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성 城 - Anachronistic Zone - 조선 최대의 스팀펑크
홍준영 지음 / 멘토프레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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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만나고 SF소설에 대한 거부감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예전엔 SF소설이라고 하면 일단 거부감부터 들었습니다. 과학소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학적 지식이 웬만큼 있지 않으면 읽기 어렵거든요. 평소 과학에 관심이 많은 저도 쉽게 접하긴 힘든 소설 장르입니다. 하지만 SF소설이라고 너무 어렵게 생각할 이유도 없는 것 같더군요. 제가 재밌게 읽은 조지 오웰의 <1984>도 SF소설이고,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도 SF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 목록에 SF소설이 두 편이나 들어 있다니, 저는 어쩌면 좋아하는 것도 같습니다. 한국에서의 인기가 너무 없는 장르라서, 접할 기회가 적어 어렵다고 생각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소설 <이방인의 성>은 'SF소설이라고? 어렵겠군'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페이지를 거듭할수록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할 정도로 빠져들었습니다. '아, 이런 소설을 "대체역사소설"이라고 하는구나' '스팀펑크가 이런 거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덕분에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소설의 설정은 이렇습니다. 조선이 망하지 않고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으며, 아시아의 맹주국이기까지 합니다. 영토는 중국의 영토까지 포함한 대국입니다. 조선은 군사력으로도 세계 최강이며, 과학기술도 선두인 나라입니다. 거의 뭐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 당연히 일제의 식민지가 됐던 역사가 없기 때문에, 북한도 없습니다. 실제 역사인 6·25전쟁은 민란 정도로 일어났고, 타국의 도움 없이 난을 진압했습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이 민란 61주기에 세계적인 연회를 주최합니다. 그런데 이 연회에 초대받지 않은 공산주의 세력 <어깨동무>가 나타나 참석자들을 인질로 잡습니다. 연회 주최자인 합선대군과 그의 딸 현주마마, 기똥차게 요상한 인간(?) 존 D가 사건을 해결해나갑니다. 스토리는 대단하지 않아 보이지만, 내용이 충실합니다. 웜홀을 지나 또 하나의 지구에 가기도 하는 등 있을법한 과학 설정들이 끊임없이 나오거든요. 책이 두꺼운 이유가 아마도 중간중간 계속 나오는 과학적인 내용들에 대한 설명들 때문도 있는데요, 저는 과학에 관심이 많아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북한 말을 재밌게 하는 캐릭터도 있어서 읽는 데 재미를 더했고요, 존 D의 엄청난 능력이 책 끝날 때까지 까도 까도 계속 나와서 마치 신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생명체에까지 감염되는 컴퓨터바이러스, 와~~ 이런 상상력은 도대체 얼마큼 노력해야 생기는 걸까요? 이 외에도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이 책 곳곳에 있어서 재미를 더한 것 같습니다. 작가님 정말 대단함.


생소한 단어들도 많이 접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주위에 책 좀 읽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저는 정말 하수더군요. 대체역사소설이라는 말도 처음 들어봤고, 스팀펑크라는 용어도 처음 접해봅니다. 아,,, 저는 정말 무지한 사람인가 봅니다. 게다가 소설을 읽다가도 낯선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왔는데요, 정말 너무너무 고맙게도 해당 페이지 하단에 주석이 달려 있었습니다. 편집자님의 배려에도 감사 감사. 이 소설 <이방인의 성> 덕분에 SF소설과 대체역사소설에 급 관심이 생겼습니다. 홍준영 작가님의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언능 다음 작품도 만나보고 싶네요. 음,,, 다음엔 어떤 책을 읽어볼까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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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그리고 축복 - 장영희 영미시 산책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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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읽는 시간은 즐겁습니다. 시를 느끼는 공간은 여유롭습니다. 그리고,,, 시를 쓰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답지 않고서는 시를 쓸 수강 없거든요. 모든 예술가는 '작가'라는 호칭을 붙여주지만 시인에게만은 '인'이라는 호칭을 붙여줍니다. 그 이유는 시가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시를 쓰지 못하나 봅니다. 시의 나라에 퐁당 빠져, 허우적대며 시에 익사하고 싶던 스무 살 시절엔 저도 시를 많이 썼습니다. 사랑을 노래하고, 정의를 노래하고, 인생을 노래했습니다. 그땐 저도 시인이었나 봅니다. 시집 한 권 못 냈어도 300여 편의 시를 쓰며 시가 인생의 전부인 양 살았습니다. 하지만 시 하나 못 쓰는 지금의 저도 괜찮습니다. 비록 시인은 아니지만 시를 읽고 시를 느끼며 시인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나이가 됐나 봅니다.


