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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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 다산책방

 

가난한 내가 시를 사랑해서

 

 

 

 

  백석 시인을 아시나요? 시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 번은 읽어봤을 시인 백석. 서정적인 그의 시는 쓸쓸함과 외로움이 느껴져도 슬프다기 보다는 아름다워요. 시집의 제목으로도 쓰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특히나 더 이런 모습을 잘 보여줘서 많이 읽혀요. 이 시는 읽고 나면 마음 한 구석이 아리면서도 안타깝지 않아요. 제가 시를 잘 몰라서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적인... 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저는 어른이 되어서야 백석을 알았어요. 아마도 그가 북으로 가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반공사상이 심했던 과거가 있잖아요. 뭐,,, 요즘 갑자기 TV에서 북한 소식을 아주 자세히 알려줘서, 이게 평양방송인지 대한민국 공영방송인지 헷갈리지만... 그가 북으로 가면서 우리는 아름다운 시인을 잃었어요. 남북 분단이 남긴 아픔의 상처지요. 그는 반민족 매국신문 조선일보에서 열아홉이라는 어린 나이에 등단해요. 으핫,,, 제 나이 반이네요. 시가 아니라 단편소설로 등단을 했어요. 발표하는 작품마다 화제가 되고 많은 시, 소설, 수필을 발표한 대표 서정시인 백석은 남북 분단이라는 장벽에 막혀 잊혀져버린 시인이지요. 최근 여러 커뮤니티에서 백석 시인이 자주 거론되는 걸 지켜보며 참 마음이 아팠는데, 시집을 손에 잡고 보니 '모두 헛되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백석 시의 특징이라면 방언을 많이 사용했다는 거예요. 평안북도에서 태어난 백석은 해방 후에는 사랑하는 고향땅으로 돌아가요. 이만큼 고향을 사랑했기에 시도 방언으로 썼지 싶어요. 이 책에선, 매 페이지마다 시에서 사용한 방언을 풀이해놨어요. 시를 읽을 땐 모르는 말이 많오면 집중력이나 감성이 떨어지지 않을 까 걱정했는데요,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시 속에 녹아들어 시와 하나가 되어버린 방언을 읽는 느낌이 색달랐어요. 시를 감상하고 나서 방언 풀이를 읽으며 한 번 더 이해하는 과정이 좋았어요. 방언이라고 해도 전혀 못알아 들을 정도는 아니었어요. 뜻은 몰라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정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저는 이 시를 보고 난 후에 '응앙응앙'이라는 표현이 잊혀지지 않았어요. 어떻게 저런 표현을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요? 눈이 나린다. 눈이 폭폭 나린다. 나는 나타샤를 사랑한다. 나는 나타샤를 생각한다. ㅎㅎㅎ


  책표지에도 책 내지에도 백석의 사진이 있는데요, 우앗. 헤어스타일이 죽여주네요. 이 시대에는 이런 스타일이 유행이었는지, 예술가의 멋부림이었는지는 몰라도 한 번 보면 잊을 수가 없는 스타일이에요. 책표지의 저 사진은 1937년에 영어 강의에 열중하는 모습을 찍은 거예요. 저 만큼 잘 생겼지요?




<적경>


신살구를 잘도 먹드니 눈오는 아침

나어린 아내는 첫아들을 낳았다


인가 멀은 산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즞는다


컴컴한 부엌에서는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으핫,,, 저도 곧 아빠가 되잖아요. 제 아내가 첫 아들을 낳을 텐데요 시아버지는 없지만 제가 미역국을 맛나게 끓이고 싶어졌어요. 인천이라는 곳에 와서 만난 아내, 가진 거라곤 책 1,000 여권 뿐인 저에게 시집온 착한 아내가 먹을 미역국이라면 백 번도 더 끓일 수 있어요. 아핫,,, 요즘은 소설을 봐도 시를 봐도 아내와 태어날 아들 생각 뿐이네요. 



<여우난골>


박을 삶는 집

할아버지와 손자가 오른 지붕 위에 한울빛이 진초록이다

우물의 물이 쓸 것만 같다


마을에서는 삼굿을 하는 날

건너마을서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문이 왔다


노란 싸릿잎이 한불 깔린 토방에 햇칡방석을 깔고 나는 호박떡을 맛있게도 먹었다


어치라는 산새는 벌배 먹어 고흡다는 골에서 돌배 먹고 앓던 배를 아이들은 떨배 먹고 나었다고 하였다



<야반>


토방에 승냥이 같은 강아지가 앉은 집

부엌으론 무럭무럭 하이얀 김이 난다

자정도 훨씬 지났는데

닭을 잡고 모밀국수를 누른다고 한다

어늬 산 옆에선 캥캥 여우가 운다



  이 시집은 백석의 시 93편을 수록했어요. 소리 내어 읽어 보고 눈으로도 읽고 느껴보고 하다 보니 시집 한 권과 함께 여행을 한 기분이에요. 백석이라는 젊은 청년과 함께 언어의 마법사와 함께 아름다운 서정시의 세계로 잠시 다녀온 것 같았어요. 맨 뒤에 연혁을 보니,,, 51세에 절필을 했더군요. 아,,, 천재 시인이 절필을... ㅠㅠ 그 후로 84세로 사망하기 까지 창작활동을 안 했다고 하니 너무 안타까웠어요. 이념이라는 벽에 막혀... ㅠㅠ 이 시집은 가까운 곳에 두고 오래오래 봐야 겠어요.


#naha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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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시경 2014-04-09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석 시를 읽으면~배가 고파져요~ 뽀얗게 삶아 낸 국수가 먹고 싶어지는 봄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