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권력의 이동
론 처노 지음, 노혜숙 옮김 / 플래닛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금융권력의 이동이란 제목이 붙은 이책의 원제는 은행가의 죽음이다. J.P. 모건과 록펠러의 전기(둘 다 번역이 되어 있다)를 쓴 저자는 이책에서 자신이 다루었던 모건과 록펠러의 시절과 지금의 월스트리트가 왜 이렇게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가 다룬 모건은 자신의 은행에 간판을 달지 않았다. High finance란 말이 쓰이던 그 시절의 은행업은 광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소도시의 작은 은행들은 지금 우리가 아는 은행들처럼 지점을 내고 크게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했다.

그러나 모건과 같은 거물들에게 그런 것은 잔챙이들의 코묻은 돈을 만지는 하찮은 일이며 자신과 같은 ‘고귀한(high)’ 은행가가 할 일이 아니었다.

‘고귀한’ 은행가가 할 일은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귀한 거물들의 돈을 굴려주는 것이었다. 저자는 그런 금융귀족들의 영업방식을 관계형 거래라 부른다.

지금과 달리 19세기에는 돈이 귀한 시절이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로스차일드나 베어링과 같은 금융가문들은 지금처럼 예금을 받은 돈을 모아 대출을 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금융가문들은 금융이 아니라 실물경제에서 번 돈으로 금융을 우연히 하게 된 것이다.

그런 예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GE 캐피털이라든가 삼성카드라든가 모두 실물경제에서 번 돈으로 금융에 진출한 예이다.

지금처럼 자본시장이 제대로 되어 있지도 않았고 돈도 귀하던 시절 금융업은 그렇게 재력가들의 금융가문이나 그 금융가문과 마찬가지로 실물경제에서 번 돈을 가진 ‘고귀한’ 사람들이 맡긴 돈을 굴리는 일이었다.

그런 돈을 굴리는 일은 처음에는 국가를 상대로 국채를 인수하는 일이었다. 로스차일드의 주업무가 그랬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산업의 자금수요가 거대한 시절이 아니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이 되면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자금수요도 거대해졌다. 그러나 시중에 그 수요를 받쳐줄 돈이 없었고 그런 돈을 모아줄 은행업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가족기업들은 자금수요를 맞추기 위해 주식을 발행하게 된다.

19세기 후반 산업의 팽창과 함께 은행업도 성격이 바뀐다. 철도나 석유, 철강, 전화와 같은 거대한 기간산업이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산업체들은 모건의 은행과 비교하면 난쟁이였다. 금융이 산업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듯이 19세기 후반은 금융이 산업을 수직적으로 지배하는 시절이 된다.

이러한 금융의 지배는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모건이 산업체에 파견한 이사들은 그 업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경영에 관여했다. 당시 모건이 관여했던 업체들인 US 스틸이나 AT&T 등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거대기업들이 지금까지 남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대공황을 전후해 금융의 지배는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 이유를 저자는 탈중개화로 말한다. 은행업은 자금의 공급자와 소비자를 중개하는 것이다. 은행의 힘은 공급자와 소비자의 힘이 커지면 작아진다. 대공황 이전 강세장은 공급자들, 즉 개미들의 자금이 풍부해지고 잇다는 전조였다. 그리고 그 이후 경제력이 성장하면서 기업들의 힘이 막강해졌고 2차대전 이후 대중의 시대가 되면서 소비자들의 자금도 풍부해졌다.

이후의 금융의 역사는 금융사에 흔히 언급되는 탈중개화의 역사이므로 굳이 여기서 다시 요약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상이 이책에서 기대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책의 내용은 사실 금융사에 다들 언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책의 가치는 무었인가? 소책자에 불과한 이책에서 200년 가까운 금융사가 모두 정리될 수는 없다. 사실 이책의 서술은 자세하지 않다. 그냥 주마간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책은 위에서 말했듯이 모건과 록펠러가 살아 잇을 때와 지금의 월스트리트를 비교해보여준다는데 의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는 이책이 그리는 풍경의 대비는 생생하다. 특히 에필로그에서 모건이 살아와 지금의 월스트리트를 걷는다면 뭐라고 할까라는 데서 그런 특징이 잘 살아있다. 모건이 살아있을 때보다 분명 지금의 월스트리트는 더 화려하고 커졌다. 그러나 모건과 같은 거인이 살았을 때 월 스트리트는 그렇게 화려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힘이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서 모건이 살아 온다면 눈살을 찌푸릴 것이라며 이책을 끝낸다. 모건과 같은 거물은 그의 시대와 함께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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