  장영희. 영문학 교수이며 수필가.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그녀가 남긴 수많은 글들은 아직 세상에 남아 있습니다. 그녀의 아름답고 찬란했던 삶이 남은 자들의 마음에 새겨 있습니다. 그녀는 장애인의 한계를 극복해가며 우여곡절 끝에 교수가 됐고 수필가가 됐습니다. 그런 그녀의 삶이 있었기에 이런 영미시 책을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번역도 창조이기 때문에 시인이 아니면 시를 번역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삶이 시였고 그녀의 인생이 시인이었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번역물이 탄생했을 테니까요. 그래선지 책 곳곳에 그녀의 사랑이 보였습니다. 사랑하며 사랑하고 사랑을 베풀며 살아온 그녀의 흔적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녀의 흔적을 따라 글자 하나, 문장 한 줄, 시 한 편을 읽으며 여유로워졌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밥벌이로 인해 빡빡해진 재 삶에 여유를 가지게 됐습니다. 아~~ 이게 바로 시를 읽는 즐거움이겠지요.


  예전에 읽은 장영희의 수필 <다시 봄>에도 김점선 화백의 그림이 곳곳에서 그녀의 글과 어울렸습니다. 이번 책에도 김점선의 그림들이 시와 어쩜 이리도 잘 어울리던지요. 그러고 보면 둘은 정말이지 찰떡궁합이 맞나 봅니다. 글이 그림과 어울리고 그림이 글과 어울리는 책을 읽는 기쁨을 선물해줘서, 독자는 행복하기만 합니다. 시 하나 읽고 그림 하나 보고 반복하다 보니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입니다. 아,, 그래서 시를 그토록 좋아했었지. 제가 시인이 되긴 힘들겠지만, 다시 시에 흠뻑 빠지고 싶어졌습니다. 시로 하루를 시작하고 시로 하루를 마감하는 삶,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짜릿해집니다. 저자가 본문에서 "시인이 볼 때 우리는 분명 가던 길을 멈춰 서서 바라볼 시간이 전혀 없는 딱딱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라고 한 말이 딱 맞아 보입니다. 이제 봄도 왔으니, 길을 걷다가도 잠깐 멈춰 서서 곳곳에 핀 꽃들과 얼굴을 내민 새싹들을 보며 시간을 낭비해보려고 합니다. 아깝지 않은 낭비는 오히려 여유로 다가올 테니까요.


원문 http://blog.yes24.com/document/9396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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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토리노를 달리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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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 동계올림픽이 1년 남았습니다. 내년 2월에 열리니 정확히는 11개월. 어느 때보다 동계스포츠에 관심이 많아야 할 겨울이었지만 자신이 왕인 줄로 착각하는 융딩언어 구사자와 그 일당들 때문에 정신없는 겨울을 보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토리노 때만 해도 겨우 쇼트트랙에서만 메달을 획득했고, 스케이트 종목 외에는 아예 순위권에도 못 들었더군요. 책 마지막에 올림픽 결과에 대해 설명이 나오는데요, 일본과 비교해가며 이렇게 말합니다. '일본은 메달은 적지만 다양한 종목에 출전했고, 한국은 메달은 많지만 겨우 쇼트트랙뿐이다.'라고요. 백퍼 동감입니다. 그래도 <국가대표>라는 영화로 스키점프도 관심사가 됐고, 스피드스케이팅과 컬링, 스키 쪽 종목에도 시선이 갑니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적어서 다양한 스포츠가 성장하기 힘든 조건이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관심을 가져준다면 비인기 종목 선수들도 힘이 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용의자 X의 헌신>을 쓴 작가입니다. 눈물 뚝뚝 흘리며 본 이 소설과 달리, 이번 책은 동계올림픽 홍보물 같은 느낌이 듭니다. 동계올림픽 종목들을 소개하고 직접 체험해보는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거든요. 앗, 그리고 화자는 고양이입니다. 고양이가 사람 말을 하는 게 아니고, 고양이가 그냥 갑자기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올림픽이 끝나고 다시 고양이가 됩니다. 좀 엉뚱하긴 하지만 설정은 괜찮아 보입니다. 다만 소설 같지 않고 홍보물 같은 느낌이 강해서, 문학이라고 하기엔 정말 정말 애매합니다. 어마어마한 다작 작가로도 유명한 게이고를 보면, '나도 저렇게 다작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라는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됩니다.


