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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음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새로 이사갈 아파트를 단장하다가 가구 모서리에 옆구리를 부딪쳤다. 약간의 통증이 있었지만 별 대수롭잖게 생각했다. 하루하루의 생활은 느긋하고 유쾌하며 고상했고 하는 일은 만족스러웠다. 아이들과 아내 역시 좋았고 그런대로 지낼 만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옆구리 통증이 심해졌다. 의사는 맹장을 의심했다. 처방전대로 약을 복용하고 안정을 취하려고 노력했지만 조금씩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왜 하필 나지?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왜 우연하게도 나지?
우연한 사고가 사건의 핵심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가구 모서리에 옆구리를 부딪치지만 않았더라면, 이반 일리치(톨스토이 작 ‘이반 일리치의 죽음’)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토마스의 상급자가 좌골신경통이 도지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대신 토마스가 테레사가 있는 시골로 검진을 가지 않았더라면 토마스와 테레사의 사랑은 결코 싹트지 않았을 것이다(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우연에 의해 우리 인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 논한다는 것은 쓸데없어 보인다. 우리 인생에 만약 두갈래 길이 있다고 해서 둘 중 하나를 미리 탐색해 보고 더 나은 것을 선택할 수는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그 선택의 순간에 우연의 힘이 끼여든다고 해도 막을 도리가 없다. 어쩌면 매 순간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에 앞선 우연한 신경통의 재발, 우연한 부딪침, 우연히 발견한 책 한권, 심지어 우연히 후각을 자극한 마들레느 냄새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연의 값을 측정할 수는 있을까? 우연이 사건들의 공시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A가 일어날 때 B가 일어날 수 있는 수적인 값을 과연 측정할 수 있을까? 다시 헛되고 쓸데없어 보이는 질문을 해보자, 우리 삶의 몇 퍼센트가 과연 이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까?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또 얼마나 되는가?
풀 오스터는 미국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에 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작가다. 나 역시 그의 ‘달의 궁전’을 읽었고 영화 ‘스모크’를 보았다. 달의 궁전은 처음 시작이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인공의 비관습적이고 비자본주의적인 인생관이 처음 얼마동안 책에서 손을 놓기 어렵게 만들었다. 물론 줄거리를 섬세하게 다 기억할 수 없는 것을 꼭 400쪽이 넘는 책의 분량 탓으로 돌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 기억력의 한계일수도 있고 갈수록 흥미를 떨어뜨리는 내용 탓일 수도 있으니까.
‘우연의 음악’이 내 수중에 떨어진 것은 2004년 4월 말이었다. 바하에 대한 책이 어디 없나 하고 신문을 검색하고 있던 차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내 눈에 띄었다.“…음악을 전공하는 두 남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 책의 전개가 바하의 푸가형식을 그대로 따랐다” 2000년 4월 7일자 일간지에서였다. 순전히 바하 때문에 이 책을 선택한 셈이 된 것이다. 푸가라, 푸가의 기법이라......
서른 중반의 소방관 짐 나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차만 몰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게 된 것은 뜻하지 않게 20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길에서 우연히 ‘마치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이는, 바람에 부러진 잔가지가 별안간 발치에 떨어진 것처럼’ 자칭 도박의 명수라는 잭 포지를 만난다. 나쉬는 이 만남을 ‘마구잡이 식의 우발적인 만남’이라고 표현했지만 이후 이 우연한 만남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그는 이 도박의 명수라는 잭 포지에게 노름 돈을 대주기로 결심하고 그와 함께 사상 최고금액의 복권에 당첨된 두명의 억만장자 스톤과 플라워와 대적하러 간다. 1만달러의 판돈을 걸고 시작한 노름에서 처음 예상과는 달리 잭 포지는 졌을 뿐 아니라 나쉬가 아끼던 사브 차까지 잃게하고 급기야 마지막에 가서는 카드떼기로 1만 달러를 더 빚지게 만든다. 물론 이것은 나쉬가 자초한 일이었다. 나쉬는 이미 1년을 넘게 길위에서 차을 몰고 달리기만 하고 있었다. 아내는 다른 사람과 눈이 맞아 떠났고 딸아이는 누나 집에 맡겼으며 인생에서 기대할 만한 어떤 것도 더 생각할 것이 없었다. 그는 이미 포기상태였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낯선 잭 포지를 일종의 패자부활전, 더 늦기 전에 자신을 위해서 뭔가 해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1만달러의 빚, 그리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두 명의 백만 장자의 집에서 벽돌쌓기라는 강제노역을 해야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강제노역에 매달리면서 나쉬는 자신의 삶을 발견하고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성취감과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몇가지 사건들이 있었다. 도저히 갇혀있을 수 없는 젊은 잭 포지가 도망가려다 거의 반죽음 상태가 되어 병원으로 실려간다. 또 자신을 감시하는 머스크의 손자에게 증오와 살의를 느끼기도 한다. 어쨌든 나쉬는 노예같은 강제노역 계약이 끝나는 날까지 쉬지 않고 하루 10시간씩 일했다. 마침내 일은 끝났고 자유의 몸이 곧 될 터이다. 이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갇혀 있으면서 발견한 책임감과 타인에 대한 유대감이 저 멀리 두고 왔던 생활에서도 다시 제 값을 할 것인가.
‘우연의 음악‘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삶이란 우연과 선택의 결합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주인공이 우연히 굴러 들어온 돈 때문에 일상에서 일탈하고 우연히 만난 젊은이로 인해 삶이 완전히 뒤바뀌었지만 결국 이 우연의 매순간마다 자신의 의지와 선택이 운명을 결정지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풀 오스터 자신의 원래 주제의식과 스타일을 조금 벗어난 이 책을 덮는 순간이 이 물음에 적절한 답을 찾는 순간이라고 기대하지는 말라. 늘 그렇듯 책은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던지는 역할만을 할 따름이다. 나머지는 늘 우리 몫이다. 왜 여기 길 위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혹은 저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더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 모든 결정을 우연에 맡기고 싶어진다. 그래서 ‘그래야만 한다’의 세계에서 벗어나 ‘그럴 수 밖에’의 세계로 넘어오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런데 밝혀 둘 것이 하나 있다. 나는 ‘바하의 푸가 기법을 따랐다.’고 운운한 그 신문기사를 착각한 모양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지만 바하의 푸가는 아니었다. 전혀 다른 책을 소개한 기사를 읽었던 것인데 다시 확인해 보니 그 책은 ‘언 이콜 뮤직(문이당) ’이었다. 이 이상한 우연 덕에 나는 ‘우연의 음악’을 읽게 되었다. 후회는 없다. 그리고 그것은 필히 제목과 어울리는 상황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