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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한 친구가 톨스토이의 '부활'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너무 헛갈린다고 했다.
작가가 같은 러시아인에 활동시대도 비슷한데 소설의 구성이 비슷하다고.
남자 주인공이 있고, 여자 주인공이 있고,
남자 주인공이 뭔가 나쁜 짓을 해서 새 사람이 되는 내용.
그리고 둘 다 성경이 개입된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다.
-헛갈리면 다시 읽으면 되지.
'고전'은 '소문'으로 읽는 책이라는 말이 있다.
눈으로, 머리로, 마음으로 읽지 않고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지간한 고전은 다 읽었다고 생각한다.
무리도 아닌 것이, 학교 교과서에서 '조각'으로 '축약'으로 본 적은 있기 때문이다.
본 적 있을 뿐인데 읽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게 고전이다.
요즘 고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으니 '다시'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요즘 고전을 '처음' 제대로 읽고 있다.
왜 고전인지 알겠고, 명작인지 알겠다.
읽다가 지칠 정도로 풍성한 사유와 성찰.
남자는 살인을 저지르고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난한 대학생이면서 살인을 하고 돈을 구덩이에 묻고 쓰지 않는다.
남자는 '선'을 넘어 '신'이 되려 했기 때문이다.
비범한 인간은 신이 될 수 있고, 신이 되면 사회에 한 점의 선한 기여를 하지 않는 존재는
제거해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범한 인간, 라스꼴리니코프는 비범하려 했던 '벌'을 받는다.
그리고 평범하지도 못한 창녀 소냐의 사랑을 얻고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환희를 얻는다.
사회의 악으로 보이는 자라도 우리가 단죄할 수는 없다.
사람의 죄는 법으로 형벌을 매길 수 있을지 모르나 벌을 내릴 수는 없다. 죄인은 형벌을 수행하나 벌을 받을 수 있다.
벌을 받는다는 행위에는 '참회'가 담보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벌을 내리는 것은 인간 능력 밖의 권능일 지도 모른다.
라스꼴리니코프는 죄를 짓고, 죄 지음을 몰랐으나, 죄 지음을 깨달았고,
형벌을 수행함에 아울러 벌을 받았다.
그는 참된 인간의 사랑으로 참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 번 읽어서 이 정도만 파악이 가능했다.
두번, 세번 읽을 생각이다.
또 어떤 놀라운 파악이 가능할 지.
그는 초조하고 불쾌한 기분으로 눈을 뜨자, 증오에 가득 찬 눈초리로 작은 방을 둘러보았다. 여섯 걸음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새장 같은 방은 먼지 때문에 누렇게 퇴색한 벽지가 그나마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서 보기에도 초라했다. - P47
그런데 넌 왜 그런 짓을 하려는 거지? 이게 무슨 말이냐? 이 수수께끼의 해답은 뭐란 말인가? 모든 것은 분명하다.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안락을 위해서, 아니 자신을 죽음에서 건지기 위해서라면 너는 자신을 팔지 않을 테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판다는 거다!
그 허약하고 어리석고 사악한 노파의 삶이 사회 전체의 무게에 비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 P101
만일 정말로 네가 이 모든 일을 의식적으로 행한 것이라면, 바보스럽게 어쩌다가 그냥 저지른 게 아니라, 만일 진정으로 어떤 일정하고 확고한 목적이 있었던 거라면, 너는 왜 지금까지도 지갑을 들여다보지 않았고, 네가 무엇을 훔쳤는지 알아보지도 않았는냐? - P162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한마디로 말해서 이 세상에는 어떤 부류들이 있는데 그들은 온갖 종류의 폭력과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기보다는, 그런 짓을 행할 완전한 권리를 지니고 있고, 또 그들에게는 어떤 법률도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는 그런 암시였습니다. - P376
저는 다만 <비범한> 사람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즉 공식적인 권리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양심상...모든 장애를 제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말한 것뿐입니다. - P377
그 사상이란 바로 자연의 법칙상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는 겁니다. 하나는 저급한(평범한) 부류로서 오로지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출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처한 환경 속에서 <새로운 말>을 할 줄 아는 재능 혹은 천분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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