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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 (무선) ㅣ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3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4월
평점 :
우이코의 육체를 생각하며 암울한 공상에 빠져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나는, 날이 밝기도 전에 잠자리를 빠져나와 운동화를 신고 여름 새벽의 어둠이 깔린 집 밖으로 나섰다.
우이코의 육체를 생각한 것은 그날 밤이 처음이 아니다-18P
나는 어두운 새벽길을 곧장 달렸다. 돌멩이도 나의 발길을 방해하지 못했고, 어둠이 내 앞에 자유자재로 길을 터주었다.
내게는 외부 세계라는 것과 너무도 무관하게 살아왔던 탓으로 일단 외부 세계로 뛰어들면 모든 것이 쉽고 가능해지리라는 환상이 있었다.
숲모기가 내 다리를 물었다.
우이코는 자전거를 타고 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자전거 앞으로 뛰쳐 나갔다.
자전거는 위태롭게 급정거했다.
그 순간 나 자신이 돌로 변하고 만 것을 느꼈다.
외부 세계는 나의 내면과는 무관하게 다시금 내 주위에 확고히 존재하고 있었다.
이 장편소설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삽화'이다.
이 소설의 다음 긴 분량은 이 삽화의 끊임없는 변주에 불과하다.
진실로 그러하다.
그러나 '불과하다'고 해서 폄하될 수 없...
아니, 추앙받아야 마땅한 이유는 그 '천재성'에 있다.
한 마디로, 美쳤다.
이 소설을 처음 대하는 독자는 변주임을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글자 하나 하나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목을 울려 소리로 발음해 내 귀로 확인하는 과정을
서너번은 거쳐야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단어와 프레이즈와 텍스트를 낱낱이 해체하고 모았다가 다시 해체하고서야 겨우 짚어낼 수 있었다. 그마저 성공적이라고는 장담 못하지만.
'금각사'를 유미주의, 탐미주의란 단어로 가려 '미의 추구'로 읽으려 한다면
절반만 읽는 것이다.
'말더듬이'인 마조구치(나/화자)가 자신을 거부하는 외부 세계로부터 격리되지 않으려는
몸부림. '금각'은 그 몸부림을 방해놓는 존재일 뿐이다.
그 몸부림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금각'이 될 수 있다.
미시마 유키오는 그 정도 할 수 있으려면 '절대 미'여야 한다고,
그래서 '금각'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쓰고 있는 듯하다.
('美'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닌 것이다)
초반의 '우이코 스캔들'이 드러나는, 고작 서너 페이지만 떼놔도
걸작단편으로 완성되기에 손색 없을 지경이다.
걸작단편이기에 이 삽화는 실로 꽉찬 이야기를 잉태했고
그 결과,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만
스스로 변주가 가능해졌다. 무수한.
그 무수한 변주들이 장편의 분량을 이루었다.
그 어떤 소설에서도 이런 기막힌 변주를 목격한 적 없다.
소설이기에 이룰 수 있는 그 무엇을 '금각사'는 이루었다.
금각사는, 너무나도 소설다운, 그래서 쉬이 볼 수 없기도 한 소설이다.
소설의 변주를 공부하고 싶다면, '금각사'를 눈여겨 볼 것.
이제껏 리뷰 쓰면서 단 한 번도 주지 않은 별 다섯개, 아낌없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