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생각한다 - 도시 걷기의 인문학 정수복의 파리 연작 1
정수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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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생각한다'는 제목이 붙은 이책의 부제는 '도시 걷기의 인문학'이다. 이책의 내용은 두 제목을 모두 담고 잇다.

 

모든 책이 그렇듯이 이책 역시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책의 관점은 도시를 걷는 사람의 시점이다. 두발로 뚜벅 뚜벅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사람의 관점에서 본 파리는 이상적인 도시이다.

 

한 나라의 수도답게 파리에는 대통령부터 노동자까지 온갖 계층의 사람이 모여있다. 거기다 제국주의 국가였던 나라답게 북아프리카에서 온 무슬림들과 흑인들이 모여사는 거리가 있고 아시아인들이 밀집해 사는 거리도 있다. 사는 방식이 다르면 문화도 다르다. 사는 사람들이 달라지면 그 거리의 문화도 다를 수 밖에 없다. 파리의 20개구를 건널 때마다 국경을 넘는 것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만 파리의 다양성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2천년 가까이 지금의 자리에 있어온 파리의 역사 자체가 다양성의 원천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파리라는 도시의 공간 자체이다.

 

도시는 공간이고 도시라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건축물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파리는 물리적으로도 다양할 수 밖에 없다. 파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로마제국 시절의 건물부터 중세의 건물, 절대왕정 시절의 건물, 공화정 시대의 건물, 20세기와 21세기의 건축물까지 파리란 도시의 공간에는 파리가 여행한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잇다.

 

서울의 역사가 600년이라고 하지만 아무도 서울의 얼굴에서 그 시간을 읽는 사람은 없다. 일제시대를 거치고 전쟁에 부서진 잔해를 마져 부수면서 개발되고 성장한 서울이란 도시의 나이는 기껏해야 30년 정도이다. 과거가 없는 도시는 경박할 뿐이다.

 

파리란 공간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은 단순히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만이 아니다. 파리 곳곳에 새워진 박물관과 미술관, 거리마다 새워진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 역사의 흔적을 가진 건물에 그 사연을 말하고 말하는 표지판 등은 의식적으로 역사를 기억하려는 노력들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고  역사의 무게는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파리란 공간에 사는 사람들과 역사의 흔적은 산책자의 눈과 생각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다양하기만 하다고 산책자에게 이상적이지는 않다. 파리를 파리로 만드는 것은 다양성의 조화이다.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를 꼽으라면 파리가 가장 많이 언급된다. 파리가 아름답다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파리만 아름답지는 않다. 사람들이 파리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일종의 브랜드 효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파리란 브랜드를 만들어낸 것 역시 파리의 역사이다. 19세기 유럽이 세계의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던 시절 파리는 프랑스 만이 아닌 유럽의 수도로서 문화와 정치의 중심지였다. 오늘날 파리라는 브랜드는 그당시 만들어진 이미지가 지금까지 과거의 영광으로서 후광을 비추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문화는 뉴욕보다 패션은 런던과 밀라노보다 못하다.

그러나 파리가 오늘날까지 프리미엄 브랜드의 지위를 누리는 것은 과거의 유령으로서가 아니라 그만한 실체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실체를 파리의 아름다움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다양성의 조화라고 말한다.

 

위에서 말한 다양성만이 있다면 그 도시는 서울처럼 혼란스런 공간이 될 뿐이다. 다양성이 어울려 하나로 통일될 때 우리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말한다.

 

오늘날 파리의 모습이 결정된 것은 19세기 나폴레옹3세 시절이다. 그때까지 좁고 지저분하며 혼잡한 중세도시의 모습을 가졌던 파리에 마차와 전차가 다닐 수 있는 방사상의 직선대로가 뚫렸고 건물의 높이를 7층까지 제한했으며 도심에는 석재로만 건물을 짓도록 했고 대로가 만나는 곳마다 광장을 만들고 공원을 만들어 쾌적한 도시가 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다시 만들어진 파리는 산책자를 즐겁게 하는 공간이 되었다. 석재와 (적색이 아닌 갈색의) 벽돌로 이루어진 도시건물들의 소재는 회색과 베이지, 미색의 뉴트럴 컬러로 도시를 채색했다. 정장의 컬러가 뉴트럴인 이유처럼 그런 컬러는 안정감을 준다.

 

자극적인 강렬한 노란색만 고집하는 맥도널드가 파리에선 가라앉은 금색을 쓸 수 없었던 것은 도시의 톤을 조화롭게 하려는 파리시의 고집때문이었다.

 

산책자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은 색조만이 아니다. 7층으로 건물의 고도를 제한한 것도 안정감을 준다. 강남역의 대로변을 걸어보라. 안정감이 느껴지는가? 유리와 콘크리트의 무표정한 절벽들이 늘어선 거리에서 느껴지는 것은 한없이 작아지는 위압감이다. 사람은 하늘이 시야에 잡힐 때 안정감을 느낀다.

 

파리가 산책자에게 이상적인 것은 기본계획이 19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자체도 큰 이유이다. 도시계획에서 자동차가 당연한 변수가 되기 이전, 사람이 걷는 것이 당연했던 19세기에 만들어진 파리의 골목길들은 자동차에 어울리는 직선이 아니라 사람의 동선에 어울리는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몇분 거리마다 박물관이 있고 랜드마크 건물이 있으며 공원이 있고 광장이 있다.

 

그리고 파리의 규모 역시 산책자에게 적합하다. 런던의 1/19, 서울의 1/6에 불과한 파리는 한나절이면 도시 끝에서 끝까지 걸어갈 수 있으며 차로 20분이면 횡단할 수 있는 도시이다.

 

그리고 보행자의 기준에서 하루 생활권으로 묶인 도시이기에 파리의 조화가 가능하다. 서울처럼 여러개의 부도심이 만들어질 정도로 도시가 확대되면 도시의 다양성은 어떤 계획으로도 묶어내기 곤란할 정도로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고 제네바 정도로 작다면 다양성 자체가 없어진다.

 

파리의 크기는 적당한 다양성이 가능한 크기이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통일성으로 묶일 수 있는 크기이고 도시가 아름다울 수 있는 크기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산책자에게 아름다운 도시이다.

 

평가

 

이상이 이책에서 저자가 말하려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이책에 담긴 내용은 그 이상이다. 위에서 요약한 것은 책의 뒤 부분 일부에 불과하다. 책의 앞 부분엔 산책에 관한 수필에 가까운 내용이 한 챕터를 이루고 그 뒤엔 파리를 사랑한 사람들의 역사가 한 챕터를 이루는 식으로 저자는 이책에 많은 내용을 담으려 한다. 그러나 이책의 제목이 말하는 파리에 대한 생각은 위에서 요약한 정도가 실질적이다. 나머지 내용은 사실 잡설에 가깝고 과학인 사회학을 전공한 사람다운 글이 아니라 인문학자 아니 수필가에 더 어울리는 내용이다. 그렇다고 그 잡설에 가까운 내용들이 저자의 사적인 느낌들을 담아 문학적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잡설에 가까운 내용보다는 위에서 요약한 알맹이 있는 내용을 더 깊게 들어갔었으면 내용이 휠씬 깊이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 이책의 내용 상당수는 설익은 파리에 관한 생각들을 그냥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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