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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독서법으로 연봉 3억이 되었습니다
내성적인 건물주 지음 / 메이트북스 / 2023년 3월
평점 :
(출판사 책 소개 중 인용문에서)
위 두 단락은,
(내 눈에) 살짝...(어쩌면 크게) 모순처럼 보인다.
소설(위에서 말한 '에세이'도 포함해서)만큼 '인생'에 적용할 진리가 진득하게 배어있는 책이 또 있던가? (물론, 다분히 주관적인 견해다. 이 공간은 주관적인 견해를 쓰는 곳이므로, 쓴다)
그런데 소설과 에세이를 밀쳐두라, 한다.
드라마 '미생'에 보면 일 잘하는 안영이씨가 업무 중에 에세이를 펼치는 장면이 나온다.
'안영이씨가 읽던 에세이'라고 검색하면 나온다.
(*이미지출처/tvN)
이 장면이 주었던 작지 않은 울림을 기억한다.
아버지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던 안영이의 유일한 독립책은
'직장'이었다. 일 잘하기였다.
과연 안영이는 일을 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영이는 그 지독한 생존 경쟁의 한복판에서
몸값 올려주는데 별 소용 없어 보이는 에세이를 읽는다.
왜일까?
그 답은 아마 모두가 알 것이다.
콕찝어 말하지 않더라도.
내가 지금 정말 후회하는 것 중의 하나는...
치열한 생존 경쟁의 한복판에 있던 그 시절,
몸값 올려줄 거라고 기대했던 책만 읽었던 것이다.
그 시절, 소설과 에세이를 전혀 읽지 않았던 것이다.
공부에 바쁘고
성공하기 바쁘다는 이유로.
몸값 올려주는 비법은
몸값 올려주는 비법은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고 여겼던
소설과 에세이에 들어있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미처,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책에서 말하는 '몸값 올려주는 책'은 어떤 책인가.
part4에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몸값 올려주는 책'이란 게 어떤 건지
엄청나게 궁금하다.
그런데 이 말은 하고 싶다.
뿌연 호수 밑바닥에 진귀한 게 잠겼어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진귀한 게 진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호수 밑바닥에 잠긴 진귀한 것은 알아보고 건지는 자의 몫이다.
물론, 한시바삐 시급하게 몸값을 올려야 하는 청춘이라면
이런 책도 필요할 것이다.
이런 책이 세상에 나오는 가치와 의의는 그런 데 있을 것이다.
어떤 책이든 본연의 가치와 의의는 갖고 나오기 마련이다.
그 점은 존중하는 바이다.
그러나 한시바삐 몸값을 올려야 한다고 해서
소설과 에세이를 '잠시라도' 밀치지는 않길 바란다.
소설과 에세이에 알고 보면
그런 게 못지 않게, 아니 어쩌면 더 많을 수 있다는 사실도
한시바삐 깨닫길 바란다.
일도 잘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 (처음엔 잘 몰랐지만) 알게 된 안영이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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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저자가 읽고 몸값 올리는데 도움되었다는 책이
독자의 몸값을 올림에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다만, 소설과 에세이를 '잠시 내려놓으라'는 말에는 선뜻 공감 안 된다.
하버드 대학, 세인트 존스대학, 시카고 대학에서 학부생들이
읽지 않으면 졸업 안 시켜주는 '인문고전 100권 중'
(고전)소설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자.
몸값 올리기에 그 언제보다 몰두해야 할 때일텐데 말이다.
그런 대학 총장이나 학장들이 '인문고전 읽기' 정책 실현 회의를 할 때
누군가 이런 발의를 하고 과반수 이상이
그에 동의한 건 아니었을까.
존경하는 교수님 여러분!
이 청춘 시절에 좋은 (고전)소설을 읽지 않으면
학생들은 좋은 소설을 평생 읽지 못할 것입니다.
소설의 가치를 미처 알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그 평생 삶의 길잡이가 되어줄
좋은 소설을 읽힐 의무가 우리에게 있지 않겠습니까?
옳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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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있어 보자...
'소설'의 효용에 관해 멋지게 정의내린 책이 있었는데...
아, 찾았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0566289
현실에 있는 우리는 너무 현실에 붙어 있어서 모방욕망이 모방욕망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소설과 이야기는 한 발짝 인간의 현실에서 떨어져 있으니, 그만큼 잘 보일 수밖에.
그(들뢰즈)는 말한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소설을 읽는 사람은, 타락한 세계로부터
'수직적인 초월'을 하여 진실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수직적인 초월'은 좀 어려운 말이긴 하나, 간단히 설명하면, 어떤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것처럼, 자신의 삶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말한다. 마치 들뢰즈의 '예술 기호'처럼 말이다. 중요한 것은 타락한 세계로부터의 탈주, 추월이다.
따라서 우리가 소설에서 해석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묙망이다!
(290p)
그러나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효율적인 것, 빠른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 말이다. (중략) 소설은 우리에게 '편집점'을 제공할 것이다. (중략) 소설은 우리 삶의 분기마다, 컷마다 잘 넘어가도록, 이어지도록 도와줄 것이다. 자기 자신의 모방욕망임을, 그래서 잘못가고 있음을 수시로 깨닫게 말이다. 그래서 이 편집점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점검할 수 있다. 잘못 가고 있으면 바로 유턴하거나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편집점. 그 편집점이 바로 소설이다.
(292p)
남들이 말할 것이다. 지금 한가하게 책이나 볼 때냐고 말이다. 맞다. 지금 한가하게 책을 볼 때다. 당신들은 정신없이 바쁘게 사시라. 나는 나만의 속도를 갖고 살겠다. 내 삶의 속도에 간섭하지 말라. 나는 이대로 살아도 좋으니까. 이렇게 당신이 대답했으면 좋겠다. 나도 이렇게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기만의 속도를 갖고 있는 것, 그래서 자기만의 관점을 갖고 있는 것, 그것을 나는 감성이라고 부를 것이다. 남들 하는 것 다 따라할 필요가 없다. 나만의 유니크한 속도를 부디 만드시길.
소설이 당신을 도울 것이다.
(293p)
*[저는 이 독서법으로 연봉 3억이 되었습니다]란 책을 완독한 것도 아니고,
본서에 전반적 유감은 없다. 다만, 본 리뷰에서 거론한 '소설/에세이를 밀어두라'는 부분에 생각할 여지를 제공하려는 것 뿐. 본 책은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개인적 독서의 효용을 논거하는 것이므로 그에 대한 개인적 '이견'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보아, 쓴 생각이다. 본서가 목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읽는 이에게 그 나름의 도움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에는 거듭 말하지만, 변함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