  스키점프 장면에선 가슴이 찡해지기도 했고, 컬링 장면에선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두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피겨에선 한국 선수가 하나도 없다는 것에 뭐,,, 당연하지... 생각했지만, 토리노에서 일본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지식도 얻었습니다. 뭐, 별 관심도 없는 쓸모없는 지식이긴 하지만요. 그리고 마지막엔 갑자기 미래로 갑니다. 이번에도 엉뚱하게요. 그런데 미래엔 동계올림픽이 없는 겁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없어진 것이지요. 하~~ 이 소설의 주제는 맨 마지막이군요. 간단히 말해서 환경을 지키자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재미나는 동계스포츠를 즐기려면 배출가스를 죽이는 등 지구 온난화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막는다고 막아지겠냐만, 의미는 좋습니다. 내년에 열릴 동계올림픽 전에 반드시 여왕님과 일당들을 처벌하여 맘 편하게 겨울 스포츠를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만요.


원문 http://blog.yes24.com/document/9378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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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
김정범 지음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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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듣는 걸 좋아하긴 했습니다. 살다 보니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음악을 멀리하게 되더군요. 그래도 출퇴근길 항상 이어폰을 꽂고 다니던 20대 시절이 있긴 했습니다. 아르바이트로 장만한 미니카세트를 늘 지니고 다니던 고등학생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래 봤자 가요였지만, 못해도 하루에 두 시간 정도는 음악을 들었더랬죠.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몇 개월 듣다 보니 미세한 소리의 악기도 들려서, 가요 말고 클래식에도 도전해봤습니다. 외울 때까지 듣겠다고 비발디의 <사계>를 1년 정도 들은 것 같습니다. 한 곡 외우는 데 1년 걸리더군요. 그래서 다른 곡은 안 들었습니다. 하하하. 그래도 저는 그때 들은 기억이 남아 있어선지, 길을 가다가도,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도 비발디의 <사계>가 들리면 바로 맞춥니다. 뭐, 아는 곡이 그것 하나뿐이니... 맞출 수밖에요.


  음악은 들을 때만 좋은 게 아니라 추억도 가져다줍니다. 저자가 "그 시절 멜로디를 떠올리자 잊었던 시간과 이야기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오르더군요"라고 말한 것처럼, 그 음악을 들었을 때 내가 뭘 했는지 기억나게 해줍니다. 그 곡과 관련된 기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저야 뭐, 음악 전문가가 아니라서 아는 곡도 그리 많지 않지만, 뮤지션이라면 다를 것입니다. 뮤지션 김정범의 이 책 <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는 이렇게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부산일보>에 매주 기고한 칼럼을 선별한 책입니다. 곡과 관련된 추억이나 이야기 또는 지식 들을 2~3페이지 정도로 짧게 적은 글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 소개한 곡들 중 아는 곡은 딱 한 곡 뿐이더군요. (몇 곡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외국 음악입니다. 제가 아는 외국 음악은 해피볼스데이투유 뭐,,, 그런 것뿐이라...) 그래서 저는 아주아주 공감된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김정범님의 이런저런 글을 읽으며 '음악을 가지고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라디오에서 옛 추억의 노래가 나오면 어김없이 그 노래와 연관된 사람이 떠오릅니다. 앗, 그러고 보니 저를 알던 사람도 어떤 곡을 들으면 제가 생각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제가 노래방에서 자주 불렀던 곡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제가 생각나겠군요. 저는 취향이 조금 독특해서 다수가 좋아하는 노래는 안 좋아했거든요. 성격이 참으로 독특합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엔 그다지 정이 안 가더라고요. 그래서 인기 없는 가수, 인기 없는 뮤지션들을 좋아했습니다. 으하하,,, 왠지 기분이 이상해지는군요. 어디 길을 가다가 삐삐밴드의 <딸기가 좋아>가 흘러나오면 저를 떠올릴 사람들이 있다는 것, 기분이 묘하군요. 암튼,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좋아했던 음악이 뭐뭐 있었더라,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팬클럽에까지 가입했던 그 가수는, 요즘 뭘 하며 살고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얼마 전 아이폰으로 바꾸고는 애플뮤직 3개월 무료라길래 가입했습니다. 허거덕... 국내 음악은 별로 없더군요. 아쉬워라. 특히나 제가 가요를 한참 좋아했던 90년대 가요가 너무 없었습니다. 대신 외국 곡이 어마어마하게 많았습니다. 제가 팝송 한 번 들어보겠다고 샀던  TLC의 노래를 들으니 고등학생 시절 버스 안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블루투스 이어폰까지 사놓고는, 요즘 음악을 안 듣습니다. 이상하게도 음악을 듣고 있으면 머릿속이 혼란해지더군요. 뭔가 복잡해지고요. 아주아주 조용하고 고요한 노래를 찾아서 들으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합니다. 김정범님이 소개한 곡들 중 몇 곡을 찾아서 들어보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합니다. 애플뮤직에서 찾아봐야겠어요.


