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 발칙한 글쟁이의 의외로 훈훈한 여행기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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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글쓰기를 동경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나로서는, 멋진 글을 보면 주눅부터 든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고서는, 여행작가로 소개된 지은이가 과학의 전분야에 대해 그토록 재밌고 진지한 글을 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주눅은 들었지만 한편으론 아 나도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비록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글을 한편 쓰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게 되기까지 했다. 물론 실천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빌 브라이슨에 대해 극찬하는 글을 조그만 사보에 기고한 적도 있다. 늘 정곡을 비껴가는 내 글쓰기 비겁함 때문에 그에 대해 제대로 평가했는지는 사실 나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것이 인연이 되어, 빌 브라이슨이 쓴 책은 무엇이든 다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제법 인기있는 작가였는지, 신문의 책소개란에 빠짐없이 유럽산책에 대한 소개가 실렸다. 헌데, 지난 두달 여간 세상이 얼마나 복작였나. 어찌보면 직접행동보단 조용한 내면의 사색과 응시인 책읽기라는 정신활동을 빌어 세상에 대한 관심을 이어오거나 관계맺고 있던 책읽기블로거들도 가만있지 못하고 의견 표명을 하지 않았던가? 이런 와중에 책 한권 읽기가 쉽지 않았다. 생활의 리듬도 많이 갈라졌다. 마음도 몸도 힘이 없어지고, 우울이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헌데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가 나타났다. 그 우울한 나날들에 키득키득 웃음소리를 돌려주고, 여행을 해볼까? 어디로 갈까? 하는 생각이 되돌아 오게 한 것은. 무엇보다 그는 솔직함이다. 대부분의 여행기(아,,어쩌랴...내가 그 많은 여행기를 몇권이라도 제대로 읽기나 했으랴!)는 여행지의 풍물에 대해 혹은 장소에 대해 사람에 대해 약간은 불공정한 찬사를 늘어놓기 일쑤다.  그러나 빌 브라이슨은 그렇지 않다. 그의 툴툴거림, 비아냥과 희롱은 속이 다 시원하다. 가보지 않은 곳은 늘 멋질 것이라는 환상에 똥침(나는 이런 표현 처음이다)을 날린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것이  은근한 여행에의 초대를 거절할 구실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이미 이 책에 반하였다. 글도 잘쓰고 비유도 마음에 들고 묘사도 일품이다. 온전히 일치하지 않으면 나오기 어려운 문체다....어쨌거나 불안한 세상에서 잠시 눈을 돌려 꿈을 꾸고 싶으면, 한번 권하고 싶다. 유쾌한 것이 없는 세상에서, 키득키득 웃어보고 싶다면, 권하고 싶다. 무엇보다 다시 현실로 돌아올 힘을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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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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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서정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준다. 제목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선입견은 모든 감각과 지각이 한 방향으로만 쏠리는 인식 작용이며, 내가 사물 또는 세상과 맺는 관계이자 그를 이해하는 한 방식이다. 그것의 종착지는, 실망이거나 새로운 인식의 지평이 열리는 경험이 아닐까.

미셀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였다. 그것은 한 남자(또는 여자)의 지루한 사랑의 연대기 정도이거나, 소설이라는 분류정보만 없었다면,인류의 사랑역사에 대한 심리학 또는 사회학적 연구서일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하다. 제목만 보아서는 결코 선택되어질 수 없는 책들의 목록이 있기 마련이다.

 

<제5도살장>은,이 같은 책들의 목록에 있어야만 했다. 도살장이라는 살벌한 용어가 주는 섬뜩함에다 숫자의 결합이 주는 묘한 비인간적 선입견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의 마지막 에세이 <나라없는 사람>이 주었던 반골적 인상에다 C의 간단한 품평 "...그런 에스에프적 전개가 전혀 새로운게 아니라니까...악마와 마르카리타나 제5도살장에 이미 있잖아..어쩌구..." .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다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는 도무지 기억에 없다. 하지만 이 문장은, 혹은 맥락은 결과적으로 제5도살장을 읽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사는거지, 뭐(커트 보네거트 식)

 

