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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을 읽는다
박희병 지음 / 돌베개 / 2006년 4월
평점 :
번역일을 하는 A씨는 작정하고 지리산으로 갔다. 한동안 활자로된 그 어떤 것도 스스로에게 금지할 요량으로. 그런데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마치 금단현상처럼 무언가 허전하다 싶더니 이틀 째 되면서는 어디 눈에 띄는 라면봉지라도 없나하고 두리번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우연히 등산객이 두고간 신문쪼가리를 발견하고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결국 며칠 만에 다시 산을 내려오고 말았다.
금지된 것은 늘 매혹적이다. 왜 하필 기말고사 전날에 유독 재밌는 만화책이 눈에 띄는지, 어찌하여 미성년자 관람불가 딱지가 붙은 영화는 변장을 해서라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느냐 말이다.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일거리를 제쳐 두고 나는'연암을 만난다'. 국문학 교수인 박희병이 연암의 산문을 스무여 편 뽑아 우리글로 옮겨 놓았다. 그 스무여 편 되는 글들 모두가 아름답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다. 굳이 순서를 정하라고 한다면, ' 소완정이 쓴 「여름밤 벗을 방문하고 와」에 답한 글'을 제일로 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희병 교수가 여러 해 동안 읽고 연구하고 다듬어 놓은 본문에 이어 주해와 평설까지 함께 실은 수고로움 덕에 책의 두께는 세배로 늘어났지만, '이몽직의 요절에 애도하는 글'과 같이 연암의 마음 깊은 곳에 감추인 슬픔의 어떤 지점까지 이를 수 있게 된 것은 가외의 소득이라고만 한다면 지나치게 인색한 표현일 것이다. 나는 그 글에서 어쩌면 내 마음의 한자락을 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