원문 http://blog.yes24.com/document/9309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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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무기 - 이응준 이설집
이응준 지음 / 비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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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응준 작가. 1970년 생으로, 20살에 시인으로 등단. 우아~~~ 20살에. 제가 문학을 너무 몰라 이응준 시인의 글은 처음입니다. 소설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 중인데도 그의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 했습니다. 시집을 두 권, 소설집을 다섯 권, 장편소설도 네 편이나 발표했더군요. 이번엔 산문집입니다. 한국에선 수필이 잘 안 팔린다는데도 이렇게 책이 나온 걸 보면 대단한 작가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낙서장이나 블로그에 수년간 쓴 것들을 모아둔 것 같은 느낌의 잡동사니 산문집입니다. 일기처럼 자신의 생각을 쓴 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쓴 글 등 내용과 형식도 다양합니다. 제가 등단 작가가 아니지만, 제 블로그 글도 몽땅 모으면 책 한 권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작가 지망생인지라, 작가에 대한 글 소설에 대한 글, 글쓰기에 대한 글, 문학에 대한 글들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좋았던 부분 중에 몇 개만 골라보겠습니다.


왜 젊은이들을 위로하는가? 기운 차리게 해서 또 편의점에서 부려먹으려고?


지금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된 것은 헌법이 열등해서도 아니고 법이 모자라서도 아니다. 법을 만드는 자들부터 타락해 법을 안 지키기 때문이다.


  법은 누구나 지켜야 합니다. 그 사람이 대통령이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왕인 줄 아는 한 정신병자가 법을 어기고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만인에게 평등한 법이 아니게 됩니다. 왜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됐을까요. 저자는 헌법이 열등해서도 모자라서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법을 만드는 자들부터 이미 타락했기에, 그들부터 법을 안 지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정치인부터 법을 안 지키는데 국민들이 법을 지키고 싶을까요? 그러니 여기저기서 불법이 횡행하고 억울한 사람이 차고 넘치는 것입니다. 나라를 이 꼬락서니로 만들어놓고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정말이지 꼴불견입니다. 어떤 교수는 아프니까 청춘이랍니다. 아프면 환자지요. 환자는 치료받아야 할 대상이지 위로받고 노력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필사로 소설 수업을 시키는 것은 진지한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당장 힘 좀 쓰게 하겠다고 미래에 발병할 괴로운 병원체를 강장제로 먹이는 것과 같은 짓이다.


요즘 젊은 소설가들은 상상력이 없다. 문학상 눈치 보고, 출판사 눈치 보고, 이러는데 무슨 상상력이 있겠나. 작가의 모럴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거다. '나는 이 사회를 흔들어놓겠다, 이 사회를 뒤흔들 질문을 던지겠다.' 이 강력한 의지가 글을 쓰게 하는 거라고. 그런데 남의 눈치를 보니까 쓸 게 없지, 여기서 '남'은 누굴까? 여기까지만 하자.


만약 신경숙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받아 적다 보니 시인 김후란 번역의 <우국> 속 저 부분을 표절한 <전설>의 그 부분이 저절로 나타나게 된 거라고 주장하려면, 가령, 자신의 집 앞에 커다랗고 둥근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 밤 태풍이 몰아쳤고 이튿날 맑게 갠 아침에 눈을 떠보니 그 커다랗고 둥근 바위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똑같은 모양으로 간밤 비바람에 깎여 있더라는 해괴한 어불성설을 명쾌한 사실로 증명해내야만 할 것이다.