이 소설은 한마디로 하면 유서깊은 독일의 도시 드레스덴이 연합군에게 엄청난 폭탄세례를 받던 바로 그 역사적 순간에 그곳에 있었던 빌리 필그램이라는 한 남자의 얄궂은 시간여행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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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권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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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낯설고 멀리 있는 무언가에 무작정 끌린다면, 혹은 무엇인가를 그리워하고 언젠가 그것을 탐험해 보리라 마음먹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당신에게 ‘낭만적 기질’이 다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당신이 ‘2년 전 우연한 기회에 고민 없이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당신 속의 낭만적 기질이 이끄는 대로 대책 없이 행동했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낭만적’의 사전식 풀이는 대충 ‘현실적이 아니고 환상적이며 공상적인’ 정도일 터입니다. 당신처럼 무작정 파리행 비행기에 올라탈 만큼 용감하진 않다고 하더라도 환상과 공상 속에서 파리를 혹은 그 언저리를 수없이 배회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요컨대 당신과 나를 이어주는 보기 드문 공통의 문화 코드 중 하나가 파리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만 또 한편 그것은 굳이 파리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물론 문화적 편력에도 유행 같은 것이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여전히 파리는 당신과 나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한 그 무엇입니다. 게으른 산책자만이 파리의 진정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에드먼드 화이트의 역설은 그래서 더욱 유혹적으로 들립니다. 목적 없는 산책-그것이 내포하는 자유와 꿈은 당신과 내 속의 기질을 너무나 잘 표현한 것이며, 어느날 문득 이곳을 외면하고 머나먼 어떤 곳으로 무작정 길 떠나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오늘을 있게 한 고래로부터의 삶의 한 양식이기도 하고 어쩐지 현실로부터의 도피라는 말보다 더 정감있게 들리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 <외면>은 이렇게 당신이 길을 떠날 때 동반하기에 적합한 책입니다.어쩌면 길을 떠나도록 부추기는 책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첫 장을 펼치면 비행기 혹은 기차나 버스 여행의 지루함을 완전히 잊게 해 줄 것임을 장담합니다. 마치 순전히 소낙비를 피하겠다는 마음으로 취리히의 어느 사진 전시장에 들르게 된 주인공이 그곳에서 마주친 한 장의 사진 때문에 20여 년 전 머나먼 산티아고의 집, 라칸텐 거리 20번지로 돌아가는 것처럼, 당신을 지금 여기를 떠나 당신 기억에서 사라졌으나 세포 속 어딘가에 고스란히 남아있을 어떤 곳으로 들어서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싫지 않은 경험이라고 일반화할 수야 없겠지만 고백하자면 이 첫 번째로 배치된 소설이 가져다 준 한 순간의 기억이 나를 이 책의 끝까지 이끈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친 김에 첫 편의 이야기를 더하기로 하지요. 10대 시절이란 얼마나 길고 지루하던가요. 20년 전 산티아고나 서울 혹은 그 밖의 어떤 곳에서 10대를 보낸다는 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른 세계에 대한 동경, 더디게 가는 시간, 이성에 대한 호기심, 친구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과 믿음이 한데 어우러진 그 어지러운 시기를 아무 일 없이 지나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짐작하는 대로 주인공은 목숨까지 내놓을 만큼 어디나 한데 몰려다니는 친구 둘과 함께 주말 파티에 참석하다가 이사벨이라는 미지의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함께 추었던 유혹적인 춤, 담배와 폰체 냄새, 낡은 음악 그리고 약속. 그러나 이후 다시는 이사벨을 만나지 못합니다. 다시 찾아갔으나 그날 밤의 리칸텐 거리 20번지의 청동문은 이후 취리히의 전시장에서 사진으로 마주치기 전에는 결코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주인공이 마음대로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진실을 이사벨이 가장 아름답게 부정한 것일까라고 반문하는 20년 후의 그날까지 말입니다.

이어지는 몇 편의 글들 역시 먼 망각 속의 기억을 더듬습니다. 어린 소년이 동승한 살인자에게 느끼는 두려움과 소년다운 연민, 회교승인 체 하던 재주꾼이 친구의 권유로 검을 삼키고 죽은 이야기, 문명의 이기인 자동응답기에서 빌린 목소리가 쏟아내는 독설은 작가가 왜 이 글들의 부제로 ‘사람들을 외면하다’라고 했는지 당신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짐작컨대 칠레라는 나라는 우리만큼이나 역사적 부침이 심했던 나라인 것 같습니다. 17번째 글인 ‘톨라의 기록’과 24번 째 글 ‘전장에서의 밀회’와 같이 다섯 개의 부제를 구성하는 총27편의 글들은 더러는 직접적으로 더러는 에둘러 칠레 역사의 어떤 면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다만 그 담아내는 솜씨는 루이스 세풀베다라고 하는 작가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경험, 그리고 문학적 상상력에 기대는 바 클 것입니다.

