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아트, 메이드 인 코리아 - 광기와 집착으로 완성된 현대미술 컬렉션
임근준 지음 / 갤리온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21인의 작가를 소개하고 있는 이책의 제목에는 크레이지 아트란 말이 나오지만 소개되는 작가들과 작품들은 미친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여기서 미쳤다는 말은 'Only the paranoid surive'라는 앤디 그로브의 책제목과 같은 의미이다.

어느 전문가 세계이든 자신의 일에 미친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이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사람들 역시 그런 의미에서 미친 사람들이다. 자신의 일에 대해 확고한 견해가 있고 그 견해를 밀고나가는 프로다운 집착과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 중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 생존자가 되고 성공했다는 말을 듣는다. 이책이 다루는 21인의 작가들은 바로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이다.

이책의 배경이 되는 시간대는 작고한 백남준씨가 사재를 털어 한국에 유치했던 휘트니 비엔날레가 열린 1993년 이후 한국미술계에 등장한 A급 신예작가들이다. 연령대는 386세대와 70년대 초반 태어난 세대들이 된다.

저자가 휘트니 비엔날레를 경계선으로 잡는 이유는 휘트니 비엔날레가 한국미술에 준 쇼크를 계기로 1993년을 전후해 한국미술의 지형이 판갈이를 했기 때문이다. 한국미술이 역동성을 보이기 시작한 70년대 이후 주류를 지배한 것은 추상주의였고 80년대 민중미술이 대두되면서 양파전이 되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전후로 민중미술은 그 존재의미가 없어졌고 세계미술의 중심인 미국의 트렌드를 바로 안방에서 볼 수 있었던 휘트니 비엔날레는 민중미술은 물론 앵포르말로 대표되었던 주류미술까지 같이 날려버렸다. 이후 90년대를 장악했던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이후 한국미술과 세계미술간의 시차는 거의 없다시피하게 되었다. 즉 세계미술의 직접적인 영향에 한국미술이 노출되었고 경제가 그렇듯이 미술역시 세계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책이 다루는 작가들은 그렇게 판이 달라진 한국미술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경쟁할 능력이 된다고 저자가 판단한 작가들이다.

이책에선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끌었던 홍팡 세대까지를 연령대의 상한선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를 전후해 미술은 물론 음악, 문학을 비롯한 예술에서 어떤 주도적인 트렌드란 의미가 없어졌고 홍팡세대 이후 이책이 다루는 작가들에게 어떤 뚜렷한 트렌드를 잡아내기 어렵다. 오히려 그들의 작품에서 읽히는 것은 개별성 또는 특이성의 향연이다. 이책은 그러한 특이성의 향연을 나열한다. 21인의 작가들은 모두 개별적이고 어떤 도식으로 잡아내어지지 않는다.

이책은 그 작가들의 개성을 짧은 작가론에 담아 나열하면서 한국미술의 현재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들의 개성을 포착하는 저자의 필치는 예리하면서 평이하게 읽힌다. 이책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일화로 작고한 불문학자인 김현 교수가 미술평론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미술평론가들의 글을 보다보면 내 자신이 작문선생이 되어버린다. 읽히는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학적인 언어유희에 담긴 내용도 별볼일 없는 글들. 그러나 이책의 저자는 그런 병폐에서 예외이다.

이책의 작가론은 평이하게 읽히면서도 짧은 글에 담긴 내용은 깊이와 폭이 있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내용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품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저자는 작가의 전시회들은 물론 작품들을 개관하고 작가를 직접 만나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나를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들의 작업까지 관찰하는 공을 들였다. 그런 준비가 있는 글은 당연히 내용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읽기 쉬워진다. 말하려는 내용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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