  저자는 필사를 극구 반대합니다. 필사를 필사적으로 반대합니다. 무조건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절대 해선 안 될 어리석은 짓이라고 충고합니다. 왜 한국문학이 이 꼬락서니가 됐을까요. 상상력이 부족하니 표절이나 합니다. 표절이 아니면 재미가 없거나 읽을만하지 않습니다. 저는 '등단제도'가 한국문학을 시궁창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상에 오직 우리나라만 등단제도가 있습니다. 등단제도가 훌륭한 것이라면 노벨문학상이 수십 명은 나왔어야죠. 그런데 0명입니다. 등단제도가 개쓰레기 구닥다리 제도라는 증거입니다. (등단제도가 쓰레기라는 건 제 생각이며 저자의 생각이 아닙니다.) 외국에도 등단제도가 있었다면 우리가 읽고 있는 고전들 중에 몇 권이나 살아남았을까요? 발표 당시에는 아무도 읽지 않아서 잊혀진 소설이 세월이 지난 후에야 제대로 평가받고 전 세계인이 읽는 소설이 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읽은 <폭풍의 언덕>은 에밀리 브론테의 단 하나뿐인 소설이더군요. 그 나라에 등단제도가 있었다면 이 훌륭한 소설은 세상에 나오지도 못 했을 것입니다. 한국문학 말아먹는 등단제도 때문에 젊은이들은 심사에 통과될 소설을 씁니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십 년 그렇게 소설을 씁니다. 그러니 무슨 상상력이 있겠냐고요. 그래서 표절이나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소설 쓰기가 힘들어지면 카프카의 소설을 읽는다. 그런데 소설가로 사는 것이 힘들어지면 카프카에 대한 밀란 쿤데라의 산문(<소설의 기술>)을 읽는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에 대한 생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첼로 소리 같은 글들은 작가란 천국에서조차 이방인이어야 하며 그의 조국은 '망명'이라는 사실을 감각하게 해준다.


작가란 세계를 무너뜨리고 재구성하려는 불가능한 야망에 사로잡혀 있어야 한다. 그러는 것은 기껏해야 비극이지만 누군가는 그 비극 안에서 불새가 소리치며 날아오르는 것을 본다.


  제 꿈은 '중학교 국어선생님을 하며 소설 쓰는 것'이었습니다. 네, 과거형입니다. 선생님이 못 됐으니 이미 깨진 꿈이지요. 그다음에 새로 세운 꿈은 '아빠 되기, 소설가 되기'입니다. 아빠가 되는 꿈은 기적적으로 이뤄졌고, 아직 소설은... 그래도 저는 이 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평균수명으로 따져도 아직 살 날이 40년이나 남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소설 쓰기 힘들 때 카프카의 소설을 읽는다고 합니다. 카프카, 그는 소설을 쓰려고 결혼도 안 했습니다. 오직 소설을 쓰기 위해 혼자 살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소설을 쓰다가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 카프카의 생애가 계속 떠오릅니다. 그래선지 저자는 소설가로 사는 게 힘들면 카프카에 대한 글을 읽는다고 합니다. 저야, 뭐, 아빠가 되고 싶었기에 결혼을 했지만, 저도 소설가가 되기 위해선 무언가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아~~ 어렵습니다. 소설가가 되는 길은.


변화하지 않으면 이기는 것은 고사하고 살아남지 못한다. 지는 것은 고사하고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변화하는 척하면서 싸우면 져도 더럽게 진다. 죽어도 더럽게 죽는다.


파시즘의 얼굴

사람들은 관대하게 지배당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_ 요제프 괴벨스, <미하엘>, 1936.


  '변화'를 저는 '진보'라고 바꿔서 읽어봤습니다. 진보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나라 보수정권의 처참한 모습을 매일 뉴스를 통해 보고 있습니다. 자신이 대통령인지 왕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유딩화법 구사자는 법 위에서 헌법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이제는 정치에 관심 좀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요. 아주아주 옛날 옛날 플라톤이 이런 말을 했죠. '정치에 무관심하면 당신보다 못한 놈에게 지배받는다'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 하하하. 정말 대단한 철학자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수준이 박ㄹ혜라서 그런 대통령을 가졌나 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유딩화법이나 쓰니까 저런 대통령을 아니 왕을 가졌나 봅니다. 그래서 배워야 합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안 하면 망합니다. 망해도 아주 더럽게 망합니다.


문학이 뭐냐고? 문학은 인간과 세상이 신이라는 존재처럼 우스꽝스럽다고 벽에 말해주는 것이다.


사건이 넘치게 있어도, 인간의 내면이 없는 이야기는, 사실상 소설이 아니다.


작가는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작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일 뿐이다.


시나 소설을 쓰다 보면, 문들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결국 인간의 이야기는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구나,라는.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측면으로 접근하든, 전적으로 '육체적 중노동'이다.


  저는 시간만 나면 소설 생각입니다. 문학적 소양이 너무 형편없어서 요즘은 고전을 주로 읽습니다. 이제 몇 권 읽었지만 '아~~ 이래서 고전이 됐구나'라는 걸 많이 느낍니다. 그러곤 위축됩니다. '나도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글쓰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힘듭니다. 중노동입니다. 하지만 저는 문학을 하려고 합니다. 죽을 때까지요. 언젠가는 제 책도 세상에 나올 날이 있겠죠. 그날 제 책에 멋지게 친필 사인을 해주렵니다. 하하하.


원글 http://blog.yes24.com/document/928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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