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침묵 -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찍은 시대의 초상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지음, 김화영 옮김 / 열화당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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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 앙리-카르티에 브레송의 인물사진집인 이책의 표지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저자인 사뮤엘 베케트이다. 브레송의 렌즈에 잡힌 베케트는 무언가를 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사진기를 의식하지 않는 듯하다. 혼자 서재에 있다 방안의 무언가에 시선을 놓고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것같이 보인다. 이것은 이 사진집의 특징이다.

서문을 보면 브레송은 잡지사에서 인물을 찍어달라는 사진의뢰가 들어오면 파파라치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초인종을 누르고 사람이 나오면 바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다.

사진기 앞에만 서면 사람들은 연기자가 된다. 혼자 있을 때와는 다른 가면을 쓴다. 배우처럼 말이다. 브레송은 그런 가면을 찍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파파라치처럼 느닫없이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하고 몇 시간 동안 그 사람 주변을 돌면서 자연스런 그 사람의 내면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언제 사진을 찍었는지 알 수없도록.

마를린 먼로의 사진이 그런 예이다. 스튜디오의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 뭔가 골똘히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것같은 그녀는 섹스심벌로 고정된 그녀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저 평범한 상냥할 것같은 깨지기 쉬운 여자이며 뭔가 보호해주고 싶은 청순한 이미지이다. 아마 그 사진에 찍힌 마를린 먼로가 그녀의 진실에 가깝지 않았을까?

이 사진집의 제목이 왜 내면의 침묵이라 붙었는지는 이책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표지의 사진을 보면 그리고 이책에 실린 사진들을 보면 왜 그런 제목이 붙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그 제목은 브레송이 붙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책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제목이다.

이책에 실린 사진의 특징은 물론 그런 내면을 포착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책의 사진은 강렬한 힘이 있다. 그것은 사진에 찍힌 인물들의 내면이 갖는 힘이다.

다시 베케트의 사진을 보자. 굳은 표정, 꽉 다문 입, 살아있는 눈빛을 보면서 무엇이 느껴지는가? 이런 사람이 자신의 주변에 있다고 상상해보라.

이책에 실린 사람들은 베케트와 비슷한 창조의 사람들이다. 자코메티, 에즈라 파운드, 크리스티앙 디오르, 코코 샤넬, 네루, 브르통, 포크너, 아서 밀러, 사르트르, 카뮈, 스트라빈스키, 마를린 먼로, 마틴 루터 킹 등

우리가 익히 아는 사람들은 물론 한국인에게는 낯설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 학자, 디자이너, 정치가들이 이책의 주인공들이다. 이책이 보여주는 것은 시대를 창조했던 사람들의 내면이다. 그리고 그 내면의 힘이 느껴진다.

물론 이책의 사진에 보이는 것이 힘만은 아니다. 에즈라 파운드의 사진에선 세계를 관통해 그 안을 들여다보는 것같은 깊고 날카로운 메스같은 눈빛이 사진을 보는 이를 움추려들게 한다. 그러나 코코 샤넬의 사진은 그녀의 추진력이었던 외로움이 그대로 드러난다. 외롭기에 일에 미쳤던 한 시대를 창조했던 디자이너가 외롭게 쓸쓸하게 지친 표정으로 구석에 앉아있다.

물론 이책의 모든 사진이 그들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무언가 강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상당수의 사진들은 강하게 보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 인상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 설명할 수 없는, 보면 볼 수록 인상의 실체가 달라지는 그런 모호함이 이 사진집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두고두고 보고 싶은 사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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