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 6만 입양아의 주치의이자 엄마였던 홀트아동병원 조병국 원장의 50년 의료일기
조병국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을 받고 처음 눈에 들어 온 것은 아이를 무릎에 올려놓은 할머니의 사진이었다. 표지에 찍힌 저자의 사진이다. 의사 가운을 입고 웃으며 아이를 어르는 모습이다. 사진에 찍힌 저자는 솔직히 젊었을 때도 예쁘다는 말을 들었을 것같지는 않다. 책 안에 찍힌 젊었을 적 사진으로 봐도 그런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표지에 찍힌 저자의 모습은 더 없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 사진에는 외모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어딘지 푸근하고 따듯하게 느껴지는 사람. 같이 있으면 편안해지는 사람. 그런 분위기를 가진 사람은 외모가 어떤 사람이든 아름답게 느껴진다.

표지의 사진을 보며 도대체 저자의 삶이 어떠했기에 사진만으로도 이런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이책의 저자는 50년을 고아들의 의사로 살아온 분이다. 그 옛날에 나와 연대 의대를 고아들을 위해 세워진 서울시립병원과 해외입양의 동의어인 홀트아동복지회에서 버려진 고아들을 위해 살아온 분이다.

요즘도 아닌 50여년전 연대 의대를 나왔으면 부와 명예가 가능한 배경이다. 그러나 저자가 살아온 삶은 그녀가 돌보아 온 버려진 삶들처럼 윤기가 도는 삶은 아니었다.

우선 박봉이다. 지금도 별다를 것이 없지만 그런 시설에 예산이 넘치는 일은 없고 예산이 곤궁한 기관에서 봉급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넉넉하지 않은 것은 일 자체도 마찬가지였다. 일은 언제나 쌓여있고 그녀를 몰아대는 일 자체도 그리 기분좋은 일들은 아니다.

그 어렵던 시절 부모도 감당할 수 없어 버려진 아이들이 흘러내려와 마지막으로 모아지는 곳. 그런 곳이 웃음꽃이 넘치는 곳일 수는 없다.

"진료실에 앉아 수십 장이나 되는 사망진단서에 서명할 때나 힘없이 사그라지는 어린 생명을 그냥 지켜봐야만 할 때는 '내가 정말 의사가 맞나'하는 회의가 밀려들곤 했다."

그러나 "세상의 온갖 험하고 가여운 일을 보고 들어야 하는 이일을 내가 버리지 못한 이유"는 기적을 믿기 때문이었다. 아니 기적의 순간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병원의 예쁜이로 귀여움을 받던 건강한 여아가 갑자기 피부괴사로 손도 쓸 수 없어 사망선고를 내려야 했었지만 기대도 없이 곶감달인 물을 먹여 다음날 소생한 이야기.

철로에 몸을 던지 어머니는 죽고 두 다리가 잘린 채 병원에 왔던 아이, 차라리 어머니와 함께 죽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 측은해 했던 아이가 미국으로 입양된 후 두살 다섯살 사진이 오고 15살에는 롤러블레이드를 타는 개구장이 모습의 사진으로 날아 왔다.

저자의 50년은 그런 기적들이 넘치는 삶이었고 그런 기적은 낮은 곳에서 희망을 피워낸 저자와 그녀 주변의 사람들이 만든 것이었다.

이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서문에서 저자는 잘 난 것도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뭐 쓸 거리가 되냐고 겸손해 한다. '고아들의 대모'니 '입양아들의 어머니'니 추켜세울 때 어지러워 하는 저자는 이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50년을 채울 수 있게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이야기들은 출근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법한 신파조의 눈물 짜는 이야기들이다. 그 눈물범벅의 구질구질할 것같은 이야기들을 몸으로 겪은 저자가 흘려야 햇을 눈물은 얼마나 될까 궁금할 정도이다. "이렇게 가슴 아픈 사연들을 다시 겪으라면 그러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힘든 일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 없어 후임을 구해지 못했기 때문에) 본의는 아니지만  정년인 60세를 15년이나 넘겨 75세까지도 그녀가 자신의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낮은 곳의 어두움에서도 피어나는 희망과 행복이란 기적때문이었다.

"천만다행인 건 지난 50년간 슬픈 사연뿐 아니라 기쁘고 뿌듯란 추억도 많았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들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내가 정말 행복한 사람이었음을, 준 것보다 받은 게 훨씬 많은 사람이었음을 가슴 깊이 깨달았다."

책을 덮으면서 표지에 찍힌 저자의 사진에서 느껴던 궁금함이 풀렸다. 그것은 줄 줄 아는 삶 그리고 주면서 받았다고 느끼는 삶이 갖는 아름다움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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