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정원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의 처절한 정원에서/석류는 얼마나 애처로운가’-아폴리네르

  일부 성서학자들은 에덴 동산의 금단의 열매는 사과가 아니라 석류였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그 진실여부를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석류라는 식물은 아주 오래전부터 약용으로나 관상용으로나 인간에게 꽤나 효용가치가 높았던 모양이다.

  수분이 많고 신맛이 나는 석류열매는 날것으로 먹거나 즙을 만들어 먹으면 갈증을 없애준다. 어린시절 어긋난 이처럼 촘촘하게 박힌 못생긴 석류알을 입에 넣고 그 신맛에 진저리를 친 기억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석류는 안에 씨가 많아 다산의 상징이기도 해서 혼례복인 활옷이나 원삼에 문양으로 쓰이기도 한단다.

5~6월 경에는 노란색과 붉은색을 절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오렌지 빛 붉은색의 꽃이 핀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오렌지빛이라고 하기엔 좀더 도발적이고 그렇다고 붉은색이라고 하기엔 좀 순진한 색이다. 사실 장미나 튤립처럼 꽃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노력없이 사람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는 꽃이 있지만 석류는 그런 종류의 꽃은 아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고궁에서 우연히 시선에 부딪히는, 혹은 비바람에 흩어져 발길에 부딪쳐서야 비로소 그 꽃잎의 존재를 확인하는, 그런 종류의 꽃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류꽃은 참 예쁘다. 바람에 흔들리는 6월의 꽃잎은 차라리 여리고 가냘파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여름의 폭풍을 견딘 가을의 그 열매는 얼마나 단단하고 강인해 보이는지...




미셸 깽의 「처절한 정원」은 물론 이 석류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석류를 노래한 아폴리네르의 짧은 시를 제사(題詞)로 달고 죽음의 상황에 처한 작가의 아버지가 동생에게 그 시를 읊어주었다는 정도.

이야기는 2차 대전 당시 많은 유태인에게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모리스 파퐁의 재판에 한 어릿광대가 출입을 저지당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다시 모리스 파퐁의 재판에 참석하려는 그 어릿광대의 독백으로 끝이 난다. 흔히 2차세계대전을 그린 전쟁 소설이 그렇듯 이 책을 나치에 대한 선악일변도의 글로 지레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짧고 순진한 글은 나치의 만행에 대해서, 전쟁 속의 비참함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 침묵의 무게가 오히려 사람의 정서를 자극하고 상상할 수 있는 한 최고로 전쟁의 비인간성을, 마침내 인간존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주는 지도 모를 일이다.

책은 작가의 어린시절에 대한 추억을 중심으로 씌어졌다.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몹시도 부끄럽게 했던 아버지 덕분에 작가는 세상에서 어릿광대를 가장 증오했다고 고백한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라는 ‘품위’있는 본업에도 불구하고 주말이면 어릿광대로 분장하고 사람들이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웃기는 일을 자처하는 것이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때인지라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너무도 부끄러워 어떤 고아라도 원한다면 기꺼이 아버지를 주어버리겠다고까지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버지에게는 속죄할 만큼의 잘못이 있고 그래서 평생 어릿광대 노릇을 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학대한다고 짐작한다. 도대체 아버지는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이 비밀을 밝혀가는 것이 이 책의 중심 줄거리다. 책의 말미에 가서야 밝혀지는 진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다고 감추인 비밀이 꼭 잔인할 것이라고 짐작할 필요는 없다.

글은 짧고 문체는 명랑하다. 짧은 글은 부담이 적다. 그러나 글이 짧다고 해서 쉽게 생각할 만큼 녹록한 주제가 아님은 책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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