의와 함께 였다. 그러나 학자들의 주장을 넘어 사람들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이책의 저자는 계몽주의자들의 주장이 보편적이 된 것은 두가지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책에서 주장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첫번째 계기는 서간문학작품들이엇다. 편지의 형식으로 기술되는 서간문학은 1인칭 시점으로 기술될 수 밖에 없다. 작가의 시점이 아니라 주인공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풀어지는 서간문학은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의 내면을 더 실감나게 하는 특징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이 주인공과 자신을 더 쉽게 동일시하게 하는 ‘공감’의 힘이 더 강했다.
이책에선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 이전 수십년동안 유행했던 서간문학작품이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를 분석하면서 자유와 평등이란 개념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실체로서 이해되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당시 인기를 끈 서간문학작품 중 저자가 분석하는 3편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다. 하녀, 하급귀족의 딸을 다루는 3작품은 남성독자들에게 계급과 성의 차이를 떠나 그녀들도 자신과 같이 생각하고 느끼는 자율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인간을 나누는 차이를 넘어 그들도 자신과 평등한 인간이며 자신과 같이 스스로 삶을 결정할 권리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게 한 것은 당시 유행한 문학의 힘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서간문학이 혁명 직전에 대대적으로 유행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저자가 드는 다른 계기는 고문이다. 당시 형법에서 고문은 수사과정은 물론 집행과정에서 합법이엇다. 그러나 계몽주의가 득세하던 당시에 고문은 문제가 되었고 형법개정운동으로 발전한다. 저자는 고문에 대한 반대가 여론의 힘을 얻게 된 것이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이해해가던 당시의 지적조류와 연결시킨다. 고통받는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사회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18세기 말 두개의 혁명이 일어나고 두 혁명에서 인권선언이 채택될 수 있었던 것을 이러한 공감의 능력이 고조되었던 사회적 분위기에서 찾는다.
이상이 이책에서 읽어야 할 내용이다. 이책의 후반은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 이후에도 인권은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았던 것을 자세하게 지적한다. 특히 프랑스혁명을 자세하게 분석하면서 구교도에 대해 신교도도 마찬가지로 시민권과 정치적 권리를 가지는가? 그러면 유대인은? 그리고 여자는? 노예는? 이런 식으로 인권의 의미에 대한 의문이 커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인권이 보편적으로 생각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과정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났을 때 영국의 버크는 사회적으로 집단의 정체성과 연결되지 않는 인권이란 추상적 원리는 비현실적일 수 밖에 없으며 그런 추상적 원리가 현실이 되려면 폭력으로 현실에 자신을 강요할 수 밖에 없다고 예언했다.
프랑스혁명의 무질서와 폭력은 실제 그러했다. 저자는 이후 인권의 역사는 버크가 지적한 추상적 원리가 가져야 할 현실적 토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고 지적한다. 처음에 그 토대가 된 것은 민족주의였다.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보다 더 평등하다. 그러한 주장은 인종주의와 성차별로 이어졌다. 저자는 19세기 이후 UN의 인권선언이 공표되기까지 인권의 역사를 그러한 현실화의 과정으로서 폭력의 과정으로서 그려나간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의 간추려 본 것이다. 이책은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인권이란 추상적 개념이 현실적으로 힘으로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공감’이란 개념을 통해 매우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잇다. 그러나 문제는 공감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인권이란 개념을 퍼트렸는가를 말하면서 이책의 반 이상에서 말해지는 혁명과 민족주의, 인종차별, 성차별의 역사와 같은 거시적 맥락을 공감이란 미시적 토대에서 재구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책은 17세기 인권이란 추상적 개념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힘을 얻게 되는가를 묘사하는 앞부분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