흔히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표현합니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한 이야기들이 당혹스러울 때도 있고 또 한편으로 색다른 경험으로 신비감을 주기도합니다. ‘탈선’은 아마 후자의 느낌이 강한 작품으로 묘한 여운을 주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이제 ‘솔로르사노 부인에 대해 말해 주마’에 대해 언급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프라하의 헌책 방에서 발견한 책 첫 장에 선물하기 위해 쓴 글이 솔로르사노 부인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확인시켜 줄 줄을 30년 전에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모두가 노인이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던 사랑이 ‘책처럼 망각의 밤을 딛고 살아남았으며’ 30년 뒤 프라하 거리에 그 사랑의 존재를, 못 이룬 약속을 증언케하려고 주인공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었을까요. 현실과 상상이란 어쩌면 삶을 이루는 양 축이며 당신이나 나나 그것에서 비켜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작가는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책을 덮은 지금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신과 내가 지금 이 삶에서 경험하는 것들이 어쩌면 모두 꿈이고 환영이며 깨어나면 전혀 다른 누군가로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말입니다. 어쩌면 그런 기대, 그런 바람들이 당신과 내 속에 늘 도사리고 있어 언젠가 낭만성이라는 기질에 기대어 멀리 밖으로 튀어나올 때만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땐 주저하지 않고 떠나게 될까요? 그곳이 파리든 산티아고든 혹은 투발로든 아니면 더 먼 곳이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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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자
실비아 플라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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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엔 언제나 비명이 살고 있어요./밤마다 비명은 울부짖으며/내 속에서 잠자고 있는 이 어두운 것이/ 구름이 지나가고 흩어집니다/..(실비아 플라스의 ‘느릅나무’ 중)


195,60년대 미국의 시인이었던 실비아 플라스는 31살의 나이로 자살했다. 자살이란 문자 그대로 스스로를 죽이는 것이다. 인생의 유쾌한 결말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영국의 유명한 계관 시인이었던 남편 테드 휴즈는 자살한 실비아의 일기를 세상에 공개했다. 나는 그것이 무척 뻔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부분에 대해 남편이라고 해서 세상에 공개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 예민한 실비아도 분명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난감한 일이 생겼다. 실비아의 일기가 보고 싶다는 유혹이 드니 말이다. 실비아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자랐는지, 시란 그에게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왜 자신을 죽여야만 하였는지 자꾸 궁금해진다, 실비아 그녀가 자꾸 보고 싶어진다.

<벨자>는 지적이었고 예뻤으며 ‘지나치게’ 감성적이었던 실비아가 자살하던 해에 발표한 유일한 소설이다. 자신의 경험이 투영된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니, 내게는 일기를 대신할 수 있는 좋은 대체물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유리로 만들어진 종(bell)을 뜻하는 <벨자>가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책 속에서 확인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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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해?"

"...."

"마음도 뇌의 작용일까? 아니면 또다른 어떤 것일까?"

지지난해 나의 애인은, 나를 집으로 바래다 주면서 느닷없이 그런 질문을 하였다. 준비되지 않은 질문에 당혹하기 일쑤인 나는, 역시 머뭇거린다. 머릿속으론, 이런 질문을 한 저의를 궁리해 본다.정말 몰라서 물은 것일까? 아니면, 무언가 대답을 이미 정해두고, 그를 설명하고자 했던 것일까?

나는 그가, 물은 것에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토론을 시도한 그의 기대를 짓밟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늘 머릿속의 어떤 저울질로 어긋나기 마련일까? 나는 늘 그에게 잘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허튼 대답을 하기보단, 침묵을 선호했다.

지나고 보면, 허튼 대답이 침묵보다는,사랑의 에너지를 전달하는데 더 나았을 것이라 반성한다.

나의 애인의 질문과, 그리고 이어지는 내 반응들에 대한 기억이, 어딘가에 묻히지 않고, 늘 나를 맴돌고 있었나보다. 결국 나는,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혹은 마음의 정체에 대해, 무시하고 넘어가지 못한다. 나는 늘 나의 애인과 관계된 것에, 민감하다. 나는 내 애인에게 인생을, 걸었던가? 책을 찾아보았다. 스티브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그렇게 하여 내 수중에 들어왔다. 행운이었다.

우리 종족에 대해서, 이 책을 만나기 전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 감히 표현하고 싶다.

하지만, 참 방대하기도 하고, 전문적이기도 하여라. 860쪽에 이르기 위해, 몇 날을 보냈는지. 역시 나는, 난독증이 틀림없어하면서.  처음 100여쪽은, 잘 따라잡지 못했다. 읽고 나서도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그런 식의 지식이 처음이었던 까닭인가?  하지만 어느정도 익숙해지자,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

우리의 마음은, 진화의 산물이다. 마음은 일종의 모듈이며 뇌의 적응체계라는 것이다.

다음에 다시 정식의 독후감을 쓰기로 하자. 지금